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장 18-24절
1장 21절의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란 말은 성경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람의 육체의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으로 세상만물을 인지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이다.
이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의 세계가 있는 것은 알 수 있거나 추측할 수는 있다. 앞의 경우는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의 경우도, 물론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의 경우도, 물론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도, 사람의 육체의 시각과 청각과 미각과 후각과 지각으로 세상만물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피와 호흡으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그렇다.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의 경우도, 물론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도, 눈을 감으면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것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이고 그러나 앞의 사실이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을 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이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을, 물론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날 때 투시 줌인 천리란 천리이 등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이, 물론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은 때때로 하나님의 세계와 교통과 동행을 하고 때때로 모세의 홍해를 가르는 기적이나 UP님의 전쟁을 통한 기적이나 야곱의 야밤의 씨름이나 요나의 물고기를 이용한 기적이나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의 육체적인 사랑이 없는 잉태나, 2천 년 전에는 기적이 될 수가 있을 것임,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 등과 같은 현상이 각자에게 나타나니 각자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세계의 모습 및 현상만큼 하나님의 세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즉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을, 물론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가 있는 것 정도는 알아도 하나님의 세계를 직접 알지는 못한다. 왜?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그렇다.
1장 22절의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고 당연하다. 왜?
유대인은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이나 동행도 있고 기도의 응답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구전이나 전설로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있고 성경에는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나타내는 것을 비롯하여 요나와 물고기를 이용한 기적이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물론 예수님을 통해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치료하고 물 위를 걷고 자연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들이 나타나지만 앞의 경우들과는 기적이 다르고 예수님과 물질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니 예수님의 이전의 경우와 다르게 보인다.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란 말을 하거나, 특히 기적이 나타난 후 그런 말을 하거나, 예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령=영=천사=신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그 결과 기적이 나타난 것을 보고서 그런 말을 하는 것 등을 통해서도 예수님이 있는 자리에서 발생한 기적들은 예수님의 육체, 정신, 의지, 영혼과 무관하고 비둘기의 형상으로 잠시 visible하게 나타나서 예수님과 동행을 한 하나님의 세계의 성령=영=천사=신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이 예수님의 몸을 통해서 나타난 기적이고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 죽은 후 예수님의 시신이 살아 움직인 것과 유사한 것이고 예수님의 시신을 통해서 방언과 능력과 같이 사람과 대화를 한 것과 유사한 것이고 모세가 바닷물을 가르거나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을 드나든 기적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누구의 기적이 더 강하고 센 것이냐 또는 누가 더 하나님의 세계를 잘 알 수 있느냐 또는 누가 구세주냐의 문제가 아니고 동일한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이 서로 다른 모습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말을 하고 있고 그 결과로 사람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지켜야 할 계명을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의 경우도 하나님과 천사님들, 신, 영, 신령, 성령, I AM,,,이 비물질의 영의 존재로서 사람의 인지 능력에 포착이 되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성령=영=신이 야곱과 저녁에 씨름을 한 것도 저녁에 씨름을 하면 이 세상의 입체의 VISIBLE AUDIBLE TANGIBLE한 형상으로 나타난 천사=성령=영=신을 행위나 존재의 주체로 인식을 하게 되는데 대낮에 씨름을 하면 그 빛에 의해서 야곱이 야곱의 눈의 시력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을 만들기가 힘드니 그런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성령=영=신이 사람에게 나타났을 때 텔레파시 광채 바람 구름 등의 자연현상을 이용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물론 구름이 있거나 그늘이 있거나 할 때는 경우가 다르겠지만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성령=영=신의 존재론적인 본질상 보편적으로 그런 것이고 영화의 영상이 SCREEEN이 있으면 온갖 형상과 형체가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유사하고 사람의 말과 방송 매체를 통한 온갖 형상이 허공에 존재하고 있어도 사람의 인지 능력과 과학 능력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없고 다른 물질과 매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헬라인도 하나님의 세계가 있는 것을 알아도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존중하는데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유태인의 사회처럼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의 사례들을 주축으로 한 신앙 생활이 없으니 그런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헬라인을 욕을 할 것은 아니고 헬라인도 이 세상의 만물 중 하나의 모습에 불과하고 각자의 재능 능력 개성 특성 관심 흥미 등의 모습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지혜와 지식을 존중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는 사람이란 존재로서의 기본적인 모습이나 본질과 그에 대한 이해와 사람 대 사람 사이의 예의 존중 존엄성 등의 마인드가 결여가 되어 있으니 문제가 되고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의 지혜와 지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마음의 문이 닫혀 있으니 문제가 되는데 그런 모습은 유태인 사회에서도 성경에 대한 사람의 지식과 논리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마음의 문이 닫히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예수님이나 고린도전서를 쓴 사람이 문제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나 고린도전서를 쓴 사람은 각자의 사명을 했고 단지 그 당시에 이미 오랜 전통의 신앙 생활 방식이 있었고 성경과 신앙 생활을 구구단을 외우는 것이나 법조문을 외우는 것처럼 알고 있는 신앙심 검증의 방법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것에 의해서 예수님의 말이 말로서 잘 통하지 않은 것이고 특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선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세계와의 동행으로 그 사명을 수행을 해도 하나님의 세계의 존재론적인 본질로 인하여 사람들의 눈에 직접 보이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이고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기적들이 모세나 야곱이나 요나의 기적과는 달리 그 주체가 모호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고 사술이나 마술처럼 보이는 경우도 많으니 귀신이나 마귀의 현상으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즉 하나님의 세계로부터 선택이 되어서 하나님의 세계와의 동행으로 그 사명을 수행을 하게 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각자가 알게 된 하나님의 세계의 모습에 의해서 성경과 신앙 생활을 말을 해야 하니 각자의 방식과 언변과 논리로 사람들에게 증거 및 전도 행위를 한 것일 뿐이다.
