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요한복음 일장 일절의 '말씀'에 대한 이해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2. 11. 16:53
 

나의 국민학교 시절


요한복음 일장 일절의 '말씀'에 대한 이해


(현재 인터넷에 덕호학교(폐교)로 표기된 곳임)



어릴 때 부모님의 손도 잡아보고 눈에 보이는 것 이것저것 잡아 보면서, 물론 눈앞에 보이는 공기도 잡아 보았지만, 부모님에게 부모님이 알고 있는 것 중에서 손 안에 분명 잡혔는데, 그리고 나의 손은 그대로 있는데, 그 손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는 말을 하니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을까요? 그래서 또 내가 무엇이라고 말을 했을까?


물론 ‘손 안에 분명 잡혔는데, 그리고 나의 손은 그대로 있는데, 그 손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표현을 하게 된 것도 내 손 안에 잡힌 것을 보았거나 내 손 안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보았거나 빠져 나가는 것을 알 수 있거나 한 것은 아니고 내 눈 앞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를, 물론 공기 외에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공기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존재를, 내가 그 위치에 따라 손으로 잡는 행동을 하니 말이 그쳐서 잡힌 것으로 생각을 한 것이고 그런데 다시 나의 손이 있는 곳과는 다른 위치에서 또는 나의 등 뒤에서 또는 나의 머리 안이나 위에서 또는 나의 허벅지나 나의 팔뚝이나 내 몸 안에서,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니 나의 손 안을 빠져 나간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이고 그래서 손을 펼쳐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그와 같이 표현을 한 것입니다만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잡히는 것도 않는데 나에게 말을 걸어 올 수 있는 존재가 그것도 이곳에서 저곳에서 등 수시로 있는 장소를 바꾸어 가면서 말을 걸어올 수가 있는 존재가 그리고 ‘손 안에 분명 잡혔는데, 그리고 나의 손은 그대로 있는데, 그 손을 빠져나갈 수 있는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알고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한 동안 방 안에 머물고 있다가 때로는 장난도 치다가 갈 때는, 즉 아주 어릴 때 방안에 누워 있는 나에게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존재들처럼 그리고 때로는 ‘내 안의 나’를 빼내어 어디론가 같이 한 존재들처럼, ‘간다.’는 식의 말을, 물론 그 이후 누군가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문 밖에서 그리고 옆방에서 말을 하는 경우를 두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니며, 합니다만 가는 모습도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보이지도 않고 단지 말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달리 표현을 할 길이 없는 경우로서 그 연속선상의 하나로서 눈앞에 보이는 공기와 관련하여서도 볼 수 있는가 없는 가 잡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러면 제가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등등의 대화가 누군가와 방안에서 있었습니다만 공기가 손 안에 잡힐 수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잡힌 손 안에서 빠져나갈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떠나서 중요한 것은 공기는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와, 즉 영의 존재와, 즉 신의 존재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행동을 하니 그 존재함을 할 수가 있지만 나 외의 다른 사람들과의 이런 저런 경우로 인하여 내 스스로도 혼란스러우니 내가 내 손으로 잡는 시늉을 할 테니 그 때 내 손 안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내가 그것을 알 수 있게, 또는 느낄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2001년 8월의 그 날 내가 있던 공간에는 두 명의 외국인 남과 여가 있었는데 그 때와의 공통점은 그 공간에 있는 서 너 시간 동안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은 많은 정보와 말들과 일들이 오고 갔고 그리고 몇몇 중요한 실제적인 인지 행위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외형적인 모습들과 나의 입을 통해서 전달이 될 수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방 안에 있으면서, 또는 마루나 마당에 있으면서, 또는 산과 들로 다니면서, 독백과 비슷하게 말을 하니 전후 사정을 모르거나 나의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 내가 하는 말소리만 들은 사람은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한 것으로 생각을 할 것입니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나의 말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방문을 한 것이지, 아니면 내가 조금 비정상인지, 확인을 하는 것을 계기로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지만 내가 방 안에 있을 때 그리고 그 후에는 내가 있는 곳 어디에서든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존재의 본질상 사람의 인지 능력에는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immortal above-time-and-space 등등의 존재가, 나에게 말을 걸어 왔을 때 그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취한 행동의 결과로 발생을 한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 나는 무엇이라고 또 설명을 했을까요?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서 부산시로 전학을 온 이유들 중의 가장 큰 이유가 제가 제 고향에 있는 국민학교를 졸업을 하고 중학교를 가려고 하면 제 고향에 있는 재를, 거의 산과 마찬가지임, 넘어 가서 버스를 타고 삼천포시에 있는 중학교까지 등하교를 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몸이 매우 튼튼해야 할 것인데 제가 그렇지 못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즉, 제가 약 1년 반 동안의 매일 같은 등산을 비유로 말을 했듯이 비록 북한산과 도봉산 등 수도권의 15개 산을 매일 같이 약 1년 반 동안 등산을 했듯이 서울시에 있는 북한산의 정상 백운대까지 오를 수는 있어도 20분이나 30분이나 40분 안에 오르는 것은 백운대 꼭대기에 현금 1조원을 갖다 두어도 힘들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달리 말을 하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나, 즉 영의 존재나, 즉 신의 존재나, 즉 여호와님과(야훼님과,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관련된 것도 있으나 다른 사람들이 확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또 부모님들이 비록 경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이 말 그대로 invisible, inaudible, intangible, above-time-and-space 등등 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니 다른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증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내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도 나의 어릴 때의 말이 사실이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나, 즉 영의 존재나, 즉 신의 존재나, 즉 여호와님과(야훼님과,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관련된 것을 다른 곳에서도 지금껏 내가 글을 쓴 것처럼 알 수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릴 때 말을 한 것처럼 최소한 내가 나이 마흔이 될 때 글을 쓰게 될 것이고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내가 한 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면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 수도 있게 되거나 그래서 그에 걸 맞는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거나 아니면 어릴 때의 사실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희박해지는 것 같으니 어릴 때의 일로만 끝날 것이면 잊혀지게 되거나 최소한 어릴 때의 사실로 인하여 정치 활동이나 경제 활동이나 사회 활동 등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그런 사실과 별개로 오로지 사람적인 관점에서 사람의 인생을 설계를 하더라도 나의 몸 상태나 이런 저런 여건들을 고려를 하면 도회지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할 것이니 앞과 같이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여건들을 고려를 하여 도회지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일 것입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그 당시의 그 지역의 시대적인 관습적인 여건에 의해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나, 즉 영의 존재나, 즉 신의 존재나, 즉 여호와님과(야훼님과,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관련된 것을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방식에 의해서 증거를 할 수 없게 되어서 대통령이니 교황이니 등 달리 선택한 방법들을 위해서는 나이가 들게 되면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옮겨야 된다고 말도 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글들에서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지금까지 병이라고 할만한 병을 앓아 본 일은 없으나 행동이나 말이, 특히 어린 아이 때에는 상대적으로 더욱 더, 그렇게 재빠르고 날렵하지 못했으니 시골의 어린 아이들이 주로 노는 놀이처럼 산으로 들로, 또는 때때로 마을에서 조차도, 어울려 다니며 어린 아이들의 놀이로 놀기에 부적합하여 같이 어울려 놀 수가 없었던 것이지 친구로서는 잘 지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기본적인 고려나 생각도 없이 몇몇 사람들의 기만적이고 사기성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나이 30-40대의 사람에게 아동시절의 이런 경험 저런 경험을 갖게 한다고 이런 상황 저런 상황을 연출을 하면 그런 것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일 될 수 있겠습니까?


