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litics)와 사명

끼리끼리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5. 11. 17:55
 

끼리끼리



오늘도 길거리에는 이런 저런 명목으로 미친 짓을 하고 다니는 그러나 마치 법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듯한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법으로 적용을 하고자 하면 너무나 경미하여 법을 적용을 하기 어려운 경우를 저지르는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에 있어서는 끊임없는 시비와 간섭과 침해가 되는 경우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끼리끼리 몰려다닌다. 신고하기도 어렵다. 그냥 시비의 대상이 될 뿐인데 그런 현상이 전국적으로 도처에 만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도 끼리끼리 몰려 다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만든 말들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그 시비 거리나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아마도, 그것도 전후 사정이나 앞과 뒤의 말 모두 생략하고 공격이 될 말만 언급을 하여 희생양으로 만드는 경우가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가 아닐까 싶다. 어느 곳이라고 누구라고 말을 할 수 있게끔 일일이 메모를 하고 기억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나의 주변에서 나를 상대로 또는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비록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저런 말들이나 일들이 발생을 하는 것을 보면 대체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먹고 살 거리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등쳐서 먹고 다른 사람 벌어 둔 돈 쓰게 만들고 다른 사람 벌어 둔 돈 정치니 뭐니 하는 말로 뜯어서 먹고 살고 그리고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인지 싹을 죽이기 위한 것인지 몰라도 다른 사람을 공격 아닌 공격을 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사는 것인지 몰라도 한 낮에 사람들이 할일 없이 서성거리는 것을, 그것도 주택가에서 북쩍거리는 것을, 그것도 아파트 단지에서 북쩍거리는 것을, 바라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까지 말이 언급이 되는 경우가 우리가 흔히 뭉치돈이나 종자돈이나 씨드마니(SEED MONEY)라고 하는 돈이라도 형성이 된 사람은 덜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흐름이나 사회 구조가 그리고 개인의 시간의 흐름이 열심히 생활을 해도, 즉 각자가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껏 열심히 살고자 해도 그리고 그런 능력이나 재능을 발휘하고자 해도, 힘들게 되어 가고 있는데 그것도 여럿이 같이 일을 도모를 해도 힘든 경우가 더 많을 것인데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유언비어나 중상모략적인 말들이나 방해나 훼방이나 침해를 당하게 되면서까지 특히 정치 경제 종교 등 각종 사회 활동을 도모를 하는 누군지도 모를 자신들에게 마치 구속이나 예속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자신들의 계획대로 기획대로 예정대로 정치 경제 종교 등 각종 사회 활동을 하거나 향후의 삶을 살게끔 되어 있는 것처럼 하는 말들을 당사자도 모르게 퍼뜨리고 다는 것과 같은 언행들에 의해서 고립이 되면서까지 더구나 그렇다고 상호간에 정치 경제 종교 등 각종 사회 활동을 위한 의사사통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경제 종교 등 각종 사회 활동을 위한 이런 저런 visible or invisible or tangible or intangible 한 유형무형의 것들은 자신들이 교육이니 가르침이니 정보 제공이니 등등의 명목으로 독식을 하고서도 그런데 그런 것 자체가 알고 보면 표적이 되는 대상자로부터 발생을 한 것이 대부분일 것인데 그런 경우에 처하면서까지 삶을 살기에는 개인의 시간의 흐름과 세상의 흐름이란 것이 있으니 그것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영향력을 행사를 하고 있는 사회 구조란 것이 있으니 과거 돌도끼 들고 먹이 사냥을 다니는 시대에는 어떨지 몰라도 현대 시대에는 지나친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이런 것 저런 것을 떠나 순수하게 사람이란 존재와 사람의 존엄성과 사람의 삶이란 관점에서 보았을 때 더욱더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나의 글에서 기술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나의 어린 경우가 아니라, 즉 비록 몇 살이 되지 않지만 이런 저런 대화를 한 결과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서 나의 고향에서 정치와 관련된 것에 대해서 외지인이 올 때 마치 내가 대표 아닌 대표가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과 같은 경우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몇몇 사람들의 경우처럼 목적이나 사유가 무엇이든 표적이 되는 사람으로부터 이런 저런 정보나 언행을 기록을 한 후 그것을 다시 재현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침해가 될 것일까? 아니면 도움이 될 것일까?    


