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환영과 동영상과 영의 존재 및 그 능력 03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2. 24. 00:37

환영과 동영상과 영의 존재 및 그 능력 03

 

(몰래 카메라와 인터넷과 비디오 )

 

나에 대해서 나의 연기나 영화의 장면이 관련이 되게 된 것은 지금에서야 기억인 난 것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에 관한 내가 알고 있는 이유는 이미 다른 글에서 말을 했듯이 약 3-40년 전의 어릴 때 내가 경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자 해도 너무나 막연하고 막막하고 힘들었었다.

 

특히나 말을 하고자 하는 주제 자체가 그 당시에는 개념이 없었지만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즉 종교에, 대한 것이었으니 지금 현재도 성경 한 권을 두고, 같은 본질을 두고, 지금도 사람 수만큼 다양한 표현들과 개념들과 의견들이 존재를 하는 분야인데, 약 3-40년 전의 어린 아이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나 사람의 일도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는 어린 아이에게는, 그것도 지금 현재도 버스가 하루 2-3 다닐 정도의 시골에 있는 어린 아이에게는, 그것도 학문적으로 분류를 하면 형이상학적인 분야의 주제에 대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같이 공유를 하기 위해서 말을 하고자 하니, 그것도 이미 조선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의 것으로 조상 때부터 전해지고 전해진 결과 골수까지 깊이 유교와 불교 및 여타의 선행 지식이 가득한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말을 하고자 하니,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하면 내가 그 중에서 나의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말들을 고르겠다는 말도 하게 된다. 영어 단어나 영어 문법을 배울 때 시험을 치기 위해서 외우는 즉시 외워지는 것이 아니고 또 외웠다고 해도 시험을 칠 때 모든 것이 기억이 나지 않듯이 그러나 단어를 보거나 문법을 보면 기억을 하고 알 수 있는 것과는 일정 정도는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 특히 영어로 작문을 하거나 말을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단어나 문법을 암기하고 외우는 것 보다 그런 현상이 조금 더 심하듯이 능력의 차원을 떠나서 어릴 때의 일이니 그런 현상이 조금 더 심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으로서의 타고난 능력이나 재능의 면에서 조금 언급을 하게 되면 분야별로 개인차가 있을 것이지만 어릴 때 이해력이나 사고력이나 창의력이나 상상력이나 계산력이나 등 지적 능력이 뛰어날 수가 있는 것도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이 두뇌의 작용으로 인한 것이 많을 것이고 그런 두뇌의 능력이 특정한 분야에서 계속적으로 계발이 되면 그 빛이 배가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천재성이란 말이 누군가가 필요할 때마다 모든 주제에 대해서 녹음된 테이프 모양, 백과사전 모양, 말을 할 수 있게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란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하는 의미는 아니고 각자의 모습을 보아도 추정이 가능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부터, 은사를 받아도 각양각색의 경우가 있을 것이지만 사람의 천재성의 경우와 일정 정도는 유사한 면이 있을 것이고 단순히 능력이나 재능만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고 ‘영(Spirit, 사람의 정신으로서의 Spirit을 말하는 것이 아님)’의 존재나 특정한 목적을 띈 영적인 무엇이 있을 경우에는 사람의 존재와는 독립적인 존재이겠지만 아마도 조금은 다른 경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다른 글에서 말을 한 것처럼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방식으로 그 존재 및 세계와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에 대한 증거를 하지 못하게 된 일이 있었고, 나아가 사람이 사람을 이해를 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고향의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확인을 한 결과 말을 하는 것 외에, 즉 말을 하는 것은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이 되었듯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습 중의 하나로 인하여 내가 말을 많이 할 수 없게끔 체질 또는 근육이 일정 정도 바뀐 상태에 있었으니 말을 하는 것 외에, 글을 쓰는 것이나 영화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만화를 그리는 것이나 여타 예술 분야의 것들이 언급이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보편적인 것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고 그 당시 새로이 인기 종목으로 떠 오른 것이 영화였는데 사람의 관점에서는 예체능 분야의 재능으로 분류를 할 수가 있는 것이었고, 믿거나 말거나, 그런 분야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 나에게 이미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니 그런 분야의 재능에 대해서 나는 나름대로 그 당시 나만의 친구인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게, 요청을 하는 행위가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나의 어릴 때 그런 사실이 있었으니 인정을 하거나 말거나 그런 말들이 몇몇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되어서 그 목적이 무엇이든, 즉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든 또는 그런 재능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자 하는 것이든 또는 이미 연출된 공간에서의 몇 가지 말들이나 행위들로 나를 엿 먹이거나 나의 기를 죽이고자 하는 것이든 또는 이미 연출된 공간에서의 언행으로 나의 삶을 기만하거나 나의 갈 길이나 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다른 곳으로 유도를 하고자 하는 것이든 등등, 몇몇 경우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행여나 아래에 영화나 배우들이 언급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관련 사람들은 전혀 모를 수 있으니 언급이 된 사실들로 다른 오해나 피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영화 ‘연예술사(박진희와 연정훈 주연)’를 보면 그런 공간이 실제로 있었는지 아니면 평범한 커피솦인데 내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본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커피솦인데 영화로 촬영을 하면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혼전 성관계’에 대한 말을 한 일이 있었던 장면과 비슷한 장면이 보인다.

