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litics)와 사명

FTA와 대한뉴스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3. 30. 02:43

FTA와 관련된 대한뉴스

 

FTA를 어떻게 이해를 하고 있기를 이와 같은 행동들이 나올까? 국가 간에 FTA 체결은 애국이나 민족의 문제가 아닌 것은 인류가 아는 일이다. 물론 누가 한 숟가락 더 챙기고 누가 한 숟가락 덜 챙기는가 하는 문제는 존재를 하지만 그것은 양국 당사자간에 누가 더 우위에 서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이 문제는 어느 국가가 그 동안 정치 및 경제 등의 산업 분야에서 투명하게 활동을 해 온 것인가 하는 것 등에 주로 달려 있는 문제이지 양 당사국 사이의 애국 문제나 민족 문제는 절대 아니다. 아직까지 애국 문제 민족 문제로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조상 조상하면서 조상의 유언이나 조상의 말씀은 일절 듣지를 않고 가족 간에 친척 간에 이웃간에 골육 상쟁 아닌 골육 상쟁의 모습을 보이는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FTA는 많고 많은 국가 간의 관계 중의, 특히 경제 분야 관련 거래 중의, 하나의 거래 방식에 불과하다. 자급 자족이 가능한 나라는 그런 것에 덜 민감하고 천연자원이던 인적자원이던 과학기술자원이던 국가적인 환경이 빈약하거나 하부 토대가 불안정한 국가는 그런 것에 조금 더 민감한 것이고 특히나 국가의 운영 방식이 기업과 기업의 관계처럼, 특히 대한민국의 대기업의 문어발식경영처럼, 다국적 관계를 맺기 좋아하는 나라는 또 선호를 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기업인이 정치를 잘 한다거나 문어발식 경영 방식이 기업 운영에 좋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고 FTA가 가지는 성격이 그렇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 정치적으로 울고불고 할 일의 성격이 아닐 것이다. 특히 농업 분야냐 어업 분야냐 임업분야냐 산업분야냐 서비스업분야냐 등등의 방식으로 논할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사람도 하나로 말을 하기가 힘들 것인데 국가 개 국가의 관계를 A Or B로 말을 하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특히나 믿거나 말거나 무엇이라고 말을 하든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특히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필수적일 것이다. 이는 각자가 모두 인정을 하는 사실일 것이고 단지 각자의 언행을 통해서 매일 같이 나타나니 자각을 못할 뿐이고 스스로 변화를 못할 뿐이지 각자가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는 또는 여타의 사회 활동을 하는 과정 중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특히나 언론의 모습들을 보면서, 특히나 영상매체를 통한 모습들 보면서, 비록 지적하여 말을 하기는 힘들지만 많이 느끼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수만 가지의 국가 간의 거래 중의 하나일 FTA가 무슨 일로 여겨지기에 이와 같은 기사들이, 그것도 국회의원들이, 나타나는 것일까? 정말 안타까운 일처럼 보인다.

 

국회의원 40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정도까지일까? 그것도 국회의원 임기 4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정도일까? 해방 이후 새마을 운동부터 그렇게 어렵게 힘들이지 않고 조금씩만 지속적으로, 즉 show box에서 비디오 촬영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고 선거 기간에 표심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정말 농업과 어업과 임업의 발전을 위해서 장기적인 전략 전술에 따라서, 활동을 했으면 지금쯤 무슨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을까?

 

한 국회의원이 60년 동안 정치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의 국회의원들이 60년 동안 정치 활동을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니 국회의원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무엇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위의 기사와 같은 행동이 나타나니 나의 40여 년의 삶의 기간 동안 알게 모르게 있는 듯 없는 듯 대한민국에서 정치 활동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한 사람들에게 시달려온 입장에서는 조금은 아쉬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시점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지 않는가 싶다.

 

바뀔 곳이 많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을 권력이든 재력이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생활 습관에 젖어 든 사람들이 아미면 지극히 드물 것이다. 그런 국방의 의무를 수행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을 하는 곳인 군 부대에서의 훈련 방식이나 사병 간의 관계나 내무반 생활이나 여타 활동 방식 등이 서서히 바뀌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점차 다양해져 가는 산업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활동력이 왕성한 시기에 국방의 의무로 인하여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을 발휘하는 것에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즉 국방의 복무 기간 중이라도 군사 훈련을 위한 시간을 제외하면 각자가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을 계속적으로 계발을 할 수 있도록, 국방의 의무를 수행을 하는 실질적인 공간인 군 부대에서의 훈련 방식이나 사병 간의 관계나 내무반 생활이나 여타 활동 방식 등이 서서히 바뀌어야 할 것이다. 군 부대에서의 훈련만 고려를 한다면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의 젊은 사람들 중에서 군 복무 자체에 그렇게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양심적 병역 기피자나 거부자를 위해서는 군 복무 기간 중 집총을 하지 않고도 근무가 가능한 보직이나 군 부대를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예체능 분야에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즉 단순히 개인의 특기나 취미활동이 아닌 예체능 분야의 전공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우리가 아무리 국방의 의무라고 말을 하지만 국방의 의무 자체가 국가 속의 개개인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이 근본 목적인데 국방의 의무 후 향후 수 십 년 동안의 삶을 지탱해줄 자신들의 능력이나 재능을 잃지 않도록 배려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으면 이는 조금만 달리 생각을 하면, 즉 우리 사회가 과학 기술이나 물질 문명의 측면에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조금만 고려를 하고, 또한 정치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를 즉 전작권과 같은 국가관의 관계를 조금만 탄력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일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특히 과학 기술의 발달과 군사 훈련의 현대화 기계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군 부대의 실질적인 변화를 고려를 하면 다양한 우리 사회의 산업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변화를 수용하는 것에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군 부대에서의 생활 전체를 군사 훈련을 위한 것과 여타의 생활에 대해서 명백히 구분을 하고 사병 간의 관계에서도 군사 훈련을 위한 것과 여타의 생활에서의 것을 명백히 구분을 하는 것이 군을 위해서나 국가를 위해서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과거와는 달리 지식 수준이 의식 수준이 그리고 지식이나 의지나 소신 등등의 사람의 것에 목숨을 걸기 보다는 삶을 향유하는 의식이 많이 계발이 되고 탄력적인 모습을 갖게 되었으니 국방의 의무를 수행을 하고 유지를 하는 것을 과거의 군기에, 즉 개개인의 자발적인 국가 의식이나 공동체 사회에서 개개인이 분담을 해야 할 의무 등등이 아닌 강압적이고 강제적인 군기에, 의존을 하는 것에서 조금씩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향후 남과 북의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로 그리고 향후 국방의 의무를 위한 직업 군인의 도입과 같은 것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도 서서히 변화를 꾀해야 할 분야가 아닐까 싶다.

 

 - TEN PRODUCTIOND 영화시나리오 작성 중 –

 

2007-03-29

 

정희득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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