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Religion)와 사명

인터넷 사용과 사람의 삶에 대한 행위 02,

정희득이본명이자가명 2007. 6. 21. 01:19

인터넷 사용과 사람의 삶에 대한 행위

 

- 참조 -

 

혹시나 제거 어릴 때부터 말을 한 하늘에 존재를 하는 무엇인가의 존재, 즉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가, 유교나 불교나 무당이나 무속 신앙의 것이 아니고 또 사람 및 사람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말을 하니까 그것에 대한 시험 및 도전의 하나로서 여러 가지 컴퓨터 및 인터넷 관련 에러들이 시험 거리로 등장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의 어릴 때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나를 통해서 우리 사회에 나타내고자 현상들 및 말을 하고자 한 사실들과 관련하여 저의 나이 마흔 무렵에 다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하니 그에 대한 상황을 만들고자 나의 주위 환경을, 즉 성경에 있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 중 전지전능한 심령을 관찰하는 시공을 초월하는 천지창조 등의 말들을 핑계로 나의 생활 환경을, 그렇게 만들고자 한 것에 기인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정치를 하던 종교 활동을 하던 경제 활동을 하던 우리 사회에서의, 즉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즉 자신들만 사람이고 나는 사람이 아닌지 사람 사는 사회에의, 모든 활동을 전지전능한 심령을 관찰하는 시공을 초월하는 천지창조 등의 말들처럼 하라고 컴퓨터 및 인터넷 관련 에러들도 발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즉 사람의 능력과 전지전능한 심령을 관찰하는 시공을 초월하는 천지창조 등의 능력이 있다고 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능력을 비교를 하고자 그래서 나의 말에 대한 사실을 확인을 하고자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내가 지금 10,000페이지에 가까이 작성하고 있는 내용 자체를 부인하게 만들고자 하는 현상들의 하나로서 컴퓨터 및 인터넷 관련 일련의 현상들이 발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몸 안에 존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영혼조차 사람이 사람을 인식을 하는 방식으로는 볼 수가 없듯이 하늘에, 즉 우주 공간에, 존재를 한다고 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의 경우도, 사람의 인지 능력으로는 마찬가지이니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만날 수 있거나 교통이 가능하거나 또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경우처럼 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영이니 신이니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이지 사람 자체가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을 상대로 마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능력이나 현상을 보기 위한 환경이 설정이 되고 있는 것은, 즉 다수가 특정한 개인을 상대로 조직적인 반 인륜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특히 하늘의 일에 또는 사람에 따라서 상대적이 개념으로 악마의 세계의 행위에 반하고 있는 범죄를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성경에서 비(Rain)로서 세상을 멸하고, 자연 현상을 이용한 여러 가지 재앙들을 불러 일으키고, 바닷물을 가르고, 물 위를 걷고, 어느 팔을 드는가에 따라서 전쟁에 대한 승패가 갈라지고, 구름이나 바람을 이용한 길을 안내를 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사람이 환영을 보게 하고, 알지도 못하는 지방의 언어인 방언을 말을 하게 하는 등등의 일련의 현상들도 비록 선택된 사람들이, 즉 선지자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중재자나 매개체가 되는 것은 확실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에 의한 것은 명확하게 알 수가 있을 것이고 그런 능력들이 나타나는 것도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닌 것도 명확하게 알 수가 있을 것이고 그 과정에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선택된 사람들, 즉 선지자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사이에 끊임 없는 의사 소통이나 교통이나 기도의 과정이 있는 것이고 그 결과 그 당시의 상황에 맞게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한 현상들 자체가 사람들이 판단할 때 도대체 무슨 기이한 현상에 의한 것인지 모르게 우발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선택된 사람들과, 즉 선지자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더불어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능력이 나타날 때도 비록 몇 명이 동행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선택된 사람들의, 즉 선지자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의 증거의 사명에 동행하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능력에 의한 것이란 것도 추정이 가능하듯이 등등 성경의 일련의 기적의 현상들이 사람의 능력이나 행위와는 일절 관련이 없는 것도 명확하게 알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은 사람이나 은사를 받은 사람이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즉 영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즉 영과, 동행을 