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ovie)와 사명·증인을 찾습니다

더 퀸, The Queen, 2005,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12. 6. 22. 01:37

 

 

더 퀸, The Queen, 2005,

 

http://tv.playy.co.kr/movie/contentMovie.html?cseq=194

 

 

사냥터에 나타난 사슴과 그 사슴을 쫓는 장면이 낯설지 않습니다.

사진이나 영화에서 본 것이든 1965-70년도 사이의 어릴 때 유사한 장면에 있었거나 유사한 환영을 본 것이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사슴에 관한 장면이 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

 

왕권 국가에서 법치주의가 살 수 있고 자유민주주의가 살 수 있고 국민의 경제생활이 윤택하면 굳이 국가 정체성이 문제될 것이 없고 국가의 성립시의 역사를 이어가면 됩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이해관계 단체에 따라서 법을 무시하는 권력 남용이 생기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고 독재주의나 집단이기주의가 생기니 굳이 왕권국가, 대통령제국가, 내각책임제 등을 논할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람에게 부족한 모습이 있고 욕심이 있으니 그게 생각처럼 그렇게 잘 안 됩니다.

 

어느 경우나 사람으로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바르고 다른 사람의 것도 존중하고 제 역할에 충실하면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현실에서는 육체의 욕심이 있고 사람 간에 서로 다른 모습이 있으니 그게 쉽지 않습니다.

 

영화에서의 이야기이고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이야기이지만 군주는 군주로서의 역할이 있고 수상은 수상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사랑 사랑의 행위로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이 무시될 것이면 그런 역할을 맡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제사장(High Priest)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매일 및 절기마다 지켜 행해야 할 것이 있지만 선지자(Prophet)는 그런 사명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대신 하나님(Spirit who does not have physical body from the viewpoint of mankind's physical material concept and who is different from mankind's soul or spirit or spiritual realization.)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 성경(The Bible)의 기록이 사실인 것 등을 증거를 해야 하는 사명이 있으니 경건함, 형식, 격식 등으로 서로 간에 비교 경쟁할 것이 아닙니다. 성경(The Bible)의 요한복음 6장 46절 등등의 구절에 있듯이 하나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니 선지자는 그 행위가 오해 받을 수 있고 특히 하나님이 임해도 사람이 그것을 사람의 시력으로는 알 수가 없고 제사장은 제사장으로서의 권한이 있고 특히 모세의 율법이 있으니 제사장으로부터의 오해가 생겨 서로 간에 힘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The Bible)의 요한복음 6장 46절 등등의 구절에 있듯이 하나님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니 선지자(Prophet)처럼 하나님과 교통하고 동행하는 사람을 신(Spirit), 신(Spirit)의 아들, 하나님(Spirit), 하나님(Spirit)의 아들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성경(The Bible) 요한복음 10장 34-36절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고 그러니 이는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고 그것이 사실인 것이냐 사기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일 것이고 여하튼 하나님이 모세 등을 통해서 성경(The Bible)을 기록할 때가 아닌 그 이후에는 성경(The Bible)의 신접한 것, 접신 한 것, 무당 등 구절을 핑계로 사람을 해지는 것은 사람이 성경(The Bible)을 자의적으로 사람을 해치는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의 권한을 남용하여 사람을 해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잔잔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에 속합니다.

 

다수의 무리의 논리로서 사람과 세상을 시험 들게 하는 것이 항상 개혁은 아니고 항상 쇄신은 아니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 특정한 사람의 인생과 생명을 파괴하는 경우에 이용당하기 쉽습니다.

 

사람 개개인도 성장하면서 습관이 생기고 인생이 생기고 특히 활동 분야에 따라서 특수한 인생이 생기고 거기에 기득권이나 소유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생기듯이 사회와 국가에서도 그런 모습이 있고 역사와 더불어 관습, 사회제도, 국가구성체 등으로 형성됩니다.

