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예수님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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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교회의 흐름을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람을, 혼동하는 경우가 설교 전도 찬양 등의 표현 중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찬양의 중요성이나 그 비중이 커져 가고 신앙과 전도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사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람을, 혼동하는 경우가 설교 전도 찬양 등의 표현 중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예수님의 표현 중에도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의 표현 중에도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람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명확하게 언급을 하고 있는데도 성경의 몇몇 구절을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람을, 혼동하는 경우가 설교 전도 찬양 등의 표현 중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누가복음 16:8절이나 빌립보서 2장 등의 예수님의 제자들의 표현을 잘못 이해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람을, 혼동하는 경우가 설교 전도 찬양 등의 표현 중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일상 생활 속에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특히 하나님과 교통하고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2천 년 전 당시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의 관점에서는 그 당시의 시대상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하나님의 세계와 동행하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 시 되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현상인 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람을, 혼동하는 경우가 설교 전도 찬양 등의 표현 중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일상 생활 속에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광신도란 표현이 있듯이 성경에 대한 이해나 해석과 예수님이란 말을 통한 신앙인 및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심지어 성경을 신앙의 근거로 삼고 있는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범죄 행위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사람을 구원하는 신앙 생활이 신앙을 이용한 신분계층이나 치부나 신앙인 및 다른 종교인을, 특히 성경을 신앙의 근거로 삼고 있는 다른 종교인들에 대한, 범죄 행위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을 믿어란 말은 예수님의 말씀이, 즉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말씀과 신앙 생활에 대한 말씀이, 맞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란 말이고 2천 년 예수님과 동행을 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예수님을 통해서 기적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세계의 성령, 영, 신, 천사가 예수님과 동행을 하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믿고 동행하는 사람의 마음에 또는 간절한 기동에 감동감화 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 관련된 사람들의 시험 꺼리나 실험 꺼리가 없으니 그렇지 예수님의 육체의 능력, 정신력, 의지력 등과는 무관한 일이다. 모세님의 경우도 그렇고 아브라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사람의 경우는 모두 마찬가지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는 말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세계의 성령, 영, 신, 천사가 그 능력을 행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알게 되고, 즉 방언과 같은 것을 통해서 또는 성령 영 신 천사가 비둘기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예수님에게 임하는 것을 통해서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을 말을 하지 머리에 손을 얹고서 기도하는 행위를 말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수님의 죽은 시신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피 흘리는 모습이 없이 그러나 옆구리와 손의 상처는 그대로 간직을 한 채 사람들 앞에 나타날 수 있는 경우도 예수님의 죽은 육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로 살아 난 것은 아니고 예수님과 동행을 했던 하나님의 세계의 성령, 영, 신, 천사가 그 능력으로 움직인 것이나 또는 비둘기의 형상과 같은 입체의 살아 있는 환영을 보여 준 것일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육체가 죽고 장사된 지 사흘 후에 사람들 앞에 나타난 모습이 예수님의 증거가 사실인 것을 말을 하는 것이 되고 사람의 육체의 사후의 영혼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비유가 되고 하나님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비유가 되겠지만 사람의 육체 자체는 사후에 흙으로 돌아간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고 사람의 수 천 년 동안의 경험과 체험과 지식이고 과학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증거가 사실이라도 해도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격 시 하거나 오늘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히려 신앙 생활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어 오히려 신앙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 행위를 하는 현상을 유발할 수 있고 지금 현재 각 교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태초의 인류와 달리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의 세계를 알 수가 없으니 아브라함님을 통해서, 모세님을 통해서, 성모 마리아님을 통해서, 요셉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신앙을 가질 수가 있고 또는 그런 것에 대한 기록인 성경이나 스스로의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신앙을 가질 수가 있고 아브라함이나 모세님이나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증거한 말씀과 행위가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니 아브라함이나 모세님이나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구원이란 말이 연관되어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을 수 가 있지만 사람의 구원은 사람 개개인의 행위와 연관이 되고 그 결과가 사람의 육체의 사후에 영혼에 기록된 사실들이 스캐닝을 당하듯이 확인 되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또는 모세님을 통해서 또는 예수님을 통해서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서 사람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람을, 혼동하는 경우가 설교 전도 찬양 등의 표현 중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으니 사람의 구원이 사람 개개인의 행위의 결과라고 생각을 하고 사람 개개인의 행위를 고쳐서 십계명처럼 살려고 하기 보다는 아브라함이나 모세님이나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치중을 하고 범죄하고 회개하는 행위에 치중하고 사람이 만든 것 대로 존재하고 육체에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술과 담배에 대한 것을 사람의 범죄로 아는 해괴한 경우까지 발생을 하게 된다.
생활 패턴이 완만했던 과거와는 달리 하루 하루의 시간이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흘러가지 개인의 신앙심의 표현과 목회와 전도 시의 표현이 구분이 될 필요가 있고 또한 목회와 전도 방법이 교육 방법처럼 중요하게 되어 가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성경의 기록에는 방언이란 것이 있다.
때때로 사람에 의해서 신의 계시란 말로서 많이 악용이 되고 있지만 성경의 기록에는 방언이란 것이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해외로 전도 활동을 갈 때 만난 사람들 중 의사 소통이 필요한 사람과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 즉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을 한다.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 즉 성령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난 사람의 언어를 읽어서 예수님의 제자들로 하여금 외국어로 말을 하게 하든지 서로의 언어로 말을 하지만 의사 소통이 되게 하는 것이든지 어떤 경우이든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 즉 성령이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의 모습에도 그런 모습이 있다.
