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교’씨 가문의 ‘황청’이 03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7. 25. 17:39

씨 가문의 황청 03

 

'교'씨 가문의 '황청'이란 말을 달리 표현을 하면 '로'씨 가문의 '오옴(ROME)'이 된다. '오옴교'의 시조가 된 말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1970년도의 시골에서의 몇 살 되지 않은 어린 아이게 보이는 세상으로는 그와 같이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씨 가문의 황청이와 대화 중 'THIS WORLD WILL BE CONQUERED WILL BE BY ME, IE. BY MY WORDS, IF I CAN SURVIVE UNTIL TAHT DAY.' 란 말을 하니 'FUNNY' 'LAUGHING' 하는 모습이 보여서 좋은 것이라는 말을 하니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을까? 그런데 그 옆의 누군가는 전 세계의 전도 활동과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말을 했을까?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관련이 없이 나의 할 일로서 이곳 저곳을, 특히 말라리아 학질 고산병과 관련된 이곳 저곳을, 말을 하니 , 특히 NEW onE이 계속 나오니 비록 전 세계가 전도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도 그 끝이 없는 일이라는 말을 하니, 누군가가 무엇이라고 말을 했을까? 그리고 내가 다른 지역은 가보를 못했으니 모르지만 내 경험상 이 세상에서 전도하기 제일 힘든 곳이 어디일 것이라고 말을 했을까? 그리고 전도를 하면 할 수록 전도가 될 것이지만 병행하여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을 했을까? 그런데 나의 위와 같은 대화가 외국어와 우리 말로 진행이 되고 그 결과 나의 고향 집 담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간혹 들리게 되는 한 두 마디 말들이 어떻게 이해가 되고 해석이 되었을까?

 

지금 나의 글이 종교 논쟁이나 지역 감정이나 민족 감정에 대한 것을 말을 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 단지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의 삶을 살아 오면서 알게 된 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믿거나 말거나 나의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약 10~15년이 지난 1986년도에도 그리고 약 30~35년이 지난 지금에도 앞에서 말을 한 것처럼 정치에 대한 나의 말과 마찬가지로 종교에 대해서 무엇인가 말을 하면 그 말이 말로서 인식이 되거나 대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늘 겉돌고 있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과거에 대화를 할 때 주로 나타났던 종교에 대한 각자의 선행 지식이나 전통의 모습 외에도 근래에는 지식 산업이나 지적 공통체의 발달로 마치 지식과 지식의 경쟁으로만 인식을 하는 모습도 있는 것 같다. 각자가 종교 생활이나 신앙 생활을 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이 근래의 경제 활동의 영향으로 인한 것처럼 이해 관계나 영리 추구의 행위가 가세된 듯한 느낌이다.

 

내가 지금껏 우리 나라에서 살아 오면서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무속 신앙 등에 대해서 얼마나 들으면서 살아 왔을까? 비록 내가 전공을 하거나 심취를 하지 않아도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무속 신앙 등에 심취한 사람들의 그래서 무엇인가 각자의 분야를 이룬 사람들의 말들을 얼마나 들으면서 자랐을까? 우리 나라의 문화의 일부이니 꽤 많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릴 때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나의 말에 대한 믿음 여부를 떠나서 나의 경우를 두고서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무속 신앙 등의 지식으로 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결과 내가 종교 및 신 및 신앙에 대한 개념으로 설명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 경우가, 즉 그 출발점이나 지향 방법이, 또는 분야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간에 선하고 착하게 사는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글들에서 말을 했듯이 종교 간 논쟁이나 우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출발점이나 지향 방법이나 그 분야 자체가 일정 정도는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10살 무렵에 나의 고향을 떠나면서 나의 기억의 상태가 순간적인 기억의 망각 상태에, 즉 비록 모EMS 사실이 기억으로 저장은 되어있지만 그 기억에 대해서 대화를 하거나 언급을 하기 전에는 일종의 저장 상태로만, 있는 약 30년 동안에 무슨 새로운 사실이 발견이 되고 얼마나 큰 변화가 생겼는지 몰라도 내가 어릴 때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지금껏 학교 및 일상 생활 속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해도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멀리 볼 것 없이 유교나 불교나 도교의 사서오경이나 불경이나 노장 사상 등의 서적을 읽어 보아도 쉽게 알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이렇게 구구절절이 말을 하는 이유는 최근의 우리 것이니 복고풍이니 하는 시류에 편승을 하여 각자의 종교가 서로 다른 것으로, 그리고 신의 세계와 사람의 사후 세계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어떠하든 각각의 종교의 기원의 지역이나 국가가 다른 것으로, 서로 간에, 특히 정치 경제 활동 등에서, 적대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1984년 ~ 군 복무 ~ 1991년, 조금은 황당한 경우가 종교가 또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실존 하는 것이 이념 논쟁에 휘말리게 되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가 존재를 하는 것과 각종 이상사회를 추구를 하는 것이 대립이 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각종 철학이니 사상이니 학문이니 하는 것은 앞의 전래적인 우리 사회의 몇몇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각자의 재능이나 능력 대로 무엇인가 사람 사는 사회를 추구를 하고 그에 맞게끔 제도와 규정과 규범을 만드는 것이지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가 실존을 하는 것과는, 특히 종교 및 신앙 생활을 하는 것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데도 마치 종교가, 그것도 기독교가, 그것도 특정 국가에 자본주의란 속성을 곁들여서, 시비가 되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사상의 추구나 이상 사회 추구란 말로서 종교를 그리고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실존을 부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나 사람들의 단체들에게 행하는 각종 사람의 행위가 더 문제일 것인데 오히려 문제의 초점을 마치 종교나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실존에 있는 것처럼 초점을 맞추는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우리 것이란 말로, 그리고 기독교와는 그 출발이나 지향 방법이나 분야 자체가 다른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무속신앙 등의 말로, 성경(The Bible)이나 기독교와 서로 대립이 되고 적대 시 되는 것처럼 말들 만드는 경우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다.