 

누군가가, 대학교 과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니 대학교 과 친구로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애인이나 와이프의 사랑 행위를 비디오나 인터넷을 통해서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을 하기에 이런 저런 경우나 상황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질문을 하는 친구의 구체적인 의도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Yes' 'No'로 대답을 할 수 있는 속성의 일은 아닌 것 같고 하여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혼전성관계란 말을 들으면 사랑과 결혼과 결혼 전 성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남녀의 사랑과 그 사랑의 행위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몇 마디 대화를 하기 위한 주제로서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 그러니 나에게 혼선 성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하는 것을 묻기에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사랑을 하는 사이든 젊은 남녀의 불장난이든 젊은 남녀의 감정적 유희이든 젊은 남녀의 성적 욕구의 발산이든 등등 무엇이든 가능할 수 있으면 혼전 성관계는 반대를 하는 입장이라는 말을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하니 잠시 어디론가 나가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내가 피곤해서 집에 가고자 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여하한 경우로 여자가 순결을 잃었다고 해서 또는 혼전 성관계가 있었다고 해서 과거처럼 절망감에 빠지거나 삶의 의욕을 상실을 하거나 평생 죄의식에 시달리며 살거나 심한 경우에는 자살을 하거나 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부부지간에 상대방이 결혼 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지도 않지만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의견을 묻거나 논의를 하고자 하면 젊은 남녀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하는 혼전 성관계는 가능하면 결혼 후 가정을 가진 상태에서 가지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렇듯이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단순히 남자와 여자가 사귀는 것이니 사랑을 하는 것이니 하는 그런 문제뿐만 아니라 둘 사이의 교감과 신뢰 관계가, 인간 관계가, 형성이 되게 된다.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가 100퍼센트 결혼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사람 대 사람으로 사귀는 경우와는 달리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까지 이어지게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각각의 결혼 후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둘 사이의 자녀란 문제까지 등장을 하게 된다.