 

21새기 대한민국에서 어린 아이가 출생부터 하늘의 신(Spirit)과 교통하고 동행하는 것으로서 하늘에 신(Spirit)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 그 정체성과 종교 등을 증거하고 대한민국의 하늘에 있는 신(Spirit)의 정체성이 성경(The Bible)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과 천사님들(Spirit)의 정체성과 같은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그것이 1970년도 전후에 기쁜 소식으로 동서남북에 알려졌으면 그 사람의 사명과 인생과 생명을 시험 들게 하고 하늘의 신(Spirit)으로부터의 사명을 시험 들게 할 것으로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특히 21새기 대한민국에서의 하늘의 신(Spirit)으로부터의 증거를 글과 책과 영화와 선교센터로 제작하는데 필요한 것을 없애는 방법으로서 좋은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감사할 영화이고 분장이 많으니 연령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세상의 일을 영화화 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시간이 있으면 http://blog.daum.net/wwwhdjpiacom/을 참조하면 감사할 일입니다.

 

1965-70년도 사이에 제가 만난 분들로부터 언급된 말이고 기부금이 언급된 이유들 중 하나이지만 - How can I find out them?- 평생 동안 지구를 여행하면서 알 수 없었던 사람과 세상에 관한 제일 중요한 사실을 직접 알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고 아직 사람의 과학기술로서도 직접 알 수 없는 사람의 영혼과 사후 세계 및 신(Spirit)의 세계에 관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http://blog.daum.net/wwwhdjpiacom/의 내용 중 1965-76년도 사이에서 발생한 일들 및 신(Spirit)의 세계로부터의 교통과 동행에 관한 것을 볼 때 http://blog.daum.net/wwwhdjpiacom/을 기록할 수 있는 것 자체가 2005년도부터 볼 수 있는 기적들 중 하나일 것인데 사람의 눈에는 사람만 보이고 사람의 기획연출로서만 기적을 확인하려고 하고 각자의 기도의 결과로서만 기적을 확인하려고 하니 사람의 물질 개념으로서만 기적을 확인하려고 하니 오해가 되고 또한 하늘의 신(Spirit)과 통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부탁으로 어린 아이와 여행을 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한 것에 관한 것만 일부 기록되어 남아 있으니 기적이 기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린 아이에 대한 양육방법이나 교육이나 착각으로 오해가 됩니다.

 

http://blog.daum.net/wwwhdjpiacom/을 기록할 수 있는 것 자체를 기적으로 말하는 것은 초등학교 입학 전의 어릴 때 말을 한 글을 40세의 연령에 작성할 수 있게 된 것 그것 때문만으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늘의 신(Spirit)으로부터의 교통과 동행 및 능력의 발생에 관한 그 내용 때문에 그런 것이고 그 중에는 10세 이전에 발생한 것을 그 대화 내용까지 기억하여 말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으니 그런 것이고 특히 1977년경부터 약 30년 동안은 하늘의 신(Spirit)으로부터의 교통과 동행 및 능력의 발생이 있어도 그것을 망각하는 보통의 사람으로 있다가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 등등의 일이 있으니 그런 것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http://blog.daum.net/wwwhdjpiacom/에는 오늘날의 사람의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1965-70년도 사이에 2005년도 무렵부터 작성될 http://blog.daum.net/wwwhdjpiacom/에 대해서 하늘의 신(Spirit)으로부터 10편 이상의 영화 제작이란 말이 언급된 일이 있었고 그러나 하늘의 신(Spirit)이 사람의 영화에 대한 생각 등을 심령관찰 하고 지구상의 영화에 관한 정보를 성경(The Bible)의 출애굽기 12장 12절처럼 알고 난 후 그리고 저를 통해서 나타낼 그 능력을 고려해서 그런 말이 언급된 것이니 어떤 영화의 제작을 말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니 혹시라도 http://blog.daum.net/wwwhdjpiacom/에 관한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는 경우에는 더불어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일일 것이다.

 

'http://blog.daum.net/wwwhdjpiacom/이 이 세상에 나오면 아저씨들 다 죽었다.'라는 말이나 또는 'http://blog.daum.net/wwwhdjpiacom/이 이 세상에 나오면 이 세상에 죽을 사람이 많다.'라는 말은 어린 아이의 경우 없는 말은 아니고 그것에 대해서 반말 여부를 논할 것도 아니고 비록 196-76년도 사이의 일이지만 그 동안 종교에 대해서, 특히 성경(The Bible)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것에 대한 말이었고 또한 영화의 제작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에 대한 말이었지 살인의 의미는 아니었고 세상종말의 의미도 아니었고 특히 방송영화계 및 종교계의 종말에 대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Wanted. 1965-70년도에 위의 대화로 대화를 한 사람을 찾습니다.

