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Religion)와 사명

[스크랩] ‘개천의 용’ 키우던 교육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9. 12. 29. 19:38
출처 : 외교국방
글쓴이 : 경향신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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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언급된 문제는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인류의 지식문명 과학문명 물질문명의 발달을 막을 수는 없다. 기사가 언급된 것도 컴퓨터와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서 언급된 것이고 그 기사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도 컴퓨터와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서 언급된 것이듯이 지구상에 인류가 생존하는 한 앞의 문제는 막을 수가 없는 것이고 그 결과 교육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의 교육의 문제는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한 대학교에서 교육을 해도 지식과 과학이 고도로 발달을 하니 그 지식을 따라 잡기가 힘들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수 십 년의 인생 동안 인류의 지식과 과학을 습득하기 위해서 평생을 보낼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고 그러니 교육의 방향이 전인교육 및 정보 활용화 및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치중을 하고 각자가 각자의 인생에 필요한 전문적인 영역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교육의 방향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컴퓨터와 인터넷 분야의 역할도 점점 증가하고 있고 특히 나이가 들어도 사용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발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물론 컴퓨터와 인터넷 분야의 종사자의 도덕성 윤리성 준법성 등은 더더욱 중요한 시대이다.

 

기사에서 언급된 부의 대물림 문제는 교육이란 요소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이고 특히 학생의 지적 능력 등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이고 학교 교육 및 공교육이 그 방향을 잘못 잡아가고 있는 것과 연관이 되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 국가 기관이 그 방향을 잘못 잡아가고 있는 것과 연관이 되고 최근에 자본과 조직력과 사회적인 지위 등의 요소와 진화론 우생학 등과 같은 시대적인 오류의 지식의 요소로 우민화 정책을 추구하고 그 결과로 국가의 정책에, 특히 교육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이해 관계 행위 등과 연관이 된다.

 

학생의 지적 능력은, 특히 학습 능력은, 부의 대물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요소이고 그런 이유는 부모로부터 자녀가 태어나도 그 부모와 자녀는 서로 다른 능력 재능 특기 개성 특성이 있는 것이고 심지어 자녀들 간에도 그런 차이는 존재하고 있고 그런 이유도 지금 현재의 부모가 인류 최초의 부모가 아니라 부모가 알지 못하는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의 모습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출생 행위를 통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니 그렇다. 물론 서울대학교의 교수 부부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도 그 자녀가 학문 분야의 능력이나 재능을 타고 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분야의 능력이나 재능을 타고 날 수가 있고 그런 이유도 앞과 같은 인류의 존재론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사람의 존재론적인 모습과 유전적인 특성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신체 자체는 자신에게 발생하는 것들을 기억을 하고 있으니 평상시에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을 하는 가에 따라서 사람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것이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통해서 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가 있고 그러나 그런 요소도 현재의 인류의 최초부터 시작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출생이란 범위 내에서의 일이다.

 

그러니 교육 유무에 관련 없이 사람의 능력과 재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사전적 지식의 주입과 암기 보다는 스스로의 능력과 재능을 찾을 수 있는 방향이 좋고 그런 교육에는 대화 및 자유스러운 형태의 교육이 보다 더 적합하다.

 

또한 기사에서 언급된 부의 대물림 문제는 교육이란 요소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이 우리 사회의 사람에 대한 인식, 인간 관계, 일의 방식 등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기사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 현재까지는 부모의 빈부의 격차와 무관하게 학교 교육으로 일류 대학교까지 졸업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 등으로 각자의 사회 경제 활동을 하고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활동 중 여러 가지 선입견과 편견 등으로 시시비비가 붙고 심지어 제도 교육과 민간 교육의 경쟁이란 말로서 시시비비가 붙고 서울대와 비 서울대의 경쟁이란 말로서 시시비비가 붙고 교육과 비 교육의 경쟁이란 말로서 시시비비가 붙고 교육의 평준화 또는 교육 수준의 평준화 등의 말로서 시시비비가 붙는다. 부모의 빈부의 격차와 무관하게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으로 살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활동이나 종교 활동 등과 연관된 교육 외적인 요소로서 사람의 사회 경제 활동이 시시비비에 붙게 되고 앞에서 언급을 한 요소들 외에도 가문에서의 서열, 공산주의의 실현, 분배정책의 실현 등등과 같은 요소로서 곳에서 시시비비가 붙게 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개천의 용’ 키우던 교육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이란 말을 핑계로 교육을 없애면 그 결과는 누가 피해를 보게 될까?

