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사람에 대한 몇 가지 고찰,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8. 11. 18. 16:33

사람에 대한 몇 가지 고찰,

 

종교에 전혀 관련 없이, 동서고금의 시대나 지역에 전혀 관련 없이, 비록 각 시대의 과학으로 증거나 증명을 할 수가 없지만 스스로의 모습을 살펴 보고 어린 아이의 성장 과정을 살펴 보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육체 및 사람의 두뇌로부터 발생하는 생각 사고 등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사람의 육체는 생로병사를 하는 생과 사가 있어도 사람의 영혼은 영생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한다.

 

단지, 사람의 육체의 사후의 영혼이 천국으로 표현되는 곳으로 가느냐 지옥으로 표현되는 곳으로 가느냐 구천을 떠도는 것으로 표현이 되는 상태가 되느냐 등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의 지식과 능력으로 만든 약물로, 또는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하나님이 창조한 독초 등으로, 사람의 육체를 죽이고 난 후 그 결과로서 사람의 육체의 영생을 확인하는 희귀한 범죄 조직의 범죄 행위가 인간 중심, 과학, 의학, 종교, 등의 말로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유행하고 있는 것 같으니 조심할 일이다.

 

성경에서도 사람의 육체는 흙이 되는 것을 말을 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수 백 년 전의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라는 표현처럼 사람의 육체는 흙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연 재해를 통한 경우나 전쟁을 통한 경우나 여행 중 객사를 하게 되는 경우나 고고학의 발굴 등과 같은 다수의 경우를 통해서, 즉 시신 발굴이나 유골 발굴이나 묘지 이장 등을 통해서, 사람의 육체는 흙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일이다.

 

사람의 부활에 대해서, 즉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해서, 사람의 육체의 사후 사람의 영혼이 사람의 육체로부터 분리 되어 사람이 영혼의 존재로서 부활을 하게 되는 것이나 천국으로 가지 못한 사람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게 되는 것 등으로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CJ or JC 당파의 말처럼 사람으로서의 형체 자체가 무의미한 흙으로부터 사람의 육체가 부활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경우는 사람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지도 않는 흙으로부터 사람의 육체가 부활을 한다고 생각을 하기 보다는 새로이 창조가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지만 사람의 육체의 생명체로서의 속성이 사람의 육체가 살아 있을 때는 온갖 변화무쌍한 실체의 생명체이지만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거나 호흡이 멈추고 피가 흘러서 사람의 육체가 생명력을 상실한 경우에는 그냥 육체의 물질적인 성분이나 속성 그 자체에 불과한 것이란 것이다.

 

생명 경시의 말이 아니고 사람의 영혼이나 정신이나 마음이나 생각 등이 없고 생명력을 상실한 육체의 물질적인 속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참고, 어린 아이의 성장 과정을 보려면 사람으로서의 인지 능력을 가지고 인지할 것은 다하지만 사람의 언어, 지식, 사회적인 현상 등을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사람으로서의 선과 악의 개념에서의, 즉 십계명이나 윤리나 도덕이나 공공성 등과 같은 개념에서의, 언행의 옳고 그른 것은 어린 아이가 정확하게 이해를 하던 말던 말을 하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면 전후 관계를 말을 하는 것을 통해서, 가르치고 또한 사람의 육체가 다칠 수 있는 것에 대한 주의를 주지만 어린 아이의 언행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면 상대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아이도 불꽃을 보고 그 불꽃이 무엇인가 싶어서 만지기도 하지만, 물론 입체의 불꽃과 동일한 열기를 가진 환영이 아닌 실제 불꽃, 그 불꽃을 만지면 화상을 입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으니 때때로 불꽃이 눈에 보이면 만지기도 하고 그 결과 화상을 입기도 하듯이 그런 것에 주의를 하면 되고 그런 상황에서 불꽃과 화상의 관계에 대한 것을 어린 아이가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는 단계이던 아니던 말을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사람의 말을 사람의 언어 지식 사회적인 현상으로서 정확하게 이해를 못해도 사람이 어린 아이와 대화를 해주고 대화에 응하는 것 자체가 어린 아이의 성장 과정을 돕는 행위이기도 하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나 예수님의 죽음이나 하나님의 세계의 예정 여부나 예수님의 부활이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신 후 생전 예수님의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창에 찔린 자국으로 확인하는 것(성령이 비둘기의 형상으로 나타나 사람에게 보였듯이 성령, 즉 영, 즉 천사, 즉 신이 살아 생전의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예수님의 사명과 증거 활동을 증거하는 것일 수도 있다) 등을 어떻게 이해를 하던,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 잉태가 되고 십 개월의 잉태 기간을 가지고 육체를 가지고 태어났고 예수님의 육체는 다른 사람의 육체와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성장하는 과정도 있고 못이 박히고 피를 흘리니 죽게 된다.

