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Pictured Issue)

보기에 따라서, 조선일보,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6. 21. 22:47

 

조선일보, 만평, 20070425, 보기에 따라서,

 

사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다른 사람들이 존재를 하지 않는 순수하게 개인 대 개인의 일로만 보면 반응이 천차만별이겠지만 정말 정감 넘치는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라고 표현을 할까? 경우가 어떻든 가족 간의 가족애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표현을 한' 말 그대로 인정이 넘치는 모습이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면 그 성공을 기반으로 가족이나 친척이 문어발식으로 계속 성장을 하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만 말을 하자면 인정과 정감이 넘치는 사회라고 말을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분야가 경제 분야이든 정치 분야이든 종교 분야이든 등등 어느 곳이든 그와 같이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분야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던 어떻게How 하는 것이, 특히 연이나 끈이나 맥 등을 사람 사는 사회의 중요 구성 원리로 생각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단순히 소유나 권력의 차원이 아니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정과 정감이 위와 같은 형태로 넘치게 되면 다수가 사는 곳에서는 어느 분야에서 무엇을 하던지 불평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이나 특성을 바탕으로 한 동등한 경쟁이나 삶의 추구가 되지가 못하고 경쟁이나 삶을 추구를 할 기회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그래서 항구적인 불평등의 재생산이 존재를 하게 되는 사회가 된다. 지금도 앞의 모습이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를 하고 있고 이제는 굳히기 작업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도, 그것도 북한의 일당과 나머지 99%, 또는 99.9%라는 사회를 모방하는 모습도, 그것도 한반도의 정통성이니 뭐니 하는 조선시대의 발상에서도 찾기 힘든 씽크로 전략 전술을 짜는 모습까지도, 나타나 보이는 것 같다. 사회의 모든 활동 분야가 자본력이 없으면, 더불어 각종 네트워크가 없으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능력이나 재능이 뛰어 나도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을, 그것도 약 20년 전 또는 그 이전부터 끊임 없이 기획되고 계획된 현실을 그러나 누군가가 있어서 기획되고 계획된 것은 아닐 것이고 보다 더, 조금 더, 영리와 이윤을 추구를 하고 하고자 자신의 삶을 오히려 축내면서까지 경쟁과 경쟁을 하는 개개인의 활동들이 모여서 나타난 현실을, 바탕으로 그와 같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앞에 대한 가장 쉬운 예로서 말을 하면, 3불 정책이(자세한 것은 다른 글 참조) 정책의 하나로 논의가 되었듯이 교육 분야에 대한 것도 그 한 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각 대학교 별로 본고사를 시행을 하는 것을 비롯하여 3불 정책 폐지를 주장을 할 수가 있겠지만 본고사에 대한 것만 간단히 말을 하면 본고사를 시행하기 이전에 먼저 선행 되어야 할 것이 각 학교 교육과 방송 교육만으로도 대한민국에서의 본고사는 최소한 카바Cover가 될 수 있어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본고사를 시행을 하게 되면 현재의 모습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로 이어지게 되어 결국 개개인의 능력이나 재능이 개개인마다 차이가 나고 아주 뛰어난 개개인이 존재를 한다고 해도 개개인의 차이가 모두 하늘과 땅의 차이로 나는 것이 아닌 상태에서 개개인의 능력이나 재능과 전혀 관련 없이 고등 교육의 기회 자체가 없어지게 될 지도 모르는 그래서 교육에 대한 것마저 완전한 불평등의 모습으로 남게 되거나 아니면 현재와 같은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의 모습이 없이 재력이나 권력이나 세력에 의해서 또는 공동체란 미명으로 삶이 예속이 되게 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을 말을 하는 것이다. 만약에 본고사가 시행이 되고 학교 교육 및 교육 방송과 같은 곳에서 본고사를 충분하게 카바Cover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현재의 대다수의 급여 소득자 및 영세한 자영업자의 경우에는 본고사로 발생할 사교육비를 감당할, 특히나 사회의 경제 활동들이 점차 대형화 자금력화 되어 가는 곳을 고려를 하고 현실의 물가를 감안을 하면 자녀들의 천문학적인 학비를 감당할, 여력이 거의 없을 것이다.

