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환영과 동영상과 영의 존재 및 그 능력 02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2. 24. 00:15

환영과 동영상과 영의 존재 및 그 능력 02

 

아래의 경우는 믿거나 말거나 저의 과거에 있었던 경우로서 다른 글들에서 표현을 한 몇몇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당사자들은 직접적으로 전혀 관련이 없을 것이니 혹시나 연기자들이나 제작자들에게 일말의 오해나 피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KBS 드라마(1999년) 중 ‘초대’란 드라마가 있다. 3명의 여자 Talents 이영애와 김민정과 추상미와 3명의 남자 Talents 이창훈과 김상중과 이민우가 등장을 하는 드라마이다. 개성적인 드라마이다. 특히 부분적으로 보면 더 개성적인 드라마이다. 그런데 나의 사견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장면과 장면이 그리고 내용과 내용이 그렇게, 썩,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못한 점이 조금은 아쉬워 보이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드라마 평이 아니다. 그 속의 몇몇 장면들 중에서 며칠 전 식사 중에 본 덕수궁에서 있었던 장면이 특히 나의 과거와 연관이 되어 생각이 나는 장면이기도 하여 언급을 하게 된다.

 

다른 글에서 언급을 한 것처럼 어릴 때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와, 즉 영의 존재와, 즉 신의 존재와,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관련되어 있었던 현상으로서 내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실존함을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의 세계의 방식과 사람의 세계의 방식이 결합된 형태로 증거를 할 수 있기 위해서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내가 나의 고향 사람들로부터 파악한 글을 쓰는 것이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나 여타 예술 분야와 관련된 능력을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즉 영의 존재가, 즉 신의 존재가,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주겠다는 말이 있었으니 그 사실을 전해들은 누군가가 그 사실에 대해서 잘못 이해를 하여 나의 배우로서의 소질이 어느 정도 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그 결과 몇몇 사람들의 아집적인 사고 방식과 일의 방식에 의해서 나의 직장에서의 삶이 거의 파괴가 되었을 때인 나의 나이 마흔 정도 되었을 때 새로운 직업으로 적당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일종의 배우 수업을 하고자 한 것인지 몰라도 나의 입장에서는 대학교 과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덕수궁에 갔다가 전후 사정도 모르고 대본도 모르고 연기 아닌 연기를 하게 된 장면이었다.

 

덕수궁에서 배우 김상경이 배우 김민정과의 사이에서 헤어지지고 배우 이영애와의 사랑의 감정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배우 김민정의 임신 사실로 인하여 갈등을 하고 있는 중 배우 이영애에게 사랑을 고백을 하는 장면에 해당이 된다.

 

덕수궁에서 시간적 여유가 몇 분 있어서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또 이곳저곳을 보면서 친구를 찾고 있는 중이었는데 누군가가 여자 배우가 연기 연습을 하는데 잠시만 상대역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고 내가 연기를 해본적도 없고 전후 사정을 모른다고 하니 그냥 여자 배우의 상대역으로서 정면으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된다고 하여서 잠시 여자의 배우의 상대역을 한 것이었다.

 

연기를 하기 직전 내가 얼핏 거울 속에 비치는 나의 모습을 통해서 본 것은 나의 모습은 아니었으며 아마도 양복을 입은 남자 배우(배우 김상경)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고 또 비몽사몽 거의 무의식중에 나도 모르게 대사를 읊으려고 한 것은 아마도 남자 배우(배우 김상경)가 여자 배우(배우 이영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가 아니었나 싶지만 그 드라마에 대한 시나리오나 그 장면에 대한 명확한 상황적인 지식이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비몽사몽 거의 무의식중에 나도 모르게 그 장면과 관련된 남자 배우의 대사를 읊다가 중도에 그만 두게 된 일이 있었다. 그 사유인 즉 내가 여자 배우를 보고 있으면서 그리고 비몽사몽 거의 무의식중의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여자 배우의 실제 상대역인 것처럼 말을 하고 있는 도중 그 장면과 관련된 정보를 누군가가 옆에서 읊어 준 것인지는 몰라도 나의 의식 속에서 얼핏 지각이 된 것이 남자 배우가 사귀던 여자가 있었는데, 물론 그 당시 현실속의 나의 여자 관계는 누군가의 끊임없는 방해 공작으로 애인이 없는 상태였음, 그 여자가 임신 중이었고 그리고 그 장면이 남자 배우가 임신 중인 여자 배우와 헤어지려고 하는 과정 중에 다른 여자 배우(배우 이영애)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인지 믿음인지 하는 것이 변지 말아 달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비록 누군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식사 중 드라마를 보게 되니 배우 이영애의 분장을 한 여자인 것 같음, 그 당시 마주 보고 있던 여자의 백치미 풍기는 표정이 그리고 특히 그 눈동자가 남자와 여자의 사랑 여부를 떠나서 사귀던 여자가 임신을 한 상태에서 다른 여자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대사가 아닌 것 같아서 대사를 읊는 도중 나도 모르게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둔 장면이었다.

