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Religion)와 사명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5. 11. 18:20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은,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점점 가열차게 되어 가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트럭이 비탈길을 잘 달리는 것은 사람의 인심이나 마음이나 삶의 방식이 바뀐 것 때문도 아니고 제도가 바뀐 것 때문도 아니고 트럭의 엔진 파워가 좋아졌으니 그렇지 뭐 달리 변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 과학 기술의 발전, 연구원의 기술 개발의 노력, 탓이 아닐까요?


비판이나 비난이 아니고 먹고 살기가 힘드니 변하고 싶어도 변할 수 있는 것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정치가 도입이 된지도 60년인데 누군가가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방법에는 내가 어릴 때나, 그래서 '나만의 방법'으로 할 것이라고 했듯이,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만의 방법'이라고 말을 한 후 이렇게 인터넷을 이용하여 글을 쓰거나 정보를 얻거나 언론의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하면 그에 따라서 그리고 왜 무엇 때문에 그런 글들이 쓰여지고 있는가 하는 것 등에는 하등의 관심도 없고 단지 그 내용 중 어디 무엇과 연관이 되는 것이 있으면 또 그 내용에 따라서 제가 종교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기독교와 관련이 되면 그에 따라서 제가 만나거나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이면 그에 따라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어디이면 그에 따라서 이곳 저곳에 다릴 때 교통 수단이 무엇이면 그에 따라서 심지어 대선 출마에 필요한 기간을 말을 하면 그에 따라서 등등 마치 나의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대한민국에서의 정치 활동은 저희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그런데 그렇게 출마할 대선 시기가 언제이고 정치 활동을 할 지역이 어디이고 어느 곳과 이해 관계가 연결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말을 하면 매일 같이 잠만 자거나 졸고 있어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처럼 조직적인 행위들이, 즉 결과론적으로는 앞과 같은 행동에 의해서 나의 활동 자체가 방해 아닌 방해를 받게 되고 나아가 범죄가 될 수도 있는 행위들이, 발생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들려 왔듯이 나의 정치 활동 준비 기간을, 즉 대선 출마 준비 기간을, 1년이니 6개월이니 3개월이니 심지어 하루 전 또는 하루 만이니 하고 말을 하는 것이 어디선가 알지 못할 곳에서 들려 왔듯이 어릴 때 및 1986년도 중반에 우리 사회의 정치, 종교, 및 경제 활동 등과 관련 말들이 나를 통해서 언급이 된 후 어릴 때부터 그러했듯이 나를 둘러 싸고 나의 존재 자체를 없이 하거나 사회적인 식물 인간과 같이 만들고자 하거나 순장이니 뭐니 하는 말로 사회적으로 매장을 하고자 하는 일들이 종교를 비롯하여 숱한 명분들로 심지어 대한민국에 사는 것 외에 연관이 없고 오히려 정치 및 종교 및 여타의 이해 관계가 상반이 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사해 동포란 말로서 나아가 상대방에 대한 일 점 이해의 마음도 없이 단지 서양이니 외국이니 하는 말에 과민 반응 걸린 듯이 성경(The Bible)에서 말을 하는 사람의 창조성을 비꼬고 외모 및 여타의 것으로 나와 철전지 원수니 뭐니 하는 말로,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군가에게 철저히 기만과 사기와 농락을 당한 경우이겠지만, 마치 증오와 원한이 맺힌 듯이 부모 형제니 친척이니 친구니 동료니 지인이니 하는 허위의 명분들로 나의 정치 활동 및 종교 활동 및 삶 자체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임의대로 결정을 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조직적으로 말들을 만들어서 사회 활동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게 어렵게 하는 일들이 나의 나이 마흔이 되는 순간까지 벌어질 만큼 벌어지고 그것도 부족해서 인심 후하게 덤으로 서울시와 수원시의 도서관에서 집중적으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최근의 몇 개월 동안에도 이곳 저곳에서 앞과 같은 방식들로 계속적으로 말들이 말들을 만들고 또 새로이 만들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대한민국에서는 정치를 하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변한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저에게는 나타나 보이는 것 같습니다.