 

물론 예수님의 일생의 행적 중 죽은 자가 살아 나거나 질병이 치료가 되거나 사람의 마음 또는 생각 또는 심령을 읽어서 사람으로부터 발생할 행동을 예언을 하거나 물 위를 걷거나 바람을 멈추는 등등의 경우처럼 예수님의 육체가 visualized 비둘기의 형상으로 임한 성령, 영, 천사, 신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을 때는 전신갑주란 말처럼, 또는 비둘기의 형상으로 visualized 환영이 사라지고 없을 때처럼, 또는 예수님의 육체의 사후 예수님의 형상으로 나타난 visualized 환영이 사라지고 없을 때처럼, 사람의 육체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하나님과 교통을 하고 동행을 하던, 또는 천사님들과 교통을 하고 동행을 하던, 그 결과로 기적이라고 불리는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능력이 나타나더라도, 사람의 육체는 사람의 육체로서의 여러 가지 현상들이 있고 영향들을 받게 된다.

 

예수님의 육체가 visualized 비둘기의 형상으로 임한 성령, 영, 천사, 신의 능력으로부터 전신갑주란 말처럼 보호를 받는 것 여부는 예수님의 하나님의 세계로부터의 관계나 예수님의 정체성 등과 일절 관련이 없는 현상이고 육체를 가진 이 세상의 사람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및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없이, 특히 신앙 관련 몇몇 특권 계층 등으로부터 광신도의 현상이 나타나서 사람이 사람을 해치거나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증거를 하는 사람을 해치는 것과 같은 범죄적인 현상을 만들게 되거나 신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없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증거를 하는 과정 중 사람의 육체에 나타난 현상들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세계의 전지전능 등의 말과 전혀 관련 없이 사람은, 또는 지구상의 생명체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이나 지구상의 생명체로서의 모습이 있으니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증거를 하는 과정 중 사람이 다치게 되는 현상이 있으면, 물론 시대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증거가 그만큼 힘들어지고 특히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신앙을 갖게 하는 것에 그만큼 어려움이 있다.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증거를 하는 사람을 포위했다고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이 나타나면 신앙 신앙심 종교 등과 전혀 관련 없이 사람으로서의 스스로의 모습을 돌이켜 볼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짐승은 짐승 대로의 두뇌 활동이나 생각이나 행동이 있고 사람은 사람 대로의 두뇌 활동이나 생각이나 행동이 있고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도록 또는 이 세상의 물질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사람이란 존재로서의 과정이나 방법이 있듯이, 특히 사람마다의 과정이나 방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의 존재론적인 모습으로서의 활동 과정이나 방법이 있다. 사람이 지구를 창조를 하고 그 위에 집을 만들게 될 때는 사람으로서의 과정이나 방법이 있듯이 하나님의 세계에서 지구를 창조를 하고 집을 만들게 될 때는 하나님의 세계로서의 과정이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세계의 존재론적인 본질이 사람의 눈에 나타나 보이는 이 세상의 물질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존재하니 사람이 만든 집이란 개념이 필요가 없고 그러니 사람이 만들 집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고 만의 하나 사람이 만든 집을 만들더라도 사람과 같은 방법으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고 사람이 만든 집은 이미 창조된 물질을 이용하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의 그릇된 인본주의나 그릇된 경쟁력이나 사람의 능력이나 한계에 대한 그릇된 도전 등이 사람 및 사람의 영혼과는 존재론적인 본질이 다른 하나님과 천사님들에,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에, 대해서 사람의 생각과 방식으로만, 특히 물질적인 방식으로만, 이해를 하고자 하는 경향이 다수의 사람들의 사람에 대한 조직적인 범죄를 유발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는 사람의 육체에 붙여진 이름이지 하나님의 세계와는, 즉 천사 또는 신 또는 영의 이름과는, 일절 관련이 없다.

 