 

드라마 및 드라마의 그 장면과 관련된 전후 상황에 대한 것은 전혀 모르는 있었고 또 나의 상태가 감정이입인지 감정몰입인지 무엇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나의 감정은 드라마 촬영이나 드라마 촬영에 대한 연습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실제로 내가 사귀다가 헤어지려고 하는 여자가 어디선가 임신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 상태에서 다른 여자(배우 이영애)에게 사랑이니 믿음이니 하는 말을 비몽사몽 무의식중에 나도 모르게 읊고 있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내가 사귀던 여자가 없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또 ‘여자가 임신 중인 상황과 무엇인가 맞지가 않다는 생각’과 더불어 특히나 여자 배우가 남자 배우가 과거에 사귀던 여자 배우가 임신 중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백치미를 풍기며 남자 배우가 사랑 고백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를 보니 더더욱 맞지가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서 얼떨결에 읊고 있는 대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라는 말을 예행연습 삼아서 그 자리에 있던 누군지 모를 몇몇 사람들에게 해 준 것이었고 더불어 여자 배우의 상대 배역 연습을 하기 전 내가 거울을 통해서 본 남자 배우의 이미지와 내가 마주 본 상대역의 여자 배우의 이미지에 대해서도 몇 마디 말을 해 주었었다. 그런데 남자 배우의 여자 배우에 대한 사랑 고백 대사를 그만두고 내 앞에 있는 여자 배우를 보니 키를 비롯하여 얼굴의 이미지나 눈동자의 이미지가 내가 비몽사몽 무의식중에 나도 모르게 무엇인가의 대사를 읊을 때의 그 여자의 이미지는 전혀 아니었다는 말도 더불어 해주었던 장면이었다.

 

그 날 그 자리에 있던 누군지 모를 몇몇 사람들의 각각의 목적이 서로 달랐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단 몇 분의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여자 배우의 상대역을 잠시 해준 것이었고 그 중의 누군가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로부터, 내가 글을 쓰는 것이나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나 여타 예술 분야와 관련된 재능을 받았다고 하니 그리고 내가 어릴 때 말을 한 ‘내 안의 나’가 아직도 존재를 한다고 하니 드라마의 그 장면의 전후 사정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그리고 대사도 없이 나의 ‘신성’을, 즉 영의 능력을, 이용한 즉석 연기를 보고자 한 것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뭔가 핀트가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로부터, 영화와 관련된 재능을 받았다고 하면 아마도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표현을 하기 위한 것이니 배우로서의 연기가 아니라 영화의 제작이나 감독이 오히려 더 맞지 않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나도 나의 어릴 때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에 있었고 또 그 날도 서로 간에 제대로 된 의사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순간적으로, 일들이 진행이 된 것이니 아마도 뭔가 핀트가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 날 덕수궁에서의 그 장면과 관련하여 내가 나도 모르는 몇몇 사람들에게 질문을 한 것은 나의 상대 배역으로서 내가 남자 배우의 사랑 고백 대사를 그만 둔 후 나의 눈앞에 보이는 사람 외에 다른 누군가가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비몽사몽 무의식중에 나도 모르게 내가 몇 마디 읊게 된 대사는 누군가가 내 뒤에 숨어서 읊어 준 것인지 더불어 연기 직전 내가 거울을 통해서 비쳐진 모습을 본 것이 나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었으니 혹시나 출연하는 남자 배우가 누군지 하는 것 등을 물었었고 더불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를 통해서 혹시나 연기에 대한 나의 천재성이 있는가를 보고자 한 것이라고 말을 하여서 한 마디 한 것이, ‘연기 분야라서 내가 잘 모르겠지만 연기 자체가 사람의 생각이나 행위의 표출이고 사람의 생각이나 행위의 표출이 상황과 연결이 된 것인데 나의 실제 상황이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과거에 그런 여자 관계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늘의 드라마에 대한 사전 정보나 지식이나 특히 그 장면에 대한 것만이라도 뭔가 아는 것이 있어야 될 것인데 그런 것도 전혀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연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등등 그런데 그 순간의 장면을 통해서 연기의 천재성을 판단 한다는 것은 연기 자체에 대한 생각이나 특히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서 무엇인가 잘못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라는, 말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지전능한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사람의 표현인 것이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은 전혀 아닌 것이고 그것은 사람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와, 즉 신의 존재와,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 또는 그의 천사들과, 동행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또 사람의 몸 안에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의 영이 거하고 있다고 해도 일정 정도는 마찬가지일 것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즉 영이, 즉 신이,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이, 그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면 선택된 사람과 동행을 하는 경우이든 아니면 선택된 사람의 몸 안에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의 영이 거하는 경우이든 선택된 사람을 통해서일 것인데 선택된 사람의 육체적 능력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니 연기의 경우에는 사람의 그런 육체적 한계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으며 특히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이,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존재는 더욱 아니니 더더욱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는 말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외의 성경에 있는 기적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의 표출이지 사람의 육체적 능력의 표출은 아닐 것이고 선택된 사람들과 더불어 그런 기적들이 표출이 되는 것은 비록 기도에 대한 다양한 응답이 있다고 하지만 선택된 사람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일반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눈에 나타나 보이기가 힘들고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듯이 교통을 하기가 힘드니 그런 것이란 말도 하게 된다.

