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Pictured Issue)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중앙일보,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6. 21. 23:23

 

중앙일보, 만평, 20070503,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렸나를 보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서 소련을, 과거의 일이지만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의 이론에 제도에 체제에 적응을 하게 만든, 즉 사람으로서의 모습으로서 아름다운 삶이 아닌 사람의 만든 산물에 종속되게 만든,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국가나 민족의 대립이나 논쟁이 아닌 왜 공산주의 국가 체제를 구축을 했는지는 잃어 버린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전체주의의 결과는 대체로 외형적 모습은 늘 그럴듯하다.

 

옐친이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은 아닐 것이다. 전후 사정은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그리고 각각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사람이란 존재와 삶의 방향에 대해서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방향을 찾은 것일 것이다. 그 당시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방향은 절대적 독재와 통제의 형태로 소수의 사람들만 삶을 누리는 방향으로 나가거나 말 그대로 스스로 와해 되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사람과 비교될 것은 아니나 폐쇄주의의 한계일 것이다

 

근래에도 이곳 저곳에 무엇을 위해서 왜 그렇게 하는지 모를 모습들이 일상에서 많이 나타나 보인다. 과거 시대에 정치 활동을 하신 분들이 겪은 고초를, 특히 국가 수호를 위해서 담당한 고난을, 알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것이 다른 사람의 삶을 해치고 망치는 것 외에 결과적으로 무엇이 남을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청소년이나 어린 아이에게서 나타날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정치 경제 종교 등등 사회 곳곳의 지역적 집단적 이기주의 극단적인 모습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갖추어가야 할 청소년들과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특히 개인에 대한 유언비어와 인신 공격과 사생활 침해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매일 매일의 생활 환경이 청소년들과 어린 아이들의 의식과 삶의 모습을 결정을 하고 그런 것이 모이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것이다. 어떤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60대 전후의 세대들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각각의 역량이나 분야 대로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서 이런 저런 정치 활동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 세대의 부분적인 그런 사실로서, 그런 말을 핑계로, 다른 사람의 삶에 조직적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이 공공연하게 일어 나고 있는 모습도 있는 것 같다. 올 해가 대선의 해이니만큼 그런 모습이 신앙이나 종교를 이용한 형태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할 일이다.

 

심지어 각양 각색의 정치 활동을 한 사람들의 고초를 알게 하고 체험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그러나 누군가에게 기만을 당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매 맞고 산 여성이 남편이 병들자 병수발로 복수를 한 사실이 보도되듯이 조선시대의 여성이 남편에게 폭력과 폭언을 당한 것을 현재의 자신의 남편에게, 그것도 정치나 종교의 견해 차이를 이유로, 경험과 체험을 하게 하는 일도 발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을 일이다.

 

집단 이기주의가 근래에 기성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그래서 대한민국의 순박한 민심의 사람들의 삶들을 몇몇 가진 자와 누리는 자의 호사스러운 삶의 철학의 산물로 삼는 현상들이 씽크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것 같아 위의 만평이 말의 핑계가 된다. 감사할 일이다. 이런 사고의 꺼리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근래의 언론을 보면 언론의 하는 일이 사회의 역할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뜨고 보자의 희생양이 되는 것 같다.

 

비판과 욕설인데 직접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거나 말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글이나 여타 저작들을 읽어 보는 것도 아니면서 은어나 비어나 속어처럼 사용되는 단어의 개념으로 그리고 종교 또는 정치 관련 몇몇 정의된 개념이나 내용을 바탕으로 몇 마디 단어나 표현만 보고 단정을 하는 그것도 누군가가 한마디 하면 말에 말이 꼬리를 무는 식의 말들도 입 소문이든 인터넷이든 가끔 보고 있는 것 같다. 집단의 삶의 병폐일 것이다.

 

국회방송의 정치사를 보아도 한마디란 말이 무색하게 복잡하다. 정치 형태도, 우리의 역사도, 그 속의 삶도 그렇다. 종교도 마찬가지로서 그래도 전도가 된지 역사가 짧은 기독교만 보아도 변화가 무쌍하다. 본질은 같은데 우여곡절과 역사의 흐름에 놓인 사람의 삶과 연결이 되니 그럴 수 밖에 없고 특히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 한 존재 및 세계 및 사후 사람의 영혼에 대한 것이니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한 두 마디 말로 사람을 잡는 모습도 비치는 것 같다.

 

비록 얼마 전의 우리 사회의 현실과 같은 극단적인 이념이나 사상이나 남과 북의 대립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또 우리 속에서 많이 융해 된 모습이나 이제는 이해 관계나 영리 추구 관계의 집단의 모습으로서 일상 속에 대립과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반의 학생 수가 줄었지만 사회가 분화된 것으로 학교에서 감당할 영역이 점차 늘고 있는 것 같다. 교사도 이제는 지식의 수준이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백년지대계란 말이 실감나는 현실이다. TEN. PRODUCTION.  FILM. SCENARIO. 20070503. JUNGHEEDEUK.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