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와전, 11,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8. 5. 10. 18:12

와전, 11,

 

다수의 조직적인 활동 및 조작과 연작시와 정치 및 종교 활동

 

아래의 글을 읽어 보니 생각나는 사실이 있다. (참조, 아래 내용과 관련이 없고 비록 한자가 다르지만 나의 이름과 같고 단지 과거에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과 관련하여 발생한 일을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니 전혀 오해 없기를 바람.)

 

약 30~40년 전의 어릴 때부터 나와 다른 사람들 간에, 즉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과의 실제적인 경험에 바탕을 한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과 정체성과 신앙에 대한 나의 이해와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다른 사람들의 지식적인 이해 사이에,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동일한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과 성경에 대한 말을 하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를 하지 못하고 마귀나 악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상대로 마귀나 악마라는 말을 하게 되는지 알고 싶어서 성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다른 사람들의 지식적인 이해로 그리고 전통적인 종교들에 대한 이해로 내가 말을 하는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과 정체성에 대해서 사람들이 사람들의 눈으로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나의 모습들을 통해서 마음대로 표현을 할 기회를 나의 나이 불혹이 되어 내가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과 정체성에 대한 글을 쓸 때까지 한시적으로 준 일이 있었다.

 

약 30~40년 동안 그리고 약 20년 동안 나를 상대로 발생한 각종 정치 경제 종교 등과 관련된 현상들을 통해서, 특히 종교와 관련된 현상들을 통해서, 사람들이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과 정체성에 대해서 및 성경의 몇몇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는 사실과 내가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과의 대화와 동행을 통해서 이해를 하고 있는 사실이 무엇이 다른가를 알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의 고향 사람들도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약 30~40 년 전에는 진화론 등을 말을 했다가 재미를 보고 약 20년 전부터 종교계의 분위기에 편승을 하여 재미를 보고자, 물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 등은 바뀔 수가 있지만, 진화론 등과 관련이 된 말 자체가 저로 인한 것이라는 핑계를 만들고, 즉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이 사람을 그렇게 창조를 해서 그런 것이란 말로서 진화론이 저로부터 비롯된 것이란 말을 만들고, 약 30~40년 전부터의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과 정체성에 대한 저의 말들이나 현상들이나 지식들은 최소한 125명의 다른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을 만드는 그래서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에 대한 증거나 전도보다 종교계의 교리 논쟁이나 각종 기획과 연출에 몰입한 분위기를 만드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고 그 주체는 어디이고 그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약 30~40 년 전에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능력에 의해서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머리 속에 생각을 하고 있는 영화 속의 몇몇 장면들과 같은 킹콩 고릴라 침팬치 등의 모습을 제가 저의 고향 마을의 허공에서 환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으로서 성경의 심령의 관찰에 대한 확인을 한 재미를 보고 그 즉시 그 상황을 사람의 진화론에 대한 말로 바꾸어 또 다른 재미를 보고 그 즉시 그 상황을 나의 조상의 기원에 대한 말로서 바꾸어 또 다른 재미를 보고 약 30~40년이 지난 시점에는 제가 진화론을 주장을 한 것처럼, 즉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이 사람을 그렇게 창조를 해서 그런 것이란 말로서 제가 진화론을 말을 한 것처럼, 말을 만들고 그 대신 약 30~40년 전부터의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과 정체성에 대한 저의 말들이나 현상들이나 지식들은 최소한 125명의 다른 사람들의 것이라고 말을 만드는 그래서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에 대한 증거나 전도보다 종교계의 교리 논쟁이나 각종 기획과 연출에 몰입한 분위기를 만드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고 그 주체는 어디이고 그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인지 능력 자체만으로는 인지도 할 수도 없는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능력과 사람의 능력과의 경쟁, 또는 앞의 사실로서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과의 교통 및 동행이 되는 사람의 능력과 사람의 조직력과의 경쟁이란, 사실 때문일까? SBS 드라마 ‘온 에어’에서 없는 비디오가 분칠한 톱 탤런트를 망가뜨리는 모습처럼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고 있고 사람과 사람이 일을 하는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의 말과 말에 의한 인해 전술로서만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능력 또는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과의 교통 및 동행이 되는 사람의 능력과의 경쟁 상황을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

비록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존재론적인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사람과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관계 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신앙심의 경쟁, 기도 능력의 경쟁, 성령 받은 사람 사이의 경쟁 등등의 말로서 종교 간의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경쟁이라는 터무니 없는 상황 설정이나 신앙인 또는 기도 응답이 이는 사람 또는 성령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하는 신앙인 사이의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경쟁이라는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하는 상황 설정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가 사람이 사람을 해치게 되는 상황으로까지, 즉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과 관련이 된 사실로서 온갖 명분으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람이 사람을 응급실로 보내는 상황으로까지, 발생하게 되는 불감증의 이유는 무엇이고 조직적인 범죄 행위의 모습까지 띄게 되는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이고 진원지는 어디일까요?

