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litics)와 사명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얽힌 비화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1. 3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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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 정도의 인적네트워크가 있으면, 어느 정도의 자본력이나 조직력이면, 한 사람을 둘러싸고서 그 사람과 관련된 정보 및 일거수일투족을 왜곡하고 통제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래서 영화 완전한 사육을 흉내 내는 것이 가능할까?


덕호학교는 덕명국민학교로 불린 곳으로 1986년도부터 아마도 이런저런 수난을 당한 곳이 아닐까 싶다. 정치가 무엇인지 대통령이 무엇인지 그리고 김하늘이 무엇인지 K, J, L, P 씨 등등의 이니셜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몇몇 대선조직들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각 지역의 총선조직들은 또 무엇인지 조용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시험 들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아가 하늘에, 우주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유태인의 왕은 무엇인지 더불어 전통이나 관습은 무엇인지 또한 사람의 지식이란 것은 무엇인지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중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인데 그래서 비록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후 사정 들어 보고 또 하는 말 들어 보고 믿을 만 하면 믿고 그렇지 않으면 한 번 더 생각해 볼 여유를 가지고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고 배알이 뒤틀리던 심보가 비비꼬여서 그렇던 믿지 않으면 또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인데 말이란 것에 의해서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아주 괴기한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To be continued.


대한민국 목회자가 정확하게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평균 연령이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경로가 어떠하고 경우가 어떠하던 신앙이나 믿음이 어떠하던 본질은 변함이 없겠지만 맘마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목회자가 될 때까지 그리고 목회자가 된 이후 지금 시점까지 스스로를 통해서 표현이 되고 있는 성경에 대한 말씀이나 신앙과 믿음에 한 말씀이 정말 다양하게 표현이 되고 있을 것인데 그래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도 부족한 모습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인데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신앙이나 믿음에 대해서 한 두 마디로 단정을 짓는 것이 그것도 판단과 교정의 대상으로 분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인데 그래서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부터 선택된 선지지자님들과 성령으로 잉태한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서도, 즉 하늘에, 우주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교통을 하고 동행을 한 경우에도, 그와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기적들과 말씀들을 통해서 전도를 할지라도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믿음에 해서 판단과 심판을 하는 것이 쉽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To be continued.


성경에 근거를 하여 하나님의 창조성에 또는 신성에 또는 능력에 장 가까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분류를 할까? 키가 큰 사람이라고 분류를 할까? 키가 크면 몇 센티부터라고 할까? 아니면 다른 요소로서 분류를 할까? 창조성, 신성, 하나님의 능력이나 사람의 형상을 한 하나님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를 한 것일까?


사람의 특성이나 사람의 유전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하고 있고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하고 있고 나아가 하늘에, 우주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본질이라고 하는 영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를 하고 있을까?


부흥이나 신앙심을 위해서 이런 저런 말들을 할 수도 있고 행동도 할 수가 있지만 그런 것이 왜 필요할까? 그것도 다른 사람의 삶이나 행위에 영향을 미치면서까지 왜 필요할까? To be continued.


결과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란 말에 의해서 신의 존재를, 즉 영의 존재를, 사람이라고 이해를 한 것일까? 그리고 사람의 사후의 영혼의 세계를 신의 세계로, 영의 세계로, 이해를 한 것일까? 그런 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한 의문의 말들을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있다고 판단을 한 것일까? 사람의 형상과는 관련이 없이 하늘에, 우주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본질이 영인 것은 그리고 사람 및 사람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것은 꼭 성경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역사 속에서 또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의 믿음과 마음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 될 수가 있는데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To be continued.


사람을 보더라도 사람의 육체와 그 속에 있는 영혼이 다른 것인데 그래서 사람 개개인의 모습 속에서도 일평생 동안 변화무쌍한 모습을 나타내 보일 수가 있는 것인데 그래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한 두 마디로 규정을 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또 지루하지 않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일 것인데 그리고 한 가문 속에서 살펴보더라도 비록 유사한 모습을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개개인이 너무나 다른 것은 우리 경험 속에서도 알 수가 있는데 언제부터 무슨 목적으로 사람을 신격화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 예수님은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것으로 그리고 성령을 받은 것으로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사람을 신격화 하는 현상이 종파를 가리지 않고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아가 영의 존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조차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성령으로 잉태된'은 사람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로 표현이나 추측이 될 수가 있겠지만 성령 자체가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데, 즉 성령을 받고 체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체험 외의 것에 대해서는 사람의 인지 능력을 벗어난 것인데, 그런 말을 핑계로 왜 사람을 신격화 하는 일이 발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굳이 표현을 하고자 하면 믿거나 말거나 하늘에, 우주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본질인 영의 능력에 의해서 사람의 몸 안의 뼈가 사람에게 나타나 보이는 아무런 흔적이나 현상도 없이 원래 있던 곳에서 떨어져, 끊어져, 잘리어,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한 것을 포함을 하여 성경에 있는 내용이나 우리들의 일상 속의 경험으로도 '성령으로 잉태된'을 설명을 하자면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할 수가 있겠지만 성령 자체가, 영의 존재 자체가,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있는 존재인데 왜 그런 말을 핑계로 사람을 신격화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정말로 신앙과 관련 것이고 성경과 관련된 것일까? To be continued. 