 

만약에 누군가가 연기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받았다고 한다면, 또는 타고난 천부적 재능이 있다고 한다면, 연기를 통해서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남다를 것이며 연기의 달인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또 남다를 것이며 또 비록 상대적인 것이긴 하지만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역이 제한 된 것이 아니고 아마도 여러 배역들을 쉽게 소화를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란 말과 더불어 사람의 여타의 능력이나 재능도, 즉 사람의 천재성의 경우도 분야나 경우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지만 대체로, 비슷할 것이란 말도 하게 된다.

 

더불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과는 말 그대로 다른 존재란 것과 그래서 불교니 유교니 도교니 등등의 경우는 사람으로서 수도를 하고 깨달음을 얻고 득도를 하는 사람의 행위이지 그렇다고 그런 사람의 행위의 결과가 영의 존재나 신의 존재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도 더불어 하게 된다.

 

몇몇 장면들과 유사한 장면들이 더 있었고 그 속에서의 대화들도 있었지만 그리고 나에 대해서 누군가로부터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마귀니 악마니 하는 허위 정보를 듣고 무엇인가 달리 오해를 하여 계속적으로 따라 다니는 사람들도, 여자나 남자나 또는 남과 여가, 있었던 것 같지만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주제와 직접 관련이 된 것은 아닌 것 같아서 그런 현상들만 부가적으로 언급을 하게 된다.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자신의 감정대로 분노대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사람을 영혼이 없는 육체적 존재로만 생각을 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사람을 단세포에서 진화한 존재로 생각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또는 인본주의 사상이나 인간 중심주의 사상이 지극하여 사람을 신격화시키고 싶은데, 또는 부모에 대한 효와 우리 것에 대한 생각이 극진하여 사람을 신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실제로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천사가 존재를 하고 있다고 하니, 그리고 사람이 창조가 되었다고 하니, 실제로 사람이 공산주의를 생각을 하던 사회주의를 생각을 하던 자유민주주의를 생각을 하던 인본주의를 생각을 하던 인간 중심주의를 생각을 하던 신본주의를 생각을 하던 등등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천사의 존재나 세계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지만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천사가 존재를 하고 있다고 하니, 마치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천사 때문에 자신들이 것들이 방해를 받는 것인 양 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천사 천사가 악마나 마귀의 존재로 보일 수도 있듯이 누군가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나 교황이 되고 싶은데 마치 누군가가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농간이나 이간을 당한다고 한다면 이간과 농간을 당한 그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 사람이 비록 표현상의 말이지만 악마나 마귀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 더 간단한 경우로서 한마디 더 말을 하게 되면, 영화 ‘시월애(2000.09.09/우노 필름)’를 보게 되면 - http://megazone.paran.com/ - 배우 전지현과 에니메이션 유학을 하게 된 애인이 여의도에 있는 ‘모닝’이라는 커피 숖에서 1998년 3월 25일 만나는 장면이, 영화 시작 후 1시간 30분 정도 되는 시점, 있다. 그 공간도 대학교 과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장소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개성적인 영화이다. 그런데 나의 사견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장면 속의 행위와 행위가 그리고 내용과 내용이 위의 초대와 같이 그렇게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못한 점이 조금은 아쉬워 보이는 영화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 평은 아니고 위에서 언급된 장면이 나의 과거와 연관이 되어 생각이 나는 장면이기도 하여 언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커피 숖에서 창 밖을 보면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갑자기 자동차 사고가 난다. 그런데 그 거리에서 얼마나 충격적으로 부딪힌 것인지 몰라도 부딪힌 사람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하늘로 치솟는 정도도 놀랄 일이지만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한 번에 엎어진 자세 그대로 떨어진다. 그리고 또 일어나서 걸어간다. 아마도 충격만 크고 출혈만 있었지 다친 곳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정말로 기묘한 일이었다.