갈라디아서 1장 8-9절이나 로마서 14장 7-9절 등 예수님 시대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강조한 구절들도 마찬가지의 내용이다. 문자 그대로, 글자 그대로, 글자 부부만, 눈에 보이는 것만, 해석할 것이 아니고 선지자님과 예수님의 하나님의 세계와의 동행 및 기적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나, OR 세례 요한 이후의 하나님의 세계에서의 이 세상에서의 증거 행위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을 한 것이나, OR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세계에서의 이 세상에서의 증거에 대한 예언이 세례 요한 때까지 또는 성모 마리아님과 요셉님 사이의 출생 때까지란 사실 등등의 사실을 읽어보며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오한계시록의 22:18-19도 성경의 내용에 가감 첨삭을 하지 말라는 말이고 그런 것도 아브라함은 아브라함의 증거가 있고 모세는 모세의 증거가 있고 예수는 예수의 증거가 있고 사도요한은 사도요한의 증거가 있고 오늘 날 목회자는 목회자의 증거가 있고 나는 나의 증거가 있는 것이고 사람의 언어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니 하나의 단어의 가감 첨삭에 따라서 그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 그런 것이고 그러나 오늘 날 성경에서와 같은 증거가, 즉 광장에 사람들을 모으고 이동을 하는 형태의 증거가 현실적으로 힘드니 믿을 수 있거나 없거나 나의 일생 동안의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에 의해서 내가 알게 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과 정체성과 그 결과로서의 성경의 내용에 대한 증거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1970년도 가치의 50억원의 E-land or V-land 돈의 지급이 언급된 것이고 또한 2005년 무렵에 1970년에 말을 한 것대로 글을 작성하게 될 때 책의 저작권과 별도로 몇몇 지역에서의 책의 판매권으로서 1970년도 가치의 6663천만원 또는 6666천만원의 돈이 언급이 된 것이고 지금 현재 43년 동안의 기간에 발생한 하나님의 세계의 현상들에 대해서 1970년에 말을 한 것처럼 그리고 5년 동안 매일 컴퓨터로 글을 작성하고 있다.
정말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알고 신앙을 갖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의사 소통의 수단인 나와 하나님의 세계 사이의 약속된 의사 소통의 방법 및 관련된 기계가 존재하는 것이나 또는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과 방법에 의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말을 하기 위한 1970년도 전후 약 10년 동안의 시도가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으니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과 방법에 의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위해서 예정된 시기들이 1986년도나 2005년도나(20010816일부터 현재까지) 2030년 등과 같이 존재를 한다. 물론 그 결과는 나와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만의 문제는 아니고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것은 그 존재론적인 본질로 인하여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의 결과로서 사람에게 증거나 증명이 되는 것이니 해당 시기의 사람들과도 연관이 된다.
1970년도 전후처럼 또는 오늘 날처럼 사람의 인해전술의 능력과 몇몇 정치 경제 종교 단체의 네트워크를 형성 하여 사회 경제 활동과 생존 문제를 엮으면 문제가 된다. 왜?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이 가능하고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이 있어도 사람은 사람이고 사람으로서의 생존방법 및 존재론적인 모습이 있고 하나님의 세계나 사람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물질의 음식이 필요 없을지라도 사람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 생산되는 물질의 음식을 섭취를 해야 생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세계와 교통하고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에 의해서 생존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될 경우에 이 세상의 사람으로서의 사회 경제 활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말을 하는 것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과 방법에 의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위해서 예정된 시기들인 1986년도나 2005년도(20010816일부터 현재까지) 등이 사람의 정치 경제 활동과 관련된 시기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앞에서 말을 하는 하나님의 세계는 사람이나 사람의 조직이 아닌 성경(THE BIBLE)에서 말을 하는 하나님의 세계를 말을 한다.