아무리 전통이고 관습이고 우리 것이고 자긍심이라고 하더라도, 특히 사람의 마음과 믿음이 관련이 되는 종교와 관련하여, 즉 사람의 사후에 관련이 되는 사실과 관련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니 우리 것과 남의 것이니 하는 말들로 끊임없이 왜곡된 사실들을 만들고 있을까? To be continued.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기에 그리스도 예수님과 십계명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을 하는 현상들까지 만들어 가면서 사람을 신격화 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언제부터, 내가 알기로는 나의 어릴 때부터 서서히 그리고 1986년도부터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2001년 이후 최근에는 조금 더 왕성하게,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십계명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핑계로서, 일정 정도는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것 및 십계명에 대한 삶 속에서의 실천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힘들게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핑계로 십계명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고 오히려 술과 담배를 신앙심과 죄악에 대한 기준으로, 새로운 율법으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왜 사람을 신격화 하는 현상까지 발생을 하고 있을까? 술과 담배가 술과 담배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지만 그 결과가 사람 사는 사회 속의 사람에게 긍정적인 효과나 영향 보다는 때때로 심신을 피폐하게 하니 그런 행동이 신앙생활로서, 즉 신앙심보다는 신앙인의 행위로서, 부적절한 것이지만 십계명은 성경 속에 묻어 두고 술과 담배를 새로운 죄악의 기준으로 만들어가면서까지 왜 사람을 신격화 하고자 현상이 발생을 하고 있을까?


심지어 경쟁사회니 이익사회니 하는 말들을 핑계로 비록 십계명이란 말을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십계명을 어기는 것도 능력으로 간주를 하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것이나 십계명을 아는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같은 것이고 약2,000년 전에도 십계명을 바탕으로 한 사람에 의한 율법과 판단과 심판이 문제가 되었을 뿐인데 그리스도 예수님만 알게 되면 십계명을 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죄를 지어도 그 때 그 때마다 그리스도 예수님만 믿고 회개 하면 모든 것이 속죄 되는 것으로 말을 하고 그래서 그 때 그 때마다 따로따로의 신앙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사람을 신격화 하는 현상이 발생을 하고 있을까?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는다는 말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는다는 말이나 성경을 알게 되고 믿는다는 말이나 나아가 선지자님들을 알게 되고 믿는다는 말이나 성모 마리아님과 조셉님을 알게 되고 믿는다는 말이나 궁극적으로는 같은 말일 것인데 왜 각각이 다른 것처럼 알게 되는 심지어 그로 인하여 마치 신앙을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는 현상이 생긴 것일까? To be continued.


모두가 목회자나 전도사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사회 활동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만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경원시 하는 말들과 분위기들이 팽배하게 만들어 가면서도 오히려 십계명의 내용은 성경 속에 묻어두고 성경이나 신앙을 핑계로 이런 말 저런 말을 만들어서 사람을 시험 들게 하고, 또 그런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이고 교회의 의와 신앙을 실현하는 것인 양 말을 만들고, 나아가 그런 과정 중에 성경의 내용을 이렇게 왜곡하고 저렇게 왜곡하면서까지, 사람을 신격화 하고자 하는 현상이, 특히 사람의 영혼을 신격화 하고자 하는 현상이, 특히 현자나 용자의 영혼을 신격화 하고자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실제 사실과 관련된 것은 아니고 하나의 예로서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하면, 불교를, 즉 본질의 불교의 모습이 아닌 왜곡된 불교를, 지키는 것이 또는 유교를, 즉 본질의 사서오경이 아닌 제사와 관련된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뒤틀리고 왜곡되고 돌연 변이 된 예의를 말을 하고 있는 유교를, 지키는 것이 전통이나 관습이나 우리 것을 또는 우리의 정체성을, 그것도 우리 사회를 위한 정체성을, 지키고 찾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일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왜 그런 납득하지 못할 현상들이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 방식들로 나타나고 있을까? 그것도 그런 것에 대해서 말을 하면 말을 하는 사람이 마치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그것도 현재의 대한민국의 주류적인 사회의 흐름이나 경제의 흐름이나 정치의 흐름에 뒤처진 것처럼, 특히 신앙의 흐름이란 말 자체가 신앙을 부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앙의 흐름을 모르는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저곳에서 쌍쌍이 다니면서 자기들끼리 말을 하는 척 하면서 뉘앙스를 던져주고자 하는 모습들을 통해서까지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을 신격화 하고자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까? To be continued.