끼리끼리 다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나도 그렇고 무엇인가 막연히 일을 하고자 하면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몇몇이 같이 어울려서 하는 것이 아이디어나 시간이나 비용 등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경우에 이로운 점이 많을 것이다. 정치 분야든 경제 분야든 종교 분야 등 여러 가지 도모할 것이 많고 또 덜 심심하고 덜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해나 영리의 충돌로, 특히 누구의 말이 더 맞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충돌로, 더구나 다른 이해 관계를 가진 조직에서 파견이 되어 암암리에 일을 망치고자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다툼일 발생을 할 수도 있지만 단지 일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문제는 유유상종이니 초록이 동색이니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문제가 아니고 무엇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특정 정책을 찬성을 하면 그 정책을 찬성을 하는 정치인의 라인이 되는 것처럼 말을 만들고 그 정책을 반대를 하면 그 정책을 반대를 하는 정치인의 라인이 되는 것처럼 상황을 만드는 것이, 또는 대외 관계에 대한 말에 따라서, 또는 대북 정책에 대한 말에 따라서 등등 그 때 그 때마다의 이슈에 따라서 그렇게 상황을 만들거나 연결을 하고자 하는 것이, 그것도 1986년도 이후부터의 십 수 년의 기간을 '삶이 무(Life is Nothing but Living)' '인생무상(Nothing is behind one's life)' 등등의 종교적인 말을 핑계로 마치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서 그렇게 하는 것이, 믿거나 말거나, 정치 종교 경제 관련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을, 그것도 이런 저런 경우들을 통해서 시기를 밝히고 방법과 과정도 밝히고 그에 대한 이유나 사유도 말을 하고 더불어 여타 필요한 것도 말을 하고 또 도움과 협조를 요청을 한 사람을, 정말로 돕는 행위에 속할까 아니면 그런 '척' 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기만하고 사기 치게 되는 행위에 속할까? 특정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고 그런 방식들이 만연을 하게 되면 결국 무슨 분야이든 사회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삶을 오히려 이런 저런 명분으로 거들 나게 만드는 것은 아닐지 모를 일이다. 한 동네에 한 명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그것도 해방 이후 60년의 세월을 고려를 하면, 몇 명이 될까?


그런 현상들을 접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결국 사회 전체가 각자의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으로 각자의 삶을 열심히 추구를 하기 보다는 이익만 발생이 되면 마니산(Money Mountain)만 만들 수가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즉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삶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그런 모습들이 만연하게 되고 결국 수단과 방법이나 과정이 무엇이었든 결과만 두고서 말을 하게 되는 현상들이 만연하게 되고 그래서 그런 모습들만 메스콤을 장식을 하게 되니 법망에 걸리지 않으면 나아가 법망에 걸려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법의 적용만 받지 않으면 되는 것과 같은 현상들이 만연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그런 모습들이 정치적인 종교적인 또는 교육상의 검증이니 가르침이니 교훈이니 하는 사유나 목적으로 미혹하고 현혹하여 타락하게 만든다든지, 아니면 어릴 때부터 내가 말을 하고자 말들에 대해서 나의 나이 마흔에 글로서 쓸 것이라고 하니 그런 것에 대한 사실이나 진위 여부 보다는 그래서 비록 종교 및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대한 것이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기 보다는 다른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사유로 그런 것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든지, 그것도 나의 존재 자체가 대한민국의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발생을 한 일인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나름대로 이유나 사유가 있는 것으로서 비록 정확하게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어서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와 유사하다고 나의 어린 시절에 이미 확인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나이 마흔에 또 글로서 증거를 할 것이라 하니 대기 중에 있는 것에 불과할 것인데 마치 애국 애족과 대립이 되고 마치 우리 것과 외국 것이 대립이 되는 것인 양 마치 동양과 서양이 대립이 되는 것인 양 또는 다른 국가의 대행이라도 하는 것인 양 거짓말만 만든 후 그런 사실 자체를 없앨 방법을 씽크 하고 기획한 결과에 의한 것이든지, 나아가 성경에 대해서 그리고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해서 특히나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종교 분야의 지식 공동체인지 지적 공동체인지 무엇인지 하는 곳에서 무엇인가 왜곡되게 알고 있는 사실로서 파생이 된 것이겠지만 나의 어릴 때의 사실들이나 내가 한 말들에 대해서 나의 음주와 흡연과 그로 인한 행위들을 통해서 거짓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에 의한 것이든지 등등, 무엇이라고 말을 하든 간에 다수가 몰려 다니면서 몇몇 특정한 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기 위한 시간만 실제로 그 시간만큼 흘러 가게 되고 또 그에 따라서 삶이 침해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축에 있는 사람들이 비록 증거나 증명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씽크니 기획이니 뭐니 하는 말로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일을 하는 방식 등에 기인을 한 것일 것이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래 전 정치 활동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할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한 친구를, 지금 돌이켜 보면 친구인지 아니면 특정한 기간 동안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서 어디선가 파견이 된 것인지 몰라도 친구를, 동행한 일이 있었다. 이곳 지역과 같은, 실제로 그 당시 지금 이곳과 같은, 즉 아파트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 눈에 보인 것으로는 지금 이곳과 같은 아파트가 즐비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래서 구체적인 목적은 모르고 나도 사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는 중 틈나는 시간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온 것인 만큼 이런 말 저런 말을 한다. 특정한 대상을 정하지 않고 사람을 찾기에는 장소가 너무 한적하니 적당한 곳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 것 말과는 그래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용하여 필요한 사람을 찾는 것 외에는 별로 뾰족한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말도 한다. 아니면 다수가 편리하게, 어느 때나, 이용을 할 수 있는 공공기관과 같은 곳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조금 힘들 것이라는 말도 한다.