 

1965-70년도 사이에 세상의 종말에 대한 말이 저로부터 언급된 것은 어른들로부터 언어를 배우는 중에 있던 어린 아이로서의 언어 행위만이 아니었고 신(Spirit)의 세계에서 사람의 지식, 이해관계 및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 아이를 통해서 여러 능력과 현상을 나타내고 그 결과 어린 아이를 통해서 신(Spirit)의 세계 등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어른들이 전통적으로 종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다르고 특히 성경(The Bible) 및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니 그것이 시시비비 아닌 시시비비가 되었고 그런데 사람의 지식을 알고 모르는 어린 아이 대 어른의 관계였으니 어른의 일방적인 판단 및 해석으로 마무리 되고 그런 것이 누적이 되니 그것이 신(Spirit)의 세계로부터 어린 아이를 통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성경(The Bible)의 마태복음 13장이나 누가복음 11장과 같은 모습일 것이고 신(Spirit)의 세계의 정체성이 악마나 사탄이란 것은 아닙니다.

 

The Film Scenario

 

2012. 6. 21.

 

정희득, JUNGHEEDEUK,

 

 

더 퀸, The Queen, 2005,

 

http://tv.playy.co.kr/movie/contentMovie.html?cseq=194

 

줄거리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 1500년 영국 왕실이 흔들린다!

1997년 8월, 영국 왕실에서 배출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인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이미 왕실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 비의 사망 소식은 전 세계를 충격에 휩싸이게 하였고, 영국 국민은 순식간에 패닉 상태에 빠진다.

 

다이애나 비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버킹엄 궁전으로 향하는 추모 행렬을 끊이지 않고 이어지지만 정작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어린 두 왕자를 데리고 발모랄 성으로 잠시 떠나 있는다. 그 사이, 다이애나 비의 죽음과 관련해 조기 게양도 하지 않고 그 어떤 공식적인 발표도 없는 여왕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날로 심해져 가고, 각종 언론들도 이런 여왕의 태도를 연일 비난한다. 심지어 군주제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체제 위기론까지 거론되며 여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새로 부임하게 된 토니 블레어 총리는 멀어지기만 하는 왕실과 국민들 사이의 화해를 위해 여왕을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제작노트,

 

【 INTRO; 사건의 개요 】

 

1981년 7월 29일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런던에서의 동화 같은 결혼식.

 

1996년 8월 28일

결혼 생활의 불협화음이 대중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 나오다 결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 공식적인 이혼 결정.

 

1997년 5월 1일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압도적인 지지로 총리에 당선.

 

1997년 8월 31일

파리에서 다이애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인 도디 알 파예드가 함께 탄 승용차가 파파라치들의 추격을 피해 달리다가 충돌 사고가 남. 이 사고로 다이애나와 도디 알 파예드 사망.

 

1997년 8월 31일

토니 블레어 총리가 추모사를 통해 다이애나를 ‘민중의 왕세자비’로 지칭.

 

1997년 9월 2일

다이애나의 거주지였던 캔싱턴 궁전 앞에 추모의 물결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조화들이 쌓여감. 한편 침묵으로 일관하는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 고조.

 

1997년 9월 4일

다이애나의 죽음 5일 후, 왕실의 첫 번째 공식 기자 회견이 열림.

 

1997년 9월 5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다이애나 비를 ‘비범하고 재능이 넘치던 인물’로 표현.

 

1997년 9월 6일

국장으로 치러진 다이애나의 장례식에 수백만의 대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옴.

 

 

[ About Movie 】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화려한 결혼식,

그리고 더욱 화려한 장례식…

1981년 7월 29일,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서 진행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은 74개국 10억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동화 같은 결혼 생활은 찰스 왕세자와의 불화로 끝내 이혼을 맞게 된다.

