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Politics)와 사명

오만 20081207 파란 지방분권화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8. 12. 8. 21:35

오만 20081207 파란 지방분권화

 

정책에 대한 언급은 아니고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이유들 중 하나가 지방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방에서 대학교를 졸업을 하거나 굳이 학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특정한 분야의 기술이나 재능이나 능력을 가져도 지방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에서 태어나나 서울에서 태어나나 사람의 능력은 대동소이하고 각자의 재능 능력 특성 개성 관심 등의 분야에 따라서 할 각자의 할 일을 개발을 해도 지방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동일한 사람이 부산이나 서울에서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서울대학교에 갈 수가 있을 것인데 지방에서만, 특히 읍 면 리 등에서만 학업을 하면 서울대학교까지는 진학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물론 지방에서는 할 일이 없는 것과 상호 연관된 일이지만, 지방에서는 할 일이 없는 것과 더불어 지방에서 무엇인가 할 일을 하자면 기득권과 연관이 된 사실이 너무 강하게 작용을 한다는 것이고 그런 것이 울타리를 너무나 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것이 텃세가 될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무시하거나 기득권을 도둑질 하거나 기득권을 강탈하는 범죄 행위에 대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고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 분야가 어느 곳이든지 그 분야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았고 성공을 했으니, 물론 태초부터 시작하여 완전무결한 자유 평등 존엄성 인권 등을 말을 하기 힘든 것이 인류사 인간사임을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의 일이지만, 그런 사실과 함께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기득권이 형성이 되는 것이고 문제는 기득권이 각자의 권리가 아니라 각 분야에서 독점성 배타성을 가지게 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활동마자 방해하고 시비를 거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웃을 일이 아니고 지방에서의 그런 파행적인 모습이,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오랜 관습 풍습 전통 등에 기초한 무의식의 생활 속의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비판이나 다른 의견을 말을 하면 어른에 대한 불경으로 간주가 되는 모습이, 사람들이 돌파구로서, 탈출구로서, 찾게 만들었던 서울시를 비롯한 대도시에서까지 지금은 형성이 되고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각 공공 기관 사 기관 종교 기관 할 것 없이 사람의 활동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권력과 권위 등의 말로서 점 조직으로 네트워크로 범죄 행위의 모습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공동체 조성을 하기 좋은 지역을 등지고, 도시로, 대도시로, 서울시로 가게 되었는지 생각을 해 볼 일이다.

 

개인의 영리 추구가 아닌 공공기관의 근무자나 관리자나, 정치 활동을 하는 정치인의, 경우에는 개인의 또는 단체의 규정이나 정책이 개인의 취미 생활이 아니고 아이디어 자랑이 아니고 기획과 연출의 경연대회가 아니고 실제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니 지방에 대한 정책이, 물론 쌍수를 들어서 환영할 바이지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특히 지금 당장 분주할 때의 모습이 아니라 십 수 년 후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삼고초려를 하듯이 고려를 해도 좋을 것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이 아니고

 

지금 현재의 시기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본과 같이 지방자치 지방분권화를 만들게 되면 그런 자치 도시가 만들어지기 힘들 것이다.

 

지금 현재의 시기에 대한민국에서 영국과 같은 입헌 군주 국가를 만들고자 하면 그런 입헌 군주 국가가 되기 전에 온갖 사회 병리와 비리를 동반 한 거품 후 폭동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어느 누가 선동을 하지 않아도 국민의 역량에 따라서 쿠데타나 혁명과 같은 현상이 부분적으로 이곳 저곳에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대한민국이란 곳과 국민의 인생과 삶이란 것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커지고 시간만 손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현재의 시기에 대한민국에서 칼로 무우 자르는 듯한 평등을 실현한다고 소련이나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나 비슷한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한다고 해도 그런 사회가 되기는 커녕 온갖 사회 병리와 비리를 동반 한 거품 후 폭동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어느 누가 선동을 하지 않아도 국민의 역량에 따라서 쿠데타나 혁명과 같은 현상이 부분적으로 이곳 저곳에서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대한민국이란 곳과 국민의 인생과 삶이란 것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커지고 시간만 손실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방에 대한 고려와 정책은 현재 시기에 당연지사로 고려를 해야 할 것이지만 몇몇 드러내기 식의 정책으로 진행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고 특정한 세력의 지방 세력 굳히기 식으로 진행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의 기업의 경영 방식의 정치 활동 영역에의 운용이 과거의 정치인의 가끔씩의 폼생폼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듯한 것이, 특히 정치나 정책의 대상이 국민이 아니라 국민이 소비자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듯한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으니 심사 숙고를 할 것이 아닐까 싶다.