그 당시 이곳이 허허벌판이었는지, 아니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도, 아파트 단지 건설에 대한 말도 한다. 대체로 주택과 관련한 말은 아파트 단지를 많이 생각을 하기에 그래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면 몰라도 아파트 단지가 주거 환경에, 즉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을 구성하는 것에는,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말도 한다. 땅 값이 비싸고 가족들이 개인 공간을 가지가 힘드니 아파트를 지어서 조금이라도 넓게 생활을 하는 것인지 주거 환경 차원에서, 즉 지역인 넓은 곳에서 주거 환경을 생각을 하면, 아파트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한다. 아파트를 짓게 되면 편리한 점도 있으나 사람과 사람이 단절되는 현상들이 많이 생기게 되니, 즉 물질 문명의 발달과 생활 환경의 변화 그 자체만으로 사람과 사람이 단절되는 현상이 많이 생기게 되는데 건물 구조나 미관이나 생활 공간 자체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이 단절되는 현상이 생기게 되니, 공통으로 이용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즉 개인의 것이든 관의 것이든 공공 장소와 같은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것이 사람 살기에 좋을 것이란 말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항상 말도 많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사기꾼들이 많으면 오히려 피해가 된다는 말도 있다. 이런 말 저런 말이 오고 가지만 어떤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가를 떠나서 사람이 고립적으로 살기는 힘들고 주거 환경과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측면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도 하고 개별적인 사람에 의해서 파생이 되는 경우를 제외를 하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이란 차원에서 생각을 하고 시골의 경우를 생각을 해 보란 말을 한다. 그렇다고 시골이 절대적으로 좋다거나 앞에서 말을 한 것과 같이 땅 한 평에 수 천 만원이 오고 가는 곳에서 그와 같은 주거 환경을 그것도 계획적인 방식으로 도모를 하는 것을 말을 하기는 쉽지가 않지만 한 명의 사람이 태어나서 단지 수명 유지를 위해서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고 수 십 년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관점에서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 공간만을 생각을 한다면 비용과 생활 편리적인 면을 생각을 할 때 아파트에 있는 집과 같은 주거 구조가 사람이 살기에는 사시사철 좋을 것이란 말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우선 할 것은, 현실적인 여건이 가능하면, 어느 경우나 각각의 사람이 어떤 공간에서 살기를 바라는 것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파트냐 연립이냐 단독이냐 전원주택이냐 다세대냐 텐트냐 천막이냐 등등 개개인이 어떤 주거 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는 말도 하게 된다.