 

1997년 8월 31일, 다이애나 비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녀가 평소 보여줬던 거침없는 사랑과 따뜻한 미소, 그리고 봉사정신을 잊지 않은 전세계 사람들을 큰 슬픔과 혼란에 빠지게 한다. 버킹엄 궁전을 둘러쌀 정도의 어마어마한 꽃다발 세례가 추모 행렬에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녀의 장례식에는 600만의 애도 인파가 몰렸으며 영결미사에 참여한 추모객만 무려 2천여 명이 넘는다. 게다가 운구 행렬 경비에 동원된 경찰 병력만 무려 3만 명. 영국 BBC 방송은 다이애나 비의 장례식을 187개국에 생중계 하였고, 세계의 25억이나 되는 사람들은 결혼식보다 화려했던 다이애나 비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 보았다.

 

2007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과 각본상 2관왕 등극에 이어

아카데미 주요 6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각종 영화제를 휩쓴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화제작!!

영화 <더 퀸>은 영국 왕실과 다이애나 비의 죽음이라는 다소 민감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재만큼이나 화려한 영화제 수상경력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먼저, 아카데미상의 전초전이라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시상식인 2007년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 각본상의 2개 부문에 수상하였으며, 미국 최대의 영화상인 아카데미에선 아카데미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의상상, 음악상, 이렇게 주요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2006년 제63회 베니스 영화제’에선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2006년 보스턴 비평가협회’에선 여우주연상, ‘2006년 뉴욕 비평가협회’에선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또한 ‘2006년 LA 비평가협회’에서 우수영화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그리고 골든글로브나 아카데미에까지 영향을 이어진다는 ‘2006년 전미 비평가협회’에선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각종 영화제의 주요부문을 석권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영화, <더 퀸>에 쏟아지는

해외 언론과 관객들의 만장일치 찬사!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과 전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헬렌 미렌의 만남만으로도 영화의 완성도를 짐작하게 하는 영화 <더 퀸>은 영국과 미국 개봉 당시, 많은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최고의 영화’라고 찬사를 이끌어 냈다. 특히 <더 퀸>은 지난 2006년 9월 30일, 미국 개봉 당시 단 3개 관 개봉으로 출발한 이후 무려 500% 이상의 스크린 수 증가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며 관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봉 후 17주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박스오피스 8위에 오르며 관객들의 끊임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2007년 1월 셋째 주 기준)

 

인간이기에 슬프지만 여왕이기에 지켜야 한다!

영화로만 만나볼 수 있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인간적인 모습.

영화 <더 퀸>에서는 전통과 명예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의무이자 권리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화려한 왕관 뒤에 가려진 인간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여왕이기에, 전통과 명예를 지켜야 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혀야 하는,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교육받은 그녀는 가장 주목을 받으면서도 외로운 존재이다.

 

갑작스런 다이애나 비의 죽음으로 지금껏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원망과 미움 속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뜻을 따를 것인가, 지금껏 왕가가 지켜온 그리고 그녀가 지켜야 할 전통을 지킬 것인가의 기로에 놓인다. 최고의 결정권자인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근엄함을 유지해야 하는 여왕이기에 자신의 외로움, 슬픔은 내놓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 인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은 영화 <더 퀸>을 통해 만날 수 있다.

 

 

【 Production Note 】

 

전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다이애나 왕세자비, <더 퀸>을 통해 다시 본다!

영국 왕세자와의 결혼, 이혼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맞이한 죽음까지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간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명예만 내세우기보다 진실된 마음으로 보여준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항상 전세계의 주목을 받아왔고 이에 못지않은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그러기에 그녀의 죽음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충격과 함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다이애나 비의 죽음 이후 영국 왕실이 위기를 맞는 일을 보여주며 흥미를 더하고 있는 영화 <더 퀸>에서는 전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는 다이애나 비의 생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계적인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새로운 시각으로 영국 왕실을 보여주다!

<더 퀸>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이야 말로 영화로 제작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닌 완벽한 소재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금지된 구역에 발을 디딘다. 하지만 영국을 상징하는 존재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내면을 파헤쳐 영상에 담기 위해선 영국인으로서, 자신의 선입견을 버리고 중도를 지키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이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책임감을 요하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또한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단지 왕실 가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매혹적인 영화 작품을 만드는데 충분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하고 <더 퀸>을 ‘세속되는 오랜 권력’인 영국 왕실을 대표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적극적 개방을 요구하는 ‘영국 대중’과의 갈등으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이로써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더 퀸>을 통해 세계의 가장 주목 받는 왕실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준다.

