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가 있다.
대학교가 죽었다는 말도 있다. 진리 탐구의 장인 대학이 죽었다는 말은 대학교가 대학교 교수가 대학교 학생이 생명력을 잃었다는 말이다. 생명력을 잃었다는 말을 무슨 말일까? 이상 사회의 추구이든 이념의 추구이든 과학의 추구이든 여타 진리의 추구이든 등 무엇을 추구를 하던 살아 있어야 할 개개인의 구성원의 활동력이 죽었다는 것이고 곧 개개인의 사고와 생각이 죽었다는 것이고 말 그대로 단순화되고 기계화되고 세뇌화 된 사람들이 되어 간다는 뜻도 될 것이다. 물론 생활의 속도는 빨라져 가고 세상은 물질문명으로 충만해가고 몇몇은 이곳저곳에서 매일 같이 명성과 부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데 진리 탐구의 장인 대학교에서의 학문을 통한 발견이나 발전의 속도가 느린 것도 그리고 수 십 년 동안 알아주는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연구에 몰두를 해야만 하는 것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교원을 평가한다는 말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지식을 전달하는 모습도 있겠지만 개개인의 개성과 다양성을 보여 주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각자가 각자의 모습대로 교원으로서의 삶을 추구를 하는 모습이 학생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모습일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윤리적 법률적 범주내의 모습이지만 로봇과 같이 철두철미한 사람, 헐렁 바지 같이 매일 나사가 빠져 보이는 사람,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등등 비록 지식 전달을 하고 사회 공동체에서 더불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다양한 그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교원들의 모습 속에서 학생들은 본인들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그런데 그런 교원을 평가를 하겠다는 말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를 하고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학교가 죽을 위험도 있을 것이다. 과거 학생 운동의 산물로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서 원래 의도나 목적이 무엇이었든 대학생들을 단세포화시키고 세뇌화시키고 획일화시켜 나가는 모습들이 있었듯이 그래서 그 결과로 이미 대학교에서 또는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그런 모습이 일정 정도 나타나고 있듯이 그래서 초·중·고등학교에서도 이념추구나 이상사회 추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동물적 존재로(사람과 대비 대는 개념이며 사람의 생물학적인 분류를 말하는 것은 아님) 전락하고자 하는 경향이나 이념이나 이상의 추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산물로이나 그 노예로 전락해가고자 하는 경향이 문제가 되듯이 자칫 잘못하면 한창 분별없는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과 사리 판단 없는 사고가 무럭무럭 자랄 시기에 있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 학교가 죽어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 가정이 가정으로서의 안정적인 정서적인 감성을 형성하는 역할을 상실해가고 있고 ‘자연과 더불어’라는 과거의 성장 환경이 거의 없어져 감과 더불어 자연 환경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심각하게 고려를 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과학의 발달이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과학이 결과들이 미치는 영향들의 피지배적인 위치에서 사람들이 물질화 되어가고 기계화 되어 가는 것이 그래서 사람의 모습과 로봇의 모습이 동일해져 가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의 전교조가 문제가 되면 또는 현재의 교사의 실력이 문제가 되면 또는 현재의 교사의 자질이 문제가 되면 그에 걸맞게 교사끼리 만나고 대화를 하고 그래서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본인들의 본래의 본업으로 방향 전향을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으며 교원을 평가를 하겠다는 자체는 자칫 잘못 하면 빈대 잡으려다가 오히려 초가삼간을 태우고 범법자 한 명 잡으려다 무고한 다수의 경찰이나 검찰이나 국가정보원이나 시민들을 다치게 하는 모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1991년도부터 시행이 된 교원임용시험이 또 교원 평가로 이어지게 된다고 한다면 교원들의 단일화 되고 세뇌화 되고 획일화되어 가는 사고를 부추길 위험이 더 있지 않을까 싶다. 전교조가 문제이면 그에 합당한 방법들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고 실력이 부족하면 요즘의 발달된 물질문명과 정보통신 분야를 통해서 보충을 할 방법이라도 있을 것이고 자질이 부족하면 그에 걸맞게 추구할 방법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학교의 교원이 생명력을 잃으면 그래서 학생들이 생명력을 잃기 시작하면 그 때는 그 손실된 값어치를 쉽사리 회복하기도 힘들뿐더라 더 큰 우려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스개 소리가 아니고 웃을 일도 아니고 근래에 정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장소 저런 장소에서 말을 한 기사를 읽어 보면 알 일이 아닐까 싶으며 근래의 정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저변에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보면 알지 않을까 싶다. 표현 수준의 높고 낮음이 문제도 아니고 진보 보수의 문제도 아니고 무엇을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말을 하고자 하는지 그것이 더 문제인 것 같다. 단지 튀고 단지 뜨고 싶은 것 밖에 없어 보이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싶다.
몇몇 사람들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을 하고 실적을 남기고 이름을 남기면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우리 사회 전체가 감당을 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 동안 감당을 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고 더구나 지금과 같은 시점에서는 경우에 따라서 회복 불가능한 사회 구조와 모습을 가져갈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급박하게 진행이 되는 정세는 더구나 여러 사람들과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곳에서는 그렇게 정형화 되듯이 흘러가지 않게 되고 예정된 대로 뭔가 폼(Form) 나게 진행이 되도록 그렇게 만들고자 하면 그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대가를 지불을 해야 할 것이고 그 대가는 이렇게 저렇게 얽히고설킨 관계로 그 구성원들 모두가 감당을 또 해야만 할 것이다.
마치 북한과 대한민국이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를 하기 위해서 대한민국을 초 양극화의 세계로, 대한민국을 경제적 혼란의 방향으로, 대한민국을 의식적인 획일화 단일화 세뇌화의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영화가 있듯이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을 해 볼 일이 아닐까 싶다. (정희득님의 ‘믿거나 말거나’ 중에서)
2006년 10월 20일 P-City에서
정희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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