도시가 발달이 되거나 개발이 되거나 특정한 지역이 발달이 되거나 개발이 되면, 주거 환경이냐 상업 환경이냐 등에 관련 없이,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이 항상 많을까? 그렇게 만든다고 누군가가 출산 장력 정책을 제안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의 삶을 또 표적으로 삼는다고 한다면 그 문제가 해결이 될까? 삶이 녹녹하지 못해서 그래서 자녀를 키우는 것이 예전 같지 못하고 더 걱정이 되어서 그렇다고 장밋빛 국가의 미래와 그 속이 개인의 미래가 개인의 의지대로 설계가 되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대권에 도전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이나 그 과정에서 이곳 저곳의 생계의, 삶의, 가치 실현의 현장들에서 발생을 하는 현상들을 보면 특히나 수 십 년 동안 특정한 개인과 그 삶을 둘러싸고 발생을 하는 현상들을 보면 자녀를 갖는 것 자체도 주저하는 경우가 발생을 하는데 지금 현재도 대한민국에 인구가 부족하다고 생각을 하면 누구의 말일까?


오래 전 마을 버스를 타기 위해서 기다리는 중 마을 버스가 도착을 하고 그 마을 버스의 기사가 동행한 친구와 아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 연세가 있어 보여서 마을 버스에 타기 전에 인사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자신에게 인사를 한 것으로 생각을 한 모양인지, 즉 지금의 나와 같이 언행 하나하나에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판단을 하기 위한 것에 걸려 있는 것처럼 성가심을 당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Boss 계열의 누군가의 눈에 벗어났거나 또는 무엇인가 아는 척하다가 찬물파나 송충이파나 공동체파나 단체파 등의 눈에 벗어났거나 또는 조금은 뛰어난 경쟁 상대 직장에서 쫓아내는 기획 행위나 연출 행위에 걸렸거나 또는 여타의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사회 활동에서 고립을 당하게 되고 있거나 등등의 경우에 처하게 만들어진 경우일수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 2002년도에, 2007년도에, 또는 2012년도 전후에 등등의 시기에 언론에 오르내릴 사람을 위해서 헌신할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덫과 같은 경우에 걸린 것인지는 몰라도, 무엇인가 불편하게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운전 기사가 동행한 친구의 지인이고 연세가 있어서 인사를 한 것이라고 말을 하니 인사를 한 것은 한 것이라는 말과 더불어 또 몇 마디의 알아 듣지 못할 말들이 누군지 모를 사람으로부터 있었던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런 상황은 있었으니 그 당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얼굴을 본 것이 전부이니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단지 믿거나 말거나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전부인 행위가 있었다. 물론 누군가가 닮은 사람이 분장을 하고 나타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친구도 가끔 틈나는 대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 보라고 내가 권유를 할 정도로 과거에 내가 알고 있던 모습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상식선에서 생각을 할 때 일상적이지 않는 그러나 다른 누군가가 도울 수 있게 말을 할 수도 없는 무엇인가의 상황이란 덫에 걸린 것 같으니 무엇이라고 말을 하기도 힘들지만 실제로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체험을 하고 있는 종교적 현상을,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대한 것을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 당이 나의 고향에 계신 분들이 알고 있는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무속신앙 중에서는 없었고 그 중에서도 무속 신앙의 경우에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라는, 말과 예언이란 말 그 자체는 비슷한 것 같은데 나머지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맞지가 않았고 그리고 여타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들 중에서는 아주 피상적인 개념 및 그 종교적 행위로 볼 때 유사한 것으로는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가 있었지만 그 종교에서 모시고 있는 책을 성경(The Bible)이라는 말을 하는 부분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행위에 있어서 맞지 않는 것이 있으니 내가 흡족하게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나의 고향 사람들이 가끔 외지에, 특히 시장에 장을 보려, 가셨다가 이것저것 알아 오면 나에게 무엇인가 공통 되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 때 나의 표현으로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물어 온 것이 있는지' 하는 표현을 썼다. 제비가 처마에 집을 지을 때 그리고 새끼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어디로부터 물어 나르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을 사람들이 내가 나의 경험이나 체험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하는 것과 이 세상 어딘가에는 맞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무엇인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종교 및 사람의 지식에 대한 무엇인가의 정보를 가져오는 것에 비유를 해서 한 말이었다. 그 말을 한 결과 무슨 말이 있었을까?