하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천사가, 즉 영이, 거하고 있는 사람이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사람의 자유 자재의 의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핑계의 말로서가 아니고 또 기적이란 것이 사람들이 기적이라는 말을 할 때처럼 그렇게 휘황찬란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아닐 수도 있는 것에 대한 핑계로서의 말도 아니고 그리고 나의 지금까지의 믿거나 말거나 경험에 기초를 한 말로서만이 아니라 혹시나 나와 관련된 또는 이 글을 읽는 사람 각자의 종교가 무엇이든, 성경(THE BIBLE)을 각각의 종교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특히나 애국 애족 주의적인 입장에서 어떻게 이해를 하든,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 이 땅의 사람들 사이에 존재를 한 현상들에 대한 기록물인 성경을 보더라도 충분히 추정을 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한 것만을 바탕으로 말을 해도 앞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약에 천지 창조를 하듯이 그런 능력이 사람 사는 세상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또는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에도 있듯이 만약에 대한민국이 홍수로 폐망 할 정도의 비가 내리면 사람들이 볼 수가 있는 것은 또는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창조된 지구와 끝없이 내리고 있는 비 외에는 볼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고 더불어 혹시나 선지자처럼 누군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 외에는 달리 볼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즉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로 표현을 하면 선지자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일련의 말과 행동 자체를 믿지를 않고 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즉 성경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로 표현을 하면 선지자님과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던 현장에 있던 각자의 종교 및 정치 및 경제적인 이해 관계에 의해서 각자가 알고 있는 종교의 지식 및 개념대로만 말을 하고자 한다면 어떨까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즉 영에, 의한 능력과 기적들의 현상들이 사람 사는 세상에 나타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그릇된 믿음과 지식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으니 차라리 성경(THE BIBLE)에 의해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전도가 되는 것이 특히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는 지식이나 이론이나 논리로서 사람들을 이해를 시키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있는 사람이 사람의 육체적 능력을 벗어난 능력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어떨까요? 결국 그 사람의 육체적인 기능이 멈추거나 그 사람의 죽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내가 어릴 때 말을 한 것처럼 우주에서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또는 나의 고향의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던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 의해서 예정된 때에 예정된 경우로 능력이 나타날 경우에는 앞의 경우와는 조금은 다를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일정 정도는 비슷할 것이고 그럴 경우에나 앞의 경우에나 하나님의 영, 즉 신, 즉 천사가, 거하고 있는 사람의 사람으로서의 능력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할 때 서로의 눈에 지각이 되는 사물을 논하는 것 같지는 않고 또 사람의 언어로 누구나 인식이 가능하게 명확하게 표현을 하는 것이 힘들지만 사람의 육체 안에 또는 사람의 육체와 더불어 사람의 영혼이 존재를 하는 것 자체를 부정을 할 사람은 보편적으로 사람의 모든 이해 관계를 떠난 본연의 순수한 양심에 따른 판단을 했을 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사람이 진화를 했다고 믿는 몇몇 사람들의 경우처럼 사람의 최초의 모습을 어떻게 보던, 즉 자신들이나 자신들의 부모님의 기원을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던, 현재의 사람의 모습 그 자체가 동물이나 원형 동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 하듯이 사람의 몸에 사람의 영혼이 거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사람은 사람의 모든 이해 관계를 떠난 본연의 순수한 양심에 따른 판단을 했을 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상식 선에서 생각을 하여 한 마디 언급을 하면, 즉 2001년 8월의 그 날에도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의 존재, 즉 신의 존재,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사람 및 사람의 영혼에 대한 비교의 예로서 설명을 할 때 언급을 했듯이 간단하게 하나의 예로서 말을 하면, 사람의 육체의 능력으로서 개구리를 땅 바닥에 패대기 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이 사람의 영혼만의 힘을 써서 개구리를 땅 바닥에 패대기 치고자 하면 어떤 경우에 가능할까요? 