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존엄성과 동방예의지국의 예의
과거와는 달리 대한민국도 산업화 과정을 겪는 중 많이 변했다. 사람들도 많이 변했고 의식도 많이 변했다. 나의 입장에서는 군 복무에 거의, 심지어 제한 연령을 두어서 그 제한 연령에 중환자실에 있는 경우가 아니면, 중환자실에 있어도 군부대의 의료 시설을 개선을 하여 입원이 가능하면, 예의 없이 군복무를 해야 하는 것으로 말을 하는 입장이고 군 부대가 변하고 있지만 많이 변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남과 북이 실제로 대치 관계에 있고 항상적인 위험이 산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사회가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나 지적 수준이 변하니 군 부대 내에서의 복무 방식이나 훈련 방식이나 생활 스타일도 변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몇몇 사고가 발생을 하게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군 부대에서의 사고는 군기가 왕성할 때가 발생을 하게 마련이고 군기 여부 보다는 오히려 군 복무 방식이나 훈련 방식이나 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에 사고의 발생이 여부가 더 많이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즉 군 복무 방식이나 훈련 방식이나 생활 방식이 바뀐다고 해서 군기나 군 작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덜 하고 오히려 자발성을 키워서 적극성을 유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몇 십 명이 한 막사에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몇 명이 한 막사에서 생활을 하거나 훈련 외의 것에 대해서는 사병의 사병에 대한 지배를 없애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군 부대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대한민국 사회 곳곳이 앞과 같은 모습에서 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 대 개인의 인간 관계에서 보면 정말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살아 가는 관점에서 보면 때때로 이해못할 모습들이 많을 것이며 특히 다수의 개인에 대한 행위는 사람 사는 사회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로도 발생을 하게 된다. 비록 역사적 사실로서 배운 것이지만 조선시대나 일본 식민지 시대를 알게 되면서 그런 사회 구조나 삶의 형태가 개인의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얼마나 말살을 하게 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가족이나 가문을 중요시 하는 것도 그리고 단체나 국가를 중요시 하는 것도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그 속의 구성원의 삶을 위해서이지 가족이란 단어와 가문이란 단어와 단체란 단어와 국가란 단어를 위해서, 단어의 보존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많고 많은 아이러니 중에서 특정한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 그것도 때로는 도덕이나 윤리적인 범죄 행위를 넘어서 법률적인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이, 그것도 다수가 특정한 개인에게 지속적으로 범죄 행위를 하는 것이, 심지어 십 수 년에서 수 십 년 동안 그렇게 하는 것이, 애국이나 애족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도 앞에서 말한 우리 사회의 삶의 형태와, 즉 조선시대나 일본 식미지 시대의 삶의 형태와, 아마도 대체로 유교주의적 사고 방식과 이념 주의적 사고 방식과 그 전략 전술의 하나인 노선주의적 사고 방식의 삶의 형태와, 유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존엄성을 알고 인권을 알고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 있으면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를 말을 하지 않아도 가정이 있고 학교 교육이 있고 사회가 있으니 사람의 사람에 대한 반인륜적 행위는 그 개인이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오히려 발생할 확률이 더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전체주의를,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다수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등등, 당연시 하고 부추기는 사회 모습이 개인의 개인에 대한 범죄 행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싶으며 특정한 목적 추구를 위한 범죄 행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닐까 싶으며 특정한 개인을 위한 범죄 행위가 애국이나 애족이란 말로 둔갑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꼭 군부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들에 대한 미묘한 차이가 아닐까 싶다. 서양이냐 동양이냐 외국이냐 애국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들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생활 속에, 있는 모습들 중의 하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존엄성을 알고 인권을 알고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 등등과 동방예의지국의 예의를 아는 것이 바라는 바가 궁극적으로는 같은 말일 것인데 우리 일상에서 나타나는 그 미묘한 차이는 무엇일까? 더구나 그 나타나는 모습이나 결과에 있어서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주객이 전도가 된 것 때문에 그럴까 아니면 교육 방식에 대한 차이 때문에 그럴까? - TEN Production 영화시나리오 작성 중 -
20070328
정희득
'종교(Religion)와 사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가, 페인트, 공, 제일, 많은, 나라, 01, (0) | 2007.05.11 |
---|---|
견,우,돈에 대한 이야기 (0) | 2007.03.30 |
돌다리 건너는 법 (0) | 2007.03.29 |
FTA에 부쳐서-협상의 걸림돌 (0) | 2007.03.29 |
FTA에 부쳐서-의식의 양면성 (0) | 2007.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