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교’씨 가문의 ‘황청’이 02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7. 25. 17:39

씨 가문의 황청 02

 

1965년에 경상남도의 시골에서 태어나서 몇 살 되지 않은 어린 아이가 누군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물론 1970년 전후의 나의 고향과 같은 시골에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지식이나 문물이나 사실이 알려질 때 누군가가 말을 전하는 사람이 전하는 대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고 특히 경상남도의 발음을 생각을 하면 정확하게 명기를 하기가 힘들지만, 말을 하는 것을 처음 듣고서 외국어 및 외국 사람 및 외국 사람의 이름을 전혀 모르니 '예'씨 성의 '수그리스도(님)'이나 '그'씨 성의 '리스도예수(님)'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 때가 있었고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무속 신앙 또는 여타의 전래된 지식처럼 누군가가 명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런 저런 말을 만드는 재미에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기도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1970년 전후의 경상남도의 시골에서의 몇 잘 되지 안은 어린 아이의 이런 표현 자체가 무엇이 문제일까?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스도 예수님 등에 대한 나의 말 및 표현과 특히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으면서 텔레파시와 같은 교통 및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여타의 현상들이 나와만 나타나고 있는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는 존재와의 관계에 의한 것을 바탕으로 한 나의 말 및 표현과 또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나의 말 및 표현 등에 대해서 가끔 누군가가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가끔 외지에서 및 외국이란 곳에서 '교황청'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전도차 상업차 또는 우리 나라의 관상이나 사주팔자처럼 별자리를 찾아서 오는 일이 있었다. 그래거 '수' '예수' '수님' '예수님' '수그리스도' '예수그리스도' '리스도예수' '그리스도예수' 등에 대해서 아는지 묻는 일도 있었다. 알 리가 없었고 'Jesus' Chirist Jesus' 란 말은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지,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무슨 말을 한 사람인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묻고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나의 고향 사람에게, 그 사실들에 대해서 말을 해 달란 말을 한 일도 있었다. 내가 어리고, 내가 이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고,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리고 나와 교통하는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는 존재가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유교니 불교니 도교니 무당이니 등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이 다르고 그렇지만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표현을 하기도 힘들고 그러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즉 하늘에서 나와 교통하는, 하늘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것을 말을 하기도 벅차니 다른 사람들에게 'Jesus' 'Christ Jesus'에 대한 것을 말 좀 잘 해주란 말을 한 일도 있었다.

 

하늘에서 나와 교통하는 존재들도 자신들에 대한 것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중에는 성경(The Bible)에 있다고 말을 하고 나에게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말만 단어처럼 아주 가끔 하는 사람도 성경(The Bible)이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스도 예수님을 말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성경(The Bible)을 알면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나와 너무 다르니, 즉 내가 이 세상을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비록 내가 성경(The Bible)의 내용을 미주알고주알 몰라도 성경(The Bible)을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것과 너무 다르니, 나를 찾는 몇몇 사람들에게 그리고 덤으로 나의 고향 사람들에게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스도 예수님,,Jesus, Christ Jesus,,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잘 말을 해 달라는 말을 한 일도 있었다.

 