물론 육체 안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즉 육체 안에서도 영혼과 육체의 힘이 서로 합일이 되어 가능하겠지만, 어느 경우에나 사람의 영혼이 사람의 육체를 벗어나야, 즉 사람의 육체가 죽어서 사람의 사후 영혼의 세계로 갈 때처럼 사람의 영혼이 사람의 육체를 벗어나야, 가능할 것이고 최소한 사람의 육체의 기능이 일정 정도 죽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인지를 하듯이 인지를 하지만 사람의 말을 모르고 세상사를 모르고 세상 물정을 모르니 무엇에 대해서 말을 하든 몇 마디의 단어와 같은 빈약한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는 어린 아이로서 마루에 앉아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다는 존재에 대해서 그 당시로서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 외에는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으니 나를 통해서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존재 및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만약에 누군가가 내 말을 믿게 된다고 한다면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세상에서 살아 갈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서 질문을 할 때 내가 말을 하고 있듯이 비록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하늘에는 사람과는 다른, 즉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소도 만들고 개도 만들고 등등 또 사람이 죽고 나면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도 만들고 그래서 그곳에도 가 있는, 내 안의 나와 같은 그런 무엇인가가, 즉 사람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그리고 사람의 영혼과는 다른) 내 안의 나와 같은 그런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 선하고 착하게 살면 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하기에 사람들이 말을 하는 세상 물정으로서 사람들이 선하고 착하게 사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비록 나와 같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말을 하듯이 하늘에 사람들이 하는 표현으로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존재를 하는 것을 알고서 선하고 착하게 사는 것을 아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란 말을 합니다. 그러니 누군지 모를 자신이 하늘에 존재를 하는 것 및 나의 말에 대해서 인식을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말 밖에 없으니 선하고 착하게 사는 것 외에는 달리 알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인다고 말을 하기에 나의 말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지 말로 그냥 사람의 지식으로만 선하고 착하게 사는 것을 아는 것과 비록 나의 말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되지만 내가 말을 하듯이 하늘에 사람들이 하는 표현으로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존재를 하는 것을 알고서 선하고 착하게 사는 것을 아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을 해 보란 말도 합니다. 나의 고향에 올 때 넘어 온 고개를 넘어 가기 전에 그 차이를 알 수 있으면 앞으로 살아 가는 동안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정도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더 잘 깨달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내가 한 말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니 굳이 깨닫는 일만 매일 같이 하는 것 보다는 내가 말을 한 대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말과 더불어 그렇지 못하면, 즉 나의 고향에 올 때 넘어 온 고개를 넘기 전에 그 차이를 알지 못하면, 깨달음인지 (부처님인지) 조상님인지 무엇인지를 알고자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그냥 시간만 소일을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만두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매일 같이 열심히 일하며 사는 것이 그리고 정말 깨달음님 깨달음님, 즉 부처님 부처님, 하고 말을 하고 싶고 조상님 조상님 하고 말을 하고 싶고 또 알고 싶고 소중히 하고 싶으면 이미 죽은 부처님이나 조상님이라 하더라도 죽고 난 후 더 나은 세계에 갈 수 있도록 하늘에 있는 무엇인가에, 즉 Something in the Sky에, 바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말을 하니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요? (1970년대 초의 시골에서의 어릴 때의 표현으로서 불교나 유교나 또는 조상을 말을 하는 것 자체를 경시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물론 믿거나 말거나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 보아도 각각의 것에 대해서 각각의 사람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모순 되어 보이는 것이 각각의 것에 대해서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고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이 매일 같이 말을 하고 추구를 하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보면 사람으로서 영원히 알 수 없는 세계의 것을 말을 하고 있고 쫓고 있는 것에 대한 말이었고 오히려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살 동안에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그리고 