 

특히 친구 동료 지인 사이의 일상의 대화를 엿듣고 이곳 저곳의 사람에게 이간과 농간을 부려서 복수무정 등의 말로서 사람이 사람을 생명을 위협하는 기획 및 연출의 조직적인 범죄 행위가 발생하게 된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이고 진원지는 어디일까요?

 

사람이 과로사를 했다는 이유로, 또는 사람이 생화학 무기를 개발을 했다는 이유로,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천지 창조를 핑계로서 신, 즉 영, 즉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실존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을 상대로 과로사 하게 만들고 생화학 무기로 사망하게 만들겠다고 신경 가스(Gas)를 비롯한 온갖 범죄적인 행위를 동원하게 되는 기획 및 연출의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이고 진원지는 어디일까요?
 
1988년 무렵부터 프리 섹스 레즈비언 호모 게이 등이 유행하는 붐을 타고서 대한민국의 지성인들이 온갖 섹스 행위에 노출이 된 일이 비록 사람과 사람의 말과 말뿐이었는지 몰라도 있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런 일탈의 사실이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순간적인 흥분의 경우와는 다르게 다가오니 그런 행위에 대한 핑계로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분풀이 한다는 말로서, 다른 사람을 지목하고 그 결과로 복수무정의 영화를 흉내 낸다고 신경 가스(Gas)를 비롯한 온갖 범죄적인 행위를 동원하게 되는 기획 및 연출의 궁극적인 배경은 무엇이고 진원지는 어디일까요?

 

야 35년 전에 600 억 원의 판권에 대한 말이 오고 가고 1986년부터도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일로서 상호 협조를 하는 말이, 물론 정치 운동이나 선거 운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실임, 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지금 현재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신, 즉 영,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에 대하여 약 200권 분량의 글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신, 즉 영,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에 대한 판권은커녕 출판에 대한 말조차 할 수가 없고 오히려 우연을 가장한 사건 사고나 우연을 가장한 음식물이나 식음료 등에 대한 생체 실험이나 ‘증상과 진단’이란 글을 쓰는 상황이 도래를 하고 아래와 같은 글을 바탕으로 나의 말을 하게 되는 상황이 도래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8-05-03

 

JUNGHEEDEUK, 정희득,

 

참고)

 

필자 : 심경호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호수 : 제86호
 
1.
  지난번에 서예에 대한 글을 쓴 뒤 여러분들이 관심을 보여 오셨다. 본인이 “앞으로 한문학 연구자들이 서첩ㆍ도록의 제작 및 감수에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한 점에 대해서 특히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 글에서 거론한 楊士彦(1517∼1584) 필적이라고 전하는 「五言絶句軸」에 대해서는 매우 유익한 지적들을 많이 해 주셨다. 이 필적은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본래는 고 임창순 선생님 소장이었다(103.5×57.2cm 任昌淳 舊藏, 한국미술전집 11, 임창순 편, 동화출판공사, 1975. N78/현재 호암미술관 소장). 이 「오언절구축」은 초서로 적혀 있는데, 임창순 님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탈초하셨다.

霜餘水反壑, 風落木歸山. 冉冉歲華晩. 昆蟲皆閉關.

  이에 대해 본인은 앞서의 글에서, 이 시가 양사언보다 훨씬 후대의 인물로서 정유재란 때 일본에 잡혀갔다가 쇄환되어 온 鄭希得이 일본에서 지은 「왜놈이 부채를 가지고 와서 시를 써달라고 하기를 마치 얻지 못하면 어쩌나 안달하듯 한다. 모두 12수이다(倭徒以扇求題詩惟恐不得 十二首)」 가운데 제11수와 거의 동일하다고 밝히고, 정희득의 문집에는 첫째 구가 ‘霜降水反壑’으로 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평측의 관점에서 이래저래 논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 인터넷 사이트 열린마당의 ‘묻고답하기’에 글을 올려주신 분들이나 평소 필자가 가까이 모시는 여러 학자들께서, 임창순 님이 탈초한 ‘霜餘水反壑’은 ‘霜降水反壑’의 오류라고 지적하셨다. 원기춘 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정답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소개한다.

  降자와 餘자는 초서로 쓸 때에,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모양을 이루고 있으나 왼쪽은 확연히 구분되며 아울러 오른쪽의 윗부분도 확연히 구별됩니다. 이는 명(문징명, 축윤명, 동기창 등) 때의 서예가들이 쓴 글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 본교 출신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신일고등학교에 재직하면서 동시에 본교에 출강하고 계신 최광범 동학께서, 문제의 「오언절구축」에 적힌 시가 중국 북송 때 시인 黃庭堅의 「謫居黔南」 五首 가운데 들어 있다고 알려주셨다. 화들짝 놀라 황정견의 『山谷集』을 열람하여 보니, 권5에 실려 있는 「謫居黔南」 5수 가운데 둘째 수로 그 시가 실려 있었다.