국민학교도 정상적으로 다녔지만, 약 3-40년 전의 시골이다 보니 나이 보다 일찍 왔다 갔다 한 것도 있었고, 학교에서는 매일 같이 동일한 내용을 때때로 한 달 내내 반복하고 있으니 지루하고 그렇다고 친구들과 말을 하고 놀면 수업에 방해가 되고 또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침묵을 하고 있으면 잠이 와서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고 그래서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학교 선생님과의 대화 후에 내가 필요할 때만 학교를 간 것이었는데 전후 사정을 모르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내가 학교에 갈 시간에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와, 관련된 나의 체험과 경험과 지식을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가져올 외지 사람이 혹시나 오는가 싶어서 마을 어귀나 마을 회관 앞에 나가 있는 것을 보고 국민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유언비어를 만든 것도 앞의 일과 일부 관련이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국민학교 6학년 때 부산시로 전학을 가니 그 학교 학생들이 내 이름을 전혀 다르게 알고 있는, 즉 ‘L 00’로 잘못 알고 있는, 즉 본명이 ‘L 00'이고 가명이 ’정희득‘이라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즉 ’내 안의 나‘란 말로 그런 유언비어적인 그리고 소문과 소문에 의해서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말장난을 만든, 것도 다른 글에서 언급을 했듯이 내가 전학을 간 학교에 그 지역의 찬 물파나 송충이파가 이미 작업을 해 둔 현상이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전달과정에서 다른 전학생과 이름이 혼동이 된 것이라는 말이 있었던 것과 같이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자 하면 혼자서 하기 힘들고 여럿이 일을 도모를 해야 할 경우가 있고 그 때 이런 저런 대표적인 이름으로 일을 할 때가 있으니 그런 것을 악용한 경우와 같이 경우마다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지만 지금까지 십 수 년 또는 3-40년의 일련의 현상들의 전체 과정이 앞의 일과 일부 관련이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고향에서도 유사한 경우로 ‘J 00’라는 이름이 등장을 하기도 하였으나 제가 다른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할 사유로 인하여 거부를 하여 없는 것으로 한, 그래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먼 훗날 지켜보자고 말을 한, 경우의 일도 있었습니다. 다른 경우로서 누구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말인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하는 말 중에서 자신이 아는 바로는 내가 말을 한대로 정치를 하고자 하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그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P니 K니 하는 등등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여야 할, 예를 들어서 꼭 정치 분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특정한 분야에서 활동을 한 사람을 대신을 하여 그 사람의 이름을 잇거나 이상을 실현하는 것처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인데 나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할 경우로 인하여 나의 이름 바꿀 수가 없으니 정치를 하고자 하면 그런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란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말을 하고 그 친구는 또 뭐라고 말을 했을까요?


