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litics)와 사명

양성평등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5. 11. 18:16
 

양성평등



아래의 행사와 같이 여성의 사회 참여 및 사회적 역할 중요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있어야 할 것이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남녀의 차별이 아니라 남녀가 다른 것은 엄연하지만 그런 것이 여성에 대한 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해소하는 작업도 병행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 활동에 여성 참여가 이루어진다고 하여 그래서 경제적 활동 인력이 늘어 난다고 해서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남자와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사람 외적인 것으로 사회적인 것으로 사람 자체를 차별하는 경향이 만연하듯이 그래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용가치로만 때로는 이윤 추구나 이익 추구 등을 위한 행위에 희생양으로만 판단이 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울 정도로 비일비재하듯이 그것도 경제 활동 분야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운동 등 사회의 대의 공의 정의를 말을 하는 곳에서도 생활 속에 그리고 개개인의 습관 속에 파묻혀 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발생을 하고 있듯이 단순히 여성의 사회 활동 및 경제 활동 참여로만 말을 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나 경제 활동 참여가 이미 경제적 침체기의 상황에서 혹시나 발생하게 될 지도 모를 것으로 다른 근로자나 노동자를 제어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이 되는 것을 막고 여성이 여성의 삶을 찾는 방안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통령 임기 단임제를 폐지하고 연임제나 중임제를 논하는 시점에, 의식 변화의 작업도 병행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구습이니 폐습이니 하고 입의 침이 마르고 닳도록 말을 하면서도 과거의 조선시대의 출생적인 신분 차별 수단 대신에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여 새로운 것들로, 즉 사람이 만든 사회활동적인 부산물들에 의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차별 하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나 습관 속에 만연 되어 있듯이 어떻게 보면 여성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물론 여성 스스로의 의식의 변화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의, 경제적 기여 차원에서의, 사회 활동 인구 차원에서의, 남녀 평등 실현은 끊임 없이 언급이 되어 왔고 논의가 되어 왔고 제도도 만들어져 왔던 것이니 보다 질적인 차원의 변화를 추구를 하는 것도 병행을 할 때가 아닐까 싶다. 특히 여성에게도 남녀의 남녀로서의 차이를 떠나서 동등한 사람으로서의 존재 확인이 단지 흡연이나 과거 남성 우월주의의 성에 대한 반감적인 성 해방으로 또는 성 문란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남녀 모두에게 의식적인 변화의 작업은 지속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의 사람으로서의 동등한 존재에 대한 말을 하는 날에는 그 날 내가 집으로 귀가 하는 도중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 대기를 기다리는 동안 차 안에서 흡연을 하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무슨 말인지 듣지는 모르지만 더불어 무엇이라고 외치는 말도 들린다. 믿으면 복 받을 일로 2001년 8월의 그 날에 어디선가 다른 공간에서 언급이 있었듯이 남녀 평등이란, 즉 남과 여의 사람이란 존재로서의 동등한 존엄성이란, 주제가 언급이 되면 앞과 같은 현상만 나타나 보이고 가정에서도 그리고 사회 활동 공간의 이곳 저곳에서도 조선 시대 사회의 복수극 구상하고 만들고 연출하기에 급급한 모습만 나타나 보인다.


