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靈,Spirit)과 사명

기도문 01,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5. 11. 18:09
 

기도문 01,


(어릴 때의 일은 대체로 약 3-40년 전 시대의 시골에서 나이 10살이 되기 전의 일이니 단어나 표현상 특히 종교와 관련하여 혹시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앞의 말을 참조 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정치, 종교 및 경제 활동 관련되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말만 존재를 하는 또는 사이버 공간의 또는 가상의 세계에서의 일이 아닌 실제 현실 세계에서의 일을 말합니다.)


우리의 비극이란 말을 할 때,

비극을 영어로 말을 할 때,

내가 어떻게 발음을 했을까?

Tragedy '트라게', '트라제', '그라제', 줄여서 '트래드',,,'트래지디',,,'프레지던트',,,영어는 '래지'를 잘 쓰는 모양이다. 그래서 혹시 '래지'가 무엇인지 아는 질문을 하면?


아직도 팥을 먹으면 나의 몸 안에 든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가 도망을 간다고 생각을 하는 기독교인이 있는 모양이다. 기독교가 신앙인지 팥이 신앙인지 아니면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가 신앙인지 또는 성경을 어느 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는지 구분이 잘 안 된다. 브랜드 붙은 신앙들만, 그것도 기도에 영감 붙은 신앙심만, 있는 곳에서 매주일 성수를 한지도 10년인데 경우가 어떠하든, 즉 나의 말이나 표현이 브랜드 붙은 말이나 표현과 맞던 맞지가 않던, 즉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이미 기본적인 신앙의 태도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나의 말이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에 대한 것으로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비록 사람들의 입장에서 헛것이나 환영과 입이 아닌 두뇌로 대화를 하고 장난을 치고 또 10,000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글들에서와 같은 현상들을 믿거나 말거나 경험들과 체험들을 하고 있는 나도 아직까지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를 본 일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말을 하는 것만 보고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를 알 정도이면 매일 같이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와 대화를 하며 사는 경우는 아닌지, 아니면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도 영의 존재로서 사람의 눈에는 나타나 보이지 않기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그리고 지금은 영의 존재로 돌아가신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한 하나님의 영과 마찬가지 일 것이니 스스로가 사람으로 현신한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는 아닌지, 아니면 신앙심을 핑계로 한 그러나 정치 종교 경제적인 이해 관계를 등에 업은 언행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망칠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의 역할을 하는 경우는 아닌지, 모를 일이다.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사람 잡는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인 모양이다. 상대적인 개념이고 비유적인 표현이고 가상의 말만의 일이겠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로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경우는 아닌지 모를 일이다.


