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으로서의 본색발로인가?
아니면 정치의 결과인가?
열우당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왜 열우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도가 될까? 여론 조사의 결과일까? 실제 국민의 민의의 반영일까?
그러면 열우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모습을 나타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과거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을 일시에 구세력으로 몰아붙여서 한줌의 재로 만들어버리고 그들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유산이라고 몰아 부칠 정도로 선동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이론적인 미비이든 비젼의 제시에 대한 부족이든 시대적인 여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자신들의 삶들을 바쳐온 일들을 단 몇몇 사람들이 비록 표현만이라고 할지라도 일시에 추풍낙엽으로 만들어버렸었다. 그리고 그 공로는 자신들이 독차지 하는 모습들을 보였었다.
그렇다고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자 다른 분야에 미흡한 정치가들이나 행정가들이나 여타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민주주의란 말의 속성이 하나의 정책이나 비젼으로 해결이 될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대에 또한 단순히 제도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습이나 풍습이나 사람 대 사람의 관계나 일을 하는 방식에서의 모습이 사람으로서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억눌린 시대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많이 이용이 되어, 즉 수 십 년 간의 단골 메뉴로 등장을 하여, 정치적인 것 및 제도적인 것으로 변화를 시도를 하는데 있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늘 형식이나 외형으로만 머물고 있는 잘못된 진행되어 온 결과에 대한 말이다.
열우당의 대세몰이의 근간이 된 그 기원이야 그 이전부터이겠지만 열우당의 국민적 지지 기반도 당연히 1984년도부터 시작된 학생 운동의 사회 참여 및 사회 운동의 본격화와 그 맥을 일정 정도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중 다수가 이미 가정을 가지고 자녀들이 한창 성장을 하고 있는 단계일 것이다. 1980년대 및 1990년대의 민주주의 세력으로 명명이 되는 자신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신들의 변화에 대해서 잘 모른다. 노인들이 때때로 마음이 청춘이니 늘 청춘인 것처럼 잠시 혼동을 하듯이 자신들이 세월의 흐름에 의해서 여러 가지 모습들이 변해 있는 것을 잘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열우당의 지도부도 자신들이 길거리에서 언론에서 외치고 떠드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언행부터, 무엇보다 자신들의 사고 방식부터, 바뀌어서 나타나야 할 것인데 최근에 등장한 것처럼 당의 의사표시가 다수결이란 말로 나타나는 것처럼 늘 제도만 형식만 외형만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언행부터, 무엇보다 자신들의 사고 방식부터, 바뀌어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언론에서 홍보용으로 묘사가 될 수 있는 그런 속성의 것이 아니다.
다른 당에서 있었던, ‘눈 가리고 아웅’ 한 경제적 혼란을 틈타서 마치 그 해결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이미지화한 모습으로 등장을 한 다른 당의, 발언을 하나의 예로 들면 박 00님의 복지정책에 대한 발언이 그 좋은 예이다. 몇 마디 되지가 않지만 최근의 일련의 연속적인 발언들로부터 볼 때 무엇을 기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거래 대 거래의 관계처럼, 이익 대 이익의 관계처럼, 이해관계 대 이해관계의 거래처럼, 최근의 TV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일부 그 모습을 볼 수 있듯이 몇몇 사람들이나 몇몇 곳들의 일방적인 주도에 의한 암거래? 뒷거래? 퍼주기?
‘성’에 대한 기본 마인드 자체가 제로이다. 가족(Family) 사랑, 아내(Wife) 사랑, 여자(Girl Or Lady or Woman)사랑, 여직원 사랑, 또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여성에 대한 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플레이 보이’나 속칭 ‘제비’가 그 전문이었다. 일에 시달리고 쪼달리는 그리고 아직까지 구시대의 관습이나 풍습이나 습성이 몸에 박힌 채 남아 있어서 스스로 변화고자 해도 늘 사랑에 대한 표현이 어설픈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표현 없이 살아온 세대의 전형적인 어눌한 표정이나 말투의 남편이 와이프로부터 마음을 얻는 것보다는 플레이 보이나 제비가 가정 주부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전문이었고 그래서 가정이 파탄이 되고 자녀가 미아가 되는 것이 한 때 유행병처럼 유행을 했었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나타난 사회 현상들이었다.