몇 시간에 걸쳐서 글을 쓴 것이 컴퓨터나 인터넷이 이상 반을 일으켜 그것도 반복적으로 이상 반응을 일으켜 파일이 지워지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말을 해도, USB가 고장이 나게 된 것을 말을 해도, 그것도 이미 알고 있듯이 짜고 치는 고스톱의 경우와 같이 발생을 해도,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물론 확증을 만들 수 없으니 상황만 가지고 사실대로만 말을 해도 대화 내용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응대의 말들이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우연찮게 있을 수 있고 우리 사회의 풍습의 하나일 수도 있지만 골백번을 말을 했듯이 나 자신도 대한민국에서만 만 41년을 살고 있으니 그렇게만 말을 하기에는 발생을 하는 경우의 수가 특히 사람들의 반응이 나아가 상황에 따른 사람들의 말이나 표현이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카투사KATUSA로 군 복무를 했고 제가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종교에 대해서 말을 하는 동료가 있어서 서로 성경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자 하는 친구도 있었으나 성경의 내용을 믿고 있으니 비록 구체적인 미주알고주알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으로 대화가 끝이 나고 또 다른 종교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하는 동료가 있어도 각자의 종교가 있으니 종교가 확인이 되면 서로 간에 대화만 할 뿐인데 다른 말은 전혀 없이 카투사KATUSA란 말만 가지고 마치 종교에 관한 말의 기원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한마디 말을 하면서 지나가는 경우도 발생을 합니다. 이미 글을 쓴 것이 있으니 몸 소 말을 하기 위해서 이곳 저곳에 나타날 정도면 읽어 볼 수도 있을 것인데 다른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카투사KATUSA란 단어로만 또 정치 행위와 관련된 무엇이 있는지 무엇인가 말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우리 사회서는 정치를 하는지 몰라도 어릴 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한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저에게는 나타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류사적인 차원에서, 나아가 개인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본고사 제도를 도입하려면 무엇이 제일 우선일까요? 현재 2-30명도 되는 학생 수의 학급에서 및 최소한 방송교육을 통해서라도 대한민국에서의 본고사는, 물론 서울대학교의 경우까지, 해결이 될 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적 차원의 결단이 아니라 그로 인해 국가가 오히려 교육을 시행하는 목적을 상실할 정도로 빈익빈 부익부 또는 경제적 차별화 또는 구조적 계층화 또는 초 기형적 양극화 등의 모습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면 그것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때의 일이고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고 현실 파악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이제는 시스템에 맡겨 두고 조직의 힘에 밀리고 자본의 힘에 실려서, 그렇다고 자본을 비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자본에 대해서는 그 자본과 연결된 사람으로부터 부과된 조건부만 없다고 한다면 그냥 자본으로만 볼 것이지 달리 보고자 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댈 이렇게 저렇게 무엇인가 건설을 하고 거래를 하고 하는 것이 대세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혹시 시스템 경영이니 아니니? 물질이니 아니니? 자본이니 아니니? 하는 식으로 페인트 칠 당하기에만 바쁜 시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자기 그 때 그 때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색깔이 무엇인지 몰라서 낙동강 오리 알과 같이 존재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화가가 제일 많은 한반도에서 조금은 우스운 모습이 아닐까 싶지만 저에게는 제가 제 말을 제대로 표현을 할 수 없던 약 3-40년 전의 어린 시절에 말 한마디 표현 하나에, 특히 나의 경험 및 체험에 바탕을 한 말과 관련하여,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종교 또는 다른 국가 등과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된다고 시달리던 것이나 만 41년을 산 지금 비록 부족하지만 어설프게나마 제가 제 말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제가 제 말을 하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로마 교황청의 교황과 돈에 대한 말을 하니 가상의 세계니 작은 정부니 하는 말로서 대통령이나 교황에 대해서 말을 하고 그래서 마치 제가 가상의 세계니 작은 정부니 하는 곳에서 대통령이나 교황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역할을 뺏고자 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에 대한 응당한 절차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심지어 제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말을 하는 것처럼 상황이 빙글빙글 돌고 말들이 빙글 빙글 돌고 그러나 이해 관계가 다르다는 말로 어느 곳에서도 확인이 되지 않게끔 상황이나 말들이 빙글 빙글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으로, 어떻게, 우리 사회서는 정치를 하는지 몰라도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거의 없는 것처럼 그리고 말을 하기도 역시나 힘든 것처럼 저에게는 나타나 보이는 것 같습니다. 수 십 년의 삶인데 무엇 때문에 왜 사는 것인지 아리송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TEN. PRODUCTION. THE SCENARIO OF FILM. 20070427.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