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Pictured Issue)

자유와 참극의 관계, 0, 한국일보, 20070419,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6. 21. 23:56

 

한국일보, 만평, 20070419, 자유와 참극의 관계,

 

꼭 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곳 저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부정하는 현상은 많이 존재를 하는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만 해도 장기 간에 걸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을 하는 것을 비롯하여 불감증과 같은 현상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아닌가 싶으며 단순히 국가나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물질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기술의 발달로 지나치게 매일 매일의 생활의 흐름이 가속화 되고 경쟁 관계가 심화되는 것에도 그래서 스스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에도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사람의 자유나 인권이나 존엄성이 제도적으로 보장이 되어가지만 현실적인 모습에서는 사람의 존재 가치가 상실되는 현상들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을 하는 현상도 일부 원인이 아닐까 싶다.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 개발이나 경쟁력 강화를 지나치게 부추기기 보다는 사람 대 사람 또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나 왕래를 점차 넓히고 확대 하는 방향으로 세상의 흐름을 바꾸어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쟁력 강화든 능력 개발이든 자기 PR이든 각자의 삶을 만들어가고 가꾸어 가기 위한 것인데 그런 삶의 방식이 오히려 개인의 파멸을 가져오게 되고 개인의 파멸이 불특정 사회 구성원의 파멸을 가져 온다고 한다면, 즉 적자생존이니 이익사회니 하는 말로 서로 간에 이전투구를 하고자 하면, 사회 구성체나 개인의 삶의 흐름이 잘 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수가 최선의 노력을 하고 경주를 하고 조직을 만들고 제도를 만드는 것 자체가 개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살리고자 하는 것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것인데 그런 것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사회 병리적인 현상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결코 우리가 바랄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생명체에 대한 연구도 사람에게 긍정적인 모습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을 많이 가져오지 않을까 싶다. 즉, 특정하게 정해진 틀이나 모양새가 없이 창조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람의 존재적 정체성과 삶이 과학이나 의학의 이름으로 사람 자체가 분해되게 됨으로써 점차 물질적인 존재로 기계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자연 환경을 비롯하여 개개인의 생존 환경이 서로 간에 경쟁 의식으로 벽을 만들기 보다는 공존 의식으로 벽을 열어가는 식으로 바꾸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