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Religion)와 사명

창조론과 진화론 06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6. 10. 27. 13:45

개과천선(改過遷善; Repentance), 개과자신((改過自新; Repentance),

 

 

지금까지의 많은 경우들처럼 믿거나 말거나 할 것이지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겠지만 요리만 제대로 되었으면 내가 음식을 별로 가리는 것이, 물론 성경에서 피할 것으로 분류한 음식들도 마찬가지로, 대체로 맛있게 없는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밥을 제외하고 한 가지 음식을, 아무리 맛이 있고 고급스럽다고 하더라도, 며칠 간에 걸쳐서 계속 먹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몇몇 사람들이 장기간에 걸쳐서 내가 살던 집에 왔다 갔다 할 때 그 때 이미 앞에서 언급이 되었던 것처럼 그 당시의 그리고 그 지역의 시대 상황에서 벗어나고 관습이나 문화적 제약과 구속에서 벗어나서 내가 해야만 하고 또 할 일들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나의 근육이나 골격과 관련하여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가 현재까지의 나의 신체 상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또 음식과 관련이 된 것이었다. 누구의 두뇌나 마음이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음식은 편식을 하는 것 보다는 여러 가지를 골고루 먹는 것이 건강에 좋으니 그렇게 될 수 있게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식생활에서 밥은 반찬과 별개로 매일 같이 먹어야 하니 매일 먹어도 좋게끔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 음식을, 예를 들어서 비록 내가 좋아 하는 편인 싱싱한 생선회나 고소한 소고기의 꽃등심과 같은 것일지라도, 조금 오래 먹으면 입안에서 까칠까칠 해지거나 비릿해지거나 느끼해지거나 하는 등등의 여러 가지 현상들이 지금껏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확인이 되었듯이 실제로 나타난다.

 

즉 나의 경우에는 음식에 대해서 성경에서 언급을 하고 있는 경우처럼 그렇게 편식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람들의 관습이나 습관이나 특성상 위의 경우와 같이 성경에서 말을 하고 있는 먹어도 좋은 음식들과 그렇지 않은 음식들로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하고 또 내가 어른이 되었을 정도에 사람들의 의식이 어느 정도로 변하고 어떻게 될지는 그 당시의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을 한다.(정희득님의 “믿거나 말거나” 중에서) 

 

 

나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성경에서 금하고 있는 음식들을 음식들의 날 것 그 자체만 보면 상대적인 개념이나 느낌이겠지만 약간은 비릿해 보이거나 느끼해 보이거나 소화하기가 힘들만큼 질기거나 하는 등등의 특성이 있다. 아마도 사람이 창조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 최초의 사람의 체질이나 특성 그 자체만으로 보면 그렇게 사람의 몸의 체질에 맞거나 좋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성경(The Bible)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불과 화력의 발달로 그리고 굽거나 튀기거나 삶거나 하는 요리 방법들의 발달로 그런 음식들의 날 것이 가지는 최초의 속성 자체가 거의 없어지거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게 되니 음식에 있어서는 생으로(Live), 날 것으로(Live), 산체로(Live), 먹지 않고 충분히 요리를 하여 먹는 이상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닐까 싶다. (정희득님의 “믿거나 말거나” 중에서)

 