나의 다른 글들에도 말을 했듯이 나의 고향에서의 나의 어릴 때인 1965년 ~ 1976년 사이에 유교 도교 불교 무속 신앙 등 전래의 신앙 뿐만 아니라 비록 미약하지만 기독교 이슬람교 등 여타의 종교에 대해서 비록 한 두 번이지만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리고 내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나의 경우가 어떤 경우로 여겨지고 특히 성경(The Bible)에 있는 종교 및 하나님 및 선지자님 및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개념이나 표현이 어떻게 이해가 되었든 나의 나이란 것이 있으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종교 및 신의 개념과 같이 내가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고향이 농업과 어업을 주로 하는 시골이고 중`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나의 고향 옆의 삼천포시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다녀야 하는 것 등을 생각을 하면 내가 1965년에 태어난 이후부터 시작하여 부산시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인 5학년 말까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고, 특히 태어난 직후 눈도 뜨지 못하고 방바닥에 눕혀져 있을 때부터 시작하여 기어 다니고 한 두 마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고 이 동물 저 동물과 만나면서 나눈 대화나 행한 행동을 부분적으로 말을 할 수 있어도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이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지금의 서울시에서처럼 성경이라고 말을 하고 하나님이라고 말을 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말을 하면 유치원 때부터 성경 구절을 줄줄 외워서 말을 할 수 있는 시기는 더더욱 아니었고 어린 아이로서는 말이나 표현 자체가 그렇게 논리나 조리가 있는 시기도 더더욱 아니었고 믿거나 말거나 내가 태어난 직후부터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을 만났었고 매일 같이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도 나 홀로 있을 때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있을 때나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의 교통의 현상이 나에게는 있었다고 해도, 그 시기가 어린 아이니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의 종교적인 개념의 말이나 언어나 행위가 제대로 나올 수도 없었던 것이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나의 말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 여부를 떠나서 보편적인 신앙의 시각이나 관점에서 볼 때도 나의 다른 글들에서 말을 한 것처럼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 의해서 나를 통해서 성경(The Bible)와 같은 기적들이 가능 하려고 하면 나의 행위가 천사의 그것으로 여겨지던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로 그것으로 여겨지던 최소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그것으로 인식이 되고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 나의 고향 사람들 및 내가 만난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어 볼 때는 모두 사람에 대한 것을 알고 있으니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에 대한, 또는 사람의 영혼에 대한, 것으로 이해가 되니 나를 통한 행위 자체도 내 스스로가 알 수 있는 것 외에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것이 나타날 수가 없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고향을 찾은 사람들 중에서 안동인가 하는 곳에서 온 사람 중에는 전래의 조선 시대의 전통과 관습의 개념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법'이나 '예의'에 대해서 유독 관심이 많았던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비록 내가 사람 사는 사회의 지식이나 언어에 미약했지만 내가 아는 한 모든 사람이 동등한 존재란 것이고 그러니 사람과 사람이 사람으로서 자유롭고 동등하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배와 피지배와 같은 예의나 또는 가문이니 나이니 세상 물정이니 하는 것에 의한 일방 통행과 같은 예의가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중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를 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내가 성인이 되면 자신과 같이 안동이란 곳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법이나 예의를 연구를 할 것을 바란 반면 나는 정치를 해서 대통령이 되고 종교 활동을 해서, 특히 다른 지역 및 대륙을 점령을, 즉 전도를, 해서, 교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바라는 바가 서로 맞지 않았던 일도 있었다.

 

그 대신에 그 분과는 달리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법이나 예의가 존중 되는 것에 기여를 하고 내가 할 수가 있으면 그 분이 하는 일을 도울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분은 내가 하는 일을 도울 수 있도록 서로 상부 상조할 수 있는 말을 한 일도 있었다.

 

앞의 상황들을 고려를 할 때 비록 누군가가 나의 고향에 대해서 말을 하고 특히 내가 한 말 및 나의 행동에 대해서 말을 한다고 하지만 내가 나의 고향에서 태어난 1965년의 0세부터 국민학교 5학년말까지 매일 또는 매년 성장을 하는 것을 고려를 하고 그에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말 및 표현이 증가 하는 것을 고려를 하고 비록 나의 고향이 작다고 하지만 이곳 저곳 어슬렁어슬렁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한 말들 및 행위들 전체를 말을 하는 것은 조금은 힘들 것이고 아마도 부분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 당시 내가 연도의 개념이 없었으니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런 말 저런 말을 한 두 마디 할 수가 있을 시기에 나의 고향 사람들 누구나 바쁜 대낮에 비교적 나와 대화를 많이 했던 외지인들도, 특히 종교적인 사유가 있었던 사람들도, 특정한 기간 동안 나의 고향에, 특히 삼각지란 곳에, 머물렀지 10년 내내 머문 것은 아니란 것이다.

 