즉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이 동행하는 사람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을 하는 것과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런 사실을 비둘기의 형상을 통해서 잠시 보여준,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 즉 성령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에 대하여 증거를 하는 중 때때로 예수님을 통해서 말을 하고자 하는 모습이 공존을 하고 있다. 다른 선지자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으로서는 두 경우를 구분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신앙인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사람으로서 신(Spirits as God or Angels)의 계시냐 아니냐를 구분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는 없고 각자의 성경에 대한 이해, 특히 십계명에 대한 이해, 및 신앙 생활 등을 기준으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 가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 즉 성령을 만난 사람이나 신(Spirits as God or Angels)의 계시가 사람을 해치는 행위나 사람의 재산을 헌납하게 하는 행위나 사람의 생각과 행위를 통제하고 강요하는 행위 등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여성에게 동침을 말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안수 기도를 말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래 참고 참고) 특히,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 즉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과는 동행 중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증거하기 위한 행위로서 여러 가지 의사 소통을 하고 그 결과로서 이런 언행을 하고 저런 언행을 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가 있고 또한 하나님의 세계의 천사, 즉 신, 즉 영, 즉 성령의 능력으로서 동행하는 사람에게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물리적인 현상들을 일으킬 수가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것 등으로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최근의 사이비 교주나 이단이나 직업적인 목회자와 전도사를 구별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을 하는 사람도 사람이고 사람으로서의 생로병사의 모습이나 희로애락의 모습이나 오욕칠정의 모습이나 육체적인 정신적인 지적인 활동의 모습이 있고 사람으로서의 생계 문제를 비롯하여 사회 활동의 모습도 있고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의 결과로서의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과 신앙에 대한 것을, 특히 하나님의 세계의 능력과 관련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해야 하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나 사람과 사람의 일이나 사회 자체로부터 분리가 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과 동행 및 그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증거하는 것에 관련된 언행 외에 매일 같이 사람의 수 만큼 많은 일들이 엮여서 움직이고 있는 세상 사나 개인의 모습이나 처지나 환경만큼 다양한 개인 사에 시시콜콜 개입을 하지는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일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사람의 행위 및 사람의 일에 대해서 신앙의 관점에서 말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세계와의 교통의 결과로서 이 세상 및 사람이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으로서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것도 상대방의 이해와 판단에 맡길 것이지 다른 사람의 행위의 주체자가 아니니 다른 사람의 언행에 대해서 시시콜콜 개입을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런 것으로서 최근의 사이비 교주나 이단이나 직업적인 목회자와 전도사를 구별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님이, 사람이, 서로 다른 것을 구분을 할 수 있어서 조금이라도 사람으로서의 올바른 신앙 생활을, 특히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인류가 아브라함에서 사도요한과 같은 선지자가 되고 제사장이 되는 사회가 상상이 되고 그 사회가 사람이 사는 사회가 될까? 예수님의 시대에도 예수님을 통해서 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한 천사 신 영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믿고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사람도 있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도 있고 전도 등과 같은 사명으로서 사는 사람도 있었고 예수님을 통해서 또는 예수님과 동행을 한 천사 신 영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믿고 신앙을 가지지만 십계명의 말씀을 지키며 각자의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믿고 신앙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제사장 서기관 장로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믿고 신앙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막연하게 하늘에는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을 믿고 천벌도 믿고 사람의 사후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믿지만 각자의 인생을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사람도 있었고 그 와중에도 사람으로서 사람에게 범죄를 하는 사람도 있는 등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참고로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세계와 이 세상의 사람이 동행하는 중 발생하는 일들을 보면 그 중에는 사람이 다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을 해치는 것으로 나타난 경우는 아니고 사자나 호랑이를 가두어 둔 동물원의 우리 안에 들어가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 것을 보여 준다고 계속적으로 사자나 호랑이를 자극하여 사자와 호랑이와 맞붙게 되는 경우와 같은 것일 것이고 전쟁 등과 관련된 것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세계와 사람 간의 전쟁이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세계와 동행을 하여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에 대한 증거를 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시대나 사회에 전쟁이 사람 간의 일로서 발생을 한 것일 것이고 그 결과로서 하나님의 세계와 동행을 하는 사람이 전쟁과 관련이 되게 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 결과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세계의 실존을 증거 하는 행위가 발생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람의 세상 사에 개입을 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아닐 것이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람의 세상 사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하면 십계명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기도에 응답을 하거나 또는 사람들로부터 불특정한 재앙이 예견이 될 때 그런 사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세계와 교통하고 동행하는 사람이나 관련된 사람을 움직이거나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을 하는 것으로서 재앙을 막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지 직접적으로 미주알고주알 개인을 하는 일은, 즉 장기판의 장기를 움직이거나 체스판의 체스를 움직이거나 바둑판의 바둑알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경우는, 인류사에서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기사나 기도의 줄임 말인 오기가 오씨와 기씨 또는 오만이나 오기(pride, proud temper)로 이해되고 있는 A~Z의 일의 방식이나 업적과 결과를 중시하는 일의 방식이 신앙 생활에 어떤 왜곡과 굴곡을 가져오고 있을까?
오늘의 암송구절 (요한계시록 5: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And they sang a new song: "You are worthy to take the scroll and to open its seals, because you were slain, and with your blood you purchased men for God from every tribe and language and people and nation.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90428
JUNGHEEDEUK,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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