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Religion)와 사명

[스크랩] '돈 가뭄'에 집잃는 서민 많다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8. 12. 10. 18:10
뉴스: '돈 가뭄'에 집잃는 서민 많다
출처: 머니투데이 2008.12.10 05:12
출처 : 주식일반
글쓴이 : 머니투데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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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영리 추구 활동이나 경제 활동을 국가가 제도와 규정으로 도울 수는 있어도, 특히 국민 모두가 동일하게 각자의 경제 활동을 추구하는 것을 도울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헌법 등의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이란 관점,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란 관점, 국가란 조직의 관점, 등에서 볼 때도 그렇다. 그런데 최근에는 국가 정책이나 제도나 규정 등이 사람, 사회, 국가 등의 개념이 상실된 채 특정한 논리의 늪에, 지적 논리의 허구에, 1+1=2라는 수식에, 빠진 듯한 경우를 많이 보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말을 하면 기업의 영리 추구 활동도 국가 사회 및 개인의 활동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기업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본력 조직력 정보력 등으로 개인과 경쟁을 하듯이 제도와 규정을 만들고 영리 추구 활동을 하고 나서 나중에는 국가의 법과 제도와 규정 등의 맹점을 이용하여 경쟁, 경쟁 상대, 경쟁 관계,,,등의 말을 하는 논리의 늪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해주었으면 당연히 원금을 받고 이자도 받을 것이다. 금융기관에서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듯이 대출을 통한 수익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니 당연히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받을 것이고 어느 수준에서 받을 것인가 정말 중요하다. 금융기관의 경제 활동이나 대출을 받은 개인의 경제 활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출을 받은 사람의 경제 활동은 수익이 투자 금액 대비 수 십 퍼센트에서 수 백 퍼센트가 발생하는 달나라나 태양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금융기관과, 즉 금융 관련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곳으로서 몇몇 돌발적인 경우들을 제외하면 연 3-4퍼센트 내지 5-6퍼센트의 예금이율 대출이율이 발생하는 금융기관과, 동일한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체란 말만 들어가면 금융기관 또는 거대자본이 개인에게 제도적인 물리적인 온갖 폭력 아닌 폭력을, 그것도 사회 경제 활동까지 차단하는 온갖 폭력 아닌 폭력을, 행사를 해도 되는 것과 같은 만행이 만연하고 있다. 과거 비 정상적인, 대박주의의, 몇몇 사채업체들이 조직을 만들어서 연간 수 십 퍼센트 수 백 퍼센트의 이율을 말을 하는 경우처럼, 그래서 불법의 폭력 장면으로 TV와 언론 매체에 데뷔를 하고 신고식을 하는 경우처럼, 그런 형태의 폭력 아닌 폭력이 당연한 듯이, 마치 제도로 보장이 되는 듯이, 이곳 저곳에서 만행이 보도되고 있다. 핑계도 많다. 선진금융기법이니 무엇이니 하는 핑계도 많다. 선진금융기법이 좋을지라도는 그 사회의 경제 활동 기반 내에서 이루어지고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지 남극이나 북극에 가서 그런 선진금융기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체란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금융기관의 대출 상태에는 금융기관이 존재하는 것이나 대출을 받은 사람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에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 기사에 보도된 경우를 예로서 말을 하면 식당 업이 현재의 경제 불황으로, 특히 경제 전문가들이 포진한 정부에서의 과거의 구습을 벗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시키고 있는 경제 활동의 결과로서 계속되고 있는 경제 불황으로, 소비가 위축이 되고 특히 음식 관련 소비가 위축이 되니 그런 불황의 여파로 대출 관련된 행위가 정상화 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금융 관련 및 경제 관련 정책을 보면 국가, 기업, 개인의 경제 활동을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이 진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개인 대 개인의 채무 청산 방법이, 즉 수 십 퍼센트 수 백 퍼센트에 이르는 이율과 연체이율의 결과로 발생한 개인 대 개인의 부채 해결 방식이, 국가와 기업과 조직의 제도 규정 등의 형태로 탈바꿈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기업도 살아야 하지만 기업이 장기간, 그리고 세계로, 성장을 하려면 국민 개개인이 경제 활동 사회 활동이 살아야 할 것인데 지금은 정치 활동의 흐름의 방향은 국민이 각자의 인생을 살고 국가가 국가로서의 정책 운영이나 행정 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성경의 특정한 구절을 악용을 한 듯이, 즉 달란트의 비유를 악용을 한 듯이, 돈이든 권력이든 사회적인 지위든 사회적인 신분이든,,,가진 자의 위치에서 있는 사람들의 활동에 보태주기, 밀어주기,,,형태로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이념을 민간의 방법으로 해결을 한다는 핑계로서, 심지어 천지창조란 말을 핑계로서, 개인의 정치 경제 활동을 둘러싼 단체의 조직적인 행동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저런 기획과 연출을 하여 개인의 정치 경제 활동에 조직적으로 시비를 거는 행위도 많은 것 같다. 