지금도 근본적인 목적이 우리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자 하는 것인지 그래서 우리 사회의 붕괴를 목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지 나아가 무엇이든 ‘1:90’ 또는 ‘1:9’의 양극화의 사회나 북한의 공산당과 같은 모습의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또한 어부지리로 천사가 지배를 하는 지상 천국을 추구하거나 꿈꾸기 보다는 몇몇의 악들이 지배를 하는 마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몰라도 지금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유사 ‘정치’에, 사이비 ‘경제 활동’에, 사칭의 ‘종교 활동’에, 발 없는 ‘자만심이나 허영심’에, 명분뿐인 ‘명예욕’에, 특히 일상 속의 플레이보이(Play Boy)나 제비의 감언이설에, 미혹당하고 유혹을 당하여 몇몇 플레이보이(Play Boy)나 제비들을 위한 헌신의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자신들의 남편들을 직장에서 내몰고 사업을 폐업하게 하는 일들을 주도적으로 나서서 행하는 범죄 행위를 하는 경우들도 속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이혼을 각오한 결혼들도, 그것이 위장이든 실제이든 이중성이든 다중성이든, 서슴지 않는 것 같다. 전략이나 기획이란 말에 속아서, 이용당하는 줄 모르고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속아서, 두뇌나 씽크탱크(Think Tank)란 말에 속아서, 사회 정의의 구현이란 말에 속아서, 하늘이란 말에 속아서, 특히 정치 영역의 하늘이란 말에 속아서, ‘아픔만큼 성장한다.’는 플레이보이나 제비의 말에 속아서 등등, 이곳저곳으로 떠돌면서 범죄 행위를 자청을 하는 사람들이 유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사용하기에 따라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사기가 되기도 하는 ‘말’이나 ‘신조’나 ‘신념’이나 ‘모토’ 등을 숭배한 결과에 의해서,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는 그러나 플레이보이나 제비에게는 돈과 시간과 열정과 몸과 모든 것을 같다 바치는 헌신 예배를 드리다가 단물 빠지고 나면 ‘사랑이 식었다.’는 말로서 ‘순간적인 사랑에 대한 열정이었다.’는 말로서 ‘성격 차이’라는 말로서 등등 가차 없이 차이게 되는 ‘사랑’이란 말에 속아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영혼과 육체와의 경계나 구분도 힘들면서 ‘영혼끼리의 교감’이란 감언이설의 말에 속아서, 나아가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을 상대로 그리고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영의 존재’의 ‘신의 존재’의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함에 대한 경험이나 체험이 없는 것을 이용하여 현학적인 교리로서 성경의 요한복음 일장일절의 ‘말씀’에 대한 표현을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사람의 인지 관점에서의 표현을 교묘하게 철저히 악용한 것에 속아서 등등, 이곳저곳으로 떠돌면서 범죄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유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신앙이 미신이 되어 스스로의 가치 하락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에게 범죄 아닌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우도 다수가 사는 사회에서 속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에 대한 사랑의 전문가인 ‘플레이 보이’나 속칭 ‘제비’로 인한 사회 현상은 지금 20대의 문제가 아니고 그 위 세대들의 실질적인 문제였고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들이었다. 여성에 대한 사랑의 전문가인 ‘플레이 보이’나 속칭 ‘제비’의 활동은 지금 시대의 우리 일상 속에서는 아마도 ‘사랑’이란 말을 남용하고 사칭하는 ‘성의 남용’이나 ‘성의 유희’나 ‘성의 쾌락’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대를 잇기 위한, 자신의 생명체를 탄생하기 위한, ‘성’과 관련된 사람의 감정이나 감각을 시대적인 물질 문명이나 지적 수준의 발달을 이용하여 ‘사랑’이란 말을 남용하고 사칭하는 ‘성의 남용’이나 ‘성의 유희’나 ‘성의 쾌락’의 모습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신체를, 또는 또 다른 생명체를, 절단하는 살인의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고 다른 사람의 일생을 고난에 처하게 하는 행위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순결’이란 단어와 ‘사람의 목숨’을 연결짓는 과거의 관습에서는 벗어나야 할 것이지만 ‘성’이 가지는 의미와 그 중요성과 그 연속선상인 생명체의 존엄성에 대한 사고는 강조에 강조를 거듭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그 동안 열우당이 보여준 이율배반적인 정치 행위들에 대한, 극단적인 정치 행위들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가장 극심한 것들 중의 하나가 국제 사회에서의 대외 관계를 뒤틀고 힘들게 하는 것이 자주나 애국이나 우리 것 살리기로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 사회에서의 활동에서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감이나 능력이나 위상인 것처럼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열우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기반에도 불구하고 열우당이 정치를 하는 것을 통해서 보여준 모습은 대한민국의 국사를 같이 도모를 하는 모습보다는 이해관계에 의한 개인 대 개인의 대립이나 당과 당의 대립이나 파벌싸움이 더 많았지 않는가 싶다. 대립과 갈등의 해소를 통한 우리 사회의 외형적인 제도적인 모습의 변화는, 점점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은, 해방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 동안 많이이 나타났고 지금도 나타나고 있고 참여 정부의 모습을 넘어선 향후의 정치 모습에서 또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대립과 갈등의 해소를 통해서 사람의 모습이 변해 가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 하는 정치인의 모습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각자가 각자의 삶에서나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나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것 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것이다.