 

믿거나 말거나 누군가가 부처님의 기원을 알고자 하기에 그러나 부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을 하지 못하기에 부처님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는 나의 고향의 옆 마을에 있는 불상의 기원을 추적을 하여 그 기원이 되는 경우를 말을 해 준 일이 있었고 물로 아주 오래 전 그 기원이 된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 두고 말을 하는 장면도 헛것이나 환영이니 하는 형태로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의 머리 위 허공에서 나의 눈에만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부처님에 대해서 말을 하기에 부처님의 기원이 된 사람 및 상황에 대해서 말을 해 주고 또 그 누군가와 부처님의 기원이 된 사람을 믿거나 말거나 비교를 하여 나의 고향 집 마당에 서 있는 사람이 아주 오래 전에 아주 먼 곳에서 존재를 한 부처님의 기원이 된 사람보다 더 지식이 맞고 아는 것이 많고 맞는 말도 많이 알고 있다고 말을 해 주면서 왜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깨달은 것을 말을 하지 못하는지 질문을 하니 무엇이라고 대답을 했을까?

 

내가 이 사람 저 사람에 들은 것 외에 다른 종교에 대해서는 그리고 이념이나 사상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데 명상을 하고 묵상을 하면 경우에 따라서 무념 무상이나 자아심취나 스스로의 감동감화 등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특히 시간이 경과를 하면 각자의 내면 속에 존재를 하고 있는 스스로의 또 다른 모습도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 말로서 설명을 하기 힘든 각자의 모습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각자에게는 육체적인 존재와 영혼의 존재가 공존을 하는 것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 중에 말 그대로 천우일회의 기회로 내공이라고 하는 공중부양과 같은 경지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공중 부양이니 허공 답보니 하는 말을 해도 사람이 명상이니 수련이니 무술이니 하는 것을 통해서 하는 것과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 의해서 선택된 사람 안에 또는 사람과 동행을 하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의 능력에 의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의 능력에 의해서 공중 부양이니 허공 답보니 하는 것을 하게 될 경우에는,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공중 부양이나 허공 답보를 하는 사람 외에는 전혀 없을 것임, 사람의 육체가 얼마나 허약하고 또 사람의 육체가 받는 고통을 전혀 모르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 누군가가 공중 부양이나 허공 답보가 가능하게 하는 것을 갑자기 멈추어 버리면 그냥 육체만 떨어져서 육체만 손상을 입게 된다. 즉 공중 부양이니 허공 답보니 하는 것이 사람 스스로가 조절을 하는 것이 아니니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치는 장난 여하에 따라서 육체만 땅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어느 정도 믿는가 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이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내가 중`고등학교 및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그리고 1986년도 및 군 복무 및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내가 나의 나이 마흔에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 및 그 세계의 실존에 대한 글을 쓸 것이라는 것은, 그것도 나의 삶 속에서 있었던 실제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쓸 것이라는 것은,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우리 사회에서 정치, 경제, 및 종교 활동과 관련하여 개인의 종교 및 신앙과 관련된 사실로서 이런 저런 공격의 말을, 그것도 기독교 내에서 기독교에 대한 분란을 야기 하기 위한 신앙이나 신앙심인지 몰라도 기독교 내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공격의 말을, 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거듭 언급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껏 10,000 ~ 20,000 페이지에 걸쳐서 대체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과의 나의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나도 내가 경험하고 체험을 하고 있는 사실 밖에는 할 말이 없는 것이, 즉 다른 사람의 것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는 것이,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 및 그 세계 및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에 내가, 정확하게는 나를 통해서, 그러나 치료와 관련된 행위는 전적으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의 의지 및 판단 및 능력에 달린 것이고 나의 경우는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un)touchable and so 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의 실존을 대행을 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무릎과 간이 손상이 된 것을 치료를 한다고 해도 그 과정 중에 그냥 따뜻한 온기만 느껴질 뿐이지 결과만 남으니 나의 입장에서는 물론 질병이 치료가 된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달리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허공에서 또는 다른 물체를 통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육체를 통해서 다른 공간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의 육체가 만져지는데, 때로는 성형 수술을 받게 될 경우의 결과가 만져지는데, 그 당시 옆에서 그 상황을 전해 듣는 사람이 전해 드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무엇을 달리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누군가와 텔레파시처럼 또는 뇌파서처럼 한 두 마디 말이 통하는데 양 당사자 외에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그 상황에 대해서 양 당사자가 그냥 텔레파시나 뇌파 외에 달리 무엇을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전적으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의 의지 및 판단 및 능력에 달린 것이고 기우제를 지내듯이 비를 내리면 KTF에서 말을 하는 Show가 될까? 기적이 될까? 우연의 일치일까?

 

,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이 사람의 형상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 보다도 대체로 사람들에게는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un)touchable and so 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들의 존재적 정체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20070706.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JUNGHEEDEUK.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