다수가 조직적인 행위를 하니 법에 호소하기 힘들고 단지 상업 활동이 제조업 활동이 조직적인 지장을 받게 되고 결국 기사에서와 같은 경매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어낸 영화 이야기가 아니고 몇몇 영화들에서도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듯이 지금과 같이 지식 과학 등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현실에서도 가능한, 특히 사악한 의도보다는 재미와 장난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조직에서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할까? 비록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해도 이 세상의 소유 개념은 육체를 가진 사람의 존재론적인 모습에서 발생하고 사람의 생각과 언행의 현상에서 발생하고 이 세상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특히 다수가 살기 시작하고 사회 구성체의 모습을 떠나서 사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것이지 천지창조란 말로서 다수가 개인의 재산을 강탈할 폭력을, 그것도 다수가 아주 야비한 지능적인 방법으로 범죄를 행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십계명의 내용도 개인의 소유 개념을 인정하고 있고 예수님의 사랑 용서 공동체 개념도 소유개념을 인정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 용서 공동체 개념은 여러 사람이 공동의 활동을 같이 하고 그 과정에서 비용이 필요하니 각자가 가진 것 중에서 일부를 기부하고 그 기부된 것으로서 공동체와 같은 활동을 하는 의미이지 놀고 먹는 백수건달들이 성경을 핑계로, 신앙을 핑계로, 전도 활동을 핑계로, 다수의 논리로, 개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행위는 아니다. 종교 공동체 활동을 한다고 공동체 관련 사람들 모두가 가진 것을 모두 기부를 하면 그 다음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몇 년 뒤에는 단체로 몰려 다니면서 홍길동 핑계로 개인을 상대로 한 노략질을 일삼을 것인가? 종교 공동체이든 정치 공동체이든 지금과 같이 다수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재생산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기부를 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는 것이지 공동체란 말을 핑계로 집단 행동을 하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십일조란 말을 하고 있는 것이고 전도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사람을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도 범죄자에 대해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말을 하고 있지만 마을 밖에 장소를 만들어서 범죄자를 그곳에 칩거하게 만들기도 하고 피성소를 만들어서 범죄자가 머물게 만들기도 하고 예수님처럼 사람과 용서를 말을 하기도 하지만 사람의 사람에 대한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인 것이고 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존재하는 것도 사람은 어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각자의 재능 능력 특성 개성 등을 바탕으로 살고 싶고 타고난 천부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고 십계명의 내용이나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이 각자의 인생을 살 때 다른 사람에게, 즉 어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 다른 사람에게, 범죄를 하지 말라는 말이지 범죄자에게 희생을 당하라는 말은 전혀 아니다. 성경의 내용뿐만 아니라 사서오경이나 아함경이나 팔만대장경이나 노장사상 등의 내용도 그 표현만 다를 뿐이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것, 사람의 범죄에 대한 경계의 말은, 비슷하게 말을 하고 있다. 왜 그럴까?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해주었으면 당연히 원금을 받고 이자도 받을 것이다. 금융기관에서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듯이 대출을 통한 수익도 올릴 수 있을 것이니 당연히 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받을 것이고 어느 수준에서 받을 것인가 정말 중요하다. 컴퓨터 이전의 시대에는 문서 관리에 많은 비용이 소유가 되었는지 몰라도 컴퓨터 시대에 문서 관리 비용이, 즉 연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에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경우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연체가 개인의 개인과 집단에 대한 범죄 행위도 아니고 개인이 재산을 도둑질 한 것도 아니고 개인이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단지 예상된 사회 경제 활동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인데 그런 사실로 인하여 받게 되는 사적인 사회 경제 활동의 장애 뿐만 아니라 제도 규정 등으로 받게 되는 사회 경제 활동의 장애를 생각하면 최근의 연체 관련 제 행위는 폭력을 제도적으로 행하고 비호하고 있는 모습도 일부 있을 것이다. ,,,

 

인터넷에 기사 실어 주고 그 대가로, 마치 교육이라도 한 것처럼, 환경 조성이라도 한 것처럼, 돈을 챙기는 경우에 비하면 연체는 연체일 뿐이고 돈을 받으면 될 것이고 돈을 받게 되는 상황은 개인의 경제 활동과 연관이 있고 개인의 경제 활동이, 5천 만영의 경제 활동이, 전적으로 개인의 활동만으로 결정 되는 것은 아니니, 즉 기사 관련 식당업은 다른 사람들의 경제 활동으로 돈이 돌고 돌아서 식당에서 음식을 먹게 되는 것과 같은 소비 행위가 일정 정도는 있어야 되는 것이니, 최소한 제도를 만들 때는 제도로 인하여 국민이 국민의 사회 경제 활동에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지 연체 자체가 제도로 개인의 사회 경제 활동을 억압해야 할 범죄 행위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