 

사랑의 행위에 의한 자녀란 문제는 그냥 평범한 문제는 아니고 의학의 발달로 말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사랑하는 남과 여의 또는 개개인의 권리라고 말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사랑하는 남과 여의 또는 개개인의 생명이나 존엄성이 그렇듯이 비록 태아나 자녀라고 해도 마찬가지의 경우일 것이다. 잉태 후 완전한 독립체의 단계이니 아직 신체가 미분화 된 단계이니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생명이 잉태가 되면 그리고 영혼이  생기게 되면 그 이후에는 사람의 사망하여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될 때까지는 그 전체가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을 것이다. 개개인이 감정이나 의식의 흐름을 살펴보아도, 특히 남과 여의 의식의 흐름을 살펴보아도, 육체적인 감정이나 물리적인 감정 변화 이외의 것이 존재를 한다. 즉 단순히 두뇌의 사고의 결과이니 과거 기억의 결과이니 호르몬 분비의 결과이니 하는 등등의 육체적인 또는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변화무상한 의식과 사고와 감정의 변화가 있는 것이고 흐름이 있는 것이다.

 

특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렇듯이 남자와 여자의 사귐도 그런데 남자와 여자와 육체적인 사랑의 행위를 하게 되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청춘남녀의 감정을 법률로 정하듯이 또는 칼로 ‘무’, 또는 무우, 또는 무시, 자르듯이 단정적으로 자를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이가 있을 것이나 자자손손 대를 잇기 위한 사람의 존재적 특성을 고려를 할 때 남자와 여자가 한 남자나 한 여자만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이 불가능에 가까운 말도 드물겠지만 남자와 여자의 사귐이나 사랑이 단순히 성인 남녀의 감정이나 사랑의 문제만 아닐 것이고 십중팔구 또 하나의 생명체와 연관이 되게 되는 일이고 당사자들의 나머지 삶과도 연관이 되게 되는 일일 것이니 가능하면 결혼을 할 때까지 서로 간에 신의나 신뢰를 지켜주는 것이 좋을 것이며 나아가 사랑이란 말을 핑계로 한 감정의 유희나 육체의 쾌락이나 성적 욕구의 발산이 아니고 남녀 사이에 정말로 ‘사랑’이란 단어나 말을 사용을 하고 싶으면 서로 간의 행위에 대해서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가 있고 또 사랑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연령에 사랑을 하고 사랑을 하게 되었으면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많이 열려가고 있으니 가능하면 결혼까지 성사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조금 더 말을 하면 남녀 간의 사랑의 행위는 그 결과가 자신의 육체에 대한 자해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살인과 다를 바가 없는 행위로 연결이 될 수가 있고 또 다른 사람의 도덕적 및 직업적 윤리 의식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고 여타 사회적인 해이나 범죄의 불감증까지 이어질 수가 있으며 제2 또는 제3이라는 형태의 변화까지 가능한 것이니 그렇게 쉽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조선시대처럼 남자는 갈지자로 거리를 활보하는데 경계선이 없고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지만 여자는 여자인 것이 마치 평생의 업인 양 얼굴을 가리고 다니고 또는 순결의 잃은 것 그 자체가 여자로서의 목숨인 양 사회적인 단죄나 자결로까지 이어질 필요는 없지만 남녀 간의 사랑의 행위와 그 결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강조에 강조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농업시대나 목축시대나 유목시대와는 달리 요즈음에는 사람이 태어나기만 하면 모두가 제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무리 발버둥치며 살아도 제대로 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으니 온갖 목적과 배경을 숨긴 주위의 사탕발림의 러브스토리나 자존심을 자극하는 유혹에 의한 순간적인 욕정에 의해서 불이 붙게 된 남녀의 사랑의 불장난이 태어나는 자녀의 평생의 삶을 고난에 빠지게 할 수도 있고 태어나기도 전에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 또 다른 사람의 도덕적 윤리적 범죄를 넘어 살인과 같은 죄를 짓게 할 수도 있으며 여타 수많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니 절대적인 강조가 필요한 부분일 것이란 것이다.