누군가 다른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을 도전으로 내걸었으면 그리고 그런 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결혼까지 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미치게 해도 미치게 하지 않아도 얻는 것이나 생기는 것은 없으며 단지 미치게 했는가 못했는가 하는 것 밖에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상황에 의한 것이든 의도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었든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을 도전으로 내걸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종교나 지역이나 가문 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여러 사람들이 같이 연합을 하여 그 일을 이루고자 하고 있고 또 그런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고 한다면 비록 우리가 불감증이니 신드롬에의 중독이나 하는 말들을 하지만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고 또 그 목적이 무엇일까? 1986년도 중반에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경우가 어떠하던,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의 글의 내용들의 현상들이 그렇듯이 믿거나 말거나, 내가 나의 어릴 때 있었던 현상들에 대한 기억 및 중·고등학교 때를 비롯하여 간혹 있었던 현상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게 되어 그를 바탕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내가 알고 있는 존재가 또는 어릴 때부터 내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과 이곳저곳에 다니면서 행한 언행들과 행적들을 내가 글로서 쓰게 되면 성경에 있는 내용과 유사할 것이라고 어릴 때 내가 만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가 그렇게 말을 했으니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나의 체험과 종교 및 사람의 지식을 바탕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해서 말을 하니 종교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런 말에 대해서 긍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또 일부는, 즉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나 기타 등등 나름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황당하게 생각을 하고 또 미친 사람의 말처럼 생각도 하여 군 복무를 입대를 할 당시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군 복무를 하기 위해서 입대를 한 것이었고 그러니 비록 기존의 종교관이나 신앙관이나 신에 대한 개념과는 많이 차이가 날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나의 체험에 바탕을 한 것이니 다른 사람의 체험과 견줄 수는 없는 것이고 또 영의 존재의 본질상 영의 존재 및 그 세계에 대한 정확성에 대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체험에 바탕을 하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본질이 아마도 내가 말을 한 것과 유사할 것이며 비록 내가 성경을 잘 모르지만 어릴 때의 경험들과 말들을 근거로 하면 실제로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아도 비슷한 부분이 있을 것이란 말과 신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를 하고 있고 신의 존재가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과는 전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말에 기인을 한 것으로서 누군가가 내가 한 말을 장담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기에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렇다는 말을 한 것이었고 몇몇 사람들의 입장에서 마치 미친 사람의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미쳤는지 안 미쳤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말을 하여서 그 당시 앞에서 신분 상태를 언급한 말들과 더불어 그 말을 할 그 당시 온전한 정신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로서 ‘종교에 대한 관점이나 신의 존재에 대한 관점이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미치게 되는 현상이 발생을 하게 된다고 해도 아마도 제일 마지막에 미치는 사람쯤 될 것’이란 말을 하니 그 때 마치 내가 그런 말을 하기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걸렸다는 말로서’, 즉 ‘걸려들었다는 말로서’, 그 말을 누군가가 도전을 할 시비 거리로 생각을 하여 ‘나를 미치게 만들겠다.’는 말을 한 경우가 있었다.


(혹시나 싶어 앞의 말 중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내가 알고 있는 존재가 또는 어릴 때부터 내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과 이곳저곳에 다니면서 행한 언행들과 행적들을 내가 글로서 쓰게 되면 성경에 있는 내용과 유사할 것이라고 어릴 때 내가 만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가 그렇게 말을 했으니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나의 체험과 종교 및 사람의 지식을 바탕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이라는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부언을 하면 혹자가 말을 한 것처럼 이 말 자체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불경죄나 신성모독이나 성경을 부정하는 말에 해당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성경에도 있듯이 사람의 인지능력의 관점에서의 존재적 본질이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untouchable, immortal, above-time-and-space, omniscient and omnipotent, 등등인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를, 즉 영의 존재를, 즉 신의 존재를, 이 글을 읽는 당사자가 만났거나 교통이나 텔레파시가 이루어졌다고 가정을 하고 사람의 인지 능력의 관점에서 앞과 같은 존재적 본질의 존재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더불어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도 존재를 하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증거를 한다고 가정을 하면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 또는 그의 천사들과의 교통이나 텔레파시를 통해서 증거 할 방법들을 찾아서 그에 따라서 증거를 하고 또 그 기록들을 글로서 남긴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지 고려를 할 것은 성경의 기록들과 같이 그 증거 및 과정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 예정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의, 즉 영의 세계의, 즉 신의 세계의, 영이 그 세계의 법칙에 맞지 않게 우연히 사람을 만났거나 교통이나 텔레파시가 이루어지게 된 것인가 하는 차이가 아닐까 싶으며 나아가 그런 말 자체가 전적으로 사람에 의해서 특정한 목적으로 기획되고 연출된 것인가 하는 것인데 이런 사실은 그 전체 과정을 보면 일정 정도는 추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교회를 비롯한 이곳저곳에서의 종교 및 신앙과 관련된 기획이나 연출은 오히려 현재의 물질문명이나 과학기술의 현란함과 화려함을 무기로 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의, 즉 영의 세계의, 즉 신의 세계의,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사람과의 실질적인 체험이나 또는 기도에 대한 응답 등을 무색하게 만들기 위한 것도 일부 있지 않을까 싶다. ’천지창조‘나 ’전지전능한‘의 말이 있지만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와의, 즉 영의 세계와의, 즉 신의 세계와의,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의, 사람과의 교통이나 텔레파시가 특히 기도에 대한 응답이 항상 그렇게 놀랄만하게, ’기적‘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나 어감처럼, 그렇게 발생을 하지 않는 것을 이용하여 현재의 물질문명이나 과학기술의 화려함을 무기로 갖가지 기획이나 연출을 하게 됨으로서 앞과 같은 사실들 자체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의, 즉 영의 세계의, 즉 신의 세계의,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실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십계명을 잘 이해를 하여 개개인의 삶 속에서 실천을 하는 것이고 성경의 증거나 선지자님들 및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실질적인 기적들과 증거들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주된 목적이 아닐까 싶다. )