쌀에 대한 발음은 옛날부터 정확하게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실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즉 군 복무 시 만난 KB 지역 출신의 HKFU CSG (또는 KN 지역 출신의 HYU CJH)라는 누군가가 자신의 쌀에 대한 발음을 마치 나의 쌀에 대한 발음이 그런 것처럼 말을 하니 약 20년이 지난 시점까지 그렇게 알고 있다. 신성이니 심성이니 하는 것을 떠나서 믿거나 말거나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달리는 사람 몇 걸음이라도 쫓아가거나 또는 누군가와 붙잡고 실랑이를 벌일 경우가 되지 못하는 나만의 호흡법이나 2001년 8월의 그 날 어느 공간에서의 누군가로부터 들려오기로 나의 체격이 낙지나 문어(Octopus)로 비유가 되었듯이 나만의 근력이나 체력과 관련된 특성상 불가능한 가상의 소문으로만 들리는 여자들과 관련된 성 범죄 행위들이나 그리고 낭비 성향이나 지출성향이나 식성을 비롯한 부정적인 시각의 여타의 온갖 잡동사니에 대한 것들도 대체로 마찬가지의 경우가 많지 않는가 싶다. 나의 체격이나 체력이 비록 속도가 느리지만 2003년 중반부터 약 1년 반에 걸쳐서 매일 같이 서울 근교의 산을 하루에 1-2개 내지 2-3개씩 등산을 할 수도 있었듯이 그렇다고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혼자만의 행위가 아닌 조직의 힘이 얼마나 위력이 있고 무서운가 하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인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의 행위가 마치 나의 행위인 것처럼 끊임없이 수 십 년에 걸쳐서 말만 돌고 도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정치인으로 이름이 표명이 되기 전까지는 가상의 형태로만 떠도는 그런 소문을 그러나 실제로 현실에 이용이 되고 있는 그런 소문을 그냥 뜬 소문이 아닌 조직적인 형태로 흘리는 이유도 앞과 같은 목적 외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추측을 하면 간단할 것이다. 국시니, 인본주의니, 사람도 사람의 영혼이 있듯이 존재론적 차이가 있으나 영의 존재란 차원에서는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는데 신의 세계와 사람의 세계니 등등의 말들이 정치 활동과 관련하여 약 20년 전부터 만들어지듯이 소문의 내용들처럼 결격 사유를 만들기 위한 것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우리 사회의 정서를 생각을 하면 때때로 사회적인 관습적인 공공의 범죄의 경우 범죄자를 단죄를 하기 보다는 오히려 범죄 사실을 말을 하는 사람을 비난하기도 하듯이 그런 경우도 일부 포함이 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 위에 더 큰 배경으로 존재를 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나를 통해서 나타나고 그래서 내가 말을 하고자 한 그리고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해외나 여타의 곳으로 가지 않고 나의 고향에 머물렀던 그 사유나 흔적을 없애고자 하는 것도, 즉 우리 것이니 국가니 민족이니 애국애족이니 하는 목적이나 이유가 단지 단어를 위해서, 낱말을 위해서, 목숨과 삶을 바치는 삶을 영광으로 생각을 하는 것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국가나 민족을 떠나서 어느 누가 알아도 삶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것이 없는 사실을 두고서 그렇게 집요하게 흔적을 없애고자 하는 이유도, 아마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까지는 그 영향력이 덜 하지만 비록 말 뿐인 현상이라고 할지라도 사회 생활을 할 때에는 그 의도와는 달리 때때로 누군가에 의해서 이용이 되는 경우도, 마치 연예인들이나 저명인사들에 대한 루머처럼, 가끔 존재를 할 수도 있지 않는가 싶다. 매일 같이 야근을 하는 날이면 그 다음날 동명이인인지 어김없이 이곳 저곳에서 사고친 모습들에 대한 말들이 난무를 하는 시기도 직장 생활 10년을 하는 동안 가끔씩 존재를 한다. 2001년 8월의 그 날에 들린 말로도 빠르기도 무척이나 빠른 모양인지 마라톤 선수가 놀랄 일인 모양이었다. 1986년도 이후 약 20년이 지나고 있지만 선입견이나 편견이, 그것도 누군지 모를 저희들 사이에서 배역을 정하여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만들어진 선입견이나 편견이, 아직까지도 나에게 알게 모르게 이렇게 글로서 나타내기도 힘든 방식으로 영향 아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약 3-40년 전부터는 부분적으로, 1986년도 이후부터 조금 더 집중적으로, 시작이 된 것이니 이미 오래된 사건 사고들에 속하겠지만 그리고 지금 시점에 그 사실들 자체는 기억을 하겠지만 누가 누군지 구분을 할 수는 없는 경우이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동일한 말들과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하는 것인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경우도 가끔 있다. 무슨 말이냐고 물으면 나와 관련이 없는 일이라면서 나와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내 대신 하는 것'이란 말과 더불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들도,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들도, 가끔 듣게 되는 일들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무엇인지, 무엇에 대해서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몰라도 내가 해할 것이면 내가 직접 할 것이니 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만 느릿느릿한 말의 속도로 인하여 말을 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려고 하면 이미 사라지고 없거나 멀리 가고 있으니 들었는지도 모를 경우도 있다. 사람을 차별하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격의를 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대화 자체가 가끔은 낯설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약 3-40년 전부터는 부분적으로, 1986년도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난 현상들의 순수한 목적이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어느 누구와 말을 하기가 오히려 힘들고 불편하게 된 상황이 아닐까 싶다. 무슨 세계에서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인지 그런 것이 대의이고 공의이고 정의인지 국어 사전에 찾아 보아야 할 일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신앙심이란 말이 나와서 사람들의 사는 모습들이 힘든 것을 보고서 신에 대한 앙심이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다는 말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신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다수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고 각자가 서로 다른 모습들로 살고 가질 것은 제한이 되어 있으니 등등 발생을 한 것이란 말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대화가 대화 당사자가 아닌 그 공간에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기록이 되고, 그러나 전후 사정 모두 생략하고 '하나로' '단세포 동물' '원형 동물' 등의 말로 한 두 마디 말만 기록이 되고, 그 기록된 것이 먼 훗날 다른 사람의 정치 경제 종교 등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을 무너뜨리기 위한 교육이나 신앙심 양육 과정에 악용이 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신앙심을 신을 공경하는 마음이 아닌 신에 대한 앙심이란 말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을, 신앙인을,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를 그리고 성경에도 있듯이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 속에 거한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그 사명을 감당한 사실을 믿는 사람들을, 또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불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을 만났거나 텔레파시가 이루어지거나 동행이 된 경험이나 체험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런 믿음이나 경험이나 체험 자체를 단순히 사회 활동을 하나로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시비를 거는 시비 거리로 작용을 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장애인들이나 외모에 불만이 많거나 사회 경제 활동을 3D 직종이라고 하는 곳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런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는 작업들도 2001년 8월의 그 날에 들려 왔듯이 있는 모양이다. 나도 10,0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으로 말을 하고 있는, 특히나 우리 사회의 정치 종교 및 경제 활동 방식과 연관이 된, 사유나 이유가 있지만 그리고 일상의 삶에서는, 즉 육체적 경쟁이나 육체적 단련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는, 즉 비록 속도가 느리지만 2003년 중반부터 약 1년 반에 걸쳐서 매일 같이 서울 근교의 산을 하루에 1-2개 내지 2-3개씩 등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상'이라고 명명되는 경우와 구분이 되지 않지만 굳이 체격이나 체력의 면에서 말을 하고자 하면 2%라는 말이 있듯이 약간의 제한이 있는 경우에 속하고 그러니 사회 경제 활동 면에서도 힘든 경우에 속한다.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불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을 나의 어릴 때부터 만난 것이 사실이고, 또는 사람에 따라서 만난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지금도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내 안에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비록 정확하게 그 현상을 사람의 인지 능력으로는 설명을 하기가 힘들지만 10살도 되지 않은 어릴 때 내가 말을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처럼 증거를 하는 경우에 속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면 등등, 그리스도 예수님처럼 기적을 나타내어서 장애를 치료를 하고 외모를 미모로 바꾸어서 증거나 증명을 하라는 말로서 명분이나 명목을 살린 셈일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불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에 대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처럼 증거를 하는 경우'란 말이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으로 잉태된'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독생자'란 말이 있듯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영이 그 몸에 거하여 영의 세계, 즉 신의 세계,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 및 사람의 사후 세계에 대해서 그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말을 한 경우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있기로 그 당시의 제사장님들이나 서기관님들이나 장로님들과의 대화에서도 비록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사람으로의 예의를 갖추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있고 충분한 신앙심을 표현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연결 고리 속에 쉽게 섞여 들지 못한 모습이, 사람 중에서도 성격이나 특성상 그런 사람이 존재를 하듯이, 나타날 수 밖에 없고 또 사람이 만든 신앙과 관련된 제도나 틀 등에 쉽게 포함이 되지 못한 모습도 있고 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땀을 흘릴 정도로 심령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는 모습도 있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물론 하나님의 영이 거한 그리스도 예수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모습만) 사후에는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사후 세계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속에 거한 하나님의 영은 본래의 영의 모습으로 돌아가면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가 실존을 하고 있고 또 사람의 사후 세계가 실제 존재를 하는 모습을 나타내어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러니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일을 알지만 물론 충분히 도피를 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의 또는 동행하는 영들의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나타낼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렇게 하지 못한 것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명이 특히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한 하나님의 영의 사명이 있는 것이고 사람 사는 사회의 일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해서 대화가 되고 만들어지고 이루어지고 있으니, 물론 전도도 마찬가지로, 단순히 하나님의 영의 또는 동행하는 천사들의 능력적인 차원에서 행동을 할 수도 없는 모습이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일 것이다.  변명이나 핑계가 아니고 사람의 육체나 정신력이 가지는 한계와 그리고 믿거나 말거나 성경에서 수 천 년에 걸쳐서 선지자님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이나 기적들과 더불어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행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을 일이 아닐까 싶다.


