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과 부여와 한 마디만
농촌 문제에 대한 것으로 오래 전 대학교에 다닐 때 있었던 일이다. 물론 유사한 대화는 이곳 저곳에서, 물론 아 다르고 어 다른 표현은 달랐지만 그리고 누구나 앍고 있듯 어릴 때인 나의 시골에서부터, 있었던 일이다.
부여에 있는 대학교 과 동창의 집을 다니러 갔다 올 때 있었던 일이다. 강경에서 나룻 배를 타고 올 때 누군가가 농촌의 발전에 대한 말을 하면서, 부여 및 강경 지역의 발전을 말을 하면서, 시작이 된 말이다.
그런데 농촌 지역의 발전을 말고자 하기에 이런 저런 말을 시작을 하려고 하니 누군가 뒤에서 그냥 '한 마디만'이란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래에 나의 주위에서 많이 맴 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근래에 나의 주위에서 맴돌기 시작을 한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나의 고향의 마을 회관 부근 옆의 집에서부터, 나를 쫓아 다니기 시작하여 내가 5학년 말 무렵에 부산으로 이사 및 전학을 가고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1984년도에 서울로 유학을 가고 군 복무를 하기 위해서 1986년도에 군 입대를 하러 가는 곳곳마다 줄 곧 쫓아 다니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기도 하다.
정치인지 종교인지 돈인지 이상 사회인지 무엇인지 하는 말로서 나를 돕는 것이 아니고 과정이나 결과론으로 말을 하면 나의 존재를, 나의 삶을, 물론 다른 사람의 경우에 적용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사사건건 괴롭히고 있는 사람들 중의 한 경우이다. 무엇을 하고자 하든 돈이든 인력이든 마음대로 가져다 쓰거나 부릴 수 있는 사람의 삶이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의 삶이 어떻게 시작이 되고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생각을 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또는 대한민국에서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취직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래 동안 무슨 일을 해야 하는 하는 것을 생각을 해 보면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을 하면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약간의 자본을 바탕으로 특정한 분야의 몇몇 지식인이 모여서 요즈음의 정보 통신 분야의 발달을 배경으로 다른 사람의 삶 자체를 희롱하고 농락을 하는, 그러나 자신들은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아주 보기 드물게 피곤한 경우에 속하는 경우들 중의 한 경우일 것이다. 각자의 사람에 대한 그리고 그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관점이 다른 차원이 아니고 자신들의 조직적인 활동들이 매일 같이 자신의 삶을 살아 가고 있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의 삶을 상호 돕든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삶 자체를 희롱하는 경우에 속할 것이나 자신의 도움을 왜 받아 들이지 못하는가 하는 경우들 중의 한 경우일 것이다. 지적 능력이나 기술력이나 자본의 규모가 문제가 아니고 학교 교육이 죽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 개개인에 대한 것은 아니고 내가 사고의 습관이나 사회 관습이나 세상 물정으로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있지만 지적 능력이나 학식 여부를 떠나서 어른들의 세대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농촌 지역의 발전에 대해서, 그것도 부여나 강경 지역의 발전에 대해서, 즉 그 속의 개개인의 삶의 질의 향상에 대해서, 말을 하는데 '한 마디만'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어느 삶의 공간에서도 쉽게 나오지 않을 말일 것인데 그런 자리에서 '한 마디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지역에서 누가, 즉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하고자 하고 어떤 삶을 바라고 있고 등등 생각을 할 것이 그것도 대한민국에 부여와 강경만 있는 것도 아니고 비용을 고려를 하면 고려를 할 것이 특히나 모든 개발이, 특히 부동산 개발이, 몇몇 사람들에게는 부와 안락을 안겨 주고 그 결과가 또 몇몇 사람들에게는 부와 안락을 가져다 줄지 모르지만 전체 지역 주민들이나 시민들이나 국민들의 삶의 질의 향상을 항상 가져 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결과가 자칫 잘못하면, 즉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결과들을 간과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할 일 없이 오락가락 하게 하는 삶을 살게 만들 수도 있는, 특이 우리 나라와 같은 좁은 지역의 빈약한 천연 자원의 다수의 인구가 사는 곳에서는 다른 일거리를 만들지 못하면 이것 저것 시도할 수 있는 일이 없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인데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는지, 또는 투자가 발생을 하면 수익을 챙기지 않고 자선 투자를 하는지,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마디만' 하고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비난은 아니고 언급이 된, 즉 화두로 던져진, 사안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마디만'이 무엇을 말을 하는 것인지 또는 무엇에 대한 '한 마디만'인지 또는 무슨 '한 마디만'인지 모르지만 그런 것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게 되니 다른 사람의 삶의 관점에서는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의 어릴 때부터 상대방이 또는 다른 사람의 대화 중의 한 마디 말이 다른 누군가에는 소일 거리나 시비 거리가 되듯이 그런 것이 모여서 다른 사람의 삶 자체가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신앙을 무엇으로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신앙에 대해서 말을 하면, 또는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하면, 마치 신앙에 대한 지식을 경쟁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와 비슷한 것이다. 어느 곳에서 무엇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몰라도 신앙을 대학교 입학 시험 과목으로 생각을 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이다. 교황청에서 또는 유태인 사회에서 또는 성경 자체를 모르는 곳에서 신앙에 대해서, 또는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해도 보기 드문 반응을 나타낸다.