 

구체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첫사랑이 결혼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아마도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유언비어인지 아니면 젊은 날 사랑다운 사랑 한 번 못해봤으니 어디서 말을 하기도 민망하고 하여 그냥 첫사랑이란 말을 하게 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첫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들었다. 서로 사랑을 하는 사이고 성인이고 조선시대와 같은 신분이나 계급의 사회도 아닌데 무엇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남녀 사이에 사랑이란 말을 사용을 할 때는 단순히 눈과 눈이 사치를 부린 것과 같은 우호적인 호감을 가지는 감정적인 단계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남녀 간의 사랑의 행위를 하고 나니 각각의 숨겨진 본색이 드러나게 되거나 또는 이미 표적 정복이라는 ‘도전’ 의식이 끝나고 나니 사랑이란 단어가 마음에서 꼬리 채 자치를 감춘 것이 되거나 또는 서로의 사랑을 육체적으로 확인을 하고 나니 그 감정이 단순히 호기심이나 욕정에 불과한 것이었거나 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하고 나니 이제는 사랑이 소유욕으로 바뀌어 그것이 이별의 빌미가 된 것이거나 또는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가다 보니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일까?

 

대화과정 중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자자손손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한, 즉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를 하기 위한, 것이지만 감정적인 또는 감각적인 요소가, 즉 육체적 요소가, 분명히 존재를 한다. 그런데 남녀 사이의 감정적인 또는 감각적인 요소를, 즉 육체적인 요소가, 성인 남녀에 대한 법을 제정을 하듯이, 칼로 무(무우, 또는 무시) 베듯이, 그렇게 자를 수는 없지만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단순히 사랑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고 교류이고 신뢰이기도 하니 서로 신중할 것이고 또 어떤 형태의 피임이나 수단 방법을 쓰던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생명체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니 가능하면 결혼으로 이어지게 할 것이고 혼전성관계는 가능하면 자제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의 결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여타 문제가 두려워서 아예 그 근원부터 차단하고자 회피를 하거나 사랑에 의한 결혼보다는 중매나 정략적인 결혼을 선호를 하거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고 남자도 사람이고 여자도 사람이고 그러니 남자와 여자의 사랑도 단순히 사랑이니 홍콩이니 하는 그런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것이고 무엇보다 남녀의 사랑의 행위는 그 결과가 또 다른 생명체와 연관이 되니 ‘사랑 타령’이란 말로서, ‘순간적인 감정의 미혹이나 유혹’에 의해서, 주변의 부추김에 의한 ‘성인식’과 같은 것에 의해서, 도전 몇 명이니 하는 정신적 감정적 유희에 의해서 등등, 남발할 것이 아니고 조심을 할 것이란 말이다.

 

영화 ‘작업의 정석(손예진과 송일국 주연)’의 손예진 역의 스타일을 말투와 행동을 우연히 보고 ‘내 스타일’이란 말을 한 때가 있었다.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뭐라고 말을 할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하는 방식이 내가 말을 하기에 편하다는 의미에서 내 스타일이란 말을 한 때가 있었다. 내가 그 때 본 여자의 모습이 누군가가 분장을 한 것인지 누군가가 사진을 보여 준 것인지 누군가가 동영상을 보여 준 것인지 누군가가 향후에 촬영할 영화의 여자 주연 배우의 이미지를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본 것인지 누군가가 영화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고 계획하고 있는 영화를 만들게 되면 여자 주연 배우의 모습이 그와 같은 것일지는 몰라도 몇 마디 말을 하는 것과 더불어서 내 눈에 나타나 보이는 이미지가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물론 순간적으로 그 여자 배우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래서 영화라도 한 편 찍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후 어떤 스타일의 영화가 좋을 것인가 하고 이렇게 저렇게 머리 속에서 그려보니 찍을 만한 영화가 없었다.