 

하도 기묘하여서 일어나서 가볼 엄두도 나지 않고 감탄만 하다가 정신을 차리니 몇몇 사람들이 달려간다. 영화 ‘시월에’에서 영화 배우 이정재가 연출한 장면 그대로인 것 같다. 그 날 실제로 사고가 있었던 것인지 영화 촬영 연습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 촬영 연습이란 말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커피숖에서 나와서 보니 피 자국이 없었다. 여의도란 도시 중심이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정말 신속한 사고 현장과 그 후속 조치였던 장면이었다. 누군지 모를 내 키 정도 되는 남자도 나의 말을 듣고 실제로 영화 촬영이 있었는지 자동차 사고가 있었는지 등 무슨 장면이 있었는지 몇몇 사람들에게 묻는다.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말을 하기로는 이곳에서 있을 영화 촬영 장면에 대한 설명회만 하고 갔단다. 그러면 각자가 틈이 나는 대로 와서 배역 연습을 한 후 정해진 날짜에 와서 실제 촬영을 하는 모양이란다. 영화 산업이 그 만큼 발달이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친구를 기다리다가 또 바람을 맞은 경우인지 얼굴을 내밀지 않기에 카운터에 가서 혹시 메모라도 남긴 것이 있는지 묻는다. 그러니 커피 값 내기 싫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으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전후 사정을 말을 하고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주려고 하니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앉아서 잡담만 하다가 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까 내가 뭐라고 말을 하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에 창 밖을 통해서 본 그 광경을 말을 해주면서 영화 촬영인지 아니면 실제 사고인지 모르겠지만 이 부근의 경찰서나 119에 연락을 해 보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란 말을 한다. 어느 경우나 도로에서의 일이라 사전에 신고를 했을 것이니 두 곳에 연락을 해보면 알 것이란 말을 한다.

 

영화 ‘시월애’를 언급하니 우체통을 비롯하여 몇몇 장면들이 더 생각이 나지만 영화 ‘시월애’의 장면 중 최초에는 배우 전지현이 그리고 그 이후에는 배우 이정재가 거처하는 바닷가 위의 집을 바닷가에서 육지를 보면서 촬영한 장면이, 약간은 환상적인 장면이, 내가 누군가의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차장가로 본 장면이기도 하다. 그 친구가 어디서 본 장면을 생각을 한 것인지, 또는 앞으로 영화를 촬영을 하게 되면 촬영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장면이지, 또는 엄청난 대한민국의 영화 상영 기술로 인하여 달리는 차창 밖의 허공에 그 장면이 보이게 상영을 한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누군가의 차를 타고 가면서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본 장면이기도 하다. 더불어 의기양양한 듯이 몇 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더불어 그 상황과 관련하여 몇 마디 덧붙이는 것도 또한 잊지 않았다. 가끔 있는 일이라 신경 쓸 일도 아니지만 그 때의 나의 상황이 병원가보라는 말도 하기가 귀찮았던 상황이었다. 영화 상영 후 몇 분 정도에 보이는지 장면인지 시간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 조금 안타깝다.

