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litics)와 사명

KIWI Story 01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1. 23. 17:17
 

KIWI Story 01



- 신앙과 정치와 이념과 다른 사람의 행위에 대한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반복 행위와 범죄 행위 -



오늘은 주일 영동교회에서 점심시간의 막간을 이용하여 글을 씁니다.


성경에 대한 말을 들으면, 또는 설교를 들으면, 마치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 대별되는 듯한, 심지어는 전혀 다른 듯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교파별로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국가별로 차이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표현과 말들을 많이 듣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판단이나 개념이 등장을 하게 된 것일까요?


동일한 신앙 안에서 약 2,000년 전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그리고 그 본질에 대한,  그리고 성경 및 그 속의 십계명의 삶과 생활 속에서의 실천에 대한  기존의 몇몇 제사장님들이나 서기관님들과, 즉 오늘날의 목회자님들과 유사한 사역자들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알고 있는 바가 차이가 나는 것이, 특히 신앙이 신앙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나아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알고 있는 바가 다른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인데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나타나는  영의 세계의 영의 능력에 의해서 귀신과 마귀로 혼동이 되는 결과도 생긴 것일 것인데 마치 서로 다른 것처럼 서로 적대시 되는 것처럼 그래서 이전 것은 몰라도 그리스도 예수님만 알면 되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약 2,000년 전 사람의 구전이 신앙에 대한  법으로 자리를 잡은 그 당시도 아니고 오늘날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전 것은 무엇이며 그리스도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요? 그것도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이미 영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에서, 영의 존재로 여호와 하나님 및 다른 천사들과 같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로, 영의 존재로, 존재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이전 것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다는 것은 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던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던 결국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나아가 사람의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비록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증거자로서 선택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들 속에 존재를 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경험이나 체험이 없으니 사람의 인지 능력이나 기준으로 또는 현재까지의 사람의 과학 방법이나 수준으로 말을 하고자 하면 농담 삼아서 마치 존재를 하지 않는 것과도 같이 여겨지기도 하지만, 인정을 하고 믿으며 삶의 계명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그리스도 예수님을 알고 믿고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셨기에 오늘날 신앙인들이 약 2,000년 전과 같이 사람이 사람의 지식으로 만든 구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고 성경에 대한 법으로 여기면서 살고 있지도 않는데 지금 현재도 약 2,000년 전과 같이 말씀을 하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지금 현재는 '믿음'이란 말로 사람의 모든 행위가, 즉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도, 언제든지 항상 면죄가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실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신에 텔레비젼이나 영화가 그리고 그냥 무생물체인 술과 담배가, 물론 건강을 비롯한 건강하고 건전한 생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없다는 것을 말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이지 그 자체의 속성만을 두고 볼 때, 새로운 범죄자로 부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약 2,000년 그 당시에는 제사장님이나 선지자님이나 장로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성경에 대한 구전들이, 마치 법과 같은 사람에 의한 율법이, 실제로 많았었고 더불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한 능력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니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같은 신앙과 그리고 신앙의 생활 속 실천이라는 같은 주제를 두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신앙 방법이, 더 맞는 것 같으니, 특히 그의 제자들이 전도를 하고자 하니,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라’고 말씀을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지만 지금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에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했던 영은 영의 존재로서 여호와 하나님 및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같이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이니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세계에 대한 증거자로서 선택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심령 어린 기도를 통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지금의 신앙인들의 경우에는 개개인의 실질적인 경험이나 체험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성경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세계에 대한 본질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본질과 그리고 사역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는 목회자님들이나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나 해설을 만드는 사람들을 통해서 옆길로 빗나가게 되는 신앙에 대한 것 모두를 알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사람들의 지식 및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성경 구절에 대한 몇몇 현학적인 말들로,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해관계들과 결탁을 하여, 약 2,000년 전과는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사람들에 의한 신앙을 위한, 신앙생활을 위한, 법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그것도 개인적인 판단이나 심판을 행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려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과 관련된 그리고 교회 활동과 관련된 행위들에 대해서 각각의 기준과 틀을 만들어서, 그것도 교회에서의 통과 의례라는 말로서, 신앙인을 상대로 한 조직적인 행위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십계명에서 말을 하고 있는 '죄'가 저 멀리, 또는 술집에, '죄'하고 따로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어느 곳에 있던, 심지어 예배당에 안에 있던, 사람의 생각이나 행위가 십계명을 어기게 되면 바로 죄가 되는 것이고 법을 어기게 되면 위법이 되는 것이고 양심을 어기게 되면 비양심 또는 반인륜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 열가지 항목 밖에 되지 않는 계명이, 성경에 명확하게 명시가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사회 경제 생활이나 여타 활동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니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게 되는 것인데 사회 경제 생활 및 여타 활동과 관련된 행위를 앞뒤 전후 사정 빠진 단어 몇 마디를 근거로 어린 아이가 판단하게끔 유혹하여 어린 아이까지 범죄를 짓게 만들고 더불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의 사회 경제 생활 및 여타 활동을 힘들게 하는 것도 그런 것의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앙생활과 관련된 각각의 활동과 관련하여 통과 의례를 만들고 또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하고 하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신앙생활이 목적이 아니고 신앙을 핑계로 그리고 성경에 대한 자신들만의 아집적인 편협한 논리로 신앙생활을 더더욱 복잡하고 곤란하게 만들어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교회의 여론을 지배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조직원이 있는 사회 활동 공간의 여론을 지배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공격하고 방해는 것이 목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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