黃庭堅 「謫居黔南」 五首

相望六千里, 天地隔江山. 十書九不到, 何用一開顏.
霜降水反壑, 風落木歸山. 冉冉嵗華晚, 昆蟲皆閉關.
冷淡病心情, 暄和好時節. 故園音信斷, 遠郡親賔絶.
山郭燈火稀, 峽天星漢少. 年光東流水, 生計南枝鳥.
㝠性齊遠近, 委順隨南北. 歸去誠可憐, 天涯住亦得.

  그렇다면 정희득은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가 일본인들에게 연작의 시를 써 줄 때 그 가운데 한 수는 황정견의 시를 외워서 써 준 셈이 된다. 또한 그 오언절구가 정희득의 문집에 나온다고 해서 전 양사언 필의 「오언절구축」이 양사언의 필적이 아닐 수 있다고 논한 앞서의 졸견은 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곧, 본인은 지난 번 글에서 “시가 만일 정희득이 정유재란 이후 지은 시라고 한다면, 양사언은 이 시를 볼 수가 없었으므로, 이 시축은 양사언의 진적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말하였으나, 그 시는 황정견의 시이므로 양사언도 그 시를 보았을 것이고, 그 시를 붓으로 쓸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서예 전문가에게 문제의 작품을 필적 감정을 통해 과연 양사언의 필적으로 볼 수 있느냐고 질문하였더니, 의문점이 있다는 대답이었다. 특히 이 전 양사언 필을 ‘양사언의 초기 필적’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다른 양사언 필과는 상당히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필적을 감정하는 서예전문가들의 공론을 필요로 한다.

2.
  그런데 필자는, 黃庭堅의 「謫居黔南」은 위의 5수가 前篇이고 후편 5수가 따로 있어서 모두 10수였다는 사실을 환기하였다. 前五篇은 본래 『豫章集』에 들어 있었던 것이고 後五篇은 『脩水集』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산곡집』 내집에 들어 있는 「謫居黔南十首」를 열람하였다.

黃庭堅 「謫居黔南」 後篇 五首

老色日上面, 歡悰日去心. 今既不如昔, 後當不如今.
嘖嘖雀引雛, 梢梢笋成竹. 時物感人情, 憶我故鄉曲.
苦雨初入梅, 瘴雲稍含毒. 泥秧水畦稻, 灰種畬田粟.
輕紗一幅巾, 小簟六尺牀. 無客盡日静, 有風終夜凉.
病人多夢醫, 囚人多夢赦. 如何春來夢, 合眼在鄉社.

  이 열람을 통해서 정희득의 연작시 12수 가운데 9수는 모두 황정견의 「謫居黔南」 10수 가운데 아홉 수를 옮겨 적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정희득 연작시 제1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1수
정희득 연작시 제2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3수
정희득 연작시 제3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4수
정희득 연작시 제4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1수
정희득 연작시 제5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2수
정희득 연작시 제6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3수
정희득 연작시 제7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4수
정희득 연작시 제8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5수
정희득 연작시 제11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2수

  그렇다면 정희득의 연작시 제9수, 제10수, 제12수도 따로 연원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시의 번역은 잠정적으로 민족문화추진회 국역본에 의거한다.

정희득 필 연작시 제9수
목마른 사람 마시는 꿈이 많고 / 渴人多夢飮
배고픈 사람 먹는 꿈이 많다 / 飢人多夢飱
이 봄엔 어디의 꿈을 꾸는가 / 春來夢何處
눈만 감으면 동천으로 달려가네 / 合眼到東川

정희득 필 연작시 제10수
연꽃에 소리 나니 소나긴 줄 알겠고 / 打荷看急雨
달을 삼키는 건 가는 구름에 맡긴다 / 呑月任行雲
밤중에 구름과 천둥 이니 / 夜半雲雷起
서쪽 바람이 뒤얽힘 풀어 주네 / 西風爲解紛

정희득 필 연작시 제12수
욕심이 많음보다 더한 욕 없고 / 辱莫辱多欲
구함 없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 없다 / 樂莫樂無求
인생이란 힘써 배우는 것뿐 / 人生强學耳
동으로 흐르는 물 만고에 같네 / 萬古一東流

