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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댓글 20191208_영화 ‘데이비드 게일 The Life Of David Gale , 2003’ 관련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19. 12. 8. 12:05

오늘의 댓글 20191208_영화 데이비드 게일 The Life Of David Gale , 2003’ 관련

 

관련 사이트 https://www.youtube.com/watch?v=Ez-jFOYCXMg

 

 

. 실화인지 창작인지 모르겠지만 누명을 쓴 채 살인자가 될 수 있고 사형을 당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현행 사법제도의 문제를, (미국에서의 일일까요 아니면 대한민국에서의 일일까요 아니면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일까요?), 적나라하게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형제도를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의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을 담보로 그렇게 일을 꾸몄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현행 사법제도의 문제가 있으면, 즉 수사 및 재판 및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의 말은 무시된 채 물증의 논리나 법적인 논리 등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것 등과 같은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고쳐 나가는 방법은 많이 있을 것이고 특히 국회의원이나 법조인이 그 일을 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나 법조인은, 특히 법조인은, 대체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러나 특정한 단체에서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시위 등이 악용될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영화에서의 일로서 보더라도 기자가 어떤 사람의 의도된 행위의 결과로 자살 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재판관에게 가지고 왔으면 그것이 자살인지 아니면 타살인지 단정을 할 수 없어도 그 당시의 판결에 대한 문제제기는 될 수 있고 그러니 최소한 사형 시간에 대해서는 넉넉하게 연기할 수가 있을 것인데 영화에서 또는 현행 사법제도에서는 그런 것이 되지 않는 것이 더 문제일 것이고 물론 그런 일에는 대체로 여론 등과 같이 하루 빨리 판결을 확정 짓고 하루 빨리 사형을 시키려고 하는 것과 같은 그 배후가 있다는 것이 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한 것, 권력이나 뇌물이나 재물 등에 세뇌되고 중독된 것, 어떤 사상에 세뇌된 것, 함정에 빠진 것 등 무엇이 원인이었던지 간에 반성이나 회개나 개선이란 말이 의미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형을 시켜야 될 사람들을 사형을 시키지 않아서 그 결과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 물론 국가적인 일이 아닌 개인 간의 범죄에 관한 것으로서의, 영화도 종종 보게 됩니다.

 

. 성범죄를 해결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프리 섹스를 허용하고 사람이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는 장애를 사랑으로 왜곡하는 것은 몇 천 년 전의 원시 시대가 아닌 오늘날과 같은 국가가 있는 시대에는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닐 것입니다.

 

. ‘자살을 살인으로 꾸미는 것과 살인을 자살로 꾸미는 것 모두 사법부를 농락하는 짓이다. 단지 완벽히 농락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관련 댓글;

 

변호사가 피의자나 범죄자를 변호할 권리는 있어도 범죄를 무죄로 왜곡할 권리는 없는 것을 알고 국가에서 국가의 법으로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것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변호사의 권리 중에는 범죄를 은폐할 권리가 없는 것을 알고 국가에서 국가의 법으로 그것을 지켜줄 수 있는 것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변호사나 검사나 경찰관이나 판사나 모두 비록 인류가 만든 망원경이나 현미경에 보이지 않아도 사람에게는 사람의 영혼(Soul)이 있고 사람의 물질의 육체의 사후에는 사람의 영혼(Soul)에 의한 사후 세계가 있고 사람 및 사람의 영혼(Soul)과는 다른 신(God: Spirit)의 세계가 있는 것을 사실로 인정할 줄 알고서 사람 위에 앉으려고 하지 않고 국가의 법 위에 앉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양심 앞에 겸손하고 국가의 법 앞에 겸손해지 것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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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8.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