그래서 그런 것을 두고, 그것도 내가 미치느냐 미치니 않느냐 하는 것을 두고, 다른 사람과 거래나 내기나 도박을 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을 하니 나의 나이 마흔이 되었을 무렵에 내가 대한민국에서의 대선에 출마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과 관련된 일이나 또 먼 훗날 교황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만 한다는 것과 관련된 말로 인하여 마치 몇몇이 사람들이 그들의 원대한 계획과 충돌이 되는 것처럼,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나를 두고 약 20년에 걸쳐서 그들만의 삶의 방식대로 이렇게 저렇게 시험하고 희롱을 할 생각을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 온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법을 초월하여 살아온 것인지는 몰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입대를 한 한 명의 청년에게 몇몇 사람들의 이해관계 및 서로 다를 수 있는 몇 가지 가치관에 대한 것들로 시험 들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어느 나라의 하늘 밑에, 즉 대한민국의 하늘 밑에 또는 당나라의 하늘 밑에 또는 어느 파시스트나 독재자의 나라의 하늘 밑에, 있는지 모를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아니었나 싶었다.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비록 대학생이었지만 그 당시까지 우리 사회 속의 한 명의 구성원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았을 때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인지 기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인지 특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이 정치·경제 등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인지 대한민국을 손 안에 쥐고서 꼼지락거리는 사람들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단지 몇몇 사람들만 특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과 일을 하는 방식이 그와 같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성경의 구절들을 달달 외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교회에서 말을 하는 신앙의 형태대로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신앙을 알고 있는 것이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비록 일상 속에서 항상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경험이나 체험으로 인한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속에서 그리고 그 당시까지의 사람의 지식에 의해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즉 영의 존재의, 즉 신의 존재의,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에 대한 그리고 신과 사람과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한 나아가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에 대한 믿음 정도가 고작이었고 내가 특정한 종교나 종파적 입장을 대변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단지 나의 체험과 지식에 의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이었고 나의 말이 개개인이 생각을 하기에 앞뒤가 맞는 것 같으면 나의 말을 믿는 것이고 그리고 비록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신앙을 갖는 것이 필요한데 당사자들은 경험이나 지식으로도 일체 아는 바가 없고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그것도 이런 저런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았을 어린 시절 및 학창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말을 하는 현상들이 더불어 1986년도 그 당시에도 나타난 믿거나 말거나 할 몇몇 현상들이 그 당시 대한민국의 몇몇 기독교인들이 말을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 성경과 제일 유사하다고 하니 나의 말이나 성경을 믿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경우나 방식을 통해서 나의 말이나 성경을 믿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방식대로 살면 되는 것인데 신의 존재에 대한 그리고 종교에 대한 나의 말들로 인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고정되어 있거나 완결 된 것이 아닌 몇몇 사람들의 그 당시의 종교관이나 가치관이나 생각으로 인하여 상대방이 미쳤는지 아닌지 확인한다고 누군가를 미치게 만들겠다고 말을 하는 사람을 아무리 입장이나 처지를 고려를 한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내가 말을 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및 종교에 대한 나의 말이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어서 그 사실로 인하여 대통령이 되고 교향이 되고 또 여타의 말들을 하게 된 것이니 나에게 있어서는 그런 것이라고 말을 하니 무엇인가 가치가 있는 일을 하려고 하면 목숨과 같이 중요한 무엇인가를 그 대가로 걸아야 한다는 말도 하기에 가치 있는 일을 하는데 더불어 같이 하면 좋지 그렇게 힘들게 하면 오히려 그 의미가 반감이 되는 것이 아니냐면서 그런 것 자체에 반대하는 말도 한다. 그러니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기에 바쁜데 누가 같이 일을 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며 그에 대한 대가로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걸어야 된다고 말을 하기에 내가 말을 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및 종교에 대한 말이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그 목적이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사실이기도 하고 그 사실이 전적으로 나에게만 관련이 된 것도 아니니 그렇게는, 즉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하고 특히 내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나의 삶 전반에 걸쳐서 일어날 일이니 그 순간에만 국한 된 것도 아니고 또 한 편의 영화를 촬영하듯이 연출을 하고 말 그런 성격의 것도 아니니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대가로 걸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한다.