무슨 신앙심이고, 무슨 우리 것인지, 모르겠지만 속담이나 격언이 시대적 변화된 환경만 고려를 하면 맞는 것이 많다는 말을 했다고 그 말을 핑계 삼아서 나아가 맞는 말을 실생활에서 적용을 시킨다는 것을 변명 삼아서 많고 많은 그런 행위들의 하나로서 개과천선을 통해서 회개를(Repentance)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서, 대상이 되는 사람의 생활이나 삶 자체를 그런 환경에 처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서, 가정 생활이나 인간 관계나 직장 생활이나 여타의 사회 생활을 교묘히 이용을 하는 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들이 하는 일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것도 그에 대한 상당한 대가를 받아가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들이 하는 일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술과 담배 자체가 건강에 해롭고 과하거나 중독이 되면 건강에 나쁠 뿐더러 신앙 생활에도 지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신앙과 연관이 없다고 말을 하고 그렇게 생활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 즉 술과 담배를 하는 것이 과도한 신앙심이나 경건함으로 인하여 본인의 잣대와 기준에서의 신앙심과 경건함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여 괴롭히게 되고 나아가 그 결과로 삶을 망치게 되는 것 보다는 그리고 마음 속에 증오의 감정이나 원한의 감정이나 악한 감정이나 사악한 감정을 담아 두는 것 보다는 오히려 친구들과 동료들과 지인들과 저녁 식사나 술자리를 통하여 해소를 하는 것이 “죄”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더 낮다고 말을 하고 그렇게 생활을 하고 생각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과는 전혀 관련이 없이 오히려 본인들이 알고 있는 관점이나 시각에서 만의 그 문제를 사유나 이유로 사사건건 대상이 되는 사람의 생활이나 삶을 침해를 하게 되고 가해를 하게 되는 것이 그래서 삶 자체에 방해가 되고 훼방이 되고 지장이 되게 되는 것이 그래서 삶 자체가 점차적으로 망가지게 되는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감증에 걸리고 두뇌의 사고가 경색이 된 것처럼 아무런 죄책감이나 감정이나 반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들이 하는 일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것도 그에 대한 상당한 대가를 받아가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들이 하는 일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더구나 다수가 인해전술로서 의도적으로 계획을 하고 기획을 하여 대상이 되는 사람이 술과 담배로 인하여 그런 상황이나 환경에 처하게 만들기 위한 행위로서, 즉 술을 과하게 마시고 담배를 과도하게 피우게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반대의 경우를 만들기 위해서 다수가 인해전술로서 의도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서, 가정 생활이나 직장 생활이나 여타의 사회 생활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부과하거나 생계나 경제 활동이 곤란하게 만들게 하거나 그와 유사한 여건이나 상황에 처하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인정 받고 촉망 받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들이 하는 일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것도 그에 대한 상당한 대가를 받아가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들이 하는 일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우리 것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씽크 탱크(Think Tank)들의 명석한 두뇌와 인해 전술로 대상이 되는 상대방을 개과천선이나 개과자신을 시키기 위한 명분을 위해서 대상이 되는 사람을 망나니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그 이후에는 그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서 개과천선이나 개과자신을 하게 만들면 그런 조작되고 인위적인 행위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 결과로 대상이 되는 사람의 삶이, 그것도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이탈이 되게 된 대상이 되는 사람의 삶이, 힘들어지게 되고 망가지게 되면 다수가 동원된 그것도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는 그런 행위들이 무슨 의미 있는 일일까? 그것이 신앙심이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민중을 위한 것이고 대한민국을 위한 것이고 애국애족을 실현하는 것이고 우리 것을 아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핑계나 명분만 그렇지 본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또는 본인들의 권력이나 야망이나 애금 사상에 훼방이 되는 대상을 공격하기 위해서 신앙심이나 경건함이란 말을 사기꾼이 사기를 치기 위해서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그냥 입버릇처럼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도 엄청난 반대 급부를 받아 가면서 그렇게 한다고 한다면 과연 무슨 종류의 영화나 소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하나의 경우를 가상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면, 업무 변화상 그리고 퇴직 후의 환경 변화로 인하여 줄어든 번역 능력이 다수의 인해전술과 같은 