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of Of Life, | 영화, Film,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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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20070919, Wednesday,
==> 걷고 걸어서 숙지산을 지나고 팔달산,
==> 걷고 걸어서 지동의 동수원 사거리 모 장소,
==>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의 네이버 웹사이트를 이용하여 글을 쓴다.
인터넷을 이용할 때 항상 걱정이 되는 것이 인터넷이 언제 어떤 사유로 통신이 두절이 되면 글을 작성한 시간만큼 말 그대로 헛고생한 시간이 된다. 오늘도 이미 그런 경우가 한 번 있었다. 컴퓨터 선을 무엇인가 잘못 건드린 것인데 컴퓨터가 Off가 되는 상황이 발생을 한 것이다.
처음 글을 작성을 할 때는 비록 힘들더라도 괜찮은데 반복하여 글을 작성할 때는 정말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에 쫓기는 입장에서 정말 힘들다. 인터넷을 사용하여 글을 작성하고 있으니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 구경도 괜찮은 구경 거리 중 하나이다.
중간중간 정신 병자들의 변주곡이 여기 저기서 들린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정신 병원이 가장 많은 국가가 된 것인지 모를 일이다. 정신 병자들이 변주곡을 연주를 할 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온갖 공간들이 정신 병자들이 변주곡을 연주 하는 연주장으로 바뀐 지도 오래이다. 그리고 변주곡의 연주가 끝날 무렵에는 누군가의 삶이 망가질 것이 예정이 되거나 무엇에 대한 사실이 왜곡되기 시작하는 상황들이 난무를 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된 지도 오래이다. 그런데 정신 병자들이다 보니 경찰청이나 검찰청이나 국정원에 신고 조차도 되지 않는다. 정신 병원에서도 무서워서 진단을 하지 못한다. 단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하고 잽이’가 그 동안 하고 잽이란 말로 이 공간 저 공간 다니면서 이것 저것 챙길 것 다 챙기고 그 재미로, 그것도 어딘가의 이름 값만으로 수 십 년의 삶 속에서 출세주의니 이기주의니 악인이니 하는 말에서 회개하고 거듭나서 천국에 갈 사람으로 누릴 것 다 누려 보는 그 재미로, 자신의 거처조차도 없으면서 있는 사람 밀어주자는 대한민국 표 대의와 공의와 정의를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을 조금 더 우롱하고 조롱하여 조금 더 재미를 보고자 하니, 그 결과가 자신들의 친구나 지인이나 동료나 가족의 삶을 이곳 저곳에서 파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것도 과거의 삶의 모습을 미화시키고, 그것도 현재의 경제 난국을 무기로 지금까지의 삶의 과정에 또 다른 재미를 한 더하기 위해서, 경쟁 사회니 이익 사회니 적자 생존의 사회니 이해 관계의 사회니 하는 온갖 말들이 난무를 하게 만드니 다수가 조직 범죄의 행위를 하고도 조직 범죄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불감증과 신드롬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앞과 같은 불감증과 신드롬의 현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느 곳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윤리 의식이나 도덕 의식의 마비를 가져 오게 하는 작업을 한다. 윤리나 도덕이란 말 자체를 없애는 작업을 한다. 어느 곳에서 시도를 하면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앞과 같은 불감증과 신드롬의 현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느 곳에서 과거 20년 전부터 예측이 된 경제 문제를 해결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부동산 개발이나 부동산에 세계 12위 대국의 뭉치 돈을 묶어 둠으로써 경제 위기를 한 층 더 고조를 시킨다. 행정부에서 온갖 해법을 만들어도 무용지물이다. 행정부의 정책은 정상적인 사회 흐름에 가능한 것인지 다수가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는, 그것도 자금의 규모나 거래의 성격 상 시장의 활발하지 못하고 흐름이 빠르지 못한 곳에 더더욱, 그 영향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앞과 같은 불감증과 신드롬의 현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곳 저곳에서는 또 사회적으로 개인주의적 삶의 성향을 부추기는 행위들이 그래서 오직 성공만이, 오직 가진 자만이, 오직 승자만이, 오직 돈만이, 말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의 모든 과정이 정당화 되는 풍토를 만들기 위해서 온갖 작업들을 한다.
앞과 같은 불감증과 신드롬의 결과 과거에는 민주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독재 정치를 비난 하기 위해서 말을 하던 3S가, 또는 3S 관련 행위들이, 이제는 독재 정치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말과 말에 의해서 사람이 사람을 엮어 들이는 도구나 무기로, 또는 친구나 지인이나 동료나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나타나고 있고 사용이 된다. 앞과 같은 불감증과 신드롬의 결과 요즈음은 신앙인이 신앙인에게 과거 선교사나 전도사나 목회자의 어려움을 알게 한다고 하는 그러나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이 파괴가 되는 정신 병적인 주문이, 그것도 사람의 삶의 환경을 조절을 하는 것을 통하여 인생의 일로서 과거 선교사나 전도사나 목회자의 어려움을 체험하게 하는 그러나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이 파괴가 되는 정신 병적인 주문이, 그 결과 누군가의 삶이 도마에 오르고 칼 질을 당하기 시작하여 궁극에는 사람의 삶이 파괴가 되는 정신 병적인 주문이, 그러나 수 십 년 간에 걸친 조직적인 삶의 파괴 끝에는 성경이란 말로서 신앙이란 말로서 주님을 알게 하는 것이란 말로서 수 십 년 간의 삶의 파괴에 관련된 수 많은 사람들의 수 많은 행위들이 용서가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고 오히려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의 삶이 파괴가 되는 정신 병적인 주문이, 그것도 신앙인 중에서 사회 활동을 하거나 특히 정치 활동을 하고자 하거나 사람을 상대로 고급 인력이 신앙을 위해서 봉사를 하게 만들고 헌신하게 만든다고 사람의 삶이 파괴가 되는 정신 병적 주문이, 특히 생존 능력이란 말로서 자신의 것 일절 사용하지 않고 대의와 공의와 정의와 양심에 종사를 하는 사람들의 구차한 심리들을 교묘히 이용한 정치만 주장을 하는 '하고 잽이' 정치 활동이 아니고 어디선가 유형 무형의 지원이 되는 정치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상대로 그 사람과 관련된 것을 어딘가의 조직의 것으로 빼돌리기 위해서 사람의 삶이 파괴가 되는 정신 병적 주문이, 그것도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님' '주님'이란 말이 성경에 있는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님' '주님'이 아니고 어딘가의 조직적인 사기 집단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붙여진 칭호를 의미하는 곳으로부터의 사람의 삶이 파괴가 되는 정신 병적 주문이,,,등등,,,이곳 저곳의 기획 및 연출 경력을 쌓고 있는 사람들에게 쇄도를 하고 관련 기획 상품들도 만들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먼 훗날 제작이 될지도 모를 영화 시나리오 중 일부)
==> 모 장소의 업무 시간이 끝이 나서 집으로 향하려고 일어서니 비가 계속하여 내리고 있다. 비록 비를 맞기도 하지만 이 사람 저 사람 보지 않아서 좋다.
==> 걷고 걸어서 팔달산,
==> 걷고 걸어서 숙지산,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70924.
JUNGHEEDEUK.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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