 

다수가 사는 사회에서는 특정한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란 것이 있는데 그 제도가 제대로 유지가 되지 않으면 그래서 소유나 권력에 의해서 임의 대로 제도가 운용이 되게 되면 개인적으로 보면 인정과 정감이 넘치는 사회로 보일지 모르지만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사회란 면에서는 보면 늘 부정과 비리가, 부정과 비리가 그 모습 자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과 사람의 얽히고 엮인 모습이, 존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만나고 일과 일을 하면 할수록 단지 사람의 물증이나 증거로 말을 하기가 힘들 뿐이지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서로 간에 투명하고 담백한 모습은 사라지고 비린 내와 구린 내와 지린 내에 절어 사는 사회의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가상이 아니고 실제로 그와 같은 사례들을 역사 속에서도 숱하게 찾을 수 있을 것이고 현실 속의 이곳 저곳에서 개업과 폐업과 전업을 하는 모습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어느 누구나 마찬가지로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각자가 알지 못할 어딘가의 나사의 톱니 바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보다 규모가 큰 블랙홀과 같은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위와 같은 모습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가 또 그 본래의 목적이나 본질을 잃어 버리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 사람의 제도에 구속이 되거나 속박이 되는 모습도 우리가 관료주의란 말을 사용을 하듯이 존재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경우와는 또 다르게 새로운 송충이파나 찬물파가 형성이 되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모습도 견제를 하고자 제도 밖의 제도를 두게 되니 어떤 모습들까지, 즉 어던 현상들까지, 발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나의 10,000페이지 20,000페이지에 달하는 글로서 말을 하고 있는 신앙과 관련된 나의 모든 언행들을 몇몇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의사 소통의 방식으로, 즉 내가 어릴 때 심심하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으로 아메리카를 아이(아)와 개(메리)와 자동차(카)가 많은 곳이라고 말을 했듯이 나아가 우리 나라 말 중 개와 차가 들어가는 말을 물어서 개차반이라는 말로 우리 나라도 향후 개와 차가 반반이 되는 나라가 될 것이란 말을 했듯이 나아가 나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불량한 심보를 가졌다는 말을 줄어 불심으로 표현을 하고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자세로 Oh My God하는 마음이라는 즉 십계명에 따라서 열심히 살고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라는 의미에서 Oh My God하는 마음을 줄여서 오심이라는 말로 표현을 했듯이 등등, 마치 정치 행위와 연관이 된 것처럼 바꾸고 그리고 몇몇 정책들에 대한 나의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마치 종교 행위와 연관이 된 것처럼 바꾸는 모습들이, 즉 예로서 말을 하면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알 수 없는 다른 공간에서 들려 왔듯이 3불을 찬성하면 불교에 대해서 내가 말을 하는 것처럼 그리고 3불 정책을 반대를 하면 내가 다른 종교를 말을 하는 것처럼 나아가 3불 정책에 대해서 기본 입장은 반대를 하지만 3불 정책 폐지 이전에 사전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면 현재는 불교를 그리고 향후에는 여타의 종교를 말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시나리오를 짠 모습들이, 마치 존재를 하는 것처럼 이곳 저곳에서 대화를 하는 듯한 모습으로 암시를 하고자 하는 언행들이 나타나 보인다. 나의 종교 관련 언행들을 정치적인 언행들로 해석을 하는 전자의 모습은 왜, 무엇 때문에, 또는 무엇을 위해서, 인지 몰라도 나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나에게 발생을 하고 있고 또 존재를 하고 있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성경에서 말을 하는 존재 및 세계,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 불리는 존재에, 대한 것을 그래서 10,000페이지 및 20,000페이지에 걸쳐서 말을 하고 있는 사실을 부정을 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것도 정책 관련 몇몇 경우들에 대한 말들은 마치 종교와 관련된 언행들인 것처럼 상황을 만든 것은 나의 모든 종교적인 언행들의 자신들의 의도대로, 즉 자신들이 나에게 나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발생한 상황들이 자신들이 인위적으로 연출을 한 것처럼, 만들기 위한 것에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들려 왔듯이 기인을 할 것이다. 