 

영화 관련하여 한 장면을 더 언급을 하면 영화 ‘웰캄투 동막골’이란 영화와 관련된 것이다. 땅 투기를 하기 위해서 어느 지역에 땅을 물색하러 간 것인지는 몰라도 어느 날 갔던 산에서 본 장면이 영화 ‘웰캄투 동막골’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장면들로서 하나는 멀리서 보이는 산골이 폭격에 불길이 치솟는 장면이었고 다른 하나의 장면은 눈 덮인 언덕 위의 하늘에서 갑자기 폭탄 세례가 엄청 쏟아지는 장면이었고 더불어 엄청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 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혹시나 누군가가 알고자 한 불 세례에 대한 장면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발생을 하고 있으면서도 공간이 다른 것인지 차원이 다른 것이 마치 영화 속의 장면처럼 느껴지는 경우였다. 파편이 튀어도 내가 다치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현실의 장면은 아닌 것 같고 하도 신기하여 이곳에 누군가가 영화 촬영 중이거나 또는 영화 상영 중인 모양이라고 구경이라고 하고 가자는 말을 했던 장면이다. 믿거나 말거나!

 

위의 장면들이 누군가가 말을 한 것을 내가 꿈 속에서 본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 내가 환영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어떤 경우에 속할까? 꿈이든 환영이든 그렇게 볼 수 있고 또 그것도 한 두 경우도 아니고 40년을 살아오면서 발생을 한 경우인데 기만을 해도 정도껏 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내가 방바닥에, 강보에, 요람에, 누워서 하루 종일 보낼 시기에 그래서 내 엉덩이 밑에서 물컹거리는 것으로 인하여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에 그래서 언제쯤 엉덩이 밑의 물컹거리는 것을 치워주는가 하고 시간을 보기도 한 시기에 나를 안고서 맡기 싫어하는 겨드랑이 냄새를 억지로 맡게 하여 졸도를 시키고서는 다시 정신 차리게 한다고 두들겨 패기에 나로서는 의사 표시를 한다고 했는데 손을 휘둘렀지만, 아마도 그 때 턱이 내 손에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손의 근육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일이 있었는데 그 때의 그 아주머니도 지금 내가 활동을 하고 있는 공간에 있을 것이지만 나를 알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실이 사람의 영혼이 존재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고 또, 비록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고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다.’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영혼의 교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도 아니고 사람의 인지 방법의 문제가 아닌가 싶으며 그리고 사람의 영혼과 육체와의 교감이나 교류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의 흐름이나 변화나 나이에 따른 생각과 감정의 흐름이나 변화를 살펴보아도 일정 정도는 추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덕수궁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와 차를 타고 가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눈다. 비록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몰라도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즉 오늘의 경우와 같이 연기 연습을 하고자 하는 것이든 무엇이든 직장에서의 약 10년 동안을 비롯하여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과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경기도의 늪인지 충청도의 늪인지 하는 곳에서 내가 늪 위를 나의 고향의 공룡 발자국이 있던 바닷가라고 생각을 하고 그곳 모습을 보면서 걸었을 때의 장면과 관련하여 대화를 나눌 때 아무리 신(God;Spirit)의 존재나 실존에 대한 믿음이 없고 또 아무리 상상력 결핍의 현실주의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자력으로, 즉 학교 수업과 스스로의 공부를 통해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학과에 입학을 한 것이고 또 졸업을 한 것인지 물었듯이 근래에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지는 그리고 어느 정도 그 친구가 관련이 된 것인지는 몰라도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해 몇 마디 말들을 나누었었다.

 

내가 그 당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내가 배우로서의 소질이 있다고 가정을 하고 그 소질을 개발을 하고자 하면 나도 전후 사정을 알고서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연습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면 나의 입장에서 더 재미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더 적극적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 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인데 아무리 타고난 재능을 살피는 것이고 그 과정 중에 적합한 것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직접적으로 도울 수 없고 간접적으로 돕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등 무엇이라고 말을 하고 또 어떤 경우인지는 몰라도 그 당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로서 내가 피상적으로 느끼는 느낌을 말을 하면 일을 하는 방식이, 대한민국에서 사람 대 사람의 일의 방식이 대체로 그러한 것 같았지만, 정말 소모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도 한다.