안중근 의사가 바보라서 바보가 아니라, 물론 그 당시의 시대상에서 어느 누구의 경우라도 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이나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제약이 있었겠지만,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인 것을 고려를 하고 그리고 그 정도의 능력이나 재능이나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을 시대인 것을 고려를 하면 가능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어서 사람 사는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의 끝없는 욕심의 관점에서의 표현상 바보 같은 방법을 선택을 했다는 의미에서 '바보'란 말이 있었듯이, 또는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또 다른 관점에서 말을 하면 순수하게 사람과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상대방이 먼저 범죄를 했던 그래서 자기 방어를, 그것도 다수를 위해서,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애국애족이라고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또 죄의 관점에서 말을 하자면 죄를 면죄 받을 수 있던 없던 간에 또 다른 사람을 해친 것도 - 이런 경우에도 '해친 것'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 사실은 사실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몸 안에 사람의 영혼이 존재를 해도 사람의 영혼과 육체와의 구분이 모호하고 사람과 사람이 공통으로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영혼에 대해서 사물처럼 명확하게 존재론적으로 말을 하기가 힘들듯이 비록 존재의 본질 자체가 다르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 불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 자체도 그 본질이 영인 바 사람의 인지 능력에서 보았을 때 일정 정도는 사람의 영혼과 거의 마찬가지의 경우일 것인데 그러니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사명을 다하기 전에 또는 그런 과정 중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인식을 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인데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내재하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또는 동행하는 영들을, 즉 천사들을, 통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비롯한 능력을 나타내는 것을 통해서 그 존재함과 그 말씀 전하고자 하는 것에 우선이 된 것일 것이므로 약 3년 반에 걸친 전도 활동 끝에, 즉 인류의 구원을 위한 활동 끝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 것 같이 판단이 되므로 사람의 허다한 욕심으로 바라는 표현상 '바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듯이, 더구나 그리스도 예수님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이나 동행하는 영들, 즉 천사들의, 관점에서는 사람들의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해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후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에서 하나님의 영이 벗어 난 후 무엇인가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비록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재앙이 되더라도 나타낼 수도 있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살아 생전 그를 믿고 추종하던 사람들에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당시의 모습으로 나타나 보임으로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그 세계의 실존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의 사후 세계의 실존에 대해서 나아가 살아 생전 하신 말씀에 대해서 증거를 하신 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몇몇 천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바보 같은 축'에 든다는 말도 있을 수 있었듯이 사람과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영혼과 사람의 인지 능력을 고려할 때, 특히 사람의 생각의 무한함과 행동의 유한한 한계의 대조 되는 그래서 때때로 갈등과 고뇌의 폭이 무한히 큰 사람들도 고려를 할 때, 더불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여러 표현들과 별개로 그 존재적 속성이 영이라는 사실을 고려를 하면 앞의 말들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황당무계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같은 인생'을 만든다거나 '방귀 뀐 사람이 큰 소리 치는 세상'이나 '이상의 실현'이나 '기도에 대한 응답'이나 '세상이 창살 없는 감옥'이라는 말이나 '세상이 미쳤다.'는 말이나 '세상이 말세다.'는 말이나 공수래공수거니 등등의 말로서 '미친 사람의 행위는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대신 정신병원에 가게 되는 경우로서' 등등 '누군가를 미치게 만든다.'는 도전으로 '누군가를 자살하게 만든다.'는 도전으로 존재하는 듯 마는 듯 사람들의 언행들이 나타나는 것도 인해 전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사람을, 그것도 다수가 개인을, 성가시게 하기 위한 것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삶만 피폐해지게 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미물이라고 하는, 때때로 양식을 위해서는 먹는, 짐승도 자신이 낳은 새끼에 대해서는 애정을 갖는 모습이 있는데 사람으로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매일 같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예의와 예법을 말을 하면서, 더구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서 창조된 사람으로서 등등,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태도가 자식들을 잡는 모습으로, 교육이나 가르침이나 배움이라는 미명으로 자식들을 바보로 만드는 모습으로, 예의나 관습이란 말로 자식들을 오히려 단세포로 즉 예(Yes) 아니오(No)로만 말하게 만드는 모습으로, 즉 비록 사람의 말이나 표현이나 여타의 것들을 모르지만 각자의 감정이나 인지 능력이 있는 자녀들을 마치 종이나 노예로 길들이거나 로보트(Robot)로 만드는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보이기에 비유적인 표현으로 짐승도 자신들의 새끼에게 그러지는 않는 말을 하고, 이런 저런 추리를 할 수 있는 생각으로 짐승이 조상일지도 모른다는 등 몇 마디 말을 하니, 그것도 아직 세상이나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가 한 말을 바탕으로, 그런 말이 또 시비 거리가 되고 먼 훗날 어릴 때 말을 한 정치 및 종교 및 경제적인 것과 관련된 것을 이루기 위한 무엇인가 일을 하고자 하니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는 명목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방해 거리나 훼방 거리로 작용을 하거나 또는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한 괴롭히는 빌미가 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앞의 예의나 예법과 관련된 것 중에서 동물이 아니고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어서 그러면 사람은 누가 만들었는지 물으니 그 부모님이 낳았다는 말이 있어서 그러면 그 부모님은 누가 만들었는지 묻고 계속적으로 부모님, 부모님, 하고 올라가면 그 위에는 누가 있는지 묻는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사람이 적은지 많은지 하는 것도 묻는다. 그 외에 이런 저런 질문을 한다. 그래서 맨 처음에는 몇 명이 남게 되는지 하는 것도 묻는다. 사람은 창조가 된 것이 아니고 원래 사람이라는 말도 한다. 그 말이 그 말이 아니냐는 반문도 한다.