 

여자의 연기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언행이 연기를 하기에 그렇게 맞는 것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다른 글에서 연기를 하게 되면 비록 연기를 잘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반쪽 연기 밖에 할 수가 없을 것이란 말을 했듯이 나의 언행 자체가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요구 되어지는 이런 말과 행동 저런 말과 행동에 그렇게 썩 어울리는 것은 아니란 것이었다. 영화 출연진 전체가 마치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슬로우 비디오를 촬영을 하듯이 말과 행동을 하고 배역이 모두 그와 유사하면 몰라도 실제로 어떤 종류의 영화를 촬영을 하던지 간에, 특히 근래에는 더욱 더, 그런 것 자체는 힘들고 또 아무리 연예물이나 멜로물이나 에로물이라고 하더라도 말 빠르고 발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여 할 장면들이 있을 것인데 그런 것 자체가 소화가 잘 되지 않을 것이란 것이었다.

 

대화 도중 에로물이라고 말을 하니 웃는다. 무슨 이유에서 웃는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이런 저런 종류의 영화를 언급한 것은 나의 언행이 영화 촬영과 어느 정도 어울리는지 보기 위한 것이었고 영화의 에로물과 관련하여서 개인마다 시각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여자 배우가 마음에 들어서 그 여자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영화 속 뿐이라고 하더라도 차라리 이런 저런 경우를 통해서, 예를 들어서 팬클럽과 같은 것을 통해서, 그 여자 배우를 알게 되거나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지 에로물을 촬영을 하겠느냐는 반문을 한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에로물을 꼭 필요로 하는 곳이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을 했듯이 비록 영화 속이나 드라마 속이라고 해도 남녀의 사랑의 행위가, 그것도 반복되는 모습들이, 우리의 의식이나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그로 인하여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하여 비록 예술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말들이 있지만 그런 것이 전부라면 다른 방법들도 수없이 많이 있을 것이니 영화나 드라마에서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여자 배우가 아무리 빼어난 미모라고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몇 마디 말을 하게 된다. 더불어 사견으로서 그리고 관객으로서 농담 삼아 웃고자 하는 의미에서 한 마디 더 하게 되는 것이 내가 그 영화 속 인물들과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의 감각적인 또는 감정적인 부분만 자극을 하게 되는 남녀의 사랑의 행위에 대해서, 그것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의 행위를 굳이,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렇게 처다 보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는지 반문을 한다.

 

물론 사람 사는 사회의 삶에 있어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비록 시나리오를 사전에 알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모습들과 영화와의 연관성에서 하는 말이었다. 정말로 그런 것이 영화 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냐는 반문도 한다. 즉, 사람의 삶의 다양화와 더불어 영화를 통한 표현력의 다양화를 추구를 할 수가 있겠지만 남녀의 사랑의 행위 자체는, 그 순간 동안은, 예술이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말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관객의 입장에서는 공허한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말도 한다. 남녀의 사람의 행위는 그것이 영화이든 드라마이든 실제 생활이든 둘 만은 것인데 그런 것에 대한 표현이 여러 곳에서 장시간 동안 표현이 된다고 하는 것이 정말 예술이나 표현의 자유나 영화 산업과 관련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생각을 해 볼 일이란 말도 하게 한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예술을 생각을 하고 무슨 표현의 자유를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때때로 영화의 흐름이나 맥을 오히려 끊게 되거나 방해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볼 일이란 말도 하게 된다. 

 

어린 아이가 천하장사나 역도 선수에게 힘이 센 것을 보여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어린 아이가 천재에게 천재인 것을 보여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어린 아이가 세계적인 육상 선수에게 얼마나 빨리 달리 수 있는지 보여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그 존재와 그 세계와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의 실존함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질적인 존재의 차이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교통이 될 수도 없고 나타날 수도 없으므로 선택된 사람들을 통하여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으로 알게 하고자 하면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

 