 

말 그대로 7-80퍼센트의 국민만 피해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란 말로서 개인의 사유를 제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사회 경제 활동의 추구를 막고 국가 조직의 경제 발전 계획 및 개인에 대한 인력 관리란 통제 행위만 존재하고, 특히 국가 기관원이란 말을 핑계로 한 경제 발전 계획 및 개인에 대한 인력 관리란 통제 행위만 존재하고, 공산당이란 집단을 핑계로 조직적인 권력 횡포와 기부금 약탈만 일삼으면 개인의 붕괴와 사회의 붕괴를 가져오는 결과만 만들 뿐이다.

 

국가의 법을 초월하고 양심을 상실하고 특히 신(Spirits as God and Angels), 신성, 등의 말을 핑계로 한 광신만 존재하는 지능적인 약탈자의 세상이 되면 그 피해는 누구 보게 될까?

 

매일 패 싸움, 시소 게임, 파워 게임만 하고 먹고 살 것 없으면 기업체나 자본가나 만만한 시민이나 국민을 사기치고 공격해서 돈이나 욹어 내고 재산이나 강탈하고 심지어 국가 정책을 위한 기부금이란 말로서 사기나 치고 다니니 실제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없고 주변 국가만 상대적인 경쟁력 강화로 이득을 보게 된다. 

 

학교에 대한 정책 및 교사의 수급에 평준화를 가져와야 할 학교 교육의 평준화란 말이 어떤 사기꾼의 기획 연출에 노출이 되면 '개천에서 용 된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서, 그것도 현실의 국가적인 정치적인 사회적인 경제적인 지위 등을 핑계로 경쟁 관계를 만들어서 마치 경쟁에서 이겼으니 폭력이나 강탈이나 약탈의 권리라도 있는 것처럼, 교육의 평준화를 실현을 하고 분배정책을 실현한다고 조직적인 범죄 행위를 하고 다니는 것으로 나타나니 기사에서 언급된 문제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 더 문제일 것이다.

 

4대강 국책 사업이든 세종시 건설이든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시기 적절한 정책이 되어 국가와 국민의 관점에서 이로운 것이 많을 것인데 몇몇 사람들이 이해관계를 위한 이용물이 되면 그 때는 그 시간만큼 비용 낭비만, 즉 에너지 연구를 해서 에너지 절감을 가져올 연구 분야에 투자될 예산의 낭비만, 가져오게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언론 기사에는 시골 학교의 순회 교사 이야기가 있었다.

 

오늘날의 교육 현실이고 지방의 현실이다. 40년 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었다. 그 당시에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수업의 내용이 그렇고 그러한 상태였으니 앞의 문제가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고 한 달에 하루만 학교를 다니고 일주일에 하루만 학교를 다녀도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 없겠지만 오늘 날은 그 상황이 다르다.