김하늘이니 K, L, J, P 등 정치 활동을 하는 조직이나 단체가 있다고 하니 성씨와 관련된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특정한 분야의 명목상의 후원이나 지지를 얻기 위해서 그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사람의 이름을 대신하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어느 경우나 서로가 같이 일을 하기 위한 그리고 지지나 후원이나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한 서로 간에 예의를 나타는 형식적인 말에 불과한 것일 것인데 ’강한 것이 아름답다‘니  ’우리 것을 살린다‘니 ’이상을 실현한다‘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니 ’대업을 자자손손 잇는다‘느니 만능해결사나 하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 등의 근래의 시대적인 사조와 관련하여 ’누구의 못다 이룬 한을 풀어 준다.‘니 ’누구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룬다‘니 하는 등등의 말들과 결합을 하여 조금은 변형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우마다 피아를 구분하기 힘들지만 지금까지 십 수 년 또는 3-40년의 일련의 현상들의 전체 과정이 앞의 일과 일부 관련이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큰 추측성의 원인 중의 하나가 저의 고향에서 저의 갓 난 아기 때부터 시작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관련된 체험이나 교통이나 동행과 더불어서 유교와 도교와 불교를 우리 것으로 알고 있는 동방예의지국에, 인본주의 국가에, 또한 최근의 유행적인 사조의 하나로서 유교와 도교와 불교가 사람의 사고와 행위의 산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영혼을 신격화하여 가면서까지 영의 존재의, 즉 신의 존재의, 산물인 것과 같은 것으로 알고자 하는 풍조의 시대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함을 증거를 하는 일과 또 유태인의 왕이란 말과 또 다른 글에서 상세히 언급한 그 당시 그 지역의 시대적 관습적 여건으로 인하여 그 과정에서 파생이 되게 된 교황이 된다는 말과 대통령이 된다는 말이 그 시발이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태인의 왕이 왕이란 말이 들어가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태인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을 믿고 섬기고 또 그런 사실을 자손대대로 이어가듯이 유태인 중에서 직접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만나고 교통이 이루어지고 동행이 이루어지고 ’내 안의 나‘와 같이 사람의 몸이 죽을 때까지 영이 거하게 되면 유태인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경우에 해당이 되니 유태인의 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도 선지자님들의 경우와 그리스도 예수님 및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목회 활동과는 항상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것은 아니고 늘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관계가 잘 유지되면 서로에게 이득이고 그렇지 못하면 어느 시대 어느 경우나 불미스러운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그래서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때대로 죄가 범람하는 그릇된 방향의 신앙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글에서 제가 언급을 한 식사 후 또는 음료를 마신 후 나타나는 갑작스런 몸의 증상들이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고통을 알게 한다고 그것도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여호와님(야훼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사람을 창조를 했다는 말을 근거로 하고 나의 어린 시절이후 말이나 체험이나 ‘내 안의 나’를 빌미로 하여 그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다른 공간에서 들려 왔듯이 장애인이 겪는 고통을 알게 한다고 이런 저런 일들을 도모를 한 것과 마찬가지의 경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한 추측이 아니라 실제의 상황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말로서, 글로서, 나타내면 정말 민망한 경우에 해당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연예인이든 저명인사든 자신의 위치나 자리를 잡고서 발생한 유언비어는 루머로서 끝날 수 있지만 그러기도 전에 입소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유언비어는 삶 자체를 방해 아닌 방해와 훼방 아닌 훼방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어를 만든 사람들과, 또는 사람을 창조하신 여호와님의(야훼님의,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실로 민망하고도 통곡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세종대왕님의 무덤에서는 밤마다 곡성이 울리지 않을까 싶은 일이며 하늘에서는 폭우가 쏟아질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래에 대한민국에 노상강도들이 무지하게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상강도나 떼강도 당하지 않게 조심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근래에는 새로이 변형된 찬 물파나 송충이파가, 그것도 대량 생산된 찬 물파나 송충이파가, 등장하여 득세를 부리고 있듯이 그래서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고 피바다 아닌 피바다로 만들고 있듯이 사회적인 신분이나 지위에 관련이 없이 노상에서 강도짓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그것도 자신들의 죄를 여러 사람들을 동원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우는 조직적인 범죄 행동까지 하면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조심할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20070209


정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