천사들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알려준 그리스도란 사명은 사람을 또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계의 사명과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인 것을 말을 하는 것인지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또는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 아닌 것이고 그러니 아브라함에서 사도 요한에 이르는 사람들의, 또는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지만 사도 요한 이후에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을 하여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증거를 한 사람들의, 역할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천 년 전에는 성령이 비둘기의 형상과 같이 visualized 환영으로 예수님에게 나타났듯이 성령이, 즉 천사들이, 즉 신들이, 예수님과 동행을 하고 있고 각 자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각종 지원을 하고 있었으니 하나님과 천사님들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부르고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세계의 기적이나 구원을 바라는 경우에는 비교적 자주 성령의, 즉 천사들의, 능력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2천 년 전 당시나 오늘 날이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및 신앙 생활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믿고 예수님으로부터의 기적들이 그 근거가 되는 것이고 2천 년 전 당시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하는 과정 중 말씀을 통해서, 또는 대화를 통해서,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이고 오늘 날에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세계와 사람의 관계는 3천 년 전이나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이고 예수님 당시의 신앙 생활은, 즉 유태교와 예수님의 관계가 아니라고 2천 년 전 당시의 신앙 생활은, 예배 시간이 엄숙 경건 해야 하니 어린 아이의 출입을 막는 것이고 예수님은 어린 아이의 마음이 순수하고 사람의 창조 시의 모습과 같으니 예배에 참석을 해도 되는 것이고 식사 시간에는 밥이 식더라도 각자의 기도에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과 간단하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 것의 차이와 같고 식사 중에는 대화를 금하는 것과 식사 중에 자유로이 대화를 하는 것과 같은 차이와 같은 것이고 성경을 근거로 행동 준칙을 만들어서 그 행동 준칙에 맞게 생활을 하는 것과 성경의 말씀을 잘 이해를 하고 깨닫고 터득을 하고 체득을 하여 자유로운 생활 가운에 성경의 말씀의 본질을 지키며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신앙 생활과, 즉 유태교와 예수님의 관계가 아니라고 2천 년 전 당시의 신앙 생활과, 예수님의 말씀의 차이는 상갓집에서 특정한 방식이나 관행에 따라서만 상례 관련 모든 언행을 통제하여 진행하는 것과 상갓집에서 특정한 방식이나 관행 따라서 상례를 진행을 하더라도 문상객 각자의 고인에 대한 사람 대 사람의 인사 예법을, 즉 영혼과 육체로서 살아 있던 이 세상에서 영혼으로서 살아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고인에 대한 인사 예법을, 자유로이 허용하는 것 및 상갓집에서의 자유로운 스타일을 허용하는 것과의 차이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죽은 시신에 절을 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영혼과 육체로서 살아 있던 이 세상에서 영혼으로서 살아 있는 저 세상으로 가는 고인에게 인사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특히 우리 나라에는 사람 대 사람의 인사 예법이 큰 절 중간 절 목례 등 다양하게 있고,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사람과 죽은 시신으로의 사람의 육체는 전혀 다른 것을 말을 하는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의 세계와 사람의 사후의 세계가 전혀 다른 것을 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무엇보다도 비록 사람의 육체는 죽어도 사람의 영혼은 살아 있다 보니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예를 취하다 보면 죽은 사람이 마치 살아 있는 신처럼, 즉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처럼,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 결과가 이 세상의 사람이 사람의 재능 능력 개성 특성 등으로 아름다운 삶을 가꾸고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고 오히려 이 세상의 사람의 현재의 모든 길흉화복의 원인을 고인이 된 사람에게 또는 고인이 된 사람에 대한 제사와 같은 각종 예법에 대한 행위에서 찾는 것에 있기 때문에 그렇고 조상님이나 부처님이란 말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육체의 사후의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 그릇되게 생각을 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깨달음 득도 성불 니르바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부처님이나 붓다라고 말을 하고 살아 생전에는 깨달음 득도 성불 니르바의 경지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니 그 과정에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부처님이나 붓다라고 불리는 사람의 사후에도 계속하여 부처님이란 말을 사용하고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육체의 사후에도 살아 있으니 부처님이나 붓다를, 즉 깨달은 사람의 사후의 영혼을, 신처럼, 즉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처럼, 그릇되게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의 살아 있을 때나 사람의 육체의 사후나 마찬가지의 경우로서 사람의 영혼이 사람에게, 또는 사람의 육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또는 다른 사람이 또는 내가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 및 관련된 현상들을, 즉 The existence and identity of Spirits as God or Angels and the results of performance of power of Spirits as God or Angels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로 말을 하지만 성경에 등장한 사람 또는 다른 사람 또는 나의 영혼이나 정신력이나 의지력이나 육체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고 사람 스스로가 각자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알 수가 있다.

 

성경을 읽어보아도 추정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동양 서양의 문제도 아니고 고금의 문제도 아니고 사람과 하나님의 세계와의, 즉 신의 세계와의, 관계가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과 대화를 하고 동행을 할 때 빛과 같은 광채를 볼 수도 있으니 빛이라고 표현이 되기도 하고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같이 말이 있으니 말씀이라고 표현이 되기고 하고 불꽃이나 바람의 움직임이나 비둘기의 형상 등의 현상들도 이 세상의 사람에게 또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과 천사님들, 즉 신들,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을, 존재를 말을 하고자 할 때 하나님과 천사님들이, 즉 신들이,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을 사람에게 알리는 현상들에 불과하다.

 

그러면 지금 현재 하나님과 천사님들이, 즉 신들이,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이, 이 세상에 존재를 하고 있는 것과 하나님과 천사님들이, 즉 신들이,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이, 이 세상에 나타났을 때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람의 지식과 능력으로 만든 약물로, 또는 천지를 창조했다고 하는 하나님이 창조한 독초 등으로, 사람의 육체를 죽이고 난 후 그 결과로서 사람의 육체의 영생을 확인하는 것과 같은 희귀한 범죄 조직의 범죄 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 종교적인 배경은 사람의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즉,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에서 모세와 예수를 거치고 사도 요한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에게 또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난 현상들은 사람이란 존재론적인 본질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고 하나님과 천사님들이, 즉 신들이,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이, 동행을 하는 과정 중 그 능력에 의해서 나타나는 것이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브라함에서 모세와 예수를 거치고 사도 요한에 이르기까지의 사람들뿐이고 하나님과 천사님들의, 즉 신들의, 즉 Spirits as God or Angels의, 능력의 결과 뿐이니 사람들이 혼란을 하게 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8-11-18

JUNGHEEDEUK,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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