신앙의 본질에 대한 것은,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것은 그리고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또한 사람의 사후에 대한 것은 등등,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상, 물론 사람의 사후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가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알 수 있거나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성경을 조금만 읽어보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즉 누군가가 자신이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또는 선지자님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의 경우와 같은 상황에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의 일인 것은, 즉 다시 말을 하면 신앙이 신앙만 백과 사전처럼 동떨어져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인류만 말을 해도 63억 인구의 개개인의 삶과, 즉 각각이 서로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는 것과, 연결이 되는 것이니 지식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특히나 지식으로 경쟁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인데 마치 구구단 외우는 듯한 반응을 나타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것이 결과론적으로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각자의 사명 대로, 각자의 지식 대로, 각자의 신앙의 분량 대로 등등, 사는 것을 일일이 쫓아 다니면서 괴롭히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란 것이다. 그것도 신앙을 말을 하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핑계로서, 특히나 자신들의 역할이 미혹 하고 유혹 하고 현혹 하는 것이니 표적에게 모습을 나타내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핑계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의 삶만 조직적으로, 공개적으로, 해지고 망치고 있는 셈인 것이다. 누군지 모를 자신들과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인데 마치 자신들과 연관이 되는 것처럼, 마치 자신들과 경쟁을 하는 것처럼, 마치 자신들의 울타리에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면서 이곳 저곳에 쫓아 다니게 되면 자칫 잘못하면 다른 사람의 삶만 지장을 받게 되는 조직적인 범죄 행위에 불과한 셈인 것이다. 굳이 어렵게 생각을 할 것 없이 취직을 하는 것이든 개인 사업을 하는 것이든 무엇인가 일을 새로이 시작을 하고자 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는 등등의 것을 생각을 하면 비록 앞의 말이 개개인으로 보면 사소한 것일지 몰라도 조직적으로 발생을 하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 삶이 망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70년 무렵에 시골에서 11살이 되지 않은 아이가 예수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할까? '예'씨 성을 가진 '수'라고 생각을 하면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앞의 상황에서 만약에 그 아이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를, 즉 신을, 즉 영을, 만난 경우라고 말을 할 때에는 예수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게 될까? 물론 성경에 '전지 전능한'이란 말이 있고 '시공을 초월한'이란 말이 있지만 앞의 상황에서 예수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무엇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란 답이 있는 질문일까?
어느 목회자이든 태아 때부터 시작하여 기저귀 차고 누워 있고 기저귀 차고 기어다니고 자신의 성장 과정을 생각을 하면 앞의 경우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이 들까? 만약에 어린 아이에게서 영화나 무협지에서 보는 것과 같은 초자연적인 또는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현상들이 나타나면 1900년도에는 1970년도에는 2000년도에는 그리고 낙도에서는 서울의 여의도에서는 어떤 반응들이 나타날까?
앞의 상황에서 누군가가 예수 대신에 그리스도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크라이스트 지저스 또는 지저스 크라이스트라고 말을 하면 어린 아이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할까?
천재라고 생각을 하든 또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을, 만나서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든 영어를 또는 독일어를 또는 다른 나라 말을, 특히 스펠링과 발음을 섞어서, 말을 할 수가 있지만 앞의 상황이, 나이 11살이 되지 않은 1970년도의 시골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통상적으로는 영어 및 여타 외국어를 전혀 알 수 없는 경우이고 또 영어 문법이나 문장 구조 자체를 알 수가 없는 경우라고 한다면 그 때는 어린 아이가 예수 또는 그리스도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크라이스트 지저스 또는 지저스 크라이스트라고 누군가가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할까?