그것도 내가 언행을 할 것에 대한 모든 것이 이미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후, 즉 어릴 때부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을 한 결과들에 바탕을 하여 내가 선택할 언행들을 일정 정도 추정을 한 것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을 한 후, 마치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고 공정한 운명의 방식으로 간주하는 복궐복으로 결정을 하는 경우처럼 말을 하여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어디선가 다른 공간에서 들려 왔듯이 앞과 같은 언행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1986도 이후, 또는 1965년도 이후 약 3-40년에 걸쳐서, 나에게 발생을 하고 있는 일상적이지 못한 경우들의 목적은 특히나 사람과 사람의 보이지 않는 조직적인 언행들에 의해서 고립이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들의 목적은 나를 최소한 5년, 10년, 또는 심지어 40년 동안을, 그 기간 동안 나의 삶이 어떻게 되던 우리 사회의 실제적인 현실의 정치 활동 영역에서 제외를 하여 두고 가상의 세계에서만 머물게 하는 것일 것이고 그 근원적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믿거나 말거나 믿으면 복 받을 경우들이나 현상들을, 즉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발생을 하고 있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의 경우들이나 현상들 및 내 안의 나에 대한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거나 마치 누군가의 연출에 의한 가상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래서 나의 어릴 때에 천기 누설처럼 말을 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지금 시기에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 의한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 및 본질이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영(Spirit)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 및 사실만 없애면 성경 속 사실들이 마치 과거 속의 역사적 사실들로만 존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이후 더 이상의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에 대한 증거가 없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 나아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성경이나 기독교가 마치 사람의 사회 활동의 하나의 산물인 것처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더불어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본질이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고 있는 영(Spirit)인 것에 대한 증거 보다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님과 조셉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이용하여 몇몇 과거 및 미래의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신의 존재인 것처럼 군림을 하기 위해서 특히 성경에 있는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만난 사람이나 그 세계의 영이 거하고 있는 사람을 신이라고 말을 하는 사실을 바탕으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는 것이니 성령을 받는 것이니 하는 말로서 몇몇 과거 및 미래의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신의 존재인 것처럼 군림을 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기만하고자 하는 것에 기인을 할 것일 것이다. 신앙인으로서는 믿음이나 신앙심을 떠나서 그런 행위의 결과가 가져올 결과들이 실로 위험 천만한 일일 것이다. 비록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만난 사람이나 그 세계의 영이 거하고 있는 사람을 신이라고 말을 하지만 왜 성경에 등장을 하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 및 선지자님들 및 그리스도 예수님 및 그의 제자들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형상을 만들고 그리는 것에 대해서 일체 언급을 하지 않고 오직 십계명에 대해서만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본질이 영인 것에 대해서만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와 사람의 사후 세계와 구원에 대한 것만을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깊이 생각을 해 볼 일이다. 