 

더불어 내가 연기 자체에 타고난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필요한 행동들을 가끔 그려 보았을 때 실제로 연기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말도 한다. 핑계가 아니고 그 순간 몸이 피곤해서도 아니고 정말 미묘한 차이이겠지만 배우로서 연기를 하는데 필요한 행동들을 소화를 하기에 부적절한 것이 많아서 연기를 하게 되더라도 반쪽 연기 밖에 될 수가 없을 것이니 전문적인 직업 영역으로서는 연기 자체가 나에게 그렇게 적당한 것이 아니란 말도 한다. 그 예로서 군복무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만 같이 훈련을 받고 근무를 한 것이 아니라서 같이 대학교를 다닐 때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1984-5년도에 그리고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교에 복학을 한 1989-2001년도에 ‘버들골’이나 ‘4식당 뒤의 공터'에서 과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공을 찰 때 나타나는 현상이나 차이로서 말을 해준다. 더불어 드문 일이었지만 등산을 같이 갔을 때의 경우에 대한 것으로도 간단하게 말을 해준다. 그러니 먼 훗날 나의 나이 60세나 되었을 때 혹시나 영화 감독이나 제작자가 되는 것을 생각을 하면 미리부터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도 필요할 것이란 말이 나오기에 ‘말은 고맙지만 가끔씩 병원에 가보라.’는 말도 또 한다.

 

더불어 그 날 그 순간에만 잠시 기억을 할 수 있게 된 사실로서 1986년도에 내가 군 복무를 위해서 입대를 했을 때 만나게 되었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조선시대의 무형의 유형의 및 종교적인 유물들과 관련하여 나에게 왔던 사람으로부터 언급이 된 충청도의 나의 나이 또래의 'K'라는 사람이 그 친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 친구가 맞는다고 한다면 1986년도의 많고 많은 사람들 및 그 중의 몇몇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리고 여타의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 내가 직접적으로 얼굴을 본 일도 없고 관여를 한 일이 없으니 구체적인 또는 자세한 내막은 전혀 모르지만 그 친구가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인식을 하던 하지를 못하던 나에 대한 배역 자체는 아마도 악역쯤 될 것이란 말을 해 준다. 그렇다고 총·칼을 들고 나에게 찾아오는 그런 악역은 아니고 삶에 대한 침해 정도의,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침해 정도의, 악역일 것이란 말도 해 준다. 그러니 역시 인생의 쓴 맛과 고뇌를 경험하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또 중얼거린다. 더불어 내가 그렇게 말을 해도 그 친구로서는 알기가 힘들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매일 매일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피아를 구분하기가 힘들 것이고 무엇보다도 피아를 구분을 하여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실제 생활에서는 정말 힘든 일이니 1986년도 그 당시 있었던 일들 중에서 나에게 몇몇 부정적인 말들과 일들이 있어서 혹시나 나와 관련된 행동들을 하게 될 때 한번쯤 생각을 해 보라는 의미에서 말을 해 주었다.

 

‘열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이 도둑질 하는 것을 막기가 힘들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마도 그 친구에게나 내 스스로에게나 현실적으로는 공염불이 될 말이었을 것이다.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을 했듯이 매일 같이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매일 같이 공간에서 같이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니 더구나 그 친구가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무엇인가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것도 아니니 어떻게 보면 그런 말 자체가 무의미한 말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 날 그 순간 내가 연기 아닌 연기를 하게 된 것 및 몇 가지 장면들을 보게 된 것과 더불어서 아주 피상적이지만 몇 가지 생각이 나는 것들이 있어서 친구로서 언급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혹시나 위에서 언급이 된 환영이나 텔레파시나 감정이입 등이 실제로 그 때 그 자리에서 가능했었다고 누군가가 일말의 생각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도 누군가의 행위가 매개체가 되어서 그런 것이 가능했다고 일말의 생각이라고 하게 된다면 그런 현상은 이미 다른 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언급을 했듯이 ‘내 안의 나’를 통해서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이, 사람이 만들어 낸 이론상의 존재나 가상의 존재가 아닌 실제로 존재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 행위의 하나이니 달리 오해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더구나 1986년도 이후부터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에 걸쳐서, 길게는 나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약 3-40년 동안에 걸쳐서, 나의 주위에서 발생을 하고 있는 경우들처럼 정치나 경제나 여타 종교적인 이해 관계에 의해서 악용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한 그 사유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다른 글에서 이미 밝혔듯이, 믿거나 말거나, 내가 요람에 있을 시기부터 또는 나의 어릴 때부터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이, 나를 통해서 그리고 내 안의 나를 통해서 그 세계의 능력과 방식으로 그 세계가 존재를 하고 있고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가 존재를 하고 있고 나아가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십계명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 지구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하나 그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의 관습과 신(God;Spirit)의 존재와 종교와 신앙에 대한 사람의 선행지식 등으로 인하여 내가 또는 나를 통해서 또는 ‘내 안의 나’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위를 하고자 하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부처님이나 조상의 넋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자 했던 것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이해를 하거나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나의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생각을 하고 있는 질병 치료나 예언이나 여타의 기적들이라고 하는 방식으로 증거를 하지 못하게 되고 그 대신 ‘내 안의 나’란 존재를 통해서, 1986년도의 경우 및 2001년 8월의 그 날 이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의 경우를 통해서, 향후의 다른 예정된 시기들을 통해서,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글들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는 여타의 경우들을 통해서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이, 실제로 존재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증거를 하기 위한 것의 하나란 것이다.