더불어 예의나 예법이나 세상 물정이나 세상 관습 등이 어려워서 왜 만들고 무엇 때문에 만들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내가 만나 보려 하는 의미에서 예의나 예법은 누가 만들었는지 하는 말을 물으니 지금은 죽고 없어서 만날 수가 없고 누군가가,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 둔 것만 말로서, 책으로서, 전해지고 있고 그런 것을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할 수도 있는데 내가 있던 곳에서는 멀리 있다고 한다. 언제 기회가 되면 가 볼 곳이었다. 그래서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은 누구하고 그 판단에 대해서 맞고 그른 것은 누가 알 수 있고,,,결국 사람들이 만든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등등의,,,그 당시 나와의 대화 내용 중 비교적 상세히 알려 주는 편이었고 그래서 감사할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대화 중 표현이 많이 섞여 나와서, 즉 사람의 표현으로 말을 하면 어린 아이로서 생각이나 사고나 의식이 하루가 다르게 깨어나는 시점에 있었고 사람의 예법이나 예의 등에 있어서는 또 좌충우돌하는 경우에 있었으며 특히나 악의 없는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런 경우와는 달리 정치 경제 종교 등의 이해 관계를 엮어서 기만을 하고자 하는 상황들도 존재를 하여 더욱더 혼란스러운 시점에 있었고 또 믿거나 말거나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와의, 교통이나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도 그래서 내가 대화를 하거나 말을 하는 중 나를 통해서 말을 하게 되거나 장난을 치게 되는 경우도 어릴 때 그 당시에는 내 스스로가 인지를 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나타나고 있었으니 비록 어떤 경우에서나 나의 언행에 있어서 전혀 악의나 나쁜 의미는 없었던 것이지만 때때로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었듯이, 특히 어린 아이의 경우 대체로 비슷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예의나 예법이란 차원에서 특히 관습이나 풍습이란 차원에서 볼 때는 더욱 더 그런 면이 있었듯이,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들도, 즉 오해를 사기 쉬운 부분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과 일정 정도 유사한 것으로서, 믿거나 말거나, 사람으로서의 나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불리는, 나의 고향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던, 스스로 존재를 하는 존재들의 사명이나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 '내 안의 나'의 사명이나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만 '내 안의 나'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세계의, 즉 신의 세계의, 즉 영의 세계의, 관점에서 사람의 표현으로 말을 하자면 유배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경우인 셈이었을 것이고 다른 외부적인 환경적인 요건으로는 그 당시의 우리 사회의 시대상과 사회 관습과 사람의 지식적인 개념이나 선입관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런 상황 위에 나의 나이 어림으로 인하여 무엇인가 달리 방도를 취할 도리가 없었으니 그런 답답함이 나를 통해서 마치 사람의 감정인 것처럼 표출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즉 어린 내 안에 존재를 하고 있는 '내 안의 나'에게 '내 안의 나'와 같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이 왔을 때 과거 유태인 사회나 다른 서구 사회와는 달리 신앙에 관한 한,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신앙에 관한 한, 그 당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실정이나 나의 고향의 사실적인 여건을 고려를 하면 나의 나이가 기저귀 찰 나이로서 실질적으로는 나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언행을 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서 그렇다고 나와 같은 현상이 앞과 같은 사회에서처럼 자연스럽게 통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우리 사회에서 알고 있는 무엇인가로 그것도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마다 각각 달리 나타나는 무엇인가로 그리고 정치 종교 경제적인 현상들과 엮이어 이용이 되는 상황으로 만들어지고 있었으니 사실을 사실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런 답답한 모습들에 대한 것이 그리고 그렇다고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대로만 행할 수도 없는 현상이 사람의 지식이나 개념으로는 무엇인가 제대로 표현을 할 수도 없었던 어린 나를 통해서 부분적으로 마치 응어리진 것처럼 표현이 된 것일 것이고 그런 모습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의,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에 관한 것을 직접적으로 전혀 인지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단지 사람으로서의 어린 아이의 행위의 모습으로만 비쳐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