공동작업 의해서 계획, 기획, 의도된 퇴직 후의 새로운 생계 거리로서, 즉 새로운 직업이나 몇몇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것으로서가 아니고 단지 현재 상태에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생계를 위한 하나의 활동으로서, 번역을 하는 과정 중 오랜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기억력 회복과 더불어 번역을 하는 과정 중 조금씩 늘어나게 된 번역 능력이 마치 몇몇 사람들이 번역 능력 향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또 번역 능력을 직접 지도하고 키워 준 것처럼 말을 하고 어딘 가로부터 그에 대한 일정 정도의 대가를 받고 하는 것이 그것도 당사자는 전혀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이, 특히나 사람의 현혹하고 유혹하고 성가시게 하기 위해서 마치 실제로 그런 것처럼 말을 하고 뉘앙스를 풍기고 행동을 하는 것이 나아가 본인들이 아니면 번역 거리를 맡을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고 활동을 하는 것이 실제로 특정한 대상을 인해전술로 인의장벽으로 에워싸고 활동을 통제하고 제약하기 위해서 그것도 국가정보부의 첩보 활동이나 과거 냉전시대의 요주의 인물들을 사찰하고 감시하는 것을 흉내를 내어서 몇몇 중요한 곳과 루트(route)에는 사전작업을 통하여 미리 인맥을 심어 두기까지 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 영역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자칭 씽크 탱크(Think Tank)들이,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들 중의 하나인 것 같아 보인다. 즉, 나의 의지나 의사와는 관련이 없이 몇몇이 중심이 된 인해전술과 인의장벽과 인적네트워크로 내가 해야만 하고 또 할 일들이란 것을 위한 활동에서 벗어나 저희들이 예비한 직업이나 활동을 통하여 무슨 정치적인·경제적인·사회적인 당이나 사람을 위해서 활동을 하거나 특히 활동 자금을 기부금 형태로 지원하는 것으로 말을 만들어서, (즉 점차 폐쇄적이고 소수화 되고 이해관계나 이권 중심으로 변해가는 대한민국의 정치 활동과 관련하여 정치 관련 영역이나 활동 자체를 점차 다수에게 개방을 하고 투명하게 함으로서 정치 관련 자금도 기부금에 많이 의존하게끔 만들어 가는 것이 좋고 나의 경우도 내가 정치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아마도 그런 방식으로 하게 될 것이란 말을 사람 본연의 것인 민주주의나 자유나 평등이나 인권 등등의 것이 서구의 것이라고 규정을 하여 대한민국에서는 대한민국의 것만으로 변질이 되어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단정을 한 후 그런 말을 핑계로 삼아서 기부금 자체도 서구에서 유래가 된 것이니 나의 그 말 자체를 변질을 시켜서, (즉 내가 정치 관련 활동을 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것을 책을 쓰거나 여타의 활동을 함으로서 필요한 일정 정도의 자금을 기부금 형태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한 것을 변질을 시켜서), 나의 활동 그 자체를 다른 사람이나 다른 정치적인·경제적인·사회적인 당을 위한 기부금을 내는 활동으로 말을 만들어서), 어디로부터, 누군가로부터, 그 대가로 지원금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마치 실제로 그런 것처럼, 느낌이나 뉘앙스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오랜 전, 그러니까 약 20년 전에, 몇몇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곳곳을 일주를 하고 나서 그리고 또 다른 몇몇 사람들이 본인들이 지금껏 각각의 기간만큼 정치 관련 및 경제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해 온 결과로서 알고 있는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하시던 말들이 생각나는 여러 현상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구체적인 예를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이미 누군가가 뭔가 여러 차례 시도를 했으나 부모나 가족을 대상으로까지 행위가 나타나는 그와 같은 경우에 대해서 그것도 다수의 경우들에 대해서 우선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던 행위들 중의 하나가, 그냥 진행 과정을 바라 본 결과 상대방에 대해서 그렇게 악의가 있거나 사악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고 했던 행위들 중의 하나가,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의 말로는 행위자의 의도가 어떠하든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 결과가 정말 나쁘고 사악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던 행위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법률적·도덕적·종교적 영역을 떠나 범죄 행위를 하고서도, 그것도 십 수 년에 걸친 범죄 행위를 하고서도, 범죄 행위를 하고 있는 사실 조차도 인지를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을 돕고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백주대낮에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 무슨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경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의 궁궐이나 대궐에서 조차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은, 비록 사람과 사람에 대한 온갖 차별과 서열의 사회였다고 하지만, 아마도 보기 힘든 경우가 아닐까 싶다. 사회 관습과 제도 자체가 그렇고 그런 것이어서 불평들과 차별과 서열과 그에 따른 예의가 사람의 의식으로 골수 속으로 깊이 뿌리 박혀서 그렇지 근본적인 사고 방식 자체로는 조선시대의 어느 계층에서도 보기 힘든 사고 방식이 아닐까 싶다.