사후 사람의 세계에 대한 것 및 하늘의 세계에 대한 것은 사람들이 하늘이라고 하는 곳에 사람들이 하는 말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실제로 존재를 하는 것이니 하늘의 일로서, 즉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일로서, 맡겨 두는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이라는 것에 대한 말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조차도 매일 같이 관습이니 예의니 도리니 하는 말을 하는 것과는 달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도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중을 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사람 외의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서 사람을 판단을 하고자 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자신의 영혼마저도 제대로 보지도 알지도 인식도 하지도 못하면서 이미 죽고 난 후 다른 세계에 가고 없는 조상에 대해서 산 사람으로서 어떻게 알 수가 있고 또 이미 죽고 난 후 다른 세계에 간 조상에 대해서 사람으로서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 것이며 특히나 조상 대대로 증명을 해 오고 있듯이 사람이 죽고 나면 이 세상과는 서로 간에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인 것이고 그러니 비록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린다고 해도 그 자리에 조상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 더 사실에 가깝고 그러니 산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절을 하는 것이 자신이 만든 음식에 절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특히 다른 무엇보다도 죽고 나면 먹지도 못할 음식을 차리는 것은 산 사람에 대한 예의도 아니니 죽고 난 조상에게는 더더욱 예의가 아닐 것이고 만의 하나 이미 죽은 조상이 음식을 드시는 것과 관련이 없이 조상에 대한 예의로서 음식을 차리는 것이면 (내가 알기로는 죽은 사람은 이미 다른 세상들 중 한 곳에 가고 없지만 그 당시의 관습에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조상을 아는 방법의 차원에서 생각을 하자면) 사람의 사후 영혼이 자유로울 조상이 (육체가 있을 당시의 좁은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간에 사람답게 살수 있기 위해서 만들어진 살아 생전의 관습이나 예의나 도리 등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이곳 저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풍성히 드실 수 있도록 음식을 차리지 않는 것도 예의에 맞을 것이고 그래서 단지 후손이 조상을 기억을 하고 있고 또 예의를 지키는 것만 알 수 있도록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말이었고 또 정말 조상을 소중히 하고 또 자신의 조상에 대해서 알고 그 결과 자신의 근본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 제사와 차례의 목적이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즉 음식 대신에 초상화니 무엇이니 하는 것을 두고 잊지를 않고 가족 간에 화목을 도모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맞는 것일 것에 대한 말이었고 그러니 각자가 다르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조상을 소중히 아는 방법일 것인데 제사나 차례에 대한 사실로서 사람을 사람으로서 취급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목적이나 조상을 아는 목적 자체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것에 대한 질문도 한다. 제사나 차례인지 무엇인지 하는 것을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만들었는지 특히 지금까지 그 내용이 바뀐 것이 없는지 바뀐 것이 있으면 무엇 때문에 바뀐 것인지 그리고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있는 음식 중 조상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없는지 등등에 대한 질문도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부모나 가족을 본능적으로 알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으로서 내가 말을 하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하늘에 존재를 하는 것을 아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만약에 나의 경우를, 즉 나를 상대로 이런 저런 장난을 치는 경우를, 바탕으로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말을 만들고자 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란 말도 합니다. 사람들 중 몇 명이나 현혹이 될지 모르지만 나의 하는 말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좋은 핑계 거리는 될 수가 있을 것이란 말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태어난 이후 자연적으로, 본능적으로, 즉 어느 누군가가 말을 해주지 않아도 당연하게, 각자의 부모나 가족을 알아 볼 수가 있다고 한다면 나를 상대로 몇몇 사람들이 장난을 치듯이 장난을 치는 것을 내가 분별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즉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자연적인 것 즉 본능적인 것 즉 사람으로나 너무나 당연한 것과 차이가 나면 그 자체가 달리 생각을 하면, 내가 말을 하듯이 하늘에 사람들이 하는 말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존재를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말도 합니다.

