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과 호로자식
나의 고향 아이들이 ‘호로자식’이 된 일이 있었다. 어느 스님과의 대화의 결과였다. 대화 도중 갑자기 존댓말이란 말을 하여 존재 말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며 어떤 경우에 하는가 하는 말을 하다가 ‘나이 차이’에 대한 말을 하기에 그러면 몇 살 차이가 나면 존댓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말을 하다가 나의 고향 친구들이 모두 ‘호로자식’이 된 일이 있었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자기 집에서는 존댓말을 쓰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었다. 부모님이고 가족이면 더 존중을 해야 할 것인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기 집에서는 존재 말을 쓰지 않아서 언급이 되게 된 말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과거의 주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나의 고향 집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중 나의 고향집을 방문한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말의 논리 전개 상 우연히 언급이 되게 된 ‘호로자식’이란 말에 대한 것이다. 그 당시 나와 스님들과의 대화의 주제가, 또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 주제가, 주로 내가 나의 고향에서 겪고 있는 나의 고향 하늘에 있는 그리고 내 안에 있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고 또 스님들이 알고자 하는 부처님의 존재에 대한 것이었고 나아가 사람들이 알고자 하는 사람의 사후 영혼에 대한 것이었으니 ‘존댓말’이란 것에 대해서 가타부타 논하는 것 자체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든 바 별 생각이 없이 대화를 하다가 말의 논리 전개에 의해서 우연히 나오게 된 말이 ‘호로자식’이란 말이었다. 말 몇 마디로 나의 고향의 친구들을 일시에 ‘호로자식’으로 만든 아주 나쁜 스님이었다.
또 그 당시에는 나의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인지 가끔 나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이 한 두 마디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고, 특히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 대해서 내가 받게 되는 느낌을 한 두 마디 비유적으로 내뱉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즉 그런 모습 자체가 괴상하거나 현실에 그렇게 어긋나거나 또는 절대적 진리란 말은 아니고 단지 사람의 말이란 관점에서 볼 때 내 안의 나란 존재에 의해서 나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이 한 두 마디씩 나오게 되는 경우이거나 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니 서로 간에 핀트가 맞지 않았거나 관심사가 맞지 않았거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이 서로가 알고 있는 내용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거나 특히나 그 사유가 가슴이 잠기는 것이든 목이 잠기는 것이든 상대방이 계속적으로 대화를 하기 힘든 상황이거나 하는 경우인데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번 시작된 대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하는 것 같아서 그런 상황이나 모습에 대해서 한 두 마디 내뱉게 되는 경우이거나 한데, 더구나 대화 중 본인의 목적이나 의도와는 전혀 관련이 없이 언어 선택이나 말의 표현이 잘못되게 된 경우도 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전체적인 대화의 맥락에서 서로 간에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고 특히 전후 내용이 있고 또 때때로 비유적으로 표현이 되기도 하는 서로 간의 대화 도중 상대방의 말을 이해를 하고자 하거나 의중을 파악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대화 도중 언급이 되게 된 앞에서와 같은 한 두 마디 말을 꼬투리로 잡아서 마치 시비를 걸듯이 대화를 하는 경우들 중의 하나인 것처럼 존댓말에 대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존댓말로 인하여 양 같이 순한 나의 고향 친구들이 갑자기 ‘호로자식’이 된 경우에 대한 이야기다.
대화 과정 중 누가 이기고 지는가 하는 것에 대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던 실제로 그 당시의 대화의 주제 자체가 비록 각자가 말을 하고 있는 종교와 관련하여 부처님이나 조상의 넋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나 체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여하한 경우로 알고 있는 종교나 신의 개념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정도이었고, 나의 경우는 또 다른 경우로 비록 매일 같은 체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으니, 나와의 대화에서 누가 이기는가 또는 누구의 말이 더 맞는가 하는 것을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단지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을 말을 하는 정도에서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더 많았었고 그래서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과정을 통하여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존재’를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또는 누가 말을 하는 것이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존재’에 근사한가 하는 것을 알아 가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과정에서 새로이 무엇인가를 알아 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었겠지만 또 앞의 경우와는 달리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통하여 무엇을 결정을 하는 것이 있었는지 몰라도 일단 나의 관심사 밖의 일이었으니 별로 관심이 없는 일이었고 단지 나의 고향집을 방문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었고 그 과정에서 ‘호로자식’이란 말과 나의 고향 친구들을 일시에 ‘호로자식’으로 만드는 대단한 사람이란 말이 있었다. 더불어 그 때에는 이미 내가 다른 경우들로 인하여 약간은 지치고 의기소침한 상태에 있었으므로 여느 때와는 달리 우호적으로 대화가 될 수는 없었고 약간은 삐거덕거리는 상태로 대화가 되었던 일이 있었다.
앞에서 언급을 했듯이 그런 사실로서 무엇인가를 결정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물론 나이가 다른 스님들이나 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어려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내가 어리니 나이에 대한 어림이나 짐작이 전혀 없었고 단지 어려 보이는 것 같았지만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무엇인가 결정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대화 과정에서의 나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스님이 존댓말이란 것으로 자신이 이긴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오늘 무엇에 대해서 대화를 한 것이고 왜 대화를 하는 것인지 묻는다. 더불어 오늘 대화를 한 것이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지 하는 것도 묻는다. 나아가 그 당시의 상황에서 그 날의 존댓말이란 주제가 누가 이기고 지는가를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 되는가 안 되는가 하는 것을 묻는다. 무엇에 대한 것을 두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는지에 대한 것도 묻는다.