다른 당이나 정치인들이 국민의 지지나 지원을 받는 것과 열우당이 지지나 지원을 받는 것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민주니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단어만, 조금 심하게 표현을 하면 구호만, 외쳐서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수 십 년 동안 들어온 구호들에 지친 그러나 지금 현재는 과거의 폐습적인 구시대의 관습이나 풍습이나 습관의 의식들의 잔재가 개개인의 모습에서 청산이 되기도 전에 경제의 논리로, 자본의 논리로, 물질 문명이나 과학의 발달 및 사회의 팽창 및 분화의 모습과 더불어서 나타나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회적인 것들로 재무장을 하고 등장을 한 돌연변이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에 지친 국민들에게 식상하기만 한 모습들로는 지지나 지원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은 TV나 영화를 통해서 보는 각종 쇼Show가 넘쳐 나는 상황에서 굳이 정치권에서 정치인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쇼Show까지 국민들이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는 것이다. 그러니 순간적인 전세를 바꾸는 것과 같은 시도는 전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니 정체성이든 방향성이든 개개인의 스스로의 모습이든 조금은 지속적인 항구적인 모습들을 찾아가야 할 것이란 것이다. 이론 논쟁은 내부적인 차원의 일이고 외부로 나타나는 것은 매일 같이 이론 논쟁을 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론 문화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문화가, 부족하다고 하니 정치 활동을 통해서, 정책 결정 과정을 통해서, 정당 활동을 통해서,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고자 하면 매일 같이 당리당략으로 싸움 하는 모습이나 이전투구 하는 모습을 보여 줄 것이 아닌 제대로 된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들일까?
지금 한나라당이 지지를 받는 것은 반사이익적인 것과 우리 사회에서 폐습으로 없애야 할 일을 하는 방식과 특히 지역당의 모습이 아마도 추정하건데 제일 강할 것이다. 열우당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배신감이, 물론 그 주연 배우들이 누군지는 추정할 수 있을 것이고, 비록 미미하다고 하지만 당연히 탈당과 다른 당에 대한 지지로 옮아가는 것이고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폐습으로 없애야 할 일을 하는 방식과 점차 사라져가던 지역당의 모습이 더욱더 기세를 부리게 된 것일 것이다. 정말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다. 한 줌의 재와 같이 없어질 수도 있는 이념 논쟁의 모습을 1980년대부터 약 20년간에 걸쳐서 보고 있는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념 논쟁에 대한 소모로 정말 중요한 기로서 있는 대한민국의 몇 년 동안의 시간을 허공에 날린 것이다.
세계적인 서열에 들어 있는 기업들이 몇 개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몇 만 불 시대란 말도 있다. 세계 12위의 경제국가란 말도 있다. 사회주의국가란 말로서 복지정책에 천문학적인 예산의 투자를 계획하는 우리 시대에 그렇게 맞지 않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정서에 그렇게 맞지 않는, 말도 있다. 그런데 양 극단의 사회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도 있다. 대학교를 졸업한 청년 실업자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중견 기업이, 중소기업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단순히 3D 직종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즉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작업 환경이나 근무 환경이 많이 개선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 동안의 노조의 활동과 노동부의 역할로 근로자의 인권이 많이 개선이 되었고 지금도 개선이 되고 있는 시점에 있으니 단순히 3D의 개념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국가의 정책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이런 경제적인 상황이 부분적으로는 국가 발전의 단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미 그에 대한 예측들과 대비책들이 언급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십 수 년 동안의 정책들이 그렇게 진행이 되지 않은 것은, 마치 최근 십 수 년 동안의 정치적인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처럼 정부와 민간의 상호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금과 같은 경제적 굴곡이나 왜곡 현상이 조금 더 심화되게 된 것은, 지금까지 약 몇 년 동안의 집권당이 보여준 모습들과 더불어서 경제 분야에서는 그리고 정치 분야에서는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게 될까? 그냥 홍보용이든,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중요성을 인식을 시키는 것이든,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든 등등, 경제 분야나 정치 분야에서 누가 가장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궁궐 생활이 천국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종교 활동 공간이든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마치 궁궐의 시녀들이나 궁녀들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들을 가끔 보고 있는 것 같다. 왕에게 궁궐 생활은 비유적인 표현의 말이지만 천국일 것이다. 그런데 순번 대기 전문의 또는 독수공방 전문의 궁녀들의 생활이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애인들을, 남편들을, 길거리로 내몰고서 뒤뚱거리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궁녀들의 모습들을 영화 촬영장 연습장인지 드라마 촬영장 연습장인지 실제 생활 공간인지는 몰라도 가끔은 볼 수 있는 것 같다. 동서고금을 통한 현실이기도 하지만 21세기에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제력의 모습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을 할 정도이다.
지금 시점에서 내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면 물질문명이나 여타 과학의 수준이 첨단을 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개개인의 의식이 개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언급할 수준이 되지 않을 정도로 혼미하겠지만 사회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제2의 마비의 시대로, 제2의 제3의 세뇌의 시대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2007년 2월 21일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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