실제로 현실과 종교에 대한 증거를 병행을 하고 싶으면 과거 유태인 사회처럼 그리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몇몇 국가의 왕과 대통령의 관계처럼 제사장의 직분이나 제단을 교황청처럼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지 특정한 개인을, 특히 목회자를, 성경의 이런 말 저런 말로 신격화 하는 것은 그래서 우상화 하는 것은 그 결과 과거 전제적 절대 군주가 부러워서 사후 세계에서 다시 환생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라면 오히려 성경과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가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그릇 되이 살게 하거나 이끄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 및 그 세계 및 사람의 사후에 대한 것이 기적이든 능력이든 사람의 이성적인 사고에 의한 것이든 증거가 되고 그 결과 말 그대로 다수가 믿게 되어 앞의 경우와 같은 사회 구성체나 정치 제도 등을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 시간이 걸리는 중차대한 문제일 것이며 또 만약의 경우로서 앞과 뒤가 바뀐 것이라고 한다면, 즉 과거의 몇몇 공산주의 국가처럼 제도를 만들어 두고 그 속에서 사람을 이렇게 자르고 저렇게 침묵을 시켜 적응시키는 것이라면, 또는 현실 속의 평등 교육처럼 평등이란 말로 모든 사람을 동일한 교육 수준 의식 수준으로 마비를 시키는 것이라면 그래서 세력이나 자본력에 의해서 사람 및 사회가 지배를 받게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면 그 결과 1:99라는 극단의 양극화 사회나 마치 과거 신분 제도와 같은 생활 수준의 대물림이 되는 사회라고 한다면,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 아닐까 싶다.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 및 그 세계 및 사람의 사후에 대한 것을 기적이든 능력이든 사람의 이성적인 사고에 의한 것이든 증거를 하는 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짓지 않고 창조된 대로 각자의 재능이나 능력이나 특성에 맞게 스스로의 삶을 창조를 하며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에 있는 것이지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에 종속이 되는 것에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다른 글들 및 이 글에서 언급을 한 사유로 인하여 지금까지의 나의 삶에서 우리 사회의 정치권의 하늘이라고 하는 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몇 번의 대선 관련 기회들을 다수니 우리 것이니 하는 위장된 말로서 나를 묶어 두고 가로채고자 하는 것에서 기인을 한 것일 것이다. 왜 애국 애족을 하고 우리 것을 찾고 동질성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왜 종교를 가지고 학문을 배우고 기술을 개발하고 의학과 과학을 발전시키는지 그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즉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위한 모든 언행들이 언제부터인지 단어와 말을 위해서 충성 봉사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에도 내가 말을 하고자 한 사실은 별로 이해 관계나 이득 관계가 없으니 내가 나이 마흔이 되어서 내 스스로 무엇인가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제쳐두고, 물론 내가 시간을 준 것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성경(The Bible)에 대해서 마치 자신들이 가르쳐 준 것처럼 상황과 말을 하고자 한 몇몇 사람들의, 그러나 실제로는 먼 훗날 내가 나의 기억을 되찾게 하기 위한 배려가 있었겠지만, 현상을 두고서 독서백편의자현이란 말이 완전히 잘 못 이해가 되어, 즉 독서백편의자현의 효과가 어중간하게 효과가 나타나, 세뇌가 된 듯한, 물론 세뇌란 말을 내가 나의 부모님에게 사람과 관련된 이런 저런 상황을 설명을 한 후 들은 말이지만, 모습이라고 말을 했듯이 그래서 오히려 성경(The Bible)에서 말을 하고자 하는 사실을 자칫 잘못하면 망칠 수도 있을 것이란 말을 했듯이 더불어 향후 나를 곤혹스럽게 할 모습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듯이 나아가 스님들이 알고 있는 부처님이 스님과 마찬가지의 사람에 불과한 것이니 그리고 사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의 사후의 길을 간 것이니 특히 현재의 스님이 과거의 부처님보다 많이 알고 있으니 부처님 부처님 하고 염불을 하는 것이 더 우스운 현상이기도 하고 이치에도 전혀 맞지가 않으니 그리고 수도나 고행은 살아 있는 동안 평생을 해도 그 끝이 없는 것이니 살아 생전 틈나는 대로 행하고 매일 목탁 두드리며 염불을 하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 것이 그래서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이를 조금이라도 돕는 것이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라는 인생을 제대로 아는 것이라는 등등의 말들을 하기도 했듯이 근래의 이곳 저곳에는 단어와 말을 위해서 삶을 헌신하는 그래서 이웃과 이웃의 관계 마저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마저 해치는 모습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 불리는 존재, 및 그 존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말을 하고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의 현실로 