그래도 계속적으로 이런 말 저런 말로 무엇인가에 엮어 들이는 듯한 말들을 하기에 무엇보다도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특히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말이 그냥 말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 같으니 내가 상대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도 없이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고 내가 말을 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및 종교에 대한 말이 나에게 소중한 것이고 중요하니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무엇인가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무엇인가 나의 삶과 관련된 다른 것을 요구할 것이면 오히려 관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 특히 나의 나이 마흔이 되면 그 때 내가 말을 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만날 또는 교통 할 또는 통신 할 또는 통행 할 일이 있으니 그 때의 결과의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할 것이니 내가 하고자 하는 바에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내가 말을 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및 종교에 대한 나의 말이 나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을 빌미나 미끼로 이렇게 저렇게 마치 시비 걸듯이 함정에 엮어 들이듯이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말도 한다. 그리고 나의 말을 믿거나 말거나, 또 내가 한 말을 황당하다고 생각을 하든 말든, 정치  및 종교에 관련된 말들을 이미 했으나 그것들에 필요한 구체적인 활동들에 대한 것은 내가 아직 대학생이고 여타의 사회적인 것들을 잘 모르니 혹시나 도움을 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가 군 복무를 위해서 입대를 했을 그 당시 신(God; Spirit)의 존재와 종교 및 정치 관련 나의 말이나 나의 정보에 대한 언급의 시발이 되었던 K장군님에게 가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말도 한다.


정확한 사실은 모르겠지만 최근의 몇몇 연쇄 살인들이, 특히 남녀노소 구분 없는 연쇄 살인들이, 일정 정도는 몇몇 사람들이 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하여 특정한 대상이 일상 중 한 말을 핑계나 빌미로 하여 자신들의 의도대로 상대방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시달리게 한 것의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한 느낌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목적이 무엇이고 또는 혹시나 누구로부터 사주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1986년도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 일정 정도는 또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해결사나 기획사의 활동에 기인을 하는 것도, 특히 도움이라는 말이나 신앙이나 대한민국의 정치나 국가 대사나 국가 시책을 핑계로 등등 이런 저런 일들이 만들어지고 꾸며지지만 그런 것이 중간에 이간되고 농간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앞의 사실도 아주 미미하겠지만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을 하면 말만 그런 말들이 오고 간 것이고 오늘과 같이 내가 그 당시의 사실들을 기억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그 당시 있었던 사실들을 증거 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그런 것이 주 목적이 아닐까 싶다.


안산시의 토막 살인을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오래 전 대학교 과 친구라고 말을 하면서 안산지하철역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전화 목소리가 정말 똑 같으니 안산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런데 역에 도착을 하여 밖으로 나오니 친구가 가려고 하는 곳에 시간이 되면 얼굴도 볼 겸 같이 가보려고 해서 연락을 했는데 가려고 했던 곳에 갈 이유가 없어서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한다. 그래서 다시 지하철을 타려고 하니 그 친구는 어디로 간 것인지 없고 누군가가 짐이 무거워서 그러니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 달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선 비린내가 같은 냄새가 심하여, 그것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심하여, 도와 드리기가 힘드니 지하철역에 종사 하시는 분이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면서 더불어 생선 비린내가 너무 진동을 하는 것 같으니 포장부터 새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말을 하며 얼굴을 보려고 하니 그 짐 주인이 누군지 어디로 가고 없다. 그래서 방금 나에게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물으니 자신들도 모르는 사람인데 저쪽으로 뛰어갔다고 한다. 내가 황당해 하니 누가 언제 갔다 두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이곳에 갔다 버릴 짐을 가져다 두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 달라 말만 하고선 온데간데없어서 막상 짐을 들고 지하철 승차장으로 내려갔다가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러 가기 전에 지하철역에 종사 하시는 분에게 지하철 출입구에 있는 생선 비린 내 풍기고 있는 짐과 상황에 대해서 혹시나 싶어서 말을 해 준 일이 있다.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리고 간 것이면 비린내가 너무 진동을 하니 쓰레기를 치워야 할 것이고 반복해서 발생을 하면 경찰서에 신고를 하던지 지하철역에서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서 친구를 만나려 가면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없고 다른 사람이 가끔 나와서 사정이 있어서 나오지 못한다고 말을 전해 주는 경우였다. 다른 경우로는 전화 통화 중 목소리가 흡사하여 친구인 줄 알고 대화를 하다보면 다른 사람인 것 같아서 비교적 자세히 대화를 하면 끊어 버리는 경우와 유사한 경우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가끔 있는 경우였다. 목소리 흉내 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통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있는 일이었다.