  이 가운데 정희득 필 연작시 제9수는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5수와 매우 흡사하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실은 그 시는 白居易의 「寄行簡」 시의 일부였고, 황정견의 시는 백거이의 시를 剪裁하여 만든 것이었다. 황정견의 「謫居黔南」 10수는 완전히 백거이의 大篇을 잘라서 절구로 만든 것으로서, 이것은 詩話에서도 유명한 사실이다. 곧 황정견은 검남에 유배되어 있을 때 백거이가 江州나 忠州의 유배지에서 지은 시들을 열람하다가 우연히 마음에 부합하는 것이 있으면 그 서너 어구를 따두었는데[摘], 다른 사람을 위해 그것을 써 준 것이 세상에 전하게 되어 황정견의 자작시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황정견의 「謫居黔南」 후편 2수(嘖嘖雀引雛, 梢梢笋成竹. 時物感人情, 憶我故鄉曲)는 백거이의 「孟夏思渭村舊居寄舍弟」라는 제목의 장편 시 가운데 앞 4구를 끊어 온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정희득 필 연작시 제9수는 곧 백거이 「寄行簡」의 “鬱鬱眉多斂, 黙黙口寡言. 豈是願如此, 舉目誰與歡. 去春爾西征, 從事巴蜀間. 今春我南謫, 抱疾江海壖. 相去六千里, 地絶天邈然. 十書九不達, 何以開憂顔. 渇人多夢飲, 飢人多夢飡. 春來夢何處, 合眼到東川.”에서 직접 따 온 것이다. 그런데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5수는 바로 이 백거이 「寄行簡」 시에서 따오되 글자를 몇몇 고쳤다. 정희득은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5수가 백거이 「寄行簡」 시에서 따온 것임을 잘 알았고, 그 스스로도 다시 백거이 「寄行簡」 시에서 하나의 절구를 剪裁해 내었던 것이다. 사실은 황정견의 「謫居黔南」 후편 제5수가 백거이 「寄行簡」 시에서 따온 것이라는 사실은 『山谷詩注』에 해설되어 있기도 하므로, 정희득이 그 詩注에서 백거이의 시를 따왔을 가능성도 있다.

  이제 정희득 필 연작시 제10수와 제12수의 연원을 밝히기만 하면 된다. 실은 이 둘은 모두 황정견의 시이다. 우선 연작시 제10수는 황정견의 「和凉軒二首」의 제1수를 옮겨 적은 것이다. 황정견의 시는 ‘打荷看急雨, 吞月任行雲. 夜半蚊雷起, 西風為解紛.’인데, 정희득은 ‘蚊雷’를 ‘雲雷’로 적었다. 정희득 필 연작시 제12수는 황정견의 「頤軒詩六首」 가운데 제4수를 옮겨 적은 것이다. 글자의 차이는 없다.

  이상에서 정희득의 『월봉해상록』에 들어 있는 「왜놈이 부채를 가지고 와서 시를 써달라고 하기를 마치 얻지 못하면 어쩌나 안달하듯 한다. 모두 12수이다.(倭徒以扇求題詩惟恐不得 十二首)」의 연원이 드러났다.

정희득 연작시 제1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1수
정희득 연작시 제2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3수
정희득 연작시 제3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4수
정희득 연작시 제4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1수
정희득 연작시 제5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2수
정희득 연작시 제6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3수
정희득 연작시 제7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4수
정희득 연작시 제8수 = 황정견 「謫居黔南」 후편 제5수
정희득 연작시 제9수 = 백거이 장편 「寄行簡」의 후반부(황정견 『산곡시주』에도 인용)
정희득 연작시 제10수 = 황정견 「和凉軒二首」 제1수
정희득 연작시 제11수 = 황정견 「謫居黔南」 전편 제2수
정희득 연작시 제12수 = 황정견 「頤軒詩六首」 가운데 제4수

  이상에서 정희득의 題扇 連作詩 12수는 황정견의 『산곡시집』을 탐독하여, 그 가운데 황정견이 백거이의 대편으로부터 剪裁한 시들과 황정견이 자작한 시들을 쓴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을 보면 정희득의 당대에는 황정견의 시가 상당히 널리 읽혔으리란 점을 짐작할 수가 있다. 황정견 등의 시를 배운 이른바 해동강서시파가 조선중기에 성립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정희득보다 훨씬 이전에 양사언이 과연 정희득만큼 황정견의 시를 좋아해서, 황정견의 시를 필적으로 남겼을지는 의문이다.

  서예와 문학의 관계는 실로 밀접하다. 서예의 필적을 감정하고 그 필적이 전하는 내용을 검토하는 일은 필적의 진위를 감별할 때에도 매우 중요하고, 한 시대의 문학조류를 고찰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리라고 본다. 진위가 문제되는 또 다른 필적에 대해 별도의 원고를 준비하였으나, 지면 관계상 금번 호에는 정희득의 題扇 連作詩에 대한 고증으로 마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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