 

그리고 손으로 눈을 가리고 귀도 막고서 코도 막고서, 이왕이면 입도 막고 무엇이든 느끼지 못하고 몸도 옷으로 칭칭 감고서, 즉 미이라(사람의 이름 중 미라를 말하는 것은 아님)처럼 칭칭 감아서, 나를 보란 말을 합니다. 그 때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합니다. 내가 한 마디 말도 하지 많으면 나에게 대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합니다. 또한 그 즉석에서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도움으로 나와 대화를 하는 도중 눈을 가린 사람 머리 위에 구름과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 공간에만 그늘이 지게 만든 후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한, 즉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알 수 있는 가에 대한, 확인을 하는 질문도 합니다. 또한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자란 것이 몇 년인지 아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내가 처음으로 사람 및 나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 것이 어떻게 알 수 있게 된 것인지 생각을 해 보란 말을 합니다. 나의 경우를 말을 하면 누구나 항상 그렇듯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말을 할 것이니, 즉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말을 해주어도 이 편 저 편도 아닌 어린 아이가 말을 하니 달리 생각을 해 볼 생각을 하지 않고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기존에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고 기존에 자신이 길들여진 것이 아니고 기존에 자신이 노예 되고 종 되고 로보트 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체로 내가 말한 것에 대해서 반대의 말을 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니, 내가 아닌 자신이 태어나서 어떻게 다른 사람 및 자신 외의 것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 것인지 그런데 지금 현재는 또 어떻게 하면 알 수가 없을 것인지 생각을 해 보란 말을 합니다. 더불어 내가 보니 사람마다 생김새가 조금씩 다르고 또 사람마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모자를 쓰는가에 따라서 조금씩 달리 보이고 특히 마루에 앉아 있는 나와 말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에 따라서 그리고 햇빛이 어디 있는가에 따라서도 같은 사람이라도 조금씩 바뀌어 보이고 사람이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키 크기도 다르고 몸 크기도 다르고 머리카락 색깔도 다르고 얼굴의 주름도 다르고 등 모든 것이 달라져 가는 것 같은데 사람이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나 또 가족을 알아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 등으로 내가 바보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말을 하고자 하고 그래서 하늘에 존재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는 나의 말이 사실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말을 하고자 하면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 바보면 몰라도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 그 말을 들으면 그리고 그런 것으로 나의 존재를 그리고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사실을 판단을 하고자 하면 오히려 말을 하는 사람이 우사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니 다시 잘 생각을 해 보란 말도 합니다. 나의 고향에 올 때 넘어 온 고개를 넘어 가기 전에 내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자신의 것으로 알 수가 있으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란 말도 합니다.