앞에서 말을 한 것처럼 나의 경우와 유사한 것으로 나의 고향 사람들이 외지에서 물어 오는 것 중에는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것이 있었지만 그 종교에서 모시고 있는 책을 성경(The Bible)이라는 말을 하는 부분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행위에 있어서 다른 것이 있어서 내가 흡족하게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서 조금 더 부언을 하게 되면, 물론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이 된 것이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체험을 하고 있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와, 관련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untouchable and so on 하니 다른 사람들이 나와 동일한 경험이나 체험을 하게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내가 어리니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하고 납득이 될 수 있게 그 사실들을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서 혹시나 이 세상에 그와 유사한 것이라도, 즉 비교를 해서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있는가 싶어서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와, 텔레파시가 되는 과정 중 묻게 되니 성경(영어로는 The Bible)이라고 나의 머리 속으로, 즉 두뇌 속으로, 바로 대답을 하여, 물론 그 당시 내가 나의 글에서 언급한 각종의 정치 경제 종고 등 사회적인 이해 관계로 인하여 믿거나 말거나 다른 누군가가 말이나 두뇌 속에서, 즉 머리 속에서, 불교의 불경이나 유교의 사서오경이나 이슬람교의 코란 등을 말을 하거나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성경(영어로는 The Bible)이라고 하게 될 것이, 있다고 말을 하여 알게 된 것이었고,


또 그 당시 누군가가 성경(The Bible)과 백과 사전과 같은 여타의 책을 가지고 온 일이 있을 때 그 안에 있는 책의 내용을 나의 두뇌 속에, 즉 머리 속에, 넣어 달라고 하여, 즉 그대로 복사COPY 하듯이 옮겨 달라고 하여('참조' 참조), 알게 된 것도 있을 것이지만 나이가 어린 내가 성경(The Bible)의 내용을 지금과 같이 글을 읽어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가 유사하다고 말을 하지만 내가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를 아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란 종교에서 모시고 있는 책을 성경(The Bible)이라고 말을 한다고 하지만 그 내용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두 경우를 비교를 하여 말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아니고 특히나 다른 사람들이 말이나 두뇌 속에서, 즉 머리 속에서, 생각을 하고 있는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행위 중에는 내가 만나고 동행하고 텔레파시가 되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의하면 맞지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니, 즉 지금 추정을 하면 그 당시의 우리의 문화나 시대상에 의한 종교적 행위로 추정이 되지만 다른 사람의 두뇌 속에서, 즉 머리 속에서, 그려지고 있었던 '동상이나 사람에게 절을 하고 모시는 행위'를 두고 말을 한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그런 모습이 일부 있다고 하니, (그 때 나로 인하여 그런 부분이 수정이 되거나 이해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있었던 것 같고 어릴 때 및 1986년도에 그리고 지금까지 중간중간 언급이 된 것이고 그리고 여타의 다른 많은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에 의해서 수정이 되거나 알려진 것도 많을 것이니 논할 것은 아니고 사실만을 말을 하자면),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앞에서 말을 한 것처럼 나의 경우와 유사한 것으로서 나의 고향 사람들이 외지에서 물어 오는 것 중에는 카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것이 있었지만 그 종교에서 모시고 있는 책을 성경(The Bible)이라는 말을 하는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을 제외를 하면 내가 흡족하게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내가 말을 하고 자 했던 하늘에서 말을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존재, 즉 사람의 언어적 개념으로 표현을 하면 '영의 존재' '신의 존재'에, 대해서 문장이 정말 길게 되고 지저분해 보이겠지만 내가 굳이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란 말로 표현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어릴 때 그 당시, 즉 예정된 시기로 추정이 되는 그 당시, 내가 말을 하고 자 했던 하늘에서 말을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존재, 즉 사람의 언어적 개념으로 표현을 하면 '영의 존재' '신의 존재'에, 의해서 그 존재와 그 세계와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한 것이 증거가 되거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먼 훗날 사람과 사람의 방식의 의해서, 즉 성경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란 말 외에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표현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다는 말도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말을 빙자한 이해관계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한 다른 사람들의 그리스도 예수님과 관련된 언행들로 인하여 내가 또 적지 않은 곤란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이란 말도 더불어 있었지만 잘 견뎌 낼 것이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즉 글을 쓰는 것이나 영화나 예술 등의 사람의 방식과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의, 세계의 방식의 결합된 방식에 의해서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말도 있었지 않는가 싶다. 물론 종교 활동과 관련된 것은 나의 나이 스물 정도에 그리고 마흔 정도에 몇 가지 현상들이 있을 것이고 또 글도 쓸 것이며 나아가 일상의 일이 될 것이고 더불어 정치 활동 후의 먼 훗날의 일도 있을 것이지만 나의 우리 사회에서의 정치 활동과 관련이 된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말로 나를 곤경과 곤란에 처하게 된 사람들과, 즉 종교적인 것 보다는 다른 사유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말로 나를 곤경에 처하게 할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란 말도 있었는데 믿거나 말거나 할 말로 들리지 않을지 모르겠다.