사람들의 행위 중에서, 즉 사람들의 자녀들에 대한 교육 차원에서 행하는 행위 중에서, 어린 나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았을 때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을 한 것 중에서 '짐승이 조상일 것이란' 말을 빌미로, 물론 사람의 행위를 보고 사람에게 그 말을 했다가 자신의 행위가 어린 아이에게는 그렇게 나타나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화난 모습을 나타나 보이기에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허둥지둥 둘러 댄 경우도 있지만 여하튼 '짐승이 조상일 것이란' 말이 나오니 그 말이 진행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는 전혀 하지를 하고 오히려 '말을 한 것'은 '말을 한 것'이라는 등등의 말로서, 씩씩거리며 마치 건수를 잡은 듯이 말을 하기에, 그 때 언급된 아이 중 한 아이가 다른 글에서 언급된 몇몇 아이들처럼 'H 00'라는 아이지만, 진행된 몇 마디 대화가 더 있었다. 사람의 조상에 대해서 '짐승이 조상'이란 말은 전혀 아니고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어른들 사이에서 비유적으로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할 때 사용하는 표현들 중 하나로서 '짐승 같은' 이라는 말이 있어서 비유적으로 '짐승이 조상'이란 말을 한 것이라고 말을 하고 더불어 매일 같이 마치 입에 달라 붙은 엿처럼 '세상 물정'이니 '세상의 이치'니 뭐니 하는 말을 하더니만 왜 그런 말에 대해서는 또 '세상 물정'이나 '세상의 이치'가 어디론 갔는지 모른 척하고 마치 내가 실제로 사람의 조상에 대해서 '짐승이 조상'이라고 말을 한 것처럼 말을 만드는가 하는 말도 한다.


그런 말이 나오니 또 다른 사람들 중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즉 요즈음 말로는 사람이 짐승 중에서 진화를 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진화'란 말을 몰라서 물으니 '짐승에서 사람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을 하기에, '사람은 사람이고 짐승은 짐승이란 말과 짐승도 자신이 짐승이란 것을 알고 있다는 말과 사람 중에는 자신이 사람인 줄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등등의 말과 더불어서, 내가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이나 세상 이치나 넓은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니 혹시나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짐승에서 사람으로 바뀐 사람을 혹시나 알고 있는지 묻어 보고 있으면 나에게 묻기 보다는, 즉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신들과 의견이 맞으면 인정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맞는 말을 하고 이해를 할 수 있게 말을 해도 인정을 하지 않으니 나에게 묻기 보다는, 그 사람에게 확인을 해보면 알 수도 있을 것이란 말도 한다. 더불어 언제부터 짐승이 사람으로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고향에도 사람으로 바뀌지 못한 짐승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 방법 좀 알아 봐 달라는 말도 한다. 나의 고향의 짐승들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게 그 방법들 좀 알려 달라는 말도 한다. 그래서 가끔 같이 일을 할 사람들 찾으려 오는 사람들 있으면 일손 부족한 나의 고향에 있는 짐승이라도 빌려 주게 그 방법 좀 알려 달라는 말도 한다. 짐승 데리고 갈 때 돈 받고, 그 당시 소 값이 꽤 되고, 또 사람으로 바뀌고 나면 추가로 돈도 받아, 그 당시 임금으로 평생을 계산하니 사람 값도 꽤 되는 것 같으니, 돈을 벌 수 있게 그 방법 좀 알려 달라는 말도 한다. 인신 매매란 말이 나와서, 즉 사람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한 말이 나와서, 지금까지 짐승에 대한 즉 나의 고향의 개나 소나 돼지나 염소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갑자기 왜 사람에 대한 말로서 또 모함을 하느냐는 말과 더불어 나의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나와 대화를 하는 과정 중 무엇인가를 알아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대화 중의 한 두 마디 말을 꼬투리 잡아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려고 목적인 것 같다는 말과 더불어 더 이상 대화를 하려고 하는 생각을 접는다. 그러니 자신들에게 세상에서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있다고 하기에 그러면 나의 고향에는 올 필요가 없다는 말도 한다. 우리는 그런 것 몰라도 각자 자신의 살고 싶은 데로 살아 가니 그 사람들이 찾아 가야 할 곳을 잘못 찾은 것 같다는 말도 한다.


