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litics)와 사명

[스크랩] 이 대통령 "대학 등록금 상한제 반대"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10. 1. 15. 19:03
뉴스: 이 대통령 "대학 등록금 상한제 반대"
출처: 이데일리 2010.01.15 07:00
출처 : 청와대
글쓴이 : 이데일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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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동은 시장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학교와 국가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이고 대한민국의 대학교와 시장 법칙과는 어떤 관계이고, 대한민국의 대학교 운영 목표 기준 및 방법은 무엇일까?


대학교는 학문 연구를 하는 곳이고 학문의 발전 및 대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대학교 운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학교 관리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대학교 교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정도의 사람들이 대학교를 수료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별개로 기본적으로 학생이 등록금에 활동이 묶이면 대학교에서의 학문 연구 및 생계 문제 해결이 어렵고 학생이 속한 가정 경제도 어렵고 그 결과른 대기업을 비롯한 중소기업 등의 문제로 귀착이 된다.


고등학교 졸업자와 대학교 졸업자 간의 임금 문제를 비롯한 경제 활동 분야에서의 형평성 문제는 기업 등 경제 활동 영역에서 해결을 할 문제이고 대학교를 다니고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행위의 댓가로 평생 채무자가 되거나 학문 연구 자체를 할 수가 없으면 대학교란 존재 자체가 영리 추구 단체로 전락하게 되고 스스로의 학문 연구 없이 외국에서 학문과 기술을 수입하는 모습만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니 고등학교까지가 의무 교육이고 비록 대학교까지 의무 교육 대상은 아니지만 대학생 및 가정 경제가 대학교의 등록금에 얽매이는 것은 국가와 학교란 본질에, 특히 인류와 교육이란 본질에, 맞지 않는 행위이고 학교의 설립 및 운영에도 맞지 않는 행위이다. 학교를 설립한 주체가 전직 마피아나 현직 마약 밀매자 등 어떤 사람이든  학교를 세웠으면 사람과 교육이란 차원에서 학교를 운영해야 할 것이고 학교의 운영과 수입의 결과가 교육에 적용이 되어야 할 것이지 개인과 재단의 사적인 재산 증식에 적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 대학교 운영 및 학교 운영 및 교육 분야에 관련된 것이 국가와 교육이란 차원에서, 특히 인류와 교육이란 차원에서, 스스로의 자율적인 기능을 찾아가고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대학교의 등록금만 상한제를 두느냐 아니냐를 논하면 현실의 물가 및 경제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결과는 상한제를 둘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등록금 상승폭도 물가 상승폭을 넘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국가 정책이 사람과 국민과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특정한 이론, 사주, 주의 등에 사람과 국민과 국가를 두들겨 맞추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에서의 사회 활동이 시장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 좋고 반영을 해야 할 것이지만 시장에서의 모습이 경쟁만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시장에서의 활동이 완전 경쟁이 될 수 없고 그런 이유도 어떤 국가나 사회도 서로 다른 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모여서 살고 있고 사람의 행위는 1+1=2라고 계산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존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뻥튀기 기계에서 쌀을 뻥 튀겨 내듯이 그렇게 뻥 튀겨 지는 것이 아니니 그렇다.