우리 것도 중요하고 우리 것이든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든 사람 사는 세상과 관련이 된 것으로 기존에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고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지적인 것도 중요하고 사람이 물질로 구성이 된 부분도 있으니 물질적인 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알고 추구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것을 가끔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말이나 신조나 모토 등을 위해서 그리고 관습이나 습관이나 제도 등을 위해서 또는 사람의 만든 각종 사회적인 산물들의 부산물이나 부속품으로 사람이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미 위에서 언급된 것들이 알려진 것이 꽤 오래 되었고 특히나 1986년도에는 성인이 된 후의 일이고 그 이후에도 성인이 된 상태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즉 종교적 대립이 아닌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정체성이나 본질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신앙 생활이란 측면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간헐적으로 언급이 되었고, 또 정치 및 경제 활동과 관련된 말들도 언급이 되었었고, 그런 일들을 할 곳들과 사람들도 불특정 다수를 포함하여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진행되는 일들이 나 자신만의 문제도 아니고 국가적 대립이나 민족적 대립이나 종교적 대립과 관련된 것도 없고 오히려 막연한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대해서 비록 간접적이고 이론적이고 논리적으로라도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사실이 앞으로의 각각의 종교 활동 및 신앙 생활 및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될 내용일 것인데 앞에서 언급한 상황처럼 이렇게 저렇게 많이 얽히고 엮이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정치 활동의 것과 더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향후 15년 동안, 20년 동안, 30년 동안, 또는 50년이나 60년이나 70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면 몇 명이나 될 것이고 그 결과가 어느 정도까지 각자에게 미칠 것으로 생각을 하기에 그 방법들이, 물론 각자가 삶을 사는 방식을 포함하여 정치 및 경제 및 종교 등의 활동을 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지만 그리고 그 중에는 007의 방법도 있을 것이지만 그 방법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과 또 그 사람과 관련된 사람들을 침해하는 식으로 그것도 개개인으로 보면 미미할지라도 전체로 보면 때때로 불법이나 반인륜적이니 하는 말들이 언급이 되는 방식들로 일들이 이루어지게 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자칭, 속칭, 대의를 위하고 공의를 위하고 정의를 위하는 사람들이나 조직들에 의해서 일부 발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20070331


정희득




참조)


