만평(Pictured Issue)

남과 여, 경향신문, 그림,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5. 11. 18:41

 

 

 

만경 20070425 – 남과 여

 

위의 남과 여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직접적인 관련성 유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일반적인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데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남과 여가 쌍쌍으로 짝을 지어 다니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니 위의 그림을 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경제 활동이든 종교 활동이든 정치를 위한 활동이든 보기 좋은 모습처럼, 그것도 연인이면 더욱 더 좋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그것도 실질적인 이익이나 이윤이 발생을 하지 않는 주제들에 대해서 특히나 당사자의 이해 관계에 직결이 되지 않는 주제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저런 방법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희롱을 하거나 우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반응을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방법들을, 전략과 전술들을, 많이 동원하기도 할 것이다. 언론이 될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의 입 소문이 될 수도 있고 여타 과학적인 학문적인 사회 봉사 활동적인 종교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근래의 경우처럼 방송 영화 연예 분야의 등등, 활동들이나 업적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방법들을 동원하는 것에도 꼭 헌법이나 법률로 말을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경계선이, 즉 한계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란 자리도 대한민국의 공직의 자리이고 그 업무도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것이니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그리고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향이나 종교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적용이 되는 윤리나 도덕을 지키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조직력으로 자금력으로 세력으로 인맥으로 등등 온갖 바람을 일으켜 휩쓸고 다니던 무엇을 하던 간에 개인의 사생활이나 정치 경제 종교 활동 등을 헤치지 않고 특히 우리 사회의 윤리나 도덕이나 법과 질서를 해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완전히 도외시한다고 한다면, 즉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스타일이나 방법이 그렇다는 말로서 앞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완전히 도외시 한다고 한다면, 어떨까? 정치 활동이 수많은 이해 관계들을 대변하는 역할이 있으니 꼭 앞의 경우들만을 말을 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 주체가 무엇일까? 이해 관계에 의해서 정치인이 만들어지는 것과 정치인이 되면서 이해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실제로 말을 하기가 특히나 특정한 대상을 두고 구분을 짓기가 정말 힘든 경우이지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후일까?

비록 사회 봉사 활동이나 종교 활동이나 정치 활동 등에 대한 것은 아니고 일반 사회 활동에 관련된 것이지만 영화나 드라마로서가 아니라 실제의 현실을 보는 방법으로서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볼 수 있는 경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선과 악의 대립까지는 아니라도 하더라도 일상 속에서 일을 하는 방법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구의원이나 시의원이나 시장이나 국회 의원 등등의 활동의 중심은 무엇일까? 실제 정치 활동이나 정치 활동에 대한 의지가 거의 없이 여러 이해 관계를 가진 집단들이나 세력들이 자신들의 영리적인 기업적인 사적인 이해 관계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특히나 이곳 저곳에서 건설업을 우후죽순처럼 만들듯이 재력을 동원하여, 이용이 되거나 전락이 된다고 한다면 어떨까? 어떤 모습의 정치 형태나 국가 형태나 사회 구성체의 모습이 전개가 될 것일까?

비록 사회 구성체나 사회 정체성이 북한과는 전혀 다를 것이지만 정치를 하는 형태나 사회의 모습이 북한 사회와 비슷한 경우가 되지는 않을까? 북한의 공산당이란 일당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북한 사회가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듯이 광의의 개념으로 해석을 하면 정치권이라고 하는 당에 의해서 정치가 이루어지고 대한민국 사회가 지대한 영향을 받는 개념으로 발전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지금 그와 같은 모습으로, 즉 과거의 왕정 정치와 비슷한 모습으로, 가고 있는데 매일 매일의 삶에 지친 사람들만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근래의 이곳 저곳에서의 방송이나 언론에서 보도 되고 있는 사회의 흐름을 보이 일정 정도는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다.

위의 그림과는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직접적으로 위의 경우를 모르니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정치 관련 이슈가, 특히 대통령 관련 이슈가, 더구나 남과 여의 대통령 부통령의 모습과 같이, 보이니 근래의 우리 사회의 이곳 저곳을 보면서 특히나 직장 생활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고 이곳 저곳에서의 움직임을 보면서 느끼는 이미지들에 대해서 한 마디 하게 된다.

개개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언론의 자유가, 언론의 독립성이, 언론의 자율성이, 특히 기자의 기사성이, 제대로 보호를 받고 유지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가 유지가 되어야 그나마 사회의 생명성이, 즉 생명체와 같은 활력이나 역동성이, 지켜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닌 개개인이 살아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한번 위의 그림과 위의 글의 직접적인 관련성 유무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며 일반적인 사실에 대한 것임을 언급합니다.)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20070425.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