내가 2007년 2월 22일 저녁 KBS 2 TV의 Hey Hey Hey  Season 2에서 할머니 분장을 한 신동엽씨를 통해서 보여 춤의 모습 중 일부를 내가 누워 있다가 일어서는 과정 중 나도 모르게 나타내 보일 수가 있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오래 전 포이동에서 친구들과 자치를 하고 살 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 그런 행위가 잘 되지 않는 행위라고 한다면 어떨까?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이 된 것처럼 다음의 경우들은 어떨까? 어릴 때 허공에서 여러 사람들이 한 사람을 들러 싸고 앉아서 말을 하고 박장대소를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듯이 그리고 외지에서 온 남과 여 중 여자의 머리 속에서 그려질 사람의 모습이 고향 하늘에 집 채 만하게 나타나 보일 수 있었듯이 때때로 이미 촬영을 생각을 하고 있는 수 십 또는 수 백 편의 영화나 드라마나 CF의 장면들을 나의 눈 앞 허공에서 환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며 어떨까?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가능한 것이나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것이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전해져 알게 되는 것이 때때로 가능한 것은 어떨까? 텔레파시와 같은 것이 때때로 가능한 것은 어떨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영화나 드라마나 CF의 누군가의 배역으로, 예를 들어서 드라마 ‘초대’나 ‘외과의사 봉달희’나 등등, 대사를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어떨까? 비록 느낌이든 무엇이든 건물이 흔들리거나 공간이 일그러져 보이는 것이 가능한 것은 어떨까? 직접적 접촉 없이 다른 사람의 행위의 결과가 간접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떨까? 여타의 날씨나 자연 현상은 어떨까? 아니면 오로지 질병 치료만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미 나의 글들에서 말을 한 현상들이 나타나 보이게 하는 것이 사람의 능력이 아니고 앞에서도 그리고 여타의 다른 글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내가 나의 고향에서 살 때인 어릴 때부터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결과 그 사실을 그 당시의 나의 여건 및 나의 고향의 여건 및 우리 사회의 시대적인 여건들로 인하여 증거를 하지 못하고 그 대신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내가 나의 고향 집에서 갓 태어난 어린 시기부터 내 안에 존재를 하고 있는 ‘내 안의 나’를 통하여 증거를 해주고자 하여서 앞과 같은 현상들이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할 것이지만 혹시나 자신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은 자신들이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까지 말을 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또는 약 3-40년 동안, 몇몇 사람들의 미혹과 현혹에 속아서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의 삶에 죄를 짓게 되는 현상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이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더 많은 날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미 천국행 티켓을 수도 없이 받아 둔 대한민국의 신앙심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말이겠지만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다거나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을 한다거나 성경의 내용을 믿는다거나 또는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을 믿는다는 등의 말들이 가지는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말씀을 하셨듯이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즉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직접 말씀을 하셨듯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의 육신은 십자가에서 죽어서 그 안에 거하던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의 영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사라져(또는 파열되어) 없어지고 그 안에 거하던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혼은 사람의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시고 또 그 속에 거하던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의 영은 여호와님의 세계에 거하고 계신 지금 그 이후 시대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즉 선지자님들처럼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항상 교통이 가능하거나 동행이 가능해서 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거나 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처럼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거나 또는 그리스도 예수님 당시처럼 항상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거나 하는 경우에는, 성경 안에 있는 십계명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서 창조가 된 사람의 영혼과 육체는 부모에게서 잉태가 되는 순간 늘 같이 공존을 하겠지만 사람의 사후에는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서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로 가게 되듯이 영의 존재이신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의 천사들의 존재와 사람의 존재와의 관계도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의 세계의 예정된 계획에 의해서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의 천사들이 선택된 사람들과 동행을 하게 되던 또는 선택된 사람들의 몸 안에 거하게 되던 일정 정도는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비록 선택된 사람으로서 또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는 사람으로서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교통이나 동행의 경험이나 체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으로는 존재적 본질의 차이와 육체적 한계로 인하여 그 존재와 세계와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해서 온전히 알 수가 없으니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는, 즉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있어서는, 늘 조심을, 성경 속의 십계명의 말씀에 따라 늘 경계를, 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2007년 2월 22일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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