인하여 내가 나의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던 끝에 대한민국이 대통령이 되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로마 교황청의 교황이 되고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 여기 저기에 말을 하고 다니고 그 이후에 나의 고향을 찾는 사람들과 내가 대화를 하는 것을 나의 고향의 하늘에 있던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지켜 본 결과, 즉 다른 사람들의 머리 속이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나의 고향의 하늘에 있던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읽어 본 결과, 나의 고향의 하늘에 있던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나에게 대통령이 되는 것 및 교황이 되는 것 및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 줄 것을 말을 한 후 내가 사람들로부터 확인을 한 나의 두뇌 속이나 마음 속에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성경에서 있었던 방법들이나 여타의 방법들을 찾게 된 현상들이 믿거나 말거나 믿으면 복 받을 현실로 실제로 나타났듯이 그리고 내가 성장을 하는 과정 중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났듯이 비록 어린 아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것이라고 할지라도 부족하면 부족 한대로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고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각종의 지식이나 사실이나 생활을 바탕으로 사람 개개인의 자신의 삶을 마치 천지를 창조를 하듯이 만들어가고 가꾸어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이 발견 된 또는 알게 된 사실을 없애거나 은폐를 하거나 아니면 지금 내가 곤란에 처하게 된 주된 원인들이 되었듯이 나와 말을 할 때 내가 말을 한 것에 대한 반응과는 달리 내가 한 말들이나 나에게 있었던 현상들을 몇몇 사람들의 정치 경제 종교 등의 활동 모임에서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고자 하는 현상들로 나타나듯이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위한 모든 언행들이 언제부터인지 단어와 말을 위해서, 또는 조직을 위해서, 충성 봉사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왜 애국 애족을 하고 우리 것을 찾고 동질성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왜 종교를 가지고 학문을 배우고 기술을 개발하고 의학과 과학을 발전시키는지 그 근본적인 목적을 상실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어릴 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든 미국의 대통령이든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한 사실도 있고 나의 정치 방식이나 정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고 기간의 문제이겠지만 독재 아닌 독재를 하게 될 것이란 말을 한 사실도 있지만 또한 다수가 사는 사회라고 말을 하고 사람 사는 사회라고 말을 하듯이 나 홀로 사는 사회가 아니니 사람 사는 사회에서 일을 하는 방식을 찾을 것이지만 대한민국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고 선거에 의해서 국민의 투표로 국회의원이 대통령이 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이곳 저곳에서 비록 모양이고 외형이고 형식인지 몰라도 탈 권위주의를 시도를 하고 있듯이 점차 우리 사회가 폐쇄주의 사회가 아니라 열린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정치 관련 앞의 사실들에 대해서 걱정을 할 것이 도대체 무엇이 있기에 다수가 사는 사회니 사람 사는 사회니 또는 지금까지 나의 글들 속에서 실제 현실을 언급을 하는 과정 중에 언급된 말들로 다수가 조직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용한 언행들을 나타내 보일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다른 글에서 언급을 한 이유 있는 사유로, 그리고 위와 같이 또는 10,000페이지에 20,000페이에 달하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로, 어릴 때 예수란 사람을 찾다가 예수 그리스도란 말을 듣고서 예 수, 예 그, 예 리, 예 스, 예 도, 예 수그, 예 수리, 예 수스, 예 수도 등등,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란 말을 듣고 그 예수, 리 예수, 스 예수, 도 예수 등등, 이런 저런 이름을 만들어 보고 더불어 그 동네는, 그 나라는, 어딘지 몰라도 예수가 많아서 좋겠다는 그래서 복 받겠다는 말을 비롯하여 이런 말 저런 말을 한 것이 무슨 의미일까? 