위의 사실은 2001년 8월 16일 그 날에도 나의 고향을 찾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먼 훗날 내가 새삼 기억이 나서 다시 나의 고향을 찾았으나 그 때는 이미 이사를 가고 없었고 비록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도 어릴 때의 나의 정도이면 사람들 사이에 회자가 될 것인데 내가 이사를 간 부산시에서도 나에 대한 말이 없어서 그 사이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으로 생각을 했다는 말도 있었듯이 충분히 추정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릴 때 비록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있었지만 나의 고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은 다른 정치적인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미 언급한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믿고 싶지 않은 사유들로 인하여 내가 체력이 약하니 다른 곳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즉 나의 고향을 벗어나려고 하면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내가 그 당시 산을 넘으려고 하며 시간이 너무 걸리고 특히 힘드니 다른 곳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나의 고향을 벗어나기 위해서 산을 넘는데 걸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나의 국민학교 동창인 박00라는 친구와 시간을 잰 일도 있었다. 즉 나의 고향 어귀에서 동일하게 걷기 시작하여 내가 재까지 올라 가는 사이 그 친구는 이미 재를 넘어서 다른 마을에 있는 국민학교까지 다녀오고도 시간이 남았던 일이 있었다. 물론 조금 더 성장한 후에는 나도 나 혼자서 다른 마을까지, 특히 나의 외가가 있는 하이면까지, 걸어서 또는 버스를 타고 다녀오는 일도 있었다.

 

비록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지만 나와 무엇인가 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형제가 보이나 보이지 않으나, 물론 형체에 대한 개념도 없었지만, 나와 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이 없었던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에 대한 언급을 조금 더 하면 비록 성경(The Bible)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하늘에서 나와 교통하는 존재들도 자신들에 대한 것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중에는 성경(The Bible)에 있다는 말을 내가 알게 된 것은 더 어릴 때의 일이다. 내가 한 두 마디 말로 또는 무엇인가의 말로 나와 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하늘에 있는 존재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하지만 나의 경우와는 달리 다른 나의 또래들이나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험이나 체험이 전혀 없었으니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과 대화와 교통에 대해서 서고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 않았었고 그 결과 오히려 내가 조금은 이상한 경우가 된 일이 있었다.

 

하늘을 가리키며 무엇인가 말을 하고자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대화도 되지 않고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종교 및 신의 개념으로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을 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런데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의 교통에 의하면 그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이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내가 말로 표현을 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나와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에게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자 했고 나의 고향 사람들과 나의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언행들에 대해서 일정 기간 동안의 관찰들과 여러 방식으로의 대화에 대한 시도들 끝에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에 대해서 내가 나의 말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내가 어리니 독자적으로 내가 나의 말을 할 수도 있는 경우도 아니었고 그런데 나에게 나타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의 현상으로 나의 경우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교나 도교나 불교나 무속신앙이나 이슬람교 등의 것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과 말에 의해서 회자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물론 그렇다고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본질이나 내가 알고 있는 것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수의 사람들 사는 사회에서 나의 실제 현상이나 사실이나 의지와는 관련이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들이 만들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내가 그만큼 힘들어지게 될 수도 있고, 그래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 이런 저런 교통이 이루어진 결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들 중에서 자신들에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성경(The Bible)이란 것을 알게 되었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 나를 통해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을 알기 전에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성경(The Bible) 있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먼저 하고 사람들이 성경(The Bible)을 통해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을 알게 되면 우려가 되는 현상이 무엇이 있었을까? 즉 나의 어릴 때나 20010816일 그 날이나 누군가가 말을 한 것처럼 사람의 방법과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방법 간의 경쟁이 아니라 성경(The Bible)에 의해서 사람들이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실존을 알게 되는 것과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 사람을 통해서 사람들이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실존을 알게 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알기로 1970년 대에는 어린 아이가 어른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풍속도 있었다. 그래서 교씨 가문의 황청이에게 교황청이란 이름 대신에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몇몇의 사람들에게 투덜이, 시커먼스(흑인), 까무잡잡(흑인 또는 혼혈인), 하이얀(백인), 어중이떠중이(황색인) 어중간 미디엄 등등으로 불렀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나에게 점수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누구였고 왜 그랬을까? 지역과도 관련이 없고 종교와도 관련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 '백악관'이란 이름 대신에 룩 굿(Look Good)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몇 점이나 점수를 받았고 '서울대학교 및 뱀의 또아리'와 관련된 사람은 몇 점이나 점수를 받았고 '할미꽃'과 관련된 사람들은 몇 점이나 점수를 받았을까?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듯이 만약에 내가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 만나고 교통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믿거나 말거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부터의 어린 시기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내가 성경(The Bible)의 내용을 모두 알게 되고 특히 성경(The Bible)의 등장 인물들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이 맞을까?