내가 말을 한 것을 믿던 믿지 않던 또는 내가 사람 사는 사회의 일들 중 하나로서 대통령이든 교황이든 또는 여타의 경우를 말을 했던 어릴 때부터 '찬물' 이야기니 ‘송충이’ 이야기니 또는 여타의 사회 관습이나 풍습과 관련된 말들로서 ‘오르지 못할 나무’에 대한 말을 해 준다고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고 약 20년 동안, 또는 약 30년 동안, 일들을 도모한 사람들과 노력과 비용과 약 20년 또는 약 30년이란 그 시간을 고려를 하며, 그리고 앞과 동일하게 ‘사람 사는 사회에서 태어나서 사람 살고 있는 사회의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게 사람 사는 사회에서 사람이 사는 법이나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대한 것을 말을 해 준다고 발생한 것들을 고려를 하면, 그리고 앞과 동일하게 ‘낚시질’을 가르친다고 발생한 것들을 고려를 하면, 나아가 전통이니 관습이니 우리 것에 대해서 알려 준다고 또 사회에서의 신분에 대해서 알게 해준다고 또 성경이나 신앙이니 신앙심에 대해서 나아가 교회에서의 법과 교회에서의 신분에 대해서 알게 해준다고 등등 발생한 것들을 고려를 하면, 만약에 지금까지 일을 도모를 하자고 했으면 얼마나 많은 일들을 도모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말로 ‘쌀은 쏟으면 주워 담을 수 있지만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다. 누구나 그 뜻을 알겠지만 말이 다른 사람을 사기를 치기 위해서 사용이 되는 것이 아니고 대화 중의 한 두 마디가 다른 사람의 삶을 옥죄기 위한 빌미나 핑계거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서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공인이 될 수록 언론을 통해서 보도 되는 말이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고 크니 더욱 더 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근래의 창의적 능력을 키우고 기획 능력을 키우고 계획 능력 및 생활 습관을 키우기 위해서 등의 목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를 하기 위해서 상황과 연결되어 사용된 말이 실제 다른 사람의 삶을 옥죄는 것에, 그것도 표적이 되는 사람의 삶을 옭아매는 것에, 때로는 주문 받거나 의뢰 받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을까?


취중진담, 언중유골, 수도자의 무념무상의 해탈이나 득도의 경지와 사람의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잠(Sleep)과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여호와) 하나님이나 그의 천사들과의 교통이나 텔레파시, 심령의 관찰, 독심술, 기도에 대한 응답,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 후서 3:1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5:18)‘,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한복음 10:35)‘, 등등의 말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사람이 사색에 잠겨 있을 때, 또는 업무나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어 무심결에 또는 무심중의 상태에 있을 때, 또는 수면 중에 있을 때, 또는 취중에 있을 때, 등등의 상황을 이용하고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일정 정도는 대화를 하는 상대방과의 상호 작용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대체로 각양각색의 상황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고 그런 연속선상에서 특히 말을 하는 사람이 말을 하는 사람만의 이런 저런 제스처나 말재주나 언어 습관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이 인지를 했던 인지를 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말을 하거나 또는 행동을 한 후 그것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과 연관을 시켜서, 예를 들어서 잠을 자는 중 지문을 찍게 된다든지 또는 몸을 뒤척이게 된다든지 또는 고개를 떨구거나 끄덕이게 된다든지 하는 등등의 반응들로 그리고 상대방을 인식을 하고 상대방과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하기 전에 상대방이 혼자서 얼렁뚱당 한 말은 듣지를 못하고 또 상대방이 마음속으로 하는 말도 듣지를 못하고 또 상대방이 표정 연기로 말을 하는 것은 인지를 하지 못했지만 상대방이 말을 걸어오거나 상대방이 손 등으로 접촉을 하여 상대방이 나타났음을 알리고자 하는 것 등에 대한 반응으로 한 두 마디 한 것 등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옥죄는 것에, 그것도 표적이 되는 사람의 삶을 옭아매는 것에, 때로는 주문 받거나 의뢰 받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을까?


특히 ’모든 언행에는 나름대로 의미를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용인시의 어느 곳의 누가 한 말과 성경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대한, 그리고 신앙에 대한 나의 대화 상대나 상황과 연결되어 때때로 표현된 말들을 몇몇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의 관점에서는, 즉 앞뒤 말이나 전후 사정 모두 생략하고 단지 몇몇 사람들에 들려오는 몇 마디 말로서 다른 사람의 신앙 및 신앙심에 대한 판단을 한 관점에서는, ’미친 말‘이니 ’헛소리‘니 하고 판단을 한 것이 중간의 전달자에 의해서 이간과 농간을 당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옥죄는 것에, 그것도 표적이 되는 사람의 삶을 옭아매는 것에, 때로는 주문 받거나 의뢰 받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을까?


나의 어릴 때의 시대적인 그리고 관습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의, 즉 영의 존재의, 즉 신의 존재의,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방식에 의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의, 즉 영의 존재의, 즉 신의 존재의,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함과 그 세계와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가 존재함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대신 비록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와의, 즉 영의 존재와의, 즉 신의 존재와의,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의, 직접적인 교통이나 텔레파시와 같은 것은 불가능하지만 사람들 중에서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의, 즉 영의 존재의, 즉 성령의 존재의, 즉 신의 존재의, 존재함을 알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의 일정 정도의 텔레파시가 가능하게 한 것이나 일정 정도의 교감이 가능하게 한 것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런 사실을 알 수 있게 한 것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어떻게 이해가 되고 또 어떻게 이용이 되게 되었을까?