 

피터 모르간의 최고의 시나리오로

2007년 골든글로브 각본상 수상과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되다!

강력한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왕실과, 현존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의 제작 자체가 모험이었다. 최대한 과장을 배제하고 솔직하고 사실에 입각해서 영화 내용을 그려내야만 했기에 피터 모르간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전형적인 왕실 생활에 대한 조사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으로부터 장례까지의 일련이 과정들을 상세하게 조사를 해야했다. 다행히도 피터 모르간은 토니 블레어 총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던 드라마 ‘The Deal’의 제작을 통해 얻은 정보와 다양한 개인적인 인맥으로부터 왕실과 총리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피터 모르간은 여왕의 어투나 매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그 동안의 기록 영화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동시에 그는 팀을 구성하여 그 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토니 블레어 총리에 관한 신문이나 TV등을 다시 한 번 분석하는 작업도 아울러 시행했다. 이렇듯 오랜 시간에 걸친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피터 모르간 작가는 다이애나 왕세자의 죽음 후, 영국 왕실의 이야기를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2007년 골든글로브 각본상 수상과 제79회 아카데미 각본상 노미네이트의 영광으로 돌아왔다.

 

영국 여왕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연기자, 헬렌 미렌!

2007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되며 최고의 배우로 인정받다!!

니콜라스 하이트너 감독의 <조지 왕의 광기 (The Madness Of King George)>에서 여왕 샬롯으로 분해 1995년 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헬렌 미렌은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으로부터 “현재 여배우 중 영국 여왕을 대변할 수 있는 연기자는 헬렌 미렌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라는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더 퀸>에 캐스팅된다.

 

타고난 연기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끊임없는 노력으로 배역을 100%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헬렌 미렌은 <더 퀸>에서 역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라는 배역에 친숙해 지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하였다. 헬렌 미렌은 여왕의 사진과 영상자료들을 모니터하며 여왕의 헤어스타일과 걷는 자세, 손의 움직임에서부터 여왕의 독특한 연설 스타일까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강렬한 카리스마로 관중을 압도하는 흡입력있는 목소리를 배우기 위해 목소리 연구가를 찾아가 수개월에 걸쳐 여왕의 어투를 연습하며 철저한 준비를 했다. 그녀는 이 같은 노력으로 여왕으로의 귀품과 강인함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놓는 것에 성공했다. 그녀의 완벽에 가까운 연기력은 2007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증명되었으며 이어 ‘아카데미의 꽃’이라 불리는 200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여우주연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현재 영국의 최대 권력자들을 연기하라!

<더 퀸>의 배역들은 모두 생존하고 있는 영국 최고의 권력자들이었기 때문에 캐스팅에 있어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역할은 가장 큰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영국의 군주로 군림하면서 우상과 보호의 대상인 여왕을 스크린에서 ‘인간 엘리자베스’로 다룬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이 ‘영국 여왕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여배우’로 지칭된 헬렌 미렌은 영화 <더 퀸>에 출연하는 것은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민감함은 넘어 위험하기까지 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역을 수락하였다.

 

토니 블레어 총리 역에는 이미 드라마 ‘The Deal’에서 완벽하게 총리 역을 소화해 낸바 있는 마이클 쉰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마이클 쉰에게도 <더 퀸>에 출연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용기가 필요하였다. 같은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그 안의 다른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하지만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과 2번의 호흡을 맞추어 본 바 있던 마이클 쉰은 감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감으로 영화에 합류하게 되었다.

 

국가별 정보프랑스U | 2006.10.18 개봉

 

영국12A | 2006.09.15 개봉 | 103분

 

한국12세이상관람가 | 2007.02.15 개봉 | 97분

 

 

이탈리아2006.09.15 개봉 홈페이지해외홈페이지www.thequeenmovie.co.uk

기타(미국)video.movies.go.com/thequeen

기타(프랑스)www.thequeen-lefil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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