 

입헌군주제도나 공산주의 제도는 그리고 지방자치화와 같은 제도는 그 사회의 제도가 어떤 제도였던 자유민주주의라 말로서 표현이 되는 것과 같은 사람의 인권 존엄성 등이 존중되고 개인의 자유 평등 의사결정 등이 존중이 될 수가 있는 사람의 의식구조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사람과 사람의 일의 방식 등에서 그 효과가 있는 제도이다. 입헌군주제도나 공산주의 제도는 그리고 지방자치화와 같은 제도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 강제로 제도로 만들 수는 있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제도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려면 그 사회의 제도가 어떤 제도였던 자유민주주의라 말로서 표현이 되는 것과 같은 사람의 인권 존엄성 등이 존중되고 개인의 자유 평등 의사결정 등이 존중이 될 수가 있는 사람의 의식구조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사람과 사람의 일의 방식 등에서 그 효과가 있는 제도이다. 

 

4대강을 정비하는 것은 환영할 바이지만 대한민국에 사람이 살고 있고 사람이 매일 호흡을 하고 물을 마시고 있으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것으로서 진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대운하의 또 다른 모습 등이면 그 효과가 실용도나 활용도보다 비용의 부담이 너무 크게 될 것이니 조심할 일이듯이 지방의 분권화도 환영할 정책이겠지만 토착세력 만들기가 되거나 서울시의 지방 점령 시나리오가 되거나 그래서 조선시대에 태어난 사람도 없는 시대에 조선시대에 복수를 한다는 핑계로 지방과 지방 사람 병들게 만들기 시나리오가 되어서, 그것도 작은 세상 영화 세상 가상의 세계 등을 핑계로 한 복수무정이나 복수혈전의 이상 실현이란 핑계로서, 사람과 사람 간에 벽을 만들고 층을 만들고 당을 만들어서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사람으로서 더불어 사는 것을 막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4대강이 정비되면 운하 형태의 물류 운송은 발생하지 않더라도 배와 고속도로와 항공기로 카바 되지 않는 소형 운반선 종류의 물류 이동은 충분 할 것이고 한반도의 지질구조나 강의 규모 등을 생각하면 고 비용 저 효율 저 경제성의 운하보다는 오히려 소형 운반선 종류의 물류 이동이 물류 이동을 위한 비용 발생이 없으니 오히려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싶다

 