돈과 이율의 관계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 경제 활동 결과로서 계산이 되는 것이지 수학공식처럼 그렇게 계산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사채업이든 법인화 된 금융기관의 대출이든 돈의 거래를 이용한 경제 활동은 현실의 경제 활동 수준을 반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까지 상승 곡선에 있던 대한민국의 경제 활동 수준에서 적용되던 이율이 오늘날 그대로 적용이 될 수 없는 것이고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특히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는, 시장의 모습이 시장 법칙에 따라서 제대로  반영이 되지 못하고 생존 활동과 경제 활동이란 것이 고삐처럼 악용되고 있으니 국가 활동이나 입법 활동을 통해서 규정이나 제도나 법을 입법을 하게 되는 행위가 있는 것이고 경제 활동 분야나 시장의 현실적인 모습을 제대로 반영을 하는 것이 국가 차원이나 개인의 차원에서 그리고 돈의 거래를 이용한 경제 활동이나 돈이 필요하여 돈을 빌리는 사람의 경제 활동이나  과학과 기술을 이용한 경제 활동 등 분야를 막론하고 경제 발전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채업이든 법인화 된 금융기관의 대출이든 돈의 거래를 이용한 경제 활동 중 손실이 발생하면 그 손실이 발생한 부분에 대한 원인을 찾고 문제 해결을 하고 필요하면 보험을 만들어야 할 것이지 이율로서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거나 채권의 권리로서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가끔 언론에 보도 되고 있듯이 사람 대 사람 간의 폭력이 동반된 범죄 행위까지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떤 국가이든 인류가 시간의 연속선상에 있고 그 결과로 지식의 누적과 축척의 연속선상에 있으니 사람과 국민에게 교육이 자치하는 요소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하고 무엇을 교육을 하고 교육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 절대적인 요소이고 특히 대한민국과 같이 국민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국민의 생존 및 사회 경제 활동에 필요한 천연자원 및 자연적인 생산물은 대부분 수입을 해야 하고 인적 자원만 과다한 곳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인교육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에 있어서도 정말 중요한 요소이고 대학생을 비롯한 학생이나 교육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교육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래의 글을 읽어 보면 오늘날의 교육의 실상이 무엇인지,

지식문명 과학문명 물질문명의 시기에 오히려 사람의 사고 능력이나 인지 능력이  마비되어 가는 현상이 발생하니 어떤 방식의 교육이 필요한 것인지, 조금은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식문명 과학문명 물질문명은 사람의 활동의 결과이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일 뿐이고 하나님과 천사님들과의 교통과 동행이 이루어지면 학문 연구나 과학 연구 및 지식문명 과학문명 물질문명의 발달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로울 것은 없는데 지식문명 과학문명 물질문명이 종교란 단어나 성경이란 단어나 하나님과 천사님들과 대립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현실 및 그 결과로서 하나님과 천사님들과의 교통과 동행 및 그 실존에 대한 반증을 만들기에 바쁜 현실을 고려하면 교육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조금은 생각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성경(The Bible)의 기록에 전지전능 천지창조 심령관찰 등 사람의 능력으로서는 불가능한 능력에 대한 말이 있다.


그런데 전지전능 등의 능력의 주체는 하나님과 천사님들이고 사람이 아니고 물론 아브라함에서 사도 요한까지의 사람도 아니다. 아브라함에서 사도 요한의 사람들은 사람이 사람의 인지 능력과 물질 개념으로 직접 알 수 없는 하나님과 천사님들을 만나서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을 말을 한 사람이다. 물론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과 그리스도 예수님도 아니다.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은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이고 그리스도 예수님은 사람이 사람의 인지 능력과 물질 개념으로 직접 알 수 없는 하나님과 천사님들을 만나서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을 말을 한 사람이다.


하나님과 천사님들은 사람(영혼 포함) 및 사람의 물질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이고 사람의 육체와 같은 육체가 없고 사람의 물질 개념의 형체도 없고 사람에게 나타날 때 나타날 때의 능력과 현상으로 알 수가 있다. 성경의 내용 및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실존을 어떻게 생각을 하던 성경의 내용이 그렇고 하나님과 천사님들에 대한 인류의 경험과 체험이 그렇다. 생명체의 진화론은 환경에의 적응을 말하는 것이고 서로 다른 종간의 진화론은 물질의 개념이니 물질의 개념으로 말을 할 수가 있고 지금 현재까지 인류가 알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지식과 물질 개념으로는 서로 다른 종간의 진화론은 없다. 생명체로서 서로 다른 종간에 강제로 교배를 시켜서 실험을 하는 것과 서로 다른 종간의 진화론을 구분을 못하는 생각도 오늘날 어딘가에 존재를 하고 있고 그 결과가 권력과 권한과 지위와 자본과 조직력 등으로 사람의 자유 평등 존엄성 인권 인격을 몰락시키니 문제가 된다.