그 과정에 짐승이 사람으로 바뀌면 짐승인지 사람인지 하는 문제가 제기 된다. 그래서 하는 말이 '알고 있는 것도 많다.'는 말이다. 더불어 사람이 짐승에서 바뀐 것은 아닌데 그 말만 두고 보면 둘 다로 볼 수 있다는 말도 한다. 즉 근본은 짐승인데 사람의 모습과 사람의 행실을 하고 있으니 사람이기도 할 것이란 말을 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사람이 창조가 된 것이던 사람으로 존재를 한 것이던 사람으로 불리듯이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경우로 두 경우 모두 해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즉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를 한 것이니 논쟁의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현재 사람의 모습으로 있으니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말도 오고 간다. 그러니 '한 가지'만, 아마도 '하나로'의 원조가 아닐까 싶지만, 말을 하면 어떻게 되냐고 하기에 짐승이 짐승이지 사람일까, 즉 짐승이 짐승이니까 짐승이라고 하지 짐승이 사람이면 짐승이라고 말을 할 것인가라는 말도 하고 사람에 대해서 그 반대의 경우도 표현을 해도 같은 뜻이라는 말을 한다. 그 당시까지의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 '반대의 경우'를 빌미로 또 무슨 말을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결국 의도한 목적이나 본색이 드러난 것인지 사람이란 존재가 창조가 된 것이면 무에서 창조가 된 것이면 무가 되고 흙에서 창조가 된 것이면 흙이 되는 것인가라는 말을 하기에 사람은 사람으로 만들어진(창조가 된) 것이고 짐승은 짐승으로 만들어진(창조가 된) 것이라는 말을 하고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짐승에서 사람으로 변한 것을 말을 하고자 하는 것 같으니 스스로의 모습만 최초에 짐승이었으나 사람으로 바뀐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될 것이라고 말을 하고 말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말을 한다. 사람이 사람의 모습인 것을 말을 하고 싶지 어느 누가 짐승에서 사람으로 바뀌거나 또는 한 번은 짐승, 한 번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겠느냐면서 혹시나 이해가 안되면 스스로가 짐승이거나 스스로의 부모님들이 짐승이거나 부모님의 부모님들이 짐승이었거나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이 편할 것이라는 말도 한다. 그러니 또 무슨 사유로 왜 그렇게 대화를 하는지는 몰라도 앞의 말 중 일부를 핑계로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편할 대로 생각을 한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대화의 진행 방향이 재미가 없고 대화 자체가 대화 보다는 계속 시비를 거는 것 같고 그것도 개인에게나 여러 사람들에게나 대체로 위험한 방향으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조금만 길게 대화를 하면 내가 쉽게 피곤함을 느끼니 대화를 그만 멈춘다. 그리고 잠시 쉬기 위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혼자 말로 중얼거리듯이 내가 조금만 말을 해도 쉽게 피곤해지고 또 몸이 약해진 것에 대해서 그 원인이 된 분야의 사람들의 원인이 된 행위들에 대해서, 믿거나 말거나, 몇 마디 더 말을 한다.


앞의 대화 중 나의 고향의 짐승들로부터 무슨 반응이 있었는지 또는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의 생각으로서 나의 고향 하늘에서 존재를 하고 있던, 또는 내 안의 나로 존재를 하고 있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로부터 무슨 말들이 전해지게 되었을까? 그래서 내가 나의 고향 집에 있던 가축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짐승도 짐승인 것을 아는 것이 사람들이 비록 식용으로 짐승을 먹지만 짐승에 대한, 동물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를 하는 것에 달리 말을 하면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존재나 존엄성에 대한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제고를 하는 것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짐승에서 사람으로 진화된 사람에 대한 말을 할 때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말을 한 것으로, 즉 사람의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서의 나의 나이가 이런 것에 대해서 말을 한 것으로, 일전에 스님과 대화 도중 나이에 대한 말이 나왔을 때 스님의 존재의 기원이 되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기도 전에, 그리고 스님이 서 있는 곳과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있기 전부터, 즉 지구가 그리고 세상이 있기 전부터, 존재를 했다고 말을 한 것에 대한 트집성의 말을 누군가가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같이 내가 사람이기도 하지만 내 안에도 그리고 하늘에도 사람과는 다른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이, 신이라고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들이, 즉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존재들이,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하는 존재들이, 존재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내가 그런 것에 대해서 말을 하면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 없이 때때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으로 다르게 말을 하고자 하거나 또는 내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하는 존재들에 대해서 말을 하면 오히려 '굳(Good)'인지 '국'인지 '굿'인지 하는 것으로 나를 이용하고자 하는 식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또는 나의 말과는 관련도 없이 무조건 서양이니 뭐니 하는 말로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거나 더불어 항상 내 마음대로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늘에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존재들을,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하는 존재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을 말을 해도 믿지를 않으니 사람이 생각한 것에 대해서 사람이 생각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을 한 것이라고 말도 한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세상 물정에 대해서, 세상 관습에 대해서 등등, 모른다고 핀잔을 듣는 것이 나의 주된 일이고 하물며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말도 나는 모르는 일이고 믿거나 말거나 단지 내가 하늘에서 말을 하는 존재들, 즉 하늘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과, 직접적으로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을 말을 하거나 내가 대화를 하다가 궁금하거나 내가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다가 궁금하여 그것을 알고자 하는 과정으로서 내가 아는 것을 말을 하는 것이니 내 말을 믿고 싶지 않으면 믿지 않으면 되니 동양이나 서양이니 하는 것이나 다른 것과 연관시켜서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도 한다.