나의 어릴 때 그 당시 누군가가 성경(The Bible)과 백과 사전과 같은 여타의 책을 나의 고향에 가지고 온 일이 있었고 그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때 비록 다른 사람의 인지 능력으로는 확인을 할 수가 없지만 나로부터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대한 말과 특이한 현상들이 가끔 있으니 그에 대한 확인의 차원에서 그리고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나의 지식을 위해서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게, 책 안에 있는 내용을 나의 두뇌 속에, 즉 머리 속에, 넣어 달라고, 즉 누군가의 표현에 의해서 그대로 복사Copy 하듯이 옮겨 달라고, 말을 했을 때, 즉 나의 고향 집 방안에서 및 대문 앞에서 그런 말이 있었을 때, 그 때 그 당시 비록 그 공간에 같이 있었던 다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와의, 관계는 그냥 나만의 말이나 일이 되는 것이고 모두가 알 수 있게 존재를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언행만 존재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의, 능력 또는 역할 등에 대한 것은 어차피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것이니 사람의 차원에서 자세히 구분을 하여 말을 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 순간에 나와 동행이나 교통이나 교신이나 텔레파시가 가능한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의하면 성경(The Bible)과 관련된 것은 그 내용이 그 글자 그대로 Copy가 된 것은 아니고 그 내용이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대한 것인 바 그 본질에 대해서만 알게 된 것이고 더불어 백과 사전에 대한 것도 다른 방식으로 가능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한 것이었고, 물론 사람 중에도 지금껏 나의 주위에서 이런 작업 저런 작업 아닌 작업을 하는 듯하여 나와 관련된 것들을 자신들의 언행의 결과로 말을 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고 또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와, 관련된 것을 비록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존재를 해도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untouchable and so on 하니 나에게 나타난 이런 저런 현상들 중 일부는 특히 다른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발생을 한 일들은 전후 사정을 모르는 제 삼자적 입장에서는 사람들의 언행들과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여하튼 그런 말이 있었고, 그 이후에 대체로 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면 비록 인지나 감지를 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눈에 확연하게 나타나 보이지 않으니 무엇이라고 구분을 하기가 힘들지만 다른 때에 있었던 책의 Copy에 대한 것을 다른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를, 동행한 것에 의한 결과 그 때 그 당시의 성경을 알게 되었을 때의 언어로 몇 마디 구절이, 미국의 성경을 알게 되었을 때의 언어로 몇 마디 구절이, 러시아의 성경을 알게 되었을 때의 언어로 몇 마디 구절이, 우리 나라의 성경을 알게 되었을 때의 언어로 몇 마디 구절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지기도 했던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다른 날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듣고 또 확인을 하러 왔을 때, 그것도 단순히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대한 사유가 아니고 사람 사는 사회의 것과 관련하여 무엇인가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듯이 왔을 때 물론 나의 능력도 능력이 있지만 다른 날 나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한 능력은 나에 의한 것은 아니고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에, 의한 것이라고 말을 해 주고 나쁜 뜻은 아니고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해주니 마치 그런 능력으로, 즉 다른 나라 언어를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른 누군가가 나와 경쟁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그 사실을 확인을 하려고 하기에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쟁인지 시합인지 하는 것에 관심은 없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으니, 즉 대통령이 되는 것도 그렇고 교황이 되는 것도 그렇고 돈을 버는 것도 그렇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과 내가 해야 할 것이 따로 있으니 어린 나와 싸움을 하듯이, 관심을 가지지 말라고 말을 하고 그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 능력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왜 다른 사람에게, 즉 어린 나에게, 이런 저런 시비를 걸거나 이런 저런 말을 핑계로 해치려고 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말을 하니 이것저것 또 묻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는 방법이나 관심 분야나 하고자 하는 것이 나와 관련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때때로 시비 아닌 시비나 경쟁 아닌 경쟁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 당시의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의, 말에 의할 경우에도 내가 그 때 그 당시에 영의, 즉 신의, 세계의 방법으로 영의, 즉 신의, 존재와 그 세계와 여타의 것들에 대해서 증거를 하지 않으면 내가 사람들에게 계속 시달림을 당하고 힘들 것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다른 글에서도 말을 했듯이 더구나 전지전능한 영의, 즉 신의, 세계의 일도 있지만 창조된 사람도 또 사람 사는 사회에서 삶을 살아 가는 주체이기도 하고 더구나 영의, 즉 신의, 존재나 세계와 관련된 것이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고 또 사람의 관념이나 개념과 차이가 있는 바, 그 때의 상황이 몇 년 동안에 걸쳐서 영의, 즉 신의, 존재와 나와의 계속적인 교통의 결과 또 영의, 즉 신의, 존재의 판단의 결과 최초에 예정된 대로 진행이 어려워 다른 글에서 언급이 된 대로 복합적인 형태로, 즉 사람으로서의 방법과 영의, 즉 신의, 세계의 방법이 복합된 형태로 믿거나 말거나 진행이 되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로나 경우를 통해서이든지 영의, 즉 신의, 존재와 세계와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가 실존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더불어 성경에 의한 것이든 성경 속 선지자님들에 의한 것이든 성모 마리아님에 의한 것이든 그리스도 예수님에 의한 것이든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한 것이든 심령을 다한 기도의 응답의 결과이든 모두 하늘에 영으로 존재를 하고 있는 성경 속의 하늘에서 말을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 즉 야훼님, 즉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 천사들,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한 영 등등 영의, 즉 신의, 존재에 의한 선택된 존재로서의 영의, 즉 신의, 존재와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체험에 의한 것이든 사람 사는 세상에서의 사람으로서의 언행은 아마도 십계명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말로 표현이 되겠지만 사람의 실 생활에서의 언행은 아마도 십계명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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