어릴 때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가, 즉 영의 존재가, 즉 신의 존재가, 즉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내 머리 위에, 내 머리 위의 하늘에, 존재를 한다고 하니 내 보다 키가 큰 사람이 내 뒤에 서서는 그리고 때때로 나를 따라 다니면서 마치 자신이 그런 존재인 것처럼 그래서 그런 행세를 하려고 했던 것처럼 나의 말들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해가 되고 또 이용을 하려고 했을까? 왜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그런 일들이 발생을 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꼭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지구상의 이곳저곳에 존재를 하고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왜곡이 되고 악용이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까?


나의 경험과 지금까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말이지만 도깨비니 저승사자니 하늘님이니 천지신명이나 지성이면 감천이니 기우제니 등등의 말들이 우리 사회에 있고 그리고 비록 일회적이고 일시적이고 아주 간헐적인 드문 현상으로 알고 있지만 무속 신앙에 의한 신들림과 같은 현상, 물론 무속 신앙의 모든 행위들을 말하는 것은 아님, 등이 있지만 아직까지 성경과 같이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인 사건·사고들의 기록으로 기록되지 못한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왜곡이 되고 악용이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구상에서 사람이 사는 것과 전혀 관련도 없고 단지 지구상에 있는 동안이나 사람의 사후를 위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것을 아는 사실에 불과한 것인데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몇몇 사람들이 이해관계에 의해서 이렇게 저렇게 다르게 왜곡이 되고 악용이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것도 21세기의 우리 사회에서까지 그런 일들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을까? 목적이 무엇일까? 


성경이 우리가 절대적 존재라고 하는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영의 존재의, 신의 존재의,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그리고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의, 증거에 대한 기록이란 말이, 하나님 및 그의 천사들과 선택된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증거에 대한 기록이란 말이,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말씀의 기록이란 말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란 말이, 등등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장 1절)‘이란 구절이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영의 존재의, 신의 존재의,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본질이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니 비록 선택된 사람들이 사람의 형상을 한 모습을 볼 수가 있거나 또는 그 형체를 만지거나 접촉을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대체로 선택된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 텔레파시든 뇌파든 음성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들을 수 있는 말씀뿐이니 그렇게 표현이 된 것이다.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즉 영을, 즉 신을, 만났거나 동행하거나 또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 즉 신이, 즉 천사가, 거하는 사람을 신이라고 하는 표현도 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본질이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니 비록 선택된 사람들은 사람의 형상을 한 모습을 볼 수가 있거나 또는 그 형체를 만지거나 접촉을 할 수도 있고 또 텔레파시든 뇌파든 음성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은 선택된 사람들뿐이니 그와 같이 표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앞의 성경과 관련된 말들이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 등과 더불어 근래의 창의적 능력을 키우고 기획 능력을 키우고 계획 능력 및 생활 습관을 키우기 위해서 등의 목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화를 하기 위해서 상황과 연결되어 사용된 말이 실제 다른 사람의 삶을 옥죄는 것에, 그것도 표적이 되는 사람의 삶을 옭아매는 것에, 때로는 주문 받거나 의뢰 받은 일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을까?


나아가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를, 영의 존재를, 신의 존재를,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를, 그리고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를, 믿고 성경의 기록들을 믿는 사람들을 성경에 있는 (여호와) 하나님과 천사들에 대한 표현을 바탕으로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 조직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즉 아프지도 못하게, 즉 아파도 약물 복용이나 의학적 치료도 받지 못하게, 하거나 정치 경제 사회 활동이나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더라도 오로지 창조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으로만, 즉 우리 것이 누가 생각하는 우리 것인지 모르듯이 창조란 의미가 누가 생각을 하는 창조인지 모르겠지만 창조적인 방법이라고 하는 것으로만, 정치 경제 사회 활동이나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성경이나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영의 존재의, 신의 존재의,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그리고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의, 존재함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거나 또는 비록 성경이나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영의 존재의, 신의 존재의,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존재함에 대한 미음과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이 땅에서는 누구의, 즉 동일하게 이 땅에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언제부터 무엇에 의해서 갈라진 것인지 마치 누구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니고 마치 누구는 이 땅의 사람인 것처럼 누구의, 허락을 받고 믿음을 갖게 하는 등등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할까?