물론 자연 및 사회 경제 활동의 변화로 사람의 모습의 변화를 추구하여 우생학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사람의 모습에, 특히 육체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고려해서 우생학을 추구하는 것은 좋을 것이지만 앞의 행위가 인류 최초부터 남자라는 사람과 여자라는 사람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란 존재로서의 일이니 사람의 존재론적인 차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요소인데 사람의 존재론적인 차별의 허구와 사람으로서의 진화에 가까운 우생학을 혼돈 하는 생각도 오늘날 어딘가에 존재를 하고 있고 그 결과가 권력과 권한과 지위와 자본과 조직력 등으로 사람의 자유 평등 존엄성 인권 인격을 몰락시키니 문제가 된다.


전생과 환생을 생각하게 되는 배경도 사람의 출생에 관련된 초자연적인 현상, 자연의 초자연적인 현상, 하나님과 천사님들로부터의 초자연적인 현상, 성경에 기록된 것이나 우리 사회의 전설처럼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사람의 생각에 대한 심령관찰과 환영의 결합과 같은 현상 등으로 존재를 하고 있지만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오늘날까지의 인류의 경험과 체험의 역사를 보면 그 원인이 부분적으로 추정될 수 있는 일이고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고인이 된 선지자님의 환영은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환영의 모습이고 그런 것이 가능한 것도 아브라함에서 사도 요한까지의 하나님과 천사님들로부터의 증거 행위가 족장에서 족장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시간의 연속이고 하나님과 천사님들로부터의 증거 행위의 연속이니 그런 것이다.


그러니 1965-77년 사이의 시기에 하나님과 천사님들과 교통하고 동행을 한 어린 아이가 GB,S,S,C,C,J,A,,,등의 대륙의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순간이동으로 나타나고 그 결과로 다른 지역으로의 순간이동과 같은 현상이 발생을 했다고 해서, 그리고 20대 무렵(1986년도)이나 40대 무렵이나 60대 무렵 등등이 하나님과 천사님들로부터의 교통과 동행이란 사실과 무관하게 하나님과 천사님들이 그 능력과 방법으로 그 실존을 증거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서 예정된 시기들 중 하나라고 해서, 1965-77년 사이의 시기에 어린 아이를 통해서 발생한 순간이동이 2005년 무렵에도 동일한 지역이나 동일한 사람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해서 사람으로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없는데 성경에 기록된 전지전능의 능력이나 1965-70년경부터 지금까지 내가 말을 한 현상들의 행위 주체는 사람이 아니니 내가 아니고 나는 그런 현상들이 발생한 대상이고 사람의 능력과 기획 연출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즉, 성경, 성부, 성자, 성신, 성령, 신령, 영, 하나님, 천사님, 하늘, 기도 등을 사람의 이름이나 단체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조직력과 자본력 등을 바탕으로  1965-77년 사이의 시기에 하나님과 천사님들과 교통하고 동행을 한 어린 아이가 순간이동의 방식으로 나타나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을  이곳 저곳에 분산시키고 고립을 시켜 둔다고 해서, 심지어 성경에 기록된 사실인 하나님과 천사님들로부터의 도움이나 사람으로부터의 도움이란 말을 검증을 한다고 죽을 때까지 고립을 시켜 둔다고 해서, 1965-77년 사이의 시기와 같은 그런 순간이동이 하나님과 천사님들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비록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능력으로 전지전능이란 단어가 있지만 그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능력에 대한 표현이고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능력이 사람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것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또한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영혼으로 활동을 하는 사람의 활동에 관련이 되는 심령관찰이나 순간이동에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1965년에서 지금까지의 대한민국과 지구에서 발생한 심령관찰의 다양한 예들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 다른 글들을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The Film Scenario


20100115


정희득, JUNGHEEDE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