누군가가 나의 고향 집을 지나가면서 스님과 나와의 대화를 들은 것인지 먼 훗날 내가 정치를 하고자 하면 그런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그와 같이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란 말을 해 준다. ‘감사하다.’라는 말은 하지만 나의 주요 관심사에서는 조금 벗어난 상황이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그 날 나와 대화를 한 스님은 존댓말에 대한 대화로 나와의 대화에서 이긴 것을 말을 하고 싶어 하기에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게 말을 할 것은 아니고 오늘의 사실로서 스님이 이긴 것이라고 말을 해 줄 사람에게 가서 말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말을 해 준다. 그러니 나의 고향집 담벼락 너머에 다른 누군가가 또 있었는지 뭐라고 말을 한다.
가끔 내가 다른 누군가와 평이한 주제에 대해서 일상의 대화처럼 대화를 하고 있으면 갑자기 어디선가 알아듣지 말을 하거나 또는 대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알았다’는 외마디 말과 더불어 갑자기 뛰어 가는 시늉을 한다. 근래에는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으면 고함을 치르는 소리가 핸드폰 저쪽에서 그리고 내가 있는 쪽에서도 들린다. 세상이 요지경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데 끊임없이 사람의 신경만 거슬리게 하고 그 결과 계속적인 행동에 대한 침해가 일어나게 되고 또 마치 누군지 모를 저희들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유언비어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 날 나와 대화를 나눈 스님이 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기에 자주 보자는 말도 한다.
내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 다른 경우로 있었던 일로서 내가 어느 스님에게, 아마도 때가 되면 십 수 년 동안 면벽수도를 할 것이라고 하신 스님인 것 같지만, 나의 고향에 있는 국민학교에 계시는 친구가 될 만한 선생님을 알려 드리면서 어울리는 한 쌍이 될 것이란 말을 하니 그 후에 무슨 일이 생겼을까? ‘첩첩산중’이란 말이 나오게 된 일이 생겼다. 그런데 대체로 나이가 어린 그리고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라고 하는 시골에 살고 있는 환경에서의 나의 언어에 대한 지식 및 사실에 대한 표현의 부족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많겠지만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나 나와의 대화의 결과나 나의 경우에 대해서 전혀 달리 이해를 하시고 해석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유교와 조상의 영혼과 제사와 불교와 부처님과 무속 신앙과 그 행위에 대한 것에 대해서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의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자신들은 어린 시절을 겪지 않았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전혀 다르게 이해가 되고 판단이 되고 그런 사실이 먼 훗날 누가 옳고 그르고 하는 것으로 판단이 될 수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나 나와의 대화의 결과나 나의 경우에 대해서 전혀 달리 이해를 하시고 해석을 하시는 경우가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비록 나와는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여러 형태를 통해서 볼 수도 있고 또 신체적으로도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동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즉 영의 존재가, 즉 신의 존재가, 즉 성경에서 말을 하는 것과 유사할 것이라고 하니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존재(God and His Angels)가, 존재함을 느끼거나 감지할 수 있거나 인지를 할 수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경우에 한정이 되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말을 할 때 ‘볼 수 있는가없는가’ ‘신체적으로 인지나 접촉을 할 수 있는가없는가’ 하는 것을 떠나서 자신들은 자신들의 영혼과 매일 같이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자신들의 언행에 대해서 육체의 것과 영혼의 것을 매일 같이 구분을 할 수가 있는지, 자신들의 육체만 있다면 나와 대화를 할 때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들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런 것을 내가 알 수가 있게 설명을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자신들의 육체와 영혼에 대해서 그것을 구분을 해서 다른 사람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말을 할 수가 있는지, 자신들은 자신들의 죽은 조상들과 매일 같이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자신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죽은 조상들과 매일 같이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다른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의 개념이나 종교에 포함이 되지 않으면 말을 하고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표현을 해도 무속신앙으로 분류를 할 수가 있는 것인지, 또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개념으로 말을 할 수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틀린 것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가 있는 것인지 등등 나이가 어린 그리고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라고 하는 시골에 살고 있는 환경에서의 나의 언어에 대한 지식 및 사실에 대한 표현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 많겠지만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나 나와의 대화의 결과나 나의 경우에 대해서 전혀 달리 이해를 하시고 해석을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는 등등의 일들이 가끔 있었다. 나의 고향에서는 내가 아직 어려서 내가 무엇을 말을 하고자 해도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나의 고향 사람들과의 대화의 결과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주관이나 의지가 확고한 나이로 간주가 되는 불혹의 나이인 마흔이 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말을 한 것과는 달리 가끔 나의 고향을 찾은 사람들과 내가 대화를 하다보면 가끔 발생을 하는 경우이다.
지금도 때때로 그런 일이 발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나와 관련이 되면서, 그것도 그렇게 오랫동안 관련이 되면서, 더불어 옆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했으면서, 현재 나의 상황의 주요 포인트는 무엇이고 정치 행위와 관련된 주요 포인트는 무엇이고 종교와 관련된 주요 포인트는 무엇이고 또 무슨 분야에 관한 것이든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일을 성사시키기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이득이 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생각이 없이 이미 정해진 틀이 있는 모양이고 그 틀이 상대방에게 맞는 것인가 맞지 않는 것인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모양이다. 늘 일방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일을 하는 모양이다. 무엇을 하는 곳들인지는 몰라도 그리고 그 동안 얼마만큼의 성과들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만큼 조직의 힘이 강하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싶다.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20070221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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