정말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알고 신앙을 갖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의사 소통의 수단인 나와 하나님의 세계 사이의 약속된 의사 소통의 방법 및 관련된 기계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과 관련이 된 것이 아니고 정말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알고 신앙을 갖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서의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세계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나의 글의 내용에 대한 것은 하루 3-4시간씩 1년 365일 정도는 검증이 가능한데 반드시 나와 그리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인 방법으로의 검증이 가능하고 지금 현재까지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 비록 사람으로서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없고 사람에게 나타난 것대로 알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에 대한 사실 확인도 향후에 여러 가지 방법 및 기회가 있을 것이다. 특히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 스스로 알 수 있는 때도 올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가문이든 친척이든 부모든 형제자매지간이든 이웃 사람이든 어떤 경우이든 10살 이전의 시기에, 또는 생후 몇 년 안에, 한 두 번 보고 3-40년 동안 헤어져 있고 그 동안 상호 간에 만나서 대화를 하고 가문 친척 부모 형제자매지간 이웃 사람으로서의 인간 관계를 형성한 일이 없었으면 3-40년 후에는 만났을 때는 비록 닮은 모습이 있고, 특히 3-40년 동안 변한 모습이 아닌 어릴 때 본 기억 속의 모습과 닮은 모습이 있고, 영혼의 교감이 있어도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이 되고 아무런 감정도 없고 물론 상호 간에 우호적인 감정 및 사랑의 마음이 있으면 금방 죽마고우의 관계와 같은 감정이 형성될 수 있겠지만 사람 대 사람의 모습은 그렇다는 것이다.
앞의 사실이 성경의 십계명의 5절 및 성경의 내용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과도 무관하고 하나님의 세계를 아는 것과 인류와의 관계를 아는 것과도 무관하고 나와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의 사실 여부를 아는 것과도 무관하다. 왜 그럴까?
십계명의 1-4절은 하나님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을 하고 사람의 마음과 중심을 빼앗아서 각자의 인생을 창조하고 개척하고 가구며 살아가야 할 사람을 그릇된 길로, 사람과의 사이에서의 범죄의 걸로, 유혹하고 미혹하는 유형 무형의 형상 우상 등을 경계하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이고 십계명의 5절에서 10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이고 인류의 도덕이나 윤리의 본질과 비슷하고 법의 본질과 비슷한 내용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세계의 지혜의 경쟁이 아니라 인류가 더불어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말이고 그 결과로서 사람의 육체의 사후의 영혼의 세계에서의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문제 대한 것이다. 사람의 육체의 사후의 영혼의 세계에서의 지옥이 있어도 살과 피가 튀는 육체와 피가 없는 고통만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영혼의 일이고 제 2, 제 3, 제 4의 구원이 있을 것이니 이 세상에서 고문당하는 것보다는 덜 할 것이다. 하나의 예로서 태양과 같은 열이나 명왕성과 같은 온도에서도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물질의 고통이나 통증은 사람의 인지 능력 기준에서는 무엇으로서 표현이 될 수가 있을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관 관계에 대한 표현을 이용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내가 지금 작성하고 있는 글과 글의 출판이나 영화화 만화화 등에 사용을 할 돈이나 앞의 사실과 무관하게 대선출마 등에 사용할 유형 무형의 재화나 기반을 사용하고 사람의 육체의 사후에서의 지옥을 말을 하는 것은 나에게 또는 하나님의 세계에 죄의 댓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행위로 인하여 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고 나 또는 하나님의 세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고 현재의 육체와 영혼의 존재로서의 나의 인생과 사회 경제활동과 가정과 가족 관계 등을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니 수습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자가 사고를 수습하고자 하면 수습하기 쉽지만 제 3자가, 특히 하나님의 세계의 천지창조의 전지전능의 능력 등을 말을 하면, 그것은 사람으로 사람에 대한 앞의 범죄 위에 언어로 표현을 하기 힘든 범죄를 행하는 것일 뿐이다.
매일의 일상 속의 이해관계와 영리추구의 행위에서 벗어나서 주말이나 휴일에 시간될 때 오후 3-4시에 등산을 하여 해질녂에 북한산과 같은 산 정상에 올라서 1-2시간 명상을 해보면 무슨 말인지 조금은 감이 올 것이다.
나의 글의 내용에 대한 것은 하루 3-4시간씩 1년 365일 정도는 검증이 가능한데 반드시 나와 그리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개적인 방법으로의 검증이 가능하고 지금 현재까지 그런 일이 한번도 없었다. 비록 사람으로서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없고 사람에게 나타난 것대로 알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에 대한 검증 및 사실 확인도 향후에 여러 가지 방법 및 기회가 있을 것이다. 특히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사람 스스로 알 수 있는 때도 올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참고 01)
마태복음 11:13 Matthew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For all the prophets and the Law prophesied until John. / 누가복음 16:16 Luke 16:16 ;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The Law and the Prophets were proclaimed until John; since that time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has been preached, and everyone is forcing his way into it.)
요한계시록 22:18 Revelation 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I testify to everyone who hears the words of the prophecy of this book: if anyone adds to them, God will add to him the plagues which are written in this book; / 요한계시록 22:19 Revelation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and if anyone takes away from the words of the book of this prophecy, God will take away his part from the tree of life and from the holy city, which are written in this book.
to be continued,,,
참고 02)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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