 

교황(Pope)이나 제사장(High Priest)이나 랍비나 목회자나 선교사나 여타 성경(The Bible)을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그 사람들이 성경(The Bible)을 믿는 다는 것을 그리고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을 그것도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이 상대방의 생각이나 마음이나 두뇌 속을 읽어서 그 결과를 나에게 알려 주어서 알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물론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직분이나 호칭까지도 사람들의 관점에서 말을 하면 독심술의 경우와 같이 심령을 관찰하여 텔레파시와 같이 교통이 이루어져 나에게 알려 주면 경우에 따라서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는 즉시 그 사람들이 누구란 것을 알아 볼 수 있을까? 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즉시 알아 보는 것과 같은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그런 것에 대한 반응이나 공식이나 룰이 정해져 있을까?

 

만약에 내가 그 당시에 나의 고향 하늘에 존재를 하는 또는 내 안에 존재를 하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과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어떨까? 특히 그 사람들이 성경(The Bible)과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존재들을 믿는 것은 확실하지만 내가 해야 할 사명의 입장에서, 즉 나는 나 대로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의 사명을 해야 할 입장에서, 판단을 할 경우에는 경우에 따라서 어떨까? 즉 나의 존재와 그 사람들의 존재가 상호 간에 즉각적으로 인지와 인식이 되는 것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상대방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에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사람 사는 사회와 다수의 사람들이 공존을 하는 것을 생각을 할 때 그 사람들이 가고 나서 내가 이 사회에서 나의 종교 정치 경제 등 사회 활동을 해야 할 입장에서는 그런 것에 대해서 끊임 없이 트집을 잡는 경우가 발생을 하게 된다고 한다면 어떨까?

 

종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과거와 같이 민족 감정이나 국가 감정이나 동서양의 감정 등 일종의 지나치게 극단적인 국수주의에 의해서 비록 사소하지만 시비 거리가 될 것이 예상이 될 경우는 어떨까? 특히 1970년대처럼 애국과 외국에 대해서, 동서양에 대해서, 각각의 종교나 신앙에 대해서 등등 서로 개방적이지 못하고 특히 사람과 사람 서로 간에 사람과 사람으로서 동등한 존재란 것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못하고 아직까지 과거 시대의 신분 사회나 차별 사회의 전통이나 관습이나 풍습이나 우리 것 등에 대해서 상당히 보수적이고 여타의 사람 사는 사회의 종교나 지식이나 문물 등에 대해서도 보수성이 상당히 강한 것을 고려를 할 때는 어떨까?

 

외국의 경우가 아닌 우리 나라 사람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체험에 의한 경우가 드물고 특히 우리 나라 사람의 직접적인 경험이나 체험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게끔 말로 표현이 된 것 경우가 드물고, 그러니 비록 성경(The Bible)이 있다고 하지만 사람과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 및 사람의 사후 세계와의 관계에 의한 종교로서 인식이 되기 보다는 서양의 것으로, 서양의 문물이나 지식의 하나로, 특히 서양의 신에 대한 것으로, 심지어 서양의 조상 및 그 영혼에 대한 것으로, 더구나 우리의 조상을 알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전통이나 관습을 거부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는 것에 의해서 터부시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 우리 사회에서 정치 등 사회 활동을 한다고 할 경우에는 기득권을 가진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종교나, 특히 유교 도교 불교 무속 신앙 등의 종교나, 기존의 정치 및 사회 활동 방식 등과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나의 신앙이란 것이, 물론 나를 아는 정도에 따라 또 신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도에 따라 특히 신앙의 개념에 따라 시각이 사람마다 천양지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 가면서 현세를 위해서 또는 사후를 위해서 종교나 신앙이나 믿음이 필요하니 가지게 되는 그런 경우와는 다를 수가 있으니 비록 사소하고 미미해 보일지 몰라도 과거의 지나친 극단주의적 보수주의와 국수주의에 의한 우리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는, 특히나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생각이나 마음을 읽어 볼 때는, 앞의 '교'씨 가문의 '황청'이와 같은 상황이 내가 향후에 우리 사회에서 사회 활동을 할 때는 쉬엄쉬엄, 존재하는 듯 마는 듯, 시비 거리가 경우에 따라서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경우에는 앞의 '교'씨 가문의 '황청'이와 같은 상황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그리고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이해가 될 수 있을까?