 

종교와 관련된 것은 비록 3-40년 전부터 나를 또는 ‘내 안의 나’를 통해서 이런 저런 현상들이나 말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와 동일하게 체험을 할 수가 없었고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의를 할 수가 없었던 한계가 있었고,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나의 고향이나 부산시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내가 살았거나 또는 지금까지 내가 학교를 다녔거나 또는 내가 군 복무를 했던 곳들의 누군가에 의해서 또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 속에서 내가 만난 누군가에 의해서 그 때 그 때마다의 종교적 정치적 이해 관계에 나의 말들이 나의 의사와는 전혀 관련 없이 응용을 당하게 되어 이런 저런 유언비어들이 만들어져서 그렇지, 지금까지 나의 글들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는 사실들은 그것이 종교에 관한 것이든 정치에 관한 것이든 여타 사회 관습이나 현상에 관한 것이든 이미 약 3-40년 전부터 계속적으로 있었던 것으로서 지금 시점에서의 종교 논쟁이나 정치 논쟁과 관련된 것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 TEN Production 영화시나리오 작성 중 -

 

2007년 2월 15일

 

정희득

 

추신)

 

지금까지 나의 글들에서 언급된 사람들에 대한 역할들이나 활동들에 대한 나의 말들이 그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은 아니면 여러 번에 걸쳐서 말을 했듯이 내가 우리 사회의 사회 활동 주체의 한 명이다 보니 나의 삶에 대한 기록을 하는 과정 중 언급이 될 수밖에 없었던 점 오히려 양해 바라며, 지금까지의 나의 글들에서 나와 표면적으로 접촉을 하게 된 사람들이 모르는 나와 관련된 이면적 상황과 사실을 묘사를 하고자 마치 비난이나 비판처럼 보인 부분들이 달리 말을 하면 지금까지 나의 삶 속에서 있었던 상황이나 사실을 이렇게 세세하게 글로서 표현을 할 수가 있어서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는 입장이며, 특히 믿거나 말거나 할 사실로서 나의 신체적 현상의 배경은 실제로 나의 고향에서 내가 큰 방에 있을 때 정치적 목적으로 나를 찾아온 사람들과의 대화의 결과로 인하여 하늘에, 우주 공간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서 발생을 한 것이지 나의 게으름도 나의 핑계도 나의 장애도 그리고 특히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례나 전통과 관련하여 말을 하자면, 믿거나 말거나,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례나 전통을 무시를 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히 심장에 이상이 있어서 그것을 치료를 하는 과정 중 나의 뼈의 한 조각으로 그 심장에 이상이 있는 부분을 메워서 치료를 하여 치료에 대한 흔적을 남기려고 하다가 향후에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심장은 근육으로 메워서 심장의 다른 부위와 같게 치료를 하고 그 대신 가슴 부위에 뼈를 붙이게 된 것도 그 때의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한 행위의 결과의 하나이고 골격이나 근육과 관련된 현상도, 특히 근육이 마치 인공지능처럼 조절이 되는 현상도, 그 때의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한 행위의 결과의 하나이며 목뼈와 관련된 것들도 어릴 때 발생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한 현상의 하나라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할 특이한 경우의 하나가 아니고 실제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여호와님, 야훼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한 믿거나 말거나 할 사유와 과정이 있었던 현상들에 의한 것이란 것이다.

 

더불어 지금까지의 나의 언행이나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 굳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례나 전통과 관련하여 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례나 전통을 무시를 하는 차원은 전혀 아니란 것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하거나 말거나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례나 전통에 의해서,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을 하는지 몰라도, 어릴 때 및 1986년도에 정한 나의 정치적 역할은 지금 나의 주위에서 유언비어 아닌 유언비어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몇몇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을 하고자 나를 두고서 유언비어 아닌 유언비어를 만든 것이 지금까지의 우리 사회의 정치적 관례나 전통을 무시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