4대강 뿐만 아니라 강다운 강이 되기 위해서는 식목 식수 작업 등도 장기간에 걸쳐서 병행이 되어야 할 것이니 몇 년으로, 몇 원으로, 말을 할 것은 아닐 것이고 특히 환경 문제를 생각하면 각 강 별로, 물론 각 해안 별로, 환경 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현재의 과학 기술이 집결된 배나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도 그 방법들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 중에는 조선시대에 태어난 사람도 없을 뿐더러 고려 시대에 한반도의 특정한 씨족이나 가문에서 태어나게 된 특정한 사람이  그 시대의 사회 활동 중 조선시대의 왕이 되었고 그 결과 어떤 왕정 정치를 실행했고 그 결과 이런 저런 국가 및 사회의 모습이 있었을 것인데 최근의 몇몇 행위들의 근거로서 조선시대란 말이 언급이 될 수가 있고 온갖 단체 행동이나 집단행동이 합리화 되는 말이 언급이 될 수가 있는 것은 지금 현재의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사회 분야의 영리 추가나 이해 관계가 최근의 사회 흐름을 이용한 범죄 행위로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앞의 현상이 서민이 경제 생활이나 생계 활동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고 특히 급증하고 있는 노년 문제를 고려를 하면 쇼나 하고 있을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근의 저 출산 문제를 고 출산 문제로 부추긴다고 프리 섹스를 강조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최근의 저 출산 문제는 다른 것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는 개인의 능력과 열성과 근면함으로 개인의 경제 활동이,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인생추구가, 가능했던 모습과는 달리 개인의 능력과 열성과 근면함 만으로는 개인의 경제 활동이, 개인의 인간으로서의 인생추구가, 불가능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고 최근 십 수 년 동안 정책 방향이나 사회 제도 방향이나 사회 관습 방향이나 기업의 운영 방향이나 특히 지도층의 사회 활동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 가고 있는 것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현재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그런 것을 통한 개인의 활동이 도서관 관련 유령이나 유령 단체의 유령 같은 활동 결과에 의해서 조직적인 유언비어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의 개인의 활동이, 그것도 3-40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활동이, 특히 저작권과 같은 재산권이 포함된 활동이, 공동체란 말로서 도서관 관련 유령이나 유령 단체의 유령 같은 활동 결과에 의해서 조직적인 유언비어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앞의 현상의 일부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경쟁이 경쟁이 아니라 다수의 인해전술의 집단 폭력과 폭행으로 나타나고도, 그것도 유언비어에 속아서 그런 문제가 발생을 하고도, 그런 사실을 인지를 못하고 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현상도 앞의 현상의 일부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농업 어업 임업 사회에서는, 그리고 일을 할 인력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제 먹을 복은 각자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나, 물론 앞의 말은 사람의 재능에 대한 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원리 등을 말을 하는 것이 재미와 농담으로 통할 수도 있는데 최근과 같은 사회 구조에서는 다 생산을 하게 되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거나 자녀를 고아원에 맡기게 되거나 자녀가 성장하는 중 범죄자가 되게 되거나 또는 거대 자본의 인력 시장의 인력꾼이 되기가 더 쉬운 시대이다.

 

성경의 기록은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의 인생으로 사실이고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증거를 이 세상의 사람을 통해서, 즉 아브라함 ~ 모세 ~ 마리아 요셉 예수 ~ 사도요한 등을 통해서, 했던 것을 다른 사람들도, 즉 하나님의 세계와의 직접적인 교통이나 동행이 없는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만

 

아브라함 ~ 모세 ~ 마리아 요셉 예수 ~ 사도요한 등이 살았던 시대가 있고 각 시대의 각 사회에는 사람의 사는 모습이 있는 것인데, 즉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사람의 축지법과 같은 이동이나 순간적인 공간이동이 단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있었고 지금처럼 축지법과 순간적인 공간이동이란 표현으로 표현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있고 걸어서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거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환영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초고속의 배 자동차 비행기 등을 타고 다니고 컴퓨터를 사용하고 영상 매체의 발달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환영과 유사한 것이 영화 드라마 등으로 일상이 된 시대가 - 물론 cubic living moving talking tangible vision이고 스크린이 필요가 없고 때와 장소가 필요 없는 것 등의다수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  있는 것처럼 사람은 동일하고 하나님도 동일할 것이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환경에는 변화가 있는 것인데, 성경의 구절이나 표현을 로보트회로처럼 이해를 하거나 수학 공식처럼 이해를 하거나 또는 악용을 하는 식의 범죄 행위가 많으니 현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저 출산이 오히려 당연한 것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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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과 뼈와 피로 이루어져 있고 비록 사람의 눈과 과학으로 말을 하기 힘들지만 사람의 영혼이 존재하고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이 태어나고 개인의 수 천 년의 존재론적 속성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은 수 천 년의 인류의 지식인데 최근에 몇몇 사람만 사람인 것으로 생각을 하는 성향이 또 어디에선가 발원을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