 

근래의 이곳 저곳의 브랜드 붙은 신앙심이나 명망 있는 신앙 단체의 신앙심에서 볼 때는 그것도 이곳 저곳에서 불 붙는 성령들에 의해서 발생한 참사가 한 두 건이 아닌 시점에서 볼 때는 아주 우스운 말에 불과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1965년에서 ~ 1976년 사이의 대한민국에서의 시골의 상황인 것을 고려를 하면 그것도 그 지역 일대가 유교와 제사 문화와 도교와 불교가 전통 및 관습 및 풍습이란 말과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생각을 할 때는 경찰서나 검찰청에 신고할 수 없는 그러나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범죄와 유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특히나 나의 고향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점이고 양대 정치 세력의 접점인 것을 고려를 하면, 물론 앞의 주제는 어디에서도 언급하거나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성격은 전혀 아니지만 일의 성격 자체만 두고 보면 실제로 발생하고 있으나 어느 곳에서도 발생을 하지 않는 것과 유사한 경우인 것을 생각을 하면, 그렇게 우스운 일만도 아닐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나의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약 10~15년이 지난 1986년도에도 그리고 약 30~35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정치 활동을 한다고 하면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맞게끔 같이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존의 방식만 대로만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을 정치 활동이라고 말을 하거나 또는 기득권을 가진 누군가의 정치인을 위해서 정치 활동을 하는 것만을 정치 활동으로 생각을 하거나 아니면 정치 활동과 관련하여 정책을 만들거나 자금을 만들거나 바람잡이가 되는 등등의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경향도 앞의 경우를 이해를 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1986년도에도 어떤 권력과 힘을 가진 곳인지 몰라도 나에게 다녀간, 그러나 내가 얼굴을 보지 못한, 몇몇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조직의 힘을 이용하여 나의 직장 생활 10년 후 나의 삶을, 즉 지금처럼 내가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나이 마흔 무렵부터의 나의 삶을, 자신들을 위해서 활동하게 할 새로운 직업을 갖게 하는 것으로 만들겠다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앞의 경우를 이해를 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 개개인의 품성이나 인격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일의 방식이나 사회 활동 방식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관습적인 예의나 예법이 변질이 되고 변질이 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가 아니라 사회적인 것에 대한 예의나 예법이 되고 지배 피지배를 위한 예의가 되고 일방 통행의 예의나 예법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경우가 아닌가 싶다.

 

앞에서 내가 만나 사람들에 대해서 점수를 매기는 것과 관련하여 조금 더 말을 하면 '신앙심과 밥'이란 표현과 관련된 사람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미이라 및 파라미드'와 관련된 사람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머리 위의 스팀 및 밥통'과 관련된 사람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마을 회관 앞에서 지구상의 이곳 저곳을 보는 것과 관련된 사람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나에게 무슨 사고 아닌 사고를 쳤을까? 진화론에 대해서 나와 대화를 한 사람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나와 내가 환영을 본 것 및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에 대한 대화를 한 사람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나의 고향 집 마당의 똥이 사라진 사건과 관련하여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방앗간 옆의 집에 있었던 남해에서 온 사람들 및 수도 건설과 관련된 사람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나의 고향의 국민 학교 앞에서 나와 나의 친구들의 사진을 찍은 사람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나에게 무슨 사고 아닌 사고를 쳤을까? 뒷개에서 여름 방학 동안에 수영을 한 사실로 벌을 세운 선생님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그 일로 나는 몇 번의 벌을 섰고 그 때마다의 벌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뒷개에서 만난 일련의 사람들은 또 각각 몇 점의 점수를 받았을까? 더불어 마을 회관 옆의 집에 있었던 사람들은 몇 점의 점수를 받았고 나에게 무슨 사고 아닌 사고를 쳤을까?

 

물론 어린 아이로서 나만의 세계에서, 즉 내가 세상을 바라 보는 시각에서, 내가 만나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비록 잠깐 동안의 일이지만, 점수를 매길 때 내가 점수를 매긴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약 10년 동안을 나의 고향에 있을 때 비록 상대방 입장에서는 한 두 번의 만남이고 한 두 번의 대화였을지 몰라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또는 나와 이런 저런 주제도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모두 몇 사람 정도였을까? 그 때 나눈 대화가 비록 몇 마디에서 몇 분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 때 나누었던 대화를 모두 글로서 쓰면 어느 정도 분량의 책이 될 수 있을까? To be continued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70703. JUNGHEEDEUK.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