 

하나의 가상적인 예를 든다고 한다면, 개인이 삶을 살아 갈 때 혼자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여럿이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 가는 것이 좋다는 일반적인 말을 근거로 그리고 삶을 특별한 계획 없이 살아 가기 보다는 보더 철저하게 계획을 하고 설계를 하여 살아 가는 것이 좋다는 말을 또 바탕으로 하여 더불어 사회 활동 시 막연한 동료와 나눈 대화 중 삶에 대해서 하루의 일정표와 같이 삶 전체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나 계획이 있는가 하는 말에 대해 그런 세부적인 것은 특히나 다른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정도까지 그렇게 세부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핑계로 하여, 즉 특정한 주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 상대인지 여부는 고려를 하지 않고서 외형상 형식상 한 두 마디 대화를 나눈 말만으로 그 말을 핑계로 하여, 더불어 몇몇의 그들이 알고 있는 정치·경제·사회 관련 활동 그룹이나 방식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 비유적인지만 초보니 초자니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란 말을 빙자하여 등등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당사자의 의지나 의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이 또는 “발가락이 닮았다”는 말로서 목소리나 얼굴이나 키나 체형이나 학교나 종교나 사고 방식이나 여타의 닮은 것을 찾아서 누군가를 대리할 가짜의 모조의 사람을 만든 후 그 사람과 전화상으로 또는 벽을 사이고 두고 대화를 나눈 후 그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고 정작 삶의 주체자인 당사자의 의지나 의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이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과 연결된 각종 각양의 많고 많은 끈과 연을 이용하여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침해와 같은, 스토커와 같은, 종교나 윤리적 범죄를 넘어서 현실의 실증법을 어긴 범죄와도 같은 영향들을 미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나아가 전혀 알지도 못하고 대화 조차 나누어 보지도 않아서 무슨 생각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오히려 선의의, (아마도 “선의” 또는 “선”이란 이름이나 성을 찾아서 그 사람의 의견대로 잣대를 대고 칼질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뜻으로 돕고 있다고까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종교 단체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공간들에서 발생을 하고 있다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어떤 쟝르의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사실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현실속의 있는 가상적인 경우를 하나의 예로 들면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직장 생활 10년 후이면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퇴직을 시키기 위한 작업을 할 것을 가정을 한 후 그 이후에는 번역 작업을 통해서 일부는 기부금으로 내고 일부는 당사자의 생계 거리로 쓰는 상황을 당사자도 모르게 만들기 위해서 약 10년 동안 또는 약 20년 동안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과 연결된 각종 각양의 많고 많은 끈과 연을 이용하여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해서 중요한 순간마다 이런 저런 부정적인 악영향들을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미친다고 한다면 그것도 우리 사회의 경치·경제·사회 분양에 나름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면 그런 것을 우리가 경쟁이니 이해 관계니 이익사회니 하는 말로 인정하고 수긍하며 또는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이나 정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서 인정을 하거나 수긍을 하며 비록 소설이나 영향 속에서라고 하더라도 넘길 수 있는 일일까?

 

왜 이런 경우가 생긴 것일까? 창조론을 말을 하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Spirit)들이 사람을 이렇게 창조를 한 것은 아니다. 최초에 바보를 창조를 한 것도 아니고 최초에 장애인을 창조를 한 것도 아니고 최초에 추한 몰골을 창조를 한 것도 아니듯이 사람 자체를 그렇게 창조를 한 것은 아닐 것이고 이에 대한 것은 전혀 간섭을 하지 않고서 어린 아이가 행동하는 것이나 말을 하는 것이나 등등을 동서남북을 떠나서 살펴보아도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지 않을까 싶다. 언제부터 어린 아이가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변하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때때로 점점 악해지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어떤 경우에 그런 모습들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은 굳이 학문을 연구를 하지 않아도 각자의 모습들을 되돌아보고 또 일정 정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왜 그런 현상이 생기게 되고 또 마치 범사회적으로 장려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그렇게 하면 석유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매장량의 석유가, 한반도 앞 바다에서 펑펑 솟아나기라도 할 것이라는 말이 어딘가에 있어서일까?

 

2006년 9월 10일

 

정 희득

 

 

야훼님(여호와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영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살아 있는 전지전능한 지혜와 끊임없는 축복이 늘 함께 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Yahweh's(Jehovah, The Lord, God, The Lord God; Spirit) and Jesus Christ's, His Spirit, Living Almighty Wisdom And Inexhaustible Blessings Be Always With You With All My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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