 

비록 내가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하고 하늘에 존재하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실존에 대해서 말을 한다고 해도 그리고 내가 아는 고등학교 친구나 대학교 친구가 유교나 불교나 이슬람교나 무당이거나 무속 신앙이라고 해도 그리고 무신론이라고 말을 하고 사상이나 이념에 몰입된 친구라고 말을 해도 내가 만나고 대화를 하고 또 때로는 이곳 저곳으로 동행을 하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즉 지금까지 10,000페이지에 걸쳐서 말을 하고 있듯이 내가 말을 하는 하늘에 존재하는 영, 즉 신, 즉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와, 사람 및 사람의 영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고 또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 및 사람의 세계가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성경(THE BIBLE)에서와 같이 비록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세계에서 가끔 이 세상의 사람을 선택하여 그 존재와 그 세계와 사람의 사후 세계와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말을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를 하는 것은 그것이 사상이든 이념이든 사회 구성체이든 정치 형태이든 등 사람으로서 추구를 하는 것이니 내가 무엇인가에 홀려서 내가 말을 하는 사실에 대해서 달리 알게 되거나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간혹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그리고 사람 사는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와 에티켓으로 이런 저런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해도 내가 말을 하는 사실에 대해서 내가 달리 알게 되거나 말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니 굳이 나의 입장에서는 앞에서 말을 한 나와는 종교나 신앙 등이 다른 친구들과 거리를 둘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끔이라도 만나서 사람으로서의 스스로의 존재를 알게 하는 것이 그래서 자신 외의 다른 존재와 그 세계와 사람의 사후 세계가 존재를 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과의 친구란 사실로서 그리고 오래 전 이곳 저곳에 단지 대학교 과 친구로서 여행을 가듯이 동행을 할 때 있었던 사실로서 마치 과거의 사실을 상기라도 시키듯이 하는 행동들이, 말들이, 이곳 저곳에서 연기를 하듯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디서 누가 우리 사회를 이렇게 저렇게 편을 갈라서 난도질 하듯이 난도질을 하고 있고 또 엄연히 이 세상에 존재를 하고 있는 사실을 마치 쇼를 하듯이 만들고 있는 지를 모를 일이다. 왜 자신들의 자녀들을 학교를 보내고 사람 사는 사회의 예의와 도리와 품의와 품성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래서 온갖 우아함과 자태를 뽐내게 하는지 모를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말을 할 때도 그리스도 예수님이란 말 외에 다른 말을 하면 비록 성경에 있는 말일지라도 귀신이나 마귀나 악마를 말을 하고 에스키모 성경이니 아프리카 성경이니 에베레스트 성경이니 남극 성경이니 북극 성경이니 적 그리스도니 하는 등등의 말로서 공격을 하는 경우가 있듯이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불경죄를 짓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고 있고 또 성경을 망령 되이 일컫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정치 경제 등의 이해 관계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고 있고 또 정치 경제 활동 등에 블록을 형성을 하고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 보이는 것과 유사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사람은 육체가 있습니다. 그 육체에 무슨 옷을 입히는 가에 따라 달라져 보입니다. 그런데 무슨 옷을 입힐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사회적인 현상의 하나로서 사회마다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날 수가 있습니다. 즉 비록 사람의 외형에 이런 저런 음해를 가한다고 해도 그리고 몇몇이 몰려 다니면서 영화를 핑계로, 연기를 명분으로, 생계 및 경제 활동을 함정의 그물로서, 사람에게 이런 저런 시험을 들게 하는 일을 만든다고 해도 사람으로서의 본연의 가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특히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과의 관계 및 하나님의 영의 존재가 거하는 것에는 하등의 달라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앞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몸 및 사람의 몸 안에 존재를 하고 있는 사람의 영혼이 영향을 받지 않듯이, 즉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과 영리를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범죄를 하고 스스로 영혼으로 정신으로 마음으로 타락을 하고자 할 때 비록 사람의 외형으로는 쉽게 구분이 힘들지만 타락을 하게 되듯이, 사람의 외형이 모습이 사람과 사람의 영혼의 본질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벌에 천 만원 하는 옷을 걸치고 휘황찬란한 자가용을 굴리며 몇몇이 몰려 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능멸을 하거나 사기를 치거나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행위를 하는 것과 평범하게 일상에 충실하며 사는 사람 사이에 외형으로 구분을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를 하겠지만 그런 차이가 사람으로서의 존재적 본질에는, 즉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야만 사람의 영혼이 사람의 육체와 분리가 되는 것과 유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조상을 아는 것과 전혀 적대시 되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의 존재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 마치 서로 간에 대립이 되는 것과 같은 말로서 사람을 곤궁에 처하게 하는 일도 가끔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의 말을 핑계로 서로 다른 종교나 신앙이나 정당이나 산업 분야나 지역 등을 가진 사람이 서로 간에 접촉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도 그래서 서로가 만나는 경우로 또 말과 말을 만드는 경우도 조직적으로 발생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획이니 계획이니 하는 말들이 난무를 하면서 현실 공간에서의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을 상대로 실험을 마치 시뮬레이션을 하듯이 하고 있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택 담보 대출을 받게 만들고 주택을 차압 하게 만들고 신체의 장기 판매를 하게 만들고 수원시의 8개 도서관을 맴도는 것과 같이 정해진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게 만들고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바닥을 치게 만들고 황당하게 만들고 울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고 등등 누군지 모를 각자가 말을 한 대로 다른 사람을 그렇게 만들고자 여럿이 모여서 연합을 하는 일도, 그것도 우리 사회의 대의와 공의와 정의를 위해서 활동을 하는 사람을 동원을 하여 그렇게 만드는 일도, 비일비재 하게 발생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서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을 한 것처럼 누군가의 종교에 대한 말을 바탕으로 스스로 부정하게 만들게 위해서, 즉 마치 누군지 모를 자신들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하늘의 세계에서의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처럼 절대적인 권력의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에 대한 경험과 체험에 대한 누군가의 말을 비꼬기 위해서, 정치를 하던 종교 활동을 하던 경제 활동을 하던 우리 사회에서의, 즉 사람 사는 사회에서의, 모든 활동을 전지전능한 심령을 관찰하는 시공을 초월하는 천지창조 등의 말들처럼 하라고 조직적으로 삶의 환경을 그렇게 조성하는 일은 말 그대로 조직적인 범죄 행위 외에는, 다수의 개인에 대한 집단의 조직적인 범죄 행위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닌 일이지만 누군가가 말을 할 때 자신의 알고 있는 것이나 생각이나 사고에 대해서 돌이켜 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그 사람의 삶에 족쇄를 채우는 일을 행하는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발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THE. FILM. SCENARIO. OF. TEN. PRODUCTION. 20070607. JUNGHEEDEUK. 정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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