나아가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님인지 그리스도 예수님인지 몰라도 예수님 다르고 나 다르고 그래서 예수님 죽고 나서 하늘에 갈 때 다르고 내가 만약에 죽게 되면 그 경우에 따라서 하늘에 갈 때 모습 다를 것이라는 말도 했듯이 나아가 실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 사는 사회의 사람들의 표현으로 표현을 하자면 나의 것이기도 하고 내 안의 나의 것이기도 하고 부모님의 것이기도 하지만 부모님에게 내 안의 나가 아닌 부모님의 것은 먼 훗날에 죽고 나면 사후에 내가 알아서 또는 내 안의 나의 동료들이 알아서 물론 부모님은 내 안의 나의 동료들이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는 말을 순수하게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말을 했듯이, (물론 이 말로 부모님에게 혼이 난 것이지만 그래서 궁색한 변명을 하기도 했지만 또 나의 것이니 ‘‘내 안의 나의 것이니 부모님의 것이니 내 안의 나동료란 말 등이 우리 사회의 정치 현실에 특히 부모님과 관계된 정치 현실에 이렇게 저렇게 선의의 뜻으로 그러나 실제가 그렇게 진행이 되지 못하게 이용이 된 그래서 어느 부모님이나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현실로 이용이 되어 나타나게 된 것이 200108의 그 날에 들려 왔듯이 있었지 않는가 싶지만 여하튼 이런 저런 말을 했듯이), 나아가 추가로 이런 저런 다른 말들을 했듯이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듯이 또 어릴 때 이런 저런 현상들이 있었던 것이 믿음이 있던 없던 신앙이 있던 없던 무엇을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학교가, 교육이, 국어 교육이 죽었다고 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다른 예로서 누구나 겪었을 것이듯이 이미 누군가가 연출을 한 상황에 나타나면 상황 설정을 하여 재채기를 하게 만든 후 그 재채기를 하는 것을 마치 천식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정치 활동이 부적한 것처럼 말을 만들고 그래서 나에게 어릴 때부터 발생하고 있는 현상들을 바탕으로 특정한 영역과 누군가의 임의대로 연관을 지어서 향후 나의 나이 마흔 이후에는 마치 음악이나 그림이나 연기 분야에서 활동을 하게 될 것처럼 말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는 누군가가 어디선가로부터 무엇인가 대가나 혜택을 챙기는 듯한 경우가 만들어지듯이 또는 이미 연기 연습이나 배역 연습에 대해서 이미 언급을 했듯이 내가 누군가에 의해서 연출된 상황에 나타나면 내가 나타나기 전이나 나타난 후에 사건 사고를, 특히 여자 관련 사건 사고를, 친 것을 마치 내가 그런 것처럼, 그러나 실제로 심성이니 신앙심이니 하는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근골의 특성에서 의해서 발생을 할 수 없는 사건 사고를 친 것처럼, 말들만 이곳 저곳에서 무성하게 만들어지듯이 그러나 지금 현재의 현실에는 그런 연출된 공간에서 내가 하지도 않은, 즉 나 외의 누군가가 저지른, 언행들을 마치 내가 한 것처럼 그러나 내가 기억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들을 만들고 있는 모습들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 보인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는 곳에서 지하철을 타는 곳에서 도서관을 가는 길에서 등등 곳곳에서 그런 상황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추리를 해 보면 나로부터 나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 말을 해주고자 하는 듯한 언행에 동원 되는 학생들이나 사람들도 실제로 나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지인으로 알고 있는 누군가가 마치 나인 것처럼 말을 한 것을 바탕으로 또는 나의 얼굴을 상세히 확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뜻 본 모습을 바탕으로 또는 핸드폰이나 전화 등 목소리로만 마치 나인 것처럼 확인을 한 상태에서 등등 오래 전에 얼떨결에 발생을 한 사건 사고들을 두고서 나에게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니 피해자가 되는 셈일 것이다. 내가 다니는 곳마다 나의 주변을 둘러 보면 마치 누군가와 닮은 듯한 모습들이 많이 있고 내가 그 동안 살아 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도 나와의 만남 자체가 의도된 것인지 몰라도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제법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을 만들고 일을 만드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생을 하게 된 것으로서 전후 사정을 모르는 피해자들 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지 모르는 오해와 오해의 연속의 상태에 있게 되는 셈이다. 

 

나의 기나긴 글 속에서 그림에 대한 말이 있으면 누군가 화가의 모습이 나타나 보이고 컴퓨터에 대한 단어가 있으면 컴퓨터 관련자가 나타나 보이고 등등의 현상들이 나타나 보인다. 글의 내용은 관심이 없고 나의 현재 처지는 관심이 없고 그리고 내가 할 일에도 관심은 없고 하나로란 말로 한 단어만 눈에 나타나 보이는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다수가 조직적으로 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저희들 임의대로 이렇게 저렇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상황 판단도, 범죄 의식도, 결여된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TEN Production 영화시나리오 작성 중. 20070425.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