그리고 내가 성경(The Bible)이란 말을 하게 된 것도, 믿거나 말거나, 그 순서가 내가 하늘에서 말을 하는 존재들과, 즉 하늘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과, 직접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자 하나 어린 내가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게끔 사람의 말이나 방식으로 표현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을 직접적으로 알 수도 없으니 지금도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이 내 말 자체를 믿으려고 하지 않기에 먼 훗날 내가 어른이 되어서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을 사람의 말과 방식으로 온전히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중에 유사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하여 성경(The Bible)이란 것을 알게 된 것이고 그래서 그런 것을 말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성경(The Bible)과 관련된 사람이 왔다 간 것이 전부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그 성경(The Bible) 부분에서 대해서만 내가 말을 하는 것과 같이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 또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것과 완전이 꼭 맞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한다. (지금 추측하면 내가 사람의 지식이나 삶이나 신앙 행위나 세상 관습 등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하나 있고 또 그 당시 신앙 행위로 나타난 것 중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즉 다른 글에서 언급을 한 것처럼 성경에서 말을 하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 내 머리 속으로 전달이 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그 존재와 세계에 대해서 사람으로서 알 수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내 머리에 심어 준 것인지 몰라도 비록 어리고 제대로 표현을 못했지만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동상에 절을 하는 것이나 사람을 신처럼 떠 받드는 것과 관련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제일 많이 왔다 갔다 하고 나와 대화를 제일 많이 하는 것으로만 말을 하자면 스님이 제일 많이 왔다 갔다 하고 스님 보다 더 많이 왔다 갔다는 하는 것으로는, 물론 실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제외한 나의 고향 사람들이라고 말을 한다. 나의 고향 사람들은 항상 나와 같은 곳에 살고 있으니 제일 많이 왔다 갔다는 하는 것이라는 말도 한다. 이 말이 또 사람들 입장에서는 달리 전해지고 이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둘 다 내가 말을 하는 것과 맞지가 않으니 나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고 그리고 둘 다 조금씩, 보기에 따라서는 완전히, 잘 못 알고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어리니,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게 말이나 표현을 할 수가 없으니, 더구나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는 존재들이, 즉 하늘에서 나에게 말을 하는 존재들이, 물론 지금도 하늘에서 보고 있거나 듣고 있거나 아니면 우리가 머리 속에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읽고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대화가 되지도 않고 그래서 전혀 알 수가 없으니 그 당시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고 먼 훗날 나의 나이 마흔이 될 때가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문제란 말도 한다. 종교에 및 신의 존재에 대한 것은 누구나 각각의 경험이나 체험이 있겠지만 나의 어릴 때의 경우를 믿던 믿지 않던 그래서 나에게 장난이나 재미 삼아 말을 한 것이든 아니든 그 당시에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나 그 당시의 종교와 관련하여 알고 싶어 하는 것으로 인하여 각각의 종교와 관련된 현상들을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것에 의해서 그리고 그 사람들의 두뇌 속에 있는 정보를 읽는 것에 의해서 하늘에서 말을 하는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들에 의해서, 알게 된 것과 10,000페이지에 달하는 나의 경험이나 체험과 관련하여 알게 된 것으로 말을 하자면 사람과 사람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우리가 신이라고 하는 존재, 즉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성경에서도 말을 하고 있듯이 영이라고 하는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라고 하는 존재가, 실존을 하고 있는 것이란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나 사람의 영혼이 신의 존재, 즉 영의 존재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근래의 우리 사회의 종교 관련 혼란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으로 잉태 된'에 대한 말을 바탕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실질적인 육체적인 모습 그 자체를 신의 모습, 즉 영의 모습,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의 모습으로, 이해를 하고자 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에 하나님의 영이 거한 사실이나 또는 성령으로 '잉태 된'에 대한 것과 관련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영으로서의 능력에 대한 것이 결여가 되고 단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도록 사람의 눈에 나타나 보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으로서의 육체적인 모습 그 자체를 신의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의 모습으로, 이해를 하고자 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많지 않을까 싶다. 또한 성경에도 있듯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이나 동행하는 사람이나 텔레파시가 가능한 사람이나 특히 하나님 세계의 영이, 즉 천사가, 거하는 사람을 사람의 인지 능력상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같은 신의 존재, 즉 영의 존재를, 볼 수가 없으니 그 대신 그런 선택된 사람들을 신의 존재, 즉 영의 존재로, 표현을 하는 것이 말과 말에 의해서, 특히 사람을 신격화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런 경우 저런 경우에 사용이 되게 되면서, 혼란이나 혼돈을 일으키게 된 것도 일부 있지 않을까 싶다. 목적이나 의도가 어떠하던 그리고 비록 범죄 행위를 직접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람 사는 사회의 말과 인식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허상을 우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더욱 더 조심스러운 것은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최초의 경우와 달리 사람이 여러 가지 면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십계명에서도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형상에 대한 말은 없듯이 성경에서도 그리고 사람이 지켜 행할 것으로 십계명이 주어졌듯이 비록 기도에 대한 응답이 있다고 하지만 그리고 간헐적으로 선택된 사람들을 통한 사람 사는 세상과의 교통이나 텔레파시나 동행이나 여타 기적들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그 존재적 본질로 인하여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사람들이 인식을 할 수 있거나 하는 존재가 아니니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사람 사는 사회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의해서 전혀 다른 길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을 우려한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86년도의 경우처럼 성경의 기록이 사실이고 실제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 표현이 되는 신의 세계, 즉 (사람에게도 사람의 영혼이 있듯이 비록 다른 존재이긴 하지만) 영의 세계에, 대한 기록이고, 성경과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 표현이 되는 신의 존재, 즉 영의 존재가, 비록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여 존재를 하지만 가상의 산물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라고 말을 하니,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어릴 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로 표현이 되는 신의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사람과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시공을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 하는 존재(I AM)들을 만났었고 텔레파시가 통했었고 동행을 했었고 등등 말들을 하고 아직도 사람 사는 세상과 사람의 사후 세계를 위한 신의 세계의, 즉 영의 세계의, 사명을 위해서 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과는 별개로 '내 안의 나'로 존재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니, 물론 나에게 발생하는 일은 그냥 나의 사람으로서의 모습에 대한 범죄 행위 밖에 되지 않는 것이고 사람의 인지 능력으로 나타나 보이는 사람과 우주 만물 외에 신의 세계, 즉 영의 세계, 그리고 사람의 사후 세계도 있다는 것을 증거를 하기 위해서 존재를 한다고 하지만, 그에 대한 반증으로 또는 그에 대한 도전으로 그래서 나의 말을 부정하고 그와 더불어 정치 종교 경제 등 각종의 이해 관계 집단들의 이해 관계 실현을 위해서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미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자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을 했다고 그 말을 바탕으로 또 시비 거리가 되는 것처럼 미치게 만들고 자살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들이 발생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대방과의 대화가 대화로 끝나는 말이 아니라 그 속의 단어나 말 하나 하나가 마치 시비 거리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곳도 있는 모양이다.