우리의 역사적 사실인 조선 왕조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은 아니고 단지 사람의 사람에 대한 관계나 태도를 위해서 한 마디 말을 하면, 즉 이미 신의 존재와 사람 및 사람의 영혼의 존재적 차이에 대해서 나아가 신의 세계 및 신의 세계의 능력이나 일과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의 차이와 관계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를 말을 했듯이 그리고 다른 인류의 역사적 사실들에 의해서도 나의 말을 일정 정도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추정을 할 수 있듯이 그런 관점에서 말을 하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그리고 지역 마다 국가 마다 시대 마다 차이가 있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타고난 능력을 가졌던 시대를 타고 났던 왕이 될 사람으로 태어났던 과거 우리 사회의 표현대로 하늘로부터 점지된 사람이던 또는 비록 선지자님들과 같은 행적과 기록은 없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만난 경우가 있었던 등 개인으로도 경우마다 다를 것이니 일괄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단지 21세기란 시점에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사람 사는 사회의 사회적인 관점에서 말을 하면, 조선 왕조의 태조 이성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를 받는 것과는 관련이 없이 조선 왕조를 세우기 전에는 한 명의 장수였고 장수가 되기 전에는 또 장수가 되기 전의 모습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조선 왕조를 건국하여 왕이 되는 과정이 어떠했고 그리고 조선 왕조 이전의 왕 및 신하들에게는 어떻게 인식이 되고 있었던 간에 조선 왕조를 세워 왕이 되니 그 이후에 태어나는 후손들은 자동적으로 왕족이 된 것이었고 또 조선 왕조의 말년에는 조선 왕조를 건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시대 상황이 어떠했던 간에 대한민국을 또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대역죄인이 되는 과정을 밟는 것이 아닌가 싶다. 궁궐에서의 삶을 보더라도 3천 궁녀란 말이 있듯이 그들 속에서의 암투나 혈투나 파행적인 삶이 있듯이 그리고 헤아리기 힘든 수의 자녀들과 그들끼리의 암투나 혈투나 기형적인 삶을 엿볼 수 있듯이 시대적인 차이가 아니라 그 당시 사회의 관점에서도, 특히 동서고금을 초월한 인륜지도의 관점에서도, 단지 백성들의 혈세로 유지되는 권력의 요체인 궁궐에 있을 뿐이지 그렇게 정상적인 사람의 삶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던 삶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한 명의 사람이 태어나서 순백의 백지 상태와 마찬가지인 어린 아이로 시작하여 온갖 인생의 여정을 겪은 후에는 사망을 하고 흙으로 그리고 사후 영혼의 세계로 가듯이 그와 비슷한 과정을 밟은 것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앞과 같이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을 온갖 방법으로 신격화를 시키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우려할 근래의 시대 경향 중의 하나는 그 궁극적인 사유나 이유가 무엇이든 또 사람을 짐승에서 진화를 한 것으로 보자고 하는 경향이 아닌가 싶다. 이곳저곳에서 쌍쌍이 몰려다니면서 이런 핀잔 저런 핀잔을 주고자 하는 것과 같이 시대의 흐름이나 풍조를 파악을 하든 못하던 어릴 때부터 시작된 나의 체험에 의하면, 즉 사람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오히려 지금 현재와 같은 시대적 흐름이나 풍조와는 또 다른 시대적 상황에 의해서 그 당시의 시대적 관습 및 사람들로부터 터부시 되다시피 한 나의 체험에 의하면, 그리고 지역이나 민족이나 국가를 떠난 인류사적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절대적 존재, 즉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영의 존재가, 신의 존재가,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그리고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가,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 사람에 관한한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사람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장담을 하기 힘든 사후 세계를 위해서라도 사람을 사람 그대로의 모습으로서 있는 그대로, 즉 전자나 후자처럼 계속적으로 여하한 형태의 괴물로 만들지 말고 사람을 그냥 사람으로, 보자는 것이다.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에 대한 사회 구성체 논쟁을 떠나서, 그리고 종교를 떠나서, 그리고 신의 존재 및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한 가치관을 떠나서, 현실 세계와 사후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오로지 전래의 대한민국적인 관점에서 한 마디 언급을 하면, 살아생전 부모님에게 불효를 한다고, 물론 불효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람이 없어지지 않듯이 하물며 사후 영혼이 된 생전의 신체로부터 무한히 자유로울 부모님에게 살아생전에도 제대로 지키지 않던 예의나 예법에, 즉 사람이 만들어낸 예의나 예법에, 소홀 한다고 그 사실에 대해서 사후 영혼의 세계에 있을 부모님이 살아생전의 자식들에게 무슨 예의를 따질 것이며 또 사후 영혼의 세계에 뒤늦게 오는 자식들과 후손들을 문전 박대를 할 것일까? 영겁의 세월에 비교하면 불과 몇 십 년의 차이에 불과할 살아생전의 세상과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상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을 할 것은 사람의 살아생전의 세상에서도 끊임없는 자유와 평등과 존엄성을 갈구를 하고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사람다운 모습을 갈구를 하듯이 오히려 사람의 사후에는 살아생전의 모든 관계를 떠나서 사람의 육체를 떠난 영혼이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리고 만약의 영생 보험을 위해서라도 꼭 우리 사회의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인류가 그 존재를 증거하고 있는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영의 존재가, 신의 존재가,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게 비록 모든 사람이 직접적인 체험이나 교통이 불가하더라도 ‘지성이면 감천’이란 믿음으로 조상의 영혼의 안식을 갈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다.


몇 사람 정도의 인적네트워크가 있으면, 어느 정도의 자본력이나 조직력이면, 한 사람을 둘러싸고서 그 사람과 관련된 정보 및 일거수일투족을 왜곡하고 통제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래서 영화 완전한 사육을 흉내 내는 것이 가능할까?


 - 끝 -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20070128. 정희득.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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