1970년 무렵에, 시골에서, 11살이 되지 않은 아이가, 그것도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를, 즉 신을, 즉 영을, 만나고 또 스스로 그 몸 안에도 거하고도 있다고 하는 어린 아이가, '이슬람'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할까? 또는 그 아이가 '슬람'이란 이름이 부르기 좋다는 말을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 어떻게 이해가 될까? 이슬람교가 좋다는 말로 해석이 될까? 만약에 믿거나 말거나 할 말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를, 즉 신을, 즉 영을, 만난 경우라고 한다면 그런데 그 당시의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종교적인 수준이나 여건이나 상황을 생각을 한다면 앞의 말이 이슬람교와 연관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 문제가 있을까?
앞의 상황에서 그 어린 아이가, 즉 사람들이 직접적인 경험이나 체험이 없으니 무엇이라고 단정을 하기가 힘들지만 그 어린 아이가 언행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사람들이 말을 하는 하늘 나라의,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를, 즉 신을, 즉 영을, 만난 경우라고 판단이 되는 그 어린 아이가, 종교 관련 여러 사람들 중에서 스님과 대화를 제일 많이 하고 잘 한다고 한다면 불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 문제가 있을까?
1970년 무렵에, 시골에서, 11살이 되지 않은 아이가, 그것도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를, 즉 신을, 즉 영을, 만나고 또 스스로 그 몸 안에도 거하고도 있다고 하는 어린 아이가, '유태교'이란 말을 들으면 무엇이라고 생각을 할까? 그 이전에 스스로 자신을 유태인이라고 말을 한 경우에는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맞을까? 시간의 차이가 있을 경우에, 즉 유태교란 말을 듣는 것과 그 이전에 스스로를 유태인이라고 말을 한 것에 몇 년의 시간이 차이가 있을 경우에는, 상호 간에 연관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까? 그리고 외지에서 와서 나의 고향에서 오락 가락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 장난에 장단 맞추어서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태교 때부터 어린 아이에게 ‘유’씨 성을 붙이는 것으로 보아서 ‘유’씨 중 누군가가 정치인이 되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니 '유'씨의 심보가 ‘아주 고약하고 유별나기 그지 없는 심보’라고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이 될까?
그러면 앞과 같은 상황에서 사람이 사는 사회의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한 반응과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는, 즉 사람들 표현을 말을 하면 초능력적인 또는 초자연적인 또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과 관련이 되는, 현상들을 경험하고 체험하고 나아가 그 아이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천사가, 즉 신이, 즉 영이, 대한민국의 어린 아이를 만난 것을 또는 그 사명을 위해서 어린 아이에게 거한 것을 기정 사실로 하고서, 1970년도의 대한민국에서는 성경에서와 같은 기적들이 나타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들이 있을까? 우리 나라에서는 미국에서는 유럽에서는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우리 나라에서는 각각의 종교 별로 어떤 대답들이 나올까? 그리고 그 대답에 따라 각국의 정치적인 상황과, 물론 간접적인 판단이지만, 연결이 되는 말들이 나오면 어떨까?
농촌 지역의 발전을 말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과 전혀 관련이 없는 말로서 농촌 지역을 도시로 만든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 투자자만 만든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다음이 더 문제이다. 정책을 집행하는 것과 관련이 되는 사람들은 또는 그 외 투자자 및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은 투자금을 만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다수의 사람들의 향후의 삶은 어떻게 될 지가 더 문제이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여타 선진 국가나 천연 자원 충만한 국가와 비교가 될 수가 없다. 무엇을 가지고 미국이나 일본이나 여타 선진 국가나 천연 자원 풍만한 국가와 비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주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하는 것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듯이 구구절절이 말을 하는 것 외에 비교적 간단하게는 무엇이라고 표현을 했을까? 과거 새마을 운동과 관련하여 비교적 간단하게는 무엇이라고 표현을 했을까? 나의 말에 대해서 각각의 농민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나아가 지금 시점에서 FTA와 농촌 문제를 연관을 시키는 것이 국가든 정치 활동이든 국민을 얼마나 우롱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일까? –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70525, JUNGHEEDEUK,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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