 

그렇다고 지역균등정책이란 말로서, 특히 각 지역이 구색을 맞춘다는 등의 핑계로, 공기업을 기업의 발전과 이윤이란 요소와 무관하게 강제 이전시키고 주민을 강제로 이전시키고 대기업과 뒷거래를 하여 대기업을 강제 이전시키면 국가 경제의 발전만 저해하게 되고 세수의 감소로 국가 예산만 줄어 들게 되고 국민 경제적인 불균형만 조장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독도 울릉도 완도 진도 제주도 거제도 백령도 등의 도서 지역에서의 생활과 문화의 서울시화를 추구하는 말을 하는 입장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대도시의 발전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서울시를 비롯한 대도시 외의 지역의 발전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이니 신중할 문제이지 몇몇 안을 놓고서 오늘 식사 후 방귀를 끼게 되는가 아닌가로 결정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공기업 중 기업의 이전이 기업의 발전과 이윤과 활동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고 또한 비용 낭비를 가져 오지 않고 해당 지역에 공기업 발전에 적합하면 공기업의 판단에 따라서 옮기는 것도 좋을 것이지만 그런 강제적인 방식 보다는, 즉 과거 공산주의의 계획 경제를 모방하거나 일본의 자치단체 등을 흉내내기 보다는, 각 지역에 맞는 서울시를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을 것이고 지금 현재까지 국가의 발전이 대도시와 기업을 중심으로 그 발달을 추구를 해왔으니 향후 2-30년 정도는 지방의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것도 국가 차원에서는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오히려 대도시 및 기업의 경제 발전과 소비 촉진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고 특히 대도시의 경우에는 기업과 개인의, 특히 금융 기관의, 영리 추구 행위 중 개발이 되어도 좋을 정도의 경제 규모나 자본 규모의 단계에 이르렀으니 국가 기관의 활동은 이상적인 지하 세계 구축을 위하여 상하수도를 비롯하여 전기 통신 등과 같은 도시의 기반 시설의 유지 보수에만 치중을 해도 될 것이다

 

‘개천의 용’ 키우던 교육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의 기본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 및 학교 교육과 교육 방송만으로도 서울대학교와 같은 대학교에 입학이 가능한 상태가 되어야 할 것이고 학교 시설 및 학교 교사의 수급에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범대학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남아 있는 것이고 특히 정치 활동을 비롯한 국가 활동 및 인간 관계 및 일의 방식이 자유민주주의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앞의 일이 오늘의 이슈는 아니고 해방 이후 지금까지 약 60년 도안 대한민국이 추구하던 일인데 국가 제도, 정치 제도, 사회 제도와 형식 외에 그 내용을 채울 일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고 사람이 사람이 만들어 낸 부산물에 의해서 지배를 당하고 차별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존재하는 모습도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고 최근의 이런 저런 사조로 무장한, 특히 과학이 무엇인지 망각하고 사람을 실험도구화 하는 것을 과학이라고 알고 있는 맹신이나 우리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고 조선시대로 복귀 하면 우리 것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미신으로 무장한, 다수의 집단 행동이 지난 60년 동안의 수많은 국민들의 행위와 노고를 위협하고 있고 그런 것에 대해서 조선시대 5백 년의 흐름을 바꾼 것에 대한 복수무정으로 말을 하는 견해도 있는데 실상은 지난 60년 동안의 수많은 국민들의 행위와 노고가 조선시대 5백 년을 서양의 문물로 흔든 것이 아니고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람의 존재론적인 본질과 사람의 기원과 세상과 우주 등에 대한 이해가, 특히 신(Spirits as God and Angels)의 세계에 대한 이해가 귀신에 홀린 것과 같은 대립적인 개념에서 사람(영혼 포함)과는 서로 다른 존재론적인 본질이 생명체나 행위 주체와 같은 것으로 그 이해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알던 것에서 인공 위성을 띄우는 시대로 바뀐 것이고 조선시대 5백 년의 역사에서의 미풍양속은, 즉 사람과 생명의 존엄성과 가족과 예의를 존중하는 정신 등은, 지켜져야 할 것인데 실상은 그 본질은 사라지고 있고 과거 조선시대에도 신분 차별과 사람 차별의 악습이 돌연변이로 탄생을 했던 것처럼 오늘 날에는 사람의 국가적인 정치적인 사회적인 신분과 자본과 지식 등과 같은 요소가 그런 것을 대체하는 왜곡된 모습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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