앞과 같이 말을 하면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도 대화 중의 어느 말도 인정을 하지 않거나 대화 중의 어느 말에 대해서도 행동으로 행하지 않는, 또는 약속을 행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삶을 위해서 서로 간에 공존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을 핑계로 이런 명분 저런 명분을 만들어서는 상대방을 괴롭히는 작업만 하는 셈이다. 평균 7-80년을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괴롭히고 그 결과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재미로 사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말을 하면 그 말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기 위해서 관련된 사람들은 또는 그렇게 행동을 했던 사람들의 언행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심지어 성경과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지금껏 우리가 사람과 우주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사실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고 마치 우리 것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동양이라는 개념이나 말과 대립이 되거나 반대가 되는 것처럼 끊임 없이 말을 만드는 것에 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성경에 대해서도 구약과 신약이 대립이 되는 것처럼, 또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를 아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것이 서로 대립이 되는 것처럼, 또는 십계명을 아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것이 서로 대립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교회를 훼방하기 위한 작업들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 사명을 감당하시는 과정 중 약 3 년 반 만에 돌아가시게 된 것도 신앙심이란 것에 의해서, 즉 동일한 현상을 경험을 해도 각각에게 달리 나타날 수 있고 특히 달리 표현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의사 소통의 결핍에 의해서, 즉 동일한 신앙의 행위를 두고 사람의 인지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본질 및 능력에 대한 이해의 결핍에 의해서, 특히나 비록 제사장님이나 서기관님이나 장로님 등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나 은사를 받는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의 관계에서 선지자님들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이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제자들과는 다른 것에 의해서 특히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에 하나님의 영이 거한 결과 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차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의해서, 발생을 한 것이고 그리스도 예수님 스스로도 유태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음에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음이 마치 유태인에 의해서 발생을 한 것처럼 그렇게 말들이 만드는 것도 교회의 분란을 획책하기 위한 모습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앞과 같이 말을 하면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또 어느 말도 인정을 하지 않거나 약속을 이행을 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 그냥 사람과 사람이 서로 공존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을 핑계로 이런 명분 저런 명분으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작업만 하는 셈이다. 평균 7-80년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괴롭히고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 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재미로 사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말을 하면 그 말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기 위해서 관련된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86년도부터 나에게 약 20년에 걸쳐서 발생을 한 일들이 약 2,000 년 전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 지역의, 그 민족의, 그 국가의, 사람들에 의해서, 교황청이 있는 로마의 사람들에 의해서, 특히 신앙심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 것을 상징적으로 재현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면 나의 말들에 대해서 거품을 물 사람들이, 즉 신앙심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고 졸도를 할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신앙심으로 인해서 그럴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고 다른 정치 종교 경제적인 사유로 인하여 발생한, 특히나 대체로 자신들이 어떻게 관련이 된 것인지 알지도 못하게 그래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게 발생한, 일들에 대한 것으로서 경쟁 사회니 이익사회이니 하는 말로, 특히 애국애족이니 우리 것이니 하는 말로, 비웃을 사람들은 그래도 꽤 되지 않을까 싶다. 앞의 단어들만 들어가면 다수가 특정한 표적을 대상으로 몰매를 가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또는 정당화 되는 모습으로, 인정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 TEN Production 영화 시나리오 작성 중 -


시나리오 쓰는 중, 혹시, 시험 들지 않게 열심히 기도합시다.


2007/4/10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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