성경의 요한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를 비교하고,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를 비교하고, 선지자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실질적으로 사회에서 제사장이니 장로니 목회자니 등등의 종교적인 역할로 권력이나 권한이나 직위와 관련된 호사를 누리는 사람의 경우를 비교하고, 나아가 천지를 창조를 하고 사람의 창조를 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경우와 실제로 그 속에서 자유와 삶을 만끽하는 사람의 경우를 비교하고, 영화를 제작하고 만드는 사람들과 영화관에서 안방에서 영화를 즐기는 사람을 비교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과 그 결과물을 누리고 즐기는 국민을 비교하는 등등, 그것도 특정한 방식으로 활동을 하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 개인에 또는 사회 전체에 악성 종양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비교하고 사기가 범죄 중에서는 질이 낮은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람의 삶이 때로는 기나긴 기간 동안의 삶이 희롱 당하는 관점에서 보면 악성 종양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비교를 하는 등등, 'one For All, All for one'의 구절 중에서 one For All만으로 사람을 희롱하고 농락하는 모습으로만 나타나 보이는 것은 그것도 성경이나 신앙이니 신앙심이니 하는 말을 입의 침이 마르도록 말을 하는 사람들의, 신앙인인지 교회의 분란의 획책하고자 하는 사람들인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이나 모습만 두고 판단을 하면 구분이 힘들 사람들의, 계획과 기획을 통해서 그런 모습이 나타나 보이는 것을 보면 앞의 말이 왜 그런 것이지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약 2,000년 그 당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그 세계에 대한 신앙이, 즉 믿음이, 결여되고, 즉 신앙의 본질이 결여되고, 단지 사람의 신앙을, 즉 믿음을, 판단하고 심판할 사람의 언행에 대한 기준과 잣대만 존재를 하는 사람이 만든 율법을 보고 신앙을, 믿음을, 강조를 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과 항상 동행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지켜 행해야 할 것으로는 십계명을 말씀을 하셨듯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찾고 말만 한다고 해서 삶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지상에서의 삶 동안의 언행의 결과에 따라서 사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란 말을 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궁극적인 이상 사회의 모습이란 관점에서만 말을 하자면 현실의 북한이나 중국이나 소련이나 여타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사회의 하나로서의 공산주의와 성경에서 말을 하는 천국과 같은 사회가 그 방법이나 그 과정 등만 다를 뿐이지 마지막 도달하고자 하는 상태만 두고 말을 한다면 일정 유사하는 말을 두고서 이상사회로의 공산주의와 이상사회 지향으로서의 종교 활동의 두 경우를 그래서 관련된 언행들을 비교를 하는 모습들이 앞의 'one for All, All for one.'의 경우와 같이 우리 사회의 생계가 힘든 것을 틈타서, 전체적인 국가 생산량의 증가에도 불가하고 개개인의 삶의 여건이 힘든 시기를 타고서,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록 사건사고의 발생 경위를 볼 때 법정에 증거나 증거물을 제출을 하듯이 말을 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친구들 사이의 장난으로 누구나 일회성으로 경험을 했을 수도 있듯이 사람 사는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용하고 휴먼 네크 워크를 이용하여, 그것도 약 3-40년에 걸쳐서 그리고 약 20년에 걸쳐서 그리고 약 5~6년에 걸쳐서, 발생을 하게 되니 피상적이고 말과 말만 존재를 하지만 그러나 실질적인 결과가 삶 속에서의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01년 8월의 그 날 어느 공간에서 들려 왔듯이 정치 활동을 핑계로, 경제 활동을 핑계로, 사회의 대의니 공의니 정의니 하는 말들을 핑계로, 그래서 표적이 되는 누군가의 정보를 캐낸다는 명목으로 그것도 국가의 행위 중의 하나로 정보 활동이 존재를 한다는 것을 흉내 낸다는 명목으로 어린 아이들을 시켜서 범죄 행위를 시키는 것에 대한 그래서 가치관의 상실의 가져 오는 것에 대한 더불어 사람의 그렇게 창조가 되어서 그렇다는 말에 대한 정당화의 논리를 삼는 것을 보아도 앞의 경우들에 대한 사실들을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의 창조성을 믿기 싫고 그리고 자신의 짐승에서의 또는 단세포 동물이나 원형 동물에서의 기원을 믿고 싶으면 그렇게 믿으며 살면 될 일이다. 사람의 사후 세계가 존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하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살면 될 일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문무를 겸양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세력을 만들어서 다른 왕국을 점령을 하여 무의 힘이나 문의 힘이나 문무의 힘으로 왕국을 만들거나 그래서 평민이 아닌, 또는 보통사람이 아닌, 왕국의 지배층으로서 왕족이 되거나 귀족이 되면 어제 그제의 기원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 순간부터 또는 그 후손부터 사람의 존재 자체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살면 될 일이다. 민족이니 국가니 종교니 동양이니 서양이니 남이니 북이니 하는 것 등등 이것 저것 떠나서 사람의 기원을 생각하고 남과 여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유전을 생각을 하면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재를 한 것이고 사람과 사람이 동등한 모습일 것인데 그런 것을 부정하고 인정을 하고 싶지 않으면 남에게 강요할 것은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줄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살면 될 일이다.


사람이 수도를 하면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아닌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고 전지전능한 능력의 지닌 그리고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는 영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살면 될 일이다. 사람이 수도를 하지 않아도 사람이 사망을 하고 영혼이 육체와 분리가 되면 그 때부터 사람의 영혼이 아닌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고 전지전능한 능력의 지닌 그리고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는 영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싶으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살면 될 일이다. 수 천 년의 인류의 역사상 그리고 수 천 년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상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부정하고 특히 사후와의 현상을 부정하고 나아가 스스로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모습을 부정하고 앞과 같이 생각을 하고 싶으면 남에게 강요를 할 것은 아니고 그렇게 생각을 하며 될 일이다.


실제 현실이 어떠하고 이론이 어떠하던 간에 우리가 국가니 민족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조선시대니 고려시대니 삼국시대니 고조선시대니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무속신앙이니 유교니 불교니 기독교니 이슬람교니 하는 종교에 대해서 나아가 전통이니 관습이니 예의니 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이란 존재를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 현재 알 수 있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금 현재의 시대에 발생을 하고 있는 것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더불어 내일과 모래 사람에게 또는 사회에 발생할 수 있을 일들도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단지 언제부터인지 모를 과거부터 있었던 대로, 언제부터 인지 모를 과거에 누가 무엇 때문에 '과거부터 있었던 대로를' 생각을 하고 만들고 말을 한 것인지 모르니 누군가가 그냥 전하고 전하는 대로만, 즉 현재 그리고 내일 살고 있고 살아 갈 사람이라는 존재와는 전혀 관련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 없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싶으면 생각을 하며 살면 될 일이다.


사람이란 존재가 존재를 하고 사람이란 존재가 삶을 살아 가면서 그리고 그 수가 늘어나고 모여 살게 되면서 이런 것 저런 것이 만들어지고 생긴 것일 것인데 그런 것 관련 없이 사람이 만든 지식이나 말이나 단어나 개념 그 자체에 얽매여 사람이란 존재 자체를 잊